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견디는 힘, 루쉰 인문학 - 어둠과 절망을 이기는 희망의 인문학 강의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18
이욱연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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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자, 영혼을 일깨우는 등불이다. 문학, 역사학, 철학이 '인문학 삼총사'인데, 이중 시대정신을 이끄는 캐릭터의 창조엔 역사학과 철학이 문학의 위업을 따라잡지 못한다. 지성인들의 영혼을 사로잡았던 소설 주인공을 떠올려보라. 가령 알베르 카뮈의 뫼르소, 허먼 멜빌의 에이해브 선장,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루쉰의 아큐 등이 그러하다.

'중국 현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루쉰은 대표작 「아Q정전」과 「광인일기」에서 '아큐'와 '광인' 같은 문제적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나는 중국문화의 속살을 알려면 루쉰 전집을 읽어야 한다고 늘 강조해왔다. 그리고 그런 루쉰의 뒤를 잇는 당대 작가가 위화다. 한국 독자들은 루쉰보다도 위화가 더 친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의 대표작 『인생』이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로, 『허삼관 매혈기』 는 하정우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중국에 루쉰과 위화가 있다면, 일본에는 나스메 소세키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다. 그리고 유감스럽지만, 한국에는 춘원 이광수와 이문열이 있다. 매번 이런 '한중일 대문호' 비교가 시작되면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리곤 한다. 한국 현대문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춘원 이광수는 '친일 작가'나 '천황주의자'라는 매우 지저분한 꼬리표가 늘 따라붙는다. 초딩 시절, 나는 아무 선입견 없이 『무정』ㆍ 『흙』ㆍ 『사랑』ㆍ 『원효대사』를 읽었는데, 『원효대사』 말고는 그리 잘썼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문열은 또 어떠한가. 보수 이념에 찌든 꼰대라는 대중적 이미지 때문에 꽤 우호적인 문학평론가도 몸을 사리는 편이다. 청년 시절, 나는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과 『시인』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지만, 지금은 그의 작품과 절연했다.

중국문화 전문가 이욱연은 루쉰 문학이 "어둠과 절망을 견디는 힘"을 준다면서, 루쉰의 글과 사상에 재현된 가치를 재조명한다. 루쉰은 "불의한 권력에 굴복하지 않으면서 투창이자 비수와 같은 글로 불의한 권력을 비판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저자는 이런 전형적인 면모 말고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루쉰의 모습도 강조한다.

"낡은 시대의 유산을 짊어진 자의 고뇌와 겸허, 유죄의식과 참회의식, 그리고 그곳에서 기원하는 미래 세대를 위한 숭고한 헌신과 희생의 선택, 삶의 공허와 절망을 대하는 법, 절망의 시대에 절망에 항전하는 삶의 태도와 희망을 만드는 법, 패배와 실패 속에서 자신을 추스르는 삶의 지혜와 관련한 루쉰의 모습도 소중합니다.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세상, 루쉰이 평생 바라던 일이자 그가 헌신한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꿈꾸는 사람이자 세상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여전히 루쉰의 글을 읽고, 루쉰의 생각을 따라가면서 나를 비춰보고, 한국 사회를 비춰보는 이유입니다."(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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