약속하건대, 분명 좋아질 거예요
나태주 지음 / 더블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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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이 급성 췌장염으로 입원해 사흘밖에 살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죽음의 문턱가지 갔다가 돌아와서야 시인은 삶은 살아지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시인은 침상에 누워 아버지의 말처럼 징글징글하도록 아름답고 빛나는 세상을 살아내겠다고 마음먹는다. 이 책은 시인의 병상 일기가 아니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긍정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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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무엇이 기쁜가? 무엇보다도 오늘 살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다. 물 마실 수 있어서 기쁘고, 음식 삼킬 수 있어서 기쁘다. 새삼스레 한국말로 시를 쓰는 사람인 것이 기쁘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어둑한 터널,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그 길. 금방 빠져나오면 다행이지만, 그 터널이 길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 나는 그 터널 속에 갇혀서야 깨달았고, 이 책은 그 기록이다.

'나도 이렇게 아팠는데 일어났으니 당신도 그렇게 하라'는 말이 아니다. '나 같은 사람도 이겨냈으니, 당신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이다.

 

모든 첫 번째 것들은 마음속에 강력한 기억을 남긴다. 그래서 오래오래 잊히지 않는 그 무엇이 되고야 만다. 그것을 우리는 추억이라고도 말하고 상처라고도 말하겠지 싶다.

시인들에게 있어서 첫 번째 시집이 그런 존재다. 모든 시인들에게 있어 첫 번째 시집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첫 번째 낳은 아기와 같다.

 

의식이 있고 눈동자도 또렷한 사람이 어찌 그렇게 죽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 아들아이 생각이었다. 그건 무모한 신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무모한 신념이 끝내 나를 중환자실에서 나오게 해 주었고 또 내 생명을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나아지는 쪽으로 밀고 나가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이들아이가 한 일이지만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할것이다.

 

내가 병을 이겨내고 다시 밖으로 나섰을 때,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어김없이 나에게 들려주는 인사말이 있다. '살아줘서 고맙습니다.'

전혀 의외의 인사말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내심 놀라곤 한다. 내가 병이 나 주위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쳤고 신세를 졌고 염려하는 마음을 줬으니 이쪽에서 고맙고 미안하다고 해야 할 일인데 거꾸로 된 인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글쓰기는 나에게 있어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행위 그 연소 과정이기도 한 일이다. 정말로 글쓰기가 나를 쓰러뜨렸다 하더라도 글쓰기를 통해서 나는 다시금 나를 일으켜 세워야만 했다. 그것이 순리요, 바른 방법이었다.

글쓰기는 에너지의 방출 행위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새롭게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또 하나의 생명 행위였다.

 

평생을 두고 존경하며 따를 수 있는 어른이나 선배가 있다는 건 매우 행복한 일이다. 보람된 인생이다. 가족 구성원 가운데에서 그런 분이 있다는 건 더욱 행복한 일이고 보람된 인생이다. 그렇게 청춘을 바라보는 어른이 있을 때, 청춘은 비로소 어른을 바라볼 수 있다.

그때에서야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 아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중요한 사실을 이제사 알게 되다니! 그러나 이제라도 알게 된 것은 이보다 더 늦게 안 것보다 나은 일이요. 아예 그 조차 모르고 세상을 뜨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겠는가. 그것은 역시 나름대로 소중한 깨달음의 한 계기가 되었다.

인간은 한시도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그런데 사랑하려면 가끔 뒤를 돌아봐야 한다는 것을 뒤 늦게 알았다.

 

이 제 내 차례다. 내가 화답할 차례다. 나에게 주어진 소명은 이렇다. 기뻐하라, 사랑하라, 감사하고 찬미하라, '어른처럼'이 아니다.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라. 분별없이 기뻐하라. 내일은 걱정하지 말고 오늘에, 오직 오늘의 순간 순간의 삶에 열중하라. 그것은 나를 다시 살리신 신이 주시는 소명이요, 지상명령이다. 기쁨, 사랑, 감사, 찬미, 그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내 시와 인생의 주제였다.

이미 나는 사로잡힌 영혼이었는데 나만 그것을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이제라도 알게 되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노릇인가! 감사의 홍수, 그 강물이다.

 

책이란 또 이렇게 엉뚱한 곳에 가서 저 나름 뿌리내리고 나 대신 자생력을 얻어 살아가는 생명체 노릇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풀꽃>이란 시는 나에게 두 번씩이나 그것도 병원 생활 가운데 기쁜 소식을 전해준 시가 되었다. 어쩐지 그 일 하나만으로도 나에게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희망의 뿌리가 되었고 병상을 털고 일어날 것 같은 소생의 확신을 심어줬다.

 

빛깔로 친대도 기쁨은 환하고 따스한 빛깔이겠다. 알록달록 어여쁜 빛깔이다. 모양으로 바꾸어보아도 기쁨은 모난 것이 아니라 둥글고 부드러운 것이겠다. 우리들 인간은 슬프거나 괴로운 감정보다는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감정을 추구하는 존재다.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목숨 가진 것들은 기쁨을 원한다. 그건 동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식물들도 그럴 것이고 어쩌면 무생물까지도 그럴지 모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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