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와 함께한 산책
벤 섀턱 지음, 임현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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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의 발자취를 따라 걷기, 아마도 그게 서구 뚜벅이들의 로망일 수 있겠다. 노마드의 열정을 가슴에 품은, 뚜벅뚜벅 걷기를 예찬한 사상가들은 매우 많다. 생태문학의 고전인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비롯해 루소, 뮤어, 월서, 벤자민, 솔닛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던 예민한 영혼의 소유자들이 걷기와 유목, 탈주를 통해 구원받았다는 고백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미국의 아티스트 벤 섀턱 역시 유목, 즉 목가적인 산책을 통해 불면과 상실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있었다. 벤은 소로가 걸어간 길을 나침반 삼아 총 여섯 번의 시적인 산책을 이어간다. 케이프코드, 커타딘산, 와추셋산, 사우스웨스트, 알라가시, 케이프코드로 이어진 여정이다. 저자가 직접 스케치한 다양한 풍경 그림들이 유목만의 고유한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더한다.

1849년 가을 아침, 헨리 소로가 해변을 걷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리고 웰플릿의 굴잡이의 집에 하룻밤 머물렀다. 기나긴 악몽과 불면의 밤에 시달리던 벤 역시 헨리의 『케이프코드』를 지도 삼아 그의 뒷모습을 따른다. 여행 첫날 벤은 빵 한 덩이, 치즈 한 조각, 노트 한 권을 배낭에 넣고선 굴잡이의 집을 구경한 뒤, 호수 맞은 편에 있는 친절하고 낯선 사람들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진다. 헨리는 아침에 장어와 줄기콩, 도넛을 먹고 차를 마셨는데, 벤은 시나몬 토스트와 치즈, 계란을 먹었다. 그리고 북쪽의 프로빈스 타운으로 향했다.

야생에서 낭만은 위험한 망상이고, 불같은 로맨스는 금기다. 물론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여주는 따스한 인간애를 만끽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만약 문명보다 대자연을 사랑하고, 스스로 '바람의 딸'이라 자부하는 뚜벅이나 캠핑족이 있다면 작가의 다음 말에 주의를 기울여주기 바란다.

"내가 밤마다 어디서 자든 상관없다는 사실, 혹은 어디서 자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은 나의 예의 바름이나 타인의 환심을 살 수 있는 성정과는 상관없을 것이다. 숲에서, 해변에서, 공동체 안에서, 공간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백인이기 때문에 비교적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과 남성이기 때문에 위협받지 않을 거라는 사실에 기인한다."(31, 32쪽)

평소에 자주 걷는 길의 상태가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영혼의 상태와도 관련이 있다. 명상과 다를 바 없는 시적인 산책의 마스터인 소로에 따르면, "먼지 자욱한 길을 오래 걸으면 우리의 생각도 길처럼 지저분해진다. 사고는 무너지고 멈추며 혼란스러운 재료의 주기적인 리듬에 따라 소극적으로만 이루어진다." 당신이 지금 걷고 있는 길의 상태는 어떠한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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