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콜로케이션 사전 - 최적의 의미단위 영어학습법
Michihisa Tsukamoto 지음 / 다락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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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조선은 식민지가 되었나?  그리고 왜 한국은 아직도 식민사관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나?

왜 일본은 과거침략에 대한 반성을 안하고 있나? 에 대한 답은 여러가지 연구와 논문으로 대략적이나마 알 수 있다.


이에 저자는 해방후 일본에서 진행된 도쿄 전범재판의 전범 당사자 하나하나의 발자취를 통해서 그들이 어떻게 패전후 다시 일본 정계로 복기하였는지를 살핀다. 한며한명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지금의 일본우익의 뿌리는 바로 전쟁전범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 어떻게 전쟁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할 수 있나하고 고개를 흔들게 된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에서는 일제의 식민사관에 기댄 사학자들이 강단사학을 움켜쥔채 역사를 장악하였고 정치경제적으로는 친일파들이 아직도 사회곳곳에서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있기에 식민상태는 아직도 극복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어떻게 이를 극복해야 할까


그에 따른 연구 이전에 한국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사람들이 어떠한 사상을 토대로 하여 독립운동을 하였을까에 대한 고찰은 아직 미미한 실정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사상적 연원은 독립운동과정에서나 후에 해방후 만들어지는 나라에 대한 밑그림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연구와 고찰이 뒷받침되지 않고 다만 독립'운동'에 대한 것만 고찰하게 되면 어떤 나라를 만들려 했고 그것이 어떻게 실패하였나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가 지금 현재에서 어떤 나라를 희망하고 있는가에 대한 미래를 그려볼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일본 극우파의 부상과 이에따른 동북아의 국제정세속에서 지금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지금 당시와 비슷한 100여년전의 과거를 특히 그중에서 독립운동의 선봉에 섰던 사람들이 어떠한 생각으로 모든 재산과 목숨까지 버려가며 싸워왔는지 밝히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우당 이회영과 석주 이상룡의 사상적 기반이 무엇인지를 1차사료를 통해서 밝히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둘의 사상적 기반은 아나키즘이라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당 이회영은 '가금시이작비'(覺今是以昨非) 즉, '지금 깨달으니 과거가 잘못되었다.'가 아니라는 우당의 직접적인 말을 전하고 있다. 우당은 과거 조선의 벌열가문이고 성리학을 사상적 기반으로 삼아서 조선의 기득권층이었지만 그 과거가 잘못을 바로잡고자 아나키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회영은 이렇게 말한다.


"자유 평등의 사회적 원리에 따라서 국가와 민족 간에 민족 자결의 원칙이 섰으면 그 원칙 아래서 독립된 민족 자체의 내부에서도 이 자유 평등의 원칙이 그대로 실현되어야 할 것이니까 국민 상호 간에도 일체의 불평등, 부자유의 관계가 있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지금 현재에서도 매우 진보적인 생각을 하고 있고 또 이것을 실제로 실천하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상이 어떻게 나왔는가에 대하여 저자의 연구수고가 보인다. 저자는 우당과 석주의 이런 생각이 조선후기 양명학의 계보를 이었기 때문에 아나키즘의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왕양명의 저서 '전습록]에 나오는 다음의 구절은 바로 위와 상통한다고 한다.


'무릇 성인(聖人)의 마음은 천지만물을 일체로 삼으니 천하 사람에 대해 안과 밖, 가깝고 먼 것이 없고, 무릇 혈기 있는 것은 모두 형제나 자식으로 여기어 그들을 안전하게 하고 가르치고 부양하여 만물일체의 생각을 이루고자 한다.'


성리학적 기득권층에 얽매이지 않는 양명학의 대동세상에 대한 것이 학문적 사상적 뿌리가 되었기 때문에 조선의 멸망에 대하여 일제에 타협하지 않고 왕조복권이 아닌 아나키즘적 평등세상을 추구하기 위하여 모든 재산과 명예를 버리고 독립운동에 매진하였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우당과 석주의 독립운동은 양명학적 뿌리에 기반한 새로운 사조를 사상적 기초로 삼아서 새로운 나라의 모습을 그렸기에 패망한 왕조의 부활과는 전혀 관계없이 대동세상 평등세상에 대한 열망과 기대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막연히 나라를 잃어서 그것을 되찾고자 하는 노블레스오블리즈의 전형으로만 둘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추구하고 바라야할 미래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지금의 문제해결에 아무런 역할도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노를 잠재우고 차가운 이성으로 미래를 실천하는 우당과 석주의 혜안에 다시금 고개가 숙여진다.


저자의 노고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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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 남한산성 항전일기 - 왕은 숨고 백성은 피 흘리다
나만갑 지음, 서동인 옮김 / 주류성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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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년 남한산성 항전일지]

 

역사는 반복되는가

인류에게 희망은 있는가

왜 인간의 기억력은 이리도 허약한가 라는 질문부터 떠오르는 게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느끼는 감정이다.

 

시간적으로 살펴보자. 임진왜란이 끝난 시기가 1598년도이다. 병자호란은 1636년도이다. 두 전쟁의 기간은 고작 38년이다. 임진왜란이 끝난지 겨우 38년만에 다시 병자호란이 일어난 것이다.

 

임진왜란전에 충분히 침략전쟁에 대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인 파벌 내지 기득권 싸움에 매달린 권력자들에 의하여 결국에는 백성들의 재산과 목숨이 망가지게 되었다. 임진왜란후에 전쟁당사국들인 중국과 일본은 기존의 왕조 혹은 권력이 교체되어 나가는 과정이었는데 조선만 같은 왕조가 계속 유지되었다. 중국은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일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서 도쿠가와 막부로 정권이 교체되어 나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어떻게 조선이 계속 같은 권력이 지속될 수 있었는가는 별개의 논의로 하자. 국제정세의 변화속에서 한 나라가 어떻게 유지되고 번영을 누릴지에 대하여는 조선말의 상황을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니까.

 

다만 임진왜란이 끝난지 40년도 안되서 참혹한 전쟁을 다시 불러일으키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봐야 한다. 나는 조선 정치체제 혹은 이데올로기에서 유교(라기 보다는 성리학)가 갖는 허황된 명분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본다.

 

명나라가 쇠퇴하고 청나가가 세를 크게 불리는 과정에서 당대의 권력자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유교 혹은 성리학으로 대표되는 공맹의 사상이라는 조선의 이데올로기는 명나라에서 조선으로 넘어왔고 이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라는 명분을 겉으로 내세운다. 그에 따라 청나라와 명나라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펼치는 광해군을 몰라내는 인조반정이 일어난다. 수구 기득권세력은 공맹의 사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나라와 백성의 이익보다는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하고자 한다. 명분을 앞세우지만 그 속은 철저하게 이익을 챙기는 권력의 모습을 나는 이 책에서 보았다. 김상헌과 최명길의 주장 어디에서도 나라와 백성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인다. 철저하게 왕조와 기득권의 유지외에는 다른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신들이 비록 죽는다 해도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그러나 다만 전하께서 기어코 명나라에 죄를 지으셨으니 신들이 실로 부끄럽습니다.”

 

이는 척화파인 오달제와 윤집이 인조에게 직접 한 말이다. 백성의 안위와 나라의 위태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이야기 아닌가. 명분은 300년동안 지켜왔던 명나라와의 예속관계와 임진왜란에서 국가위기를 구해준 나라로서의 명나라를 이야기하지만, 왕조와 권력이외에 백성들을 위하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것이다.

 

임진왜란에서 조선을 구해준 은혜가 있다하여 지금의 나라를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 당연한 명분일까. 38년전에 겪은 것을 다시는 겪지 말아야 할것임에도 그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는 권력자들의 모습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겹쳐보는 것이 이상한 일일까.

 

한국전쟁에서 나라를 구해주었다고 하여도 지금 현재의 나라를 위태롭게 만드는 상황에서도 명분과 의리에 매달리는 것이 병자호란을 대하는 위정자들의 태도와 무엇이 차이가 날까.

 

결국 언제나 국제정세속에서 국익을 우선으로 백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위정자와 그를 따르는 나라만이 번영과 안정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이 책에서 얻는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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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전설
안필령 지음 / 어문학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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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 무엇을 써야 하는가? 작가 스스로의 삶을 써야 한다.

스스로의 삶은 무엇인가 작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무엇인가를 써야 한다.

작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란 작가 개인적인 것 일수도 있고 그를 둘러싼 사회일수도 있다. 작가는 태어나는가? 아니다. 작가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그건 삶을 온전히 내 것으로 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작가는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오랜만에 작가가 자기 삶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글로 적은 책을 보았다.

밥하고 빨래하고 이불 팔며 그렇게 평생을 살아왔다고 작가는 자신의 소개 글을 적었다.

평생을 집안 살림과 이불 장사를 함께 하면서 살아오면서도 이야기의 신 내림이 있어서 썼다고 매우 겸손하게 표현한 작가 소개 글이 우선 가슴에 와 닿는다.

여기서 이야기의 신 내림이란 무엇인가. 책의 내용을 살펴보자.

 

돈이 최고의 가치이며 그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무슨 짓을 하더라도 모두 용인되는 세상.

그러한 세상에서는 삶에 대한 경외감과 타인에 대한 존중, 그리고 사람과 사람사이의 사랑에 대한 모든 가치가 오로지 돈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는 세상이다.

또한 돈을 위해서라면 나를 둘러싼 자연조차도 금전적 수익의 대상으로밖에 보이지 않게 되는 세상이 된다.

그리하여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서만 이루어지고 있다는 간단한 사실조차 인간의 탐욕과 욕망에 무참히 무시되는 세상이 되고 만다.

 

이 소설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권력을 이용하여 인간 삶의 기초가 되는 자연환경을 돈벌이의 수익구조로만 파악하는 사회지도층과, 그러한 구조에 너도나도 뛰어드는 인간군상이 한편에 있다. 그 반대편에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동식물이 인간의 탐욕에 희생당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둘이 치열하게 다투는 과정에서 작가는 무엇이 문제인지 또한 무엇이 우리의 미래가 되어야 하는지 차분하게 들려주고 있다.

 

작가가 설정한 수봉산이라는 자연환경에서는 자연 속에서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수많은 동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위계질서가 있다. 자연 속에서 어우러져 살아가지만 인간의 탐욕으로 자연환경이 파괴되어감에 따라 그들의 삶이 망가져가는 과정을 그린다. 인간의 탐욕이 빚어내는 현실에서 결국 수많은 동물들은 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인간에게 반격을 가하게 된다. 그로인한 인간과 동물들의 처절한 사투를 그리고 있다.

 

작가는 왜 이런 글을 썼을까?

대개 작가라 함은 인간의 존재와 실존 혹은 삶의 의미를 묻는 일에 더 커다란 의미를 두고 있다. 왜냐하면 누구나 갖는 의문과 질문 그리고 그것이 갖는 무게감이 크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가는 그러한 의문과 질문이전의 문제, 즉 우리가 생존하는데 필요한 조건을 말하고 있다. 자연이 파괴되면 그 안에 사는 인간도 살지 못한다는 기본적 생존의 문제를 말하고 있다.

작가가 고귀한 철학과 인생담론을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갖는 중요함을 모르는 게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환경이 파괴되면 인간은 살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 이유는 뭘까? 이 글 앞에서 작가소개 글이 그 답을 말해준다.

 

작가는 밥하고 빨래하고 이불 파는 평범한 여자이지만 작가 개인의 삶으로만 그것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자연과 사회를 바라볼 줄 알기에 환경문제를 쓴 것이다.

또한 작가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인간의 시선이 아니라 동물의 시선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이것은 작가가 인간을 최우선으로 놓는 태도가 아니라 인간과 동물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태도는 작가의 삶이 아이들을 키우고 가정을 꾸려내고 장사를 하면서도 자기 개인에 갖혀 있는 게 아니라 늘 작가를 둘러싼 사회와 자연을 내 가족 내 가정을 사랑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의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이 글은 어려운 이야기보다 늘 우리가 접하는 쉬운 문체로 그냥 넘어가기 쉬운 자연을 소소히 또는 세세히 알기 쉽게 묘사하고 있다. 밥하고 빨래하고 장사하는 사람으로서 자기만의 세계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현재 자라나는 아이들은 실제의 나무와 꽃과 동물들을 그림과 화면으로만 볼 뿐 실제로 보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한 아이들에게 작가가 설명하는 자연속의 수많은 식물과 동물에 대한 표현은 이 작가가 평소에 얼마나 자연에 깊은 관심과 애정이 있는지를 알게 해준다. 그러한 관심과 애정이 있기에 사회와 환경을 함께 바라보는 안목이 키워졌을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작가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보자.

먹고 살기 위해서 아둥바둥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아마도 자기 스스로와 가족일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만 머무르게 되면 한 번 뿐인 인생에 아쉬움이 남게 될 것이다. 물론 그것조차 지켜내기에도 힘든 게 현재의 생활이지만.

그럼에도 소위 글을 쓴다는 사람에게는 그 하나의 계단, 힘들지만 올라가야 하는 그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자기를 둘러싼 사회와 자연에 대한 이해와 사랑이 있어야만 자기 삶을 타인에게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다. 작가의 삶과 글에 대한 것이 자신과 가족에게만 머물지 않고 자연과 사회에 대한 인식으로까지 그 지평을 넓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나 이 작가는 그것을 이뤄내기 위하여 자기의 모든 노력을 다하였으리라 짐작된다.

 

소제목인 자녀와 함께 읽는 우화 소설이라는 책의 부제는 매우 적절하다.

미래에서 온 전설작가의 처녀작이라고 하지만 읽는 독자는 수많은 책들 중 하나인 것이다.

그렇지만 모쪼록 초중등 자녀를 가진 부모는 자녀와 함께 이 책을 읽고서 어느 날씨 좋은 날 공원이라도 산책하면서  책의 내용을 이야기 하면 나눌 말이 참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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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헌 2016-02-19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논리적으로 잘 쓰신 감상편 잘봤습니다.


인천분 2016-02-20 12:2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도련님 꿈결 클래식 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이병진 옮김, 남동훈 그림 / 꿈결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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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드러난 성격이 단순해 보인다고 생각마저 단순한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안에 우주가 담겨있다고 하지 않던가..

 

근대 일본사소설의 전형을 보여주었다고 하는 나쓰메소세끼의 소설 '도련님'은

글의 구성에서도 매우 단순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다지 사람과 친화적이지 못하고 귀하게 자란 느낌의 주인공은 그저 그렇게

성장하여 교사로 부임하게 된다.

 

그저 그렇게 라는 것은 성장과정에서 특이한

경험이나 고통을 크게 겪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익숙한 도련님이라는 표현 즉, 물정모르고 자기 감정에

좌우되기 쉬운 인간형으로서 설정된 단어로 선택된 인간형을 나쓰메 소세끼는

도련님으로 표현한것으로 보인다.

 

이 도련님이 - 세련된 도쿄출신- 시골의 학교에 부임하고 나서 겪는

여러가지 일들 특히 시골이라지만 음험하고 교묘한 사람들 그리고

학생들과 갈등을 겪어 나가는 과정을 세밀히 묘사하고 있다.

 

교묘하게 동료교사를 음해하고 내쫒고 괴롭히는 교감과 그에 아첨하는

선생을 다른 선생과 함께 주먹으로 응징(?)하는 내용이 소설의 크라이막스이자

마지막 결말이다.

 

순진하고 단순하다고 해서 올바른 것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혹은

부정의한 잘못된 것을 꾹 참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하여 일종의 응징을 하고, 그 댓가는 있는 그대로 받겠다 하는

생각은 아마도 오히려 단순하기에 그렇지 않을까 싶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런 경우에 뭐가 무서워 피하냐 하면서 자기합리화를 하는데 비해

소설속 주인공은 '도련님'답지 않게 바르지 못한 것을 응지한다. 그에 비해

자기 여자를 빼앗기고 살던 곳에서 쫒겨나다시피하고도 예의와 범절을 찾는 끝물호박선생의

우유부단함과 깊은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소설 내용이 거창하거나 깊은 뜻을 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왜 소세끼 소세끼(소새끼가 아니다) 하는지를 이 소설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화려한 수사도 없고 묘사도 구체적이지 않고 문장도 평이하지만 읽는 이에게

편안함을 주는 문장이 매우 돋보였다.

 

글 자체도 어려운게 없으면서도 그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문체도 많은

감동을 주었다..

 

나도 글을 쓴다면 저렇게 써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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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를 믿지 말아야 할 72가지 이유 - 술, 담배가 그렇게 나쁠까? 비타민은 진짜 몸에 좋을까?
허현회 지음 / 맛있는책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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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3년 11월 15일, 168명의 스페인군대와 8만명의 잉카제국은 전투를 시작했다. 숫적으로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스페인군이었지만 전투는 일방적인 스페인군의 학살이었고, 잉카제국의 군대는 대량학살을

당했고 황제는 생포되어 몸값으로 당시 가격으로 2800만달러를 지불했음에도 처형당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역사가들은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그 상황을 설명한다. 하지만  그 이유를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무지'다.

 

다른 세계에 대한 무지, 스페인군에 대한 무지와 더불어 세상에 다른 종류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잉카제국멸망의 기본이다. 병균에 대한 저항력이 없어서 구대륙의 질병에 노출되어 죽음을 당한 것은

어쩔수 없다고 해도 피사로의 군대에 대한 철저한 패배는 결국 그들에 대한 무지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이야기를 서두에 이야기 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건강에 대한 과학적 사실들이 진짜 올바른

사실일까 하는 질문을 이제는 던져야 할때라고 생각해서다.

 

누구나 아는 쉬운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는 소금을 많이 먹어서 성인병을 유발한다고 알고 있다. 그럼 그런 과학적사실들은 어떻게 입증되었을까.

소금의 화학적 성분은 NaCl 즉, 염화나트륨이다. 여기에서 소금의 주성분은 나트륨인데 이 나트륨을 다른 동물에게

주입시켜보았더니 고지혈증과 고혈압, 심장병을 유발한다고 하여 나트륨을 과다섭취하면 몸에 안좋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담배의 주성분이 니코틴인데 이것을 쥐에 주입하였더니 혈관과 폐에 매우 안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 증명되었기에

담배는 매우 안좋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어느 성분하나를 주목하여 그것의 영향력으로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을 환원주의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식으로 따지자면 우리는 다음의 내용에 어떻게 대처할지 난감하다.

 

물의 주성분은 H2O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순수한 물을 마시면 최소한 배탈이 나던가 몸에 커다란 이상이 생긴다.

우리가 마시는 물의 주성분은 H2O이지만 여기에는 다양한 미네랄과 각종 성분이 포함되어 있고 이러한 물을 마셔야만

인간은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순수한 물만으로 건간을 따진다면 우리는 물을 마셔서는 안된다는

모순에 봉착한다.

 

또 한예로 우리는 몸에 산소가 없으면 살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시는 공기는 어떤 성분일까.

수증기를 제외한 건조공기에서 부피비로 따질 때 대기에는 질소가 약 78%, 산소가 약 21%, 아르곤이 0.9% 있습니다. 그 외에 이산화탄소가 0.03% 있고 나머지는 아주 소량의 네온, 헬륨, 크립톤, 크세논, 오존 등으로 구성된다.

 

즉, 우리는 산소를 마시는게 아니라 대부분 질소를 마신다. 그렇지만 산소가 없으면 혈액에서 헤모글로빈의 운동량을 저하시켜 결국에는 죽게 된다.

 

환원주의식으로 따진다면 우리는 산소만을 마셔야 숨을 쉬고 살수가 있게 되는데 그러면 어떻게 될까? 바로 죽는다.

산소만 들이마신다면 우리는 당장 죽고, H2O만 마신다면 우리는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환원주의 과학은 우리에게 니코틴, 나트륨, 산소 등등의 핵심성분만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1950년대의 미국의 성인남자 흡연율은 82%인데 2010년의 미국성인남자의 흡연율은 22%정도이지만

미국성인남자의 폐암발생율은 1950년대보다 무려 4배나 증가하였다는 사실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나는 문제에

직면하면 담배와 폐암의 인과관계에 의문이 제기된다.

 

여기서 먼저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알아봐야 한다. 상관관계란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이고 인과관계란 원인에

따른 결과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담배와 폐암의 관계는 상관관계일 뿐 인과관계가 입증된 논문이나 실험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다.

 

폐암의 원인이 되는 것들은 매우 다양하다. 그 중에 하나가 담배일 뿐 실제로 우리가 매일 들이키는 공기에는 온갖 공해물질이 섞여 있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지방성분이나 콜레스테롤이 혈관에 나쁜 작용을 한다고 사람들은 기피하고 있다. 고기보다는 채식이 몸에 좋다고 하면서

고기를 배제하고 채식위주로 생활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고기 자체나 음식들은 어느 한 성분은 우리 몸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만 골고루 먹게 되면 우리는 오히려 더 건강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들은 인간의 몸에 어느것도 하나로는 아주 좋은 효과를 주기보다는 안좋은 효과를 주는 것이 널려 있는 상태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유는 인간은 처음에 존재할때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성분이 섞인 물과 공기, 음식등이

우리 몸안에서 서로 상호작용하도록 진화시켜왔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성분자체로는 우리 몸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그것이 다른 것과 상호작용하여 나쁜 효과는 상쇄되고 우리 몸에 좋은 효과를 내도록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와서 점점 암이나 다른 질병들이 예전과 다르게 급격히 증가하는 이유는 뭘까?

 

의사들이 이야기하듯이 술과 담배만 하지 않으면 건강해지는 걸까?

 

바로 위의 질문에 대답을 하기 위하여 저자는 과학에 관한 수 많은 자료를 섭렵하여 건강상식 혹은 과학적 진실에

의문을 제기한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술과 담배에 관한 담론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주범은 바로 석유에서 뽑아내는 온갖 합성화학물질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비타민제나 치약부터 비누에 이르기까지 , 식기와 식품첨가물까지 모든 제품은 천연의 화학식과

같은 화학식으로 이루어진 합성화학물질이 우리 몸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합성화학물질은 분자구조는 천연의 물질과 똑같지만 그 성분은 전혀 다르기 때문에 몇만년동안 상호작용해온

물질과 우리 몸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에 그 영향으로 현대의 각종 성인병이 만연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이러한 영향은 몇달이나 몇년이 아닌 오랜기간 축적되어 나타나기에 젊은 나이에 걸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서 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건강의 적은 오로지 술과 담배로만 혹은 비타민제나 각종 영양제를 통해서 부족한 영양을

보충해야 한다고 믿게 된걸까

 

바로 전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거대 화학회사, 식품회사, 제약회사들이 이러한 거짓주장을 대학교수나 연구자들에게

엄청난 연구비를 지원해주면서 그들의 입맛에 맞게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그것을 언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의학 내지 건강상식이 맞는지 틀리는지를 어떻게 확인할까

 

우선 어떤 연구결과가 나온다면 그 연구를 지원한 업체나 단체를 확인하면 된다고 한다.

 

언론에서 발표하는 연구결과만 믿고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처음에 얘기한 잉카제국의 멸망처럼

우리는 거대 화학회사, 제약회사, 식품회사의 상술에 녹아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건강에도

치명적인 결과를 그저 운명이거니 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기막힌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저자는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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