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두 번 죽이기 - 반민주주의자에 대한 민주주의 재판
박홍규 지음 / 필맥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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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고대 그리스인은 모든 방면에 관심을 갖고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민주주의 시민의 바람직한 모습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가정의 평화를 지키고 가계의 수지를 관리하는 데 엄격했고, 공적으로는 민회와 민중법원 참여, 추첨에 의한 고무 담당, 전쟁수행에 바빴으며 그 모든 것을 위해 교양을 쌓고 체력을 단련했
다. 그리고 공과 사, 정신과 육체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고로 발휘하고자 노력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공무원의 자격요건은 전문가가 아니라 폴리스 시민으로서의 덕성이었다. 한 분야의 전문성만을 추구하는 것은 자유인이 할 일이 아닌 비열한 짓으로 여겨졌고, 경제적으로 최대의 이윤을 추구하는 것도 부끄러운 짓으로 간주됐다. 민주정의 원칙인 아마추어리즘은 그런 가치관과 더불어 인간은 본래 잠재적으로 모든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가치관에 입각한 것이었다.-235쪽

고대 그리스인은 민주주의를 하나의 생활방식으로 이해했고, 시민이라면 누구나 민주정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사 양면에서 경험을 쌓아 스스로 능력을 갖춰야 했다. 따라서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무능한 시민으로 간주됐다.

그런 자유인들의 공동체인 폴리스는 자주를 기본으로 하는 자치체로서 시민의 자율적인 생활방식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했다. 그래서 그 조직은 민회, 평의회, 민중법원, 책임지는 공무원제로 구성됐다. 그 어느 것이나 참여와 책임의 원리에 의해 운영됐다.
-236쪽

그런데 이러한 폴리스가, 그리고 폴리스 시민의 아마추어리즘이 소크라테스의 프로페셔널리즘에 의해 부정됐다. 그래서 그는 결국 처형당했다. 물론 그의 처형 자체는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허용되어서는 안될 부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것을 전제정에서 벗어난 지 얼마되지 않아 여전히 불안에 떨던 아테네 시민들이 다시 찾은 민주정을 지키기 위해 기울인 정치적인 노력의 하나로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어지러운 혼란기였던 그 시기에 소크라테스같은 반민주주의자가 너무나 많았기에 본보기로 그를 처형한 것이었다.
-236쪽

그러나 그 후에 역사는 그의 반민주주의의 승리로 이어졌다. 역사는 전문가, 특히 교수를 중심으로 하는 노예제 학문집단인 대학을 배경으로 한 엘리트 전문가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비민주주의 체제를 형성했다. 그런 반민주주의 역사는 2천 년 이상 지속돼 왔다. 지금으로부터 2백 년쯤 전부터 범세계적으로 민주주의 바람이 불었지만 그 대세는 어디까지나 간접민주주의와 전문가주의가 복합된 관료주의 같은 것으로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가 가졌던 아마추어리즘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래서 아테네 민주주의와 적대적이었던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 특히 플라톤이 그 세력을 유지했다. 지난 2천 년간의 봉건사회에서는 물론 지난 2백 년간의 민주사회에서도 그들의 학설이 옳다고 칭송됐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실상을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반민주적 가르침보다 고대 아테네 시민들의 직접민주주의 경험이 우리에게 더욱 소중하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우리는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를 따라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직접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던가 그것은 단지 중우정에 불과하다는 식의 편견은 버려야 한다. -237쪽

지금 우리는 '참여와 책임'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는 단순히 특정한 정권의 구호로 끝나지 않고 우리 시대는 물론 앞으로도 영원할 우리의 구호다. 모든 시민에게 보다 폭 넓은 참여의 기회가 주어지도록 해야 하고, 동시에 그 참여에 반드시 엄격한 책임이 따르도록 해야 한다.

특히 모든 정치인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공인을 선발할 때 전문분야의 능력만이 아니라 교양있는 품성을 무엇보다 존중해야 한다. 따라서 대학에서도 교양교육에 더욱 주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학자체가 개혁돼야 한다. 전문가 바보 노예가 우글거리고 권위주의적 사유사가 주름잡는 동물원이 아니라 자기 철학을 갖는 전인적 지식인으로서의 교수들이 폭넓은 학제적 연구와 교양인 교육을 담당하는 새로운 대학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기구 중에서 가장 비민주적이고 관료적 재판이 판을 치는 사법부는 아테네의 민중법원까지는 아니더라도 시민이 참여하는 배심제나 참심제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237쪽

덧붙여 마지막으로 다시 강조하자. 우리 모두 자유인, 자치인, 자연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경제인이 아니라, 지배자가 아니라, 엘리트가 아니라, 전문가가 아니라 즉 경제적 이윤 추구의 상징인 배부른 돼지가 아닌,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으로서 모든 분야와 모든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자주적으로 발언하며, 자기 사회의 자치에 대해 책임을 지는 아마추어리즘의 시민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의 민주주의를 더욱 완전하게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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