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거짓말 감각은 당신을 어떻게 속이는가 - 저명 신경과 의사가 감각 이상에서 발견한 삶의 진실
기 레슈차이너 지음, 양진성 옮김 / 프리렉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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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이 차단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러고보니 오감을 잃은 적이 있었다. 코로나로 후각과 미각을 잃어보았고, 손목터널증후군으로 손의 촉감과 운동능력을 잃어보았다. 고열로 시각을 잠시 잃어본 적이 있고, 돌발성 난청으로 청력을 사나흘간 잃어본 적도 있다. 오감 하나가 없어지면 고장난 인형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가장 오래 잃어버렸던 감각이 촉각이었다. 한 달 넘게 고생한 손목터널증후군으로 손과 팔목의 감각을 완전히 잃었을 때 정교하게 만든 고무손, 고무팔이 장착된 것 같다는 인상을 받곤 했다. 전혀 내 손 같지 않았다. 어찌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을까 했지만 정작 그리 무섭거나 두렵지는 않았다. 정작 내게 가장 큰 두려움을 주었던 것은 잠시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 상실이었다. '큰일 났다'는 쎄한 느낌이 빡세게 든,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공포 체험이었다. 눈이 보이던 사람이 갑자기 시력을 잃게 되면 생활의 불편이나 장애에 대한 걱정과 우려보다도 먼저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생존본능이 촉발시킨 원초적 공포와 불안 말이다. 

감각은 현실을 내다보는 창이자 내부의 삶과 외부의 삶을 이어주는 관이다. 우리를 현실세계와 이어주는 다섯 가닥의 끈이 끊어지게 되면, 우리는 단절되고 고립되며 표류한다. 마치 실 끊어진 방패연처럼 말이다. 감각의 부재는 엄청난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특히 촉각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촉각은 우리를 주변 사람들과 연결시켜 준다. 포옹, 팔 쓰다듬기, 등 토닥이기, 애무 등은 서로를 결속시킨다. 촉각은 피부에서 촉발되는 단순한 전기 자극을 넘어서, 우리의 감정, 기억, 자아, 타인에 대한 감각과 뒤얽힌다."(20쪽)

우리의 감각은 신경계의 구조적 기능적 온전함에 의존한다. 영국의 뇌신경과학자 기 레슈차이너는 오감의 혼란과 상실, 혹은 오감의 과잉과 결여로 고생하고 있는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중 드라마나 만화에서나 보던 소재인 '선천성 무통각증' 환자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독감, 늑골 골절과 요로 결석의 고통으로 고생한 적이 있던 터라,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최강의 멧집을 가진 사나이가 아닐까 싶었지만, 막상 그 현실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무척 비극적인 스토리라서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저자는 고통을 단 1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장수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통증을 느끼는 본능의 상실은 생존과 발달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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