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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마잡담
마광수 지음 / 해냄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UFO로 광마잡담 혹성에 가다
재미있다. 참 재미있다. 무진장 재미있다.
다른 어떤 감상도 필요치 않다.
간혹 성희 묘사가 뚝뚝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즉 황홀경에 빠졌다, 질퍽한 성희를 나누었다, 성심성의껏 봉사해 주었다 등. 구체적인 성희 묘사가 줄어들었나?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검열 때문에 글을 쓰는데 누가 자꾸 팔을 툭툭 치는 기분이 든다'라며 창작을 할 때 검열공포증 때문에 힘이 든다고 했었다. 그러나 책 중반을 넘어서자 마광수의 관능적 상상력은 보란 듯이 펼쳐졌다. 마지막 <별은 멀어도>에서 최고였다.
<인어 이야기> <두 여인> <모란꽃 이야기> <공처가 이야기> <무덤 속의 여인>에서는 주인공을 통해 나르시시즘을 대신 느낄 수 있었다.
<다이아나 이야기>에서 다이아나가 사는 별나라 섹사(SEXA)는 문명과 합리적 지성과 복지가 거의 완벽하게 구현되고, 특히 성의 해방이 완전히 이루어져 있는 곳이다. 개성을 억압하고 성을 폄하하는 '촌티'와 '심통' 같은 것은 전혀 없는 곳.
섹스의 해방으로부터 사람들 마음속의 적개심을 몰아낼 수 있고, 성적으로 배불러지면 사람들은 마음이 너그러워지게 된다고 한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성적(性的) 적개심'과 '성 알레르기'를 빼버리지 않는 한, 아무리 옳은 명분을 가지고 정치적 투쟁을 한다 하더라도 그 사람은 반드시 나중에 변절하게 돼요....'한국에서는 요절하지 않으면 변절한다'..(178쪽) 라며 성의 해방이 이뤄진 이 곳, 별나라 섹사(SEXA).
섹사(SEXA)에서는 에덴동산처럼 옷을 벗고 산다. 사람들은 옷을 입고 나서부터 여러 가지 이중적 은폐심과 위선적 기만성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담과 이브는 자꾸 선과 악을 구별하려 들었던 거예요. 말하자면, 모든 걸 흑백 논리로 따지려 들고 분별심(分別心)과 차별심(差別心)이 생기게 된 거죠." "...불교에서는 늘 분별심과 차별심을 없애고 평등심(平等心)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고 있으니까 말야."..(185쪽) 그리고 독신 여성과 독신 남성은 여러 섹스용 로봇을 사서 즐긴다. 지구상의 인간들 중에서 관능적 상상력이 죄의식 없이 뛰어난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들이 이곳에서는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
섹사(SEXA)의 지배이데올로기는 아름다움을 최고의 가치관으로 하는 '탐미적 평화주의'다. 그리고 모든 불행과 악의 씨앗인 질투가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지구인들이 고통받고 있는 이유는 육체주의를 무시하고 정신주의 쪽으로만 나아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여기서 지구인들의 정신우월주의를 마비시키기 위해 육체파 여배우 마릴린 먼로와 같은 섹스 스타를 계속 보낼 것이라고 한다.
<별은 멀어도>에서는 섹사(SEXA)처럼 또 다른 UFO를 보낸 곳, EROTICA3000이라는 혹성에 관한 이야기다. 관능적 상상력이 그대로 실현된 곳이다. 과학의 발달로 '생물학적 로봇으로 이루어진 천국'이라고 부를 만한 곳. 현실에서 관능적 상상력을 맘껏 펼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마광수는 여기서 아름답고 시원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에 주인공은 EROTICA3000으로부터 선물로 받아 온 여덟 명의 노동 로봇과 일곱 명의 미녀 로봇과 함께 행복하게 관능적 상상력을 펼치며 창작을 한다.
이 이야기처럼 현실에서도 마광수 작가가 자유롭게 창작활동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현실은 마광수 작가에게 너무 잔인한 것 같아 무척 안타깝다.
<광마잡담>을 읽고 나니, UFO를 타고 작가의 내면의 소우주를 여행하고 돌아온 것 같다. 마광수의 성적 판타지는 순수하고 투명하고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