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 세상을 논하다 - 성호 이익의 비망록, <성호사설>을 다시 읽다 뉴아카이브 총서 3
강명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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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한국사회의 모순을 파악하고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이 인간과 사회에 대하여 공부하는 내용은

대개 마르크스-레닌의 저작을 인용하거나 감추어 두었던 역사적 사실들을 탐구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당시에는 막스레닌의 책을 읽는것이 사회과학을 하는 기본적인 공부방법의

전부로 알고 있게 마련이었다. 그 후에는 주체사상을 공부하는 것이 또 하나의 경향이었던 적도 있었다.

이 모든것은 당시에는 엄청난 탄압을 받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러한 책들이 주는 메세지로 세상을 이해하고 변혁을 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이 지금에서는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하여 소위 '전향'과 '변절'을 하는 사람들이 목청을 높이고 2007년에는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 과정은 1989년의 소련의 붕괴등 현실사회주의권이 몰락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지만 또 하나의 원인은

막스레닌의 책등을 역사적 맥락이나 한국적 상황에 적용하지 않는 교조적인 내용흡수가 아니었을까 한다.

 

어떤 사상 한 두가지를 이용하여 인간과 사회의 전부를 해석하다보니 그것이 적용되지 않을 경우에는 그 사상

자체를 배척하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애정까지 모두 버리게 되니 어찌 '변절'과 '전향'이 안 이루어지겠는가.

 

이러한 문제들을 이겨나가고 확실한 자기 생각을 갖추고자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역사서나 고전에 대한 접근이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책 [성호, 세상을 논하다]는 조선후기 성호 이익(1681-1763)이 쓴 '성호사설' 3,000여편의 글중 이 시대와 연관된

글들을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강명관 교수가 풀어 쓴 글이다.

 

책은 크게 도리와 사회, 치국을 논하다 하는 3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마다 4~6꼭지의 주제별로 저자의 생각과

성호의 글을 교차편집하여 썼다.

 

그 소제목들의 몇개를 들면 이렇다.

 

부는 정당한 것인가/벌열사회/수탈은 어떻게 정당화 되는가/조선 시대의 홈리스/부패한 자가 왜 출세하는가/

부자 감세는 가난한 백성을 괴롭힌다/개혁의 어려움/닭보다도 못한 정당등드이 있다.

 

이를테면 이렇다.

 

성호는 말한다.

"지금 우리나라 풍속은  종족의 부류를 구별하여 노비와 천민은 백세대가 지나도 영화를 누릴 길이 없고,

높은 벼슬아치 집안의 사람은 바보 천치라도 무리를 지어 벼슬길에 오르니, 아아, 애달픈 일이로다"

 

이에 저자는 성호가 살았던 18세기 중후반부터는 벌열의 권력 독점은 더욱 가속화되어 불과 십수 개 가문이

국가의 요직을 독점했고, 이들 가문에 끈을 대고 있는 자들만이 기름진 지방관직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며,

 

이는 곧 국가권력의 사유화, 공적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당시의 시대상을 표현한 성호의 아버지

이하진은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문장의 우수함은 합격여부와는 상관이 없고, 인물의 능력과 도덕성이 관료가 되는 길이 아니며,

합리적 판단은 판결과는 관계가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즉, 공적 시스템이 사유화된 권력에 의해 말살된 것이다.

이러면서 저자는 묻는다. "지금 대한민국은 과거의 벌열사회와 무엇이 다를까" 라고.

 

외교부의 수장 자녀들이 현대판 음서제도로 합격하고, 위장전입, 탈세, 투기 , 뇌물등의 범죄를 저질러도

검찰총장이나 장관이 되는데 하등 어려움이 없고 아니 오히려 그러한 전력이 없는 사람이 장관되기 어려운

시대를 이미 250년전에 지적한 글들이 가슴에 와 닿는다.

 

또하나의 구절이 있다.

 

성호는 "세금을 깍아서 백성을 구휼한다는 것은 정치의 요점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논이고 밭이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깍아줄 세금조차 없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을 쥐고 국민을 지배하는 자들은 아무리 많은 세금을 거두어도 만족할 줄 모른다. 국가의 재정은

늘 모자라는 법이다. 그럼에도 공식적인 세금을 깍아주고 나면 결국에는 다른 방식의 세금을 거둘 수 밖에

없게 됨을 지적하는 것이다.

 

있는 자들의 세금을 깍아주고 나서 모자라는 세금은 다양한 다른 명목으로 없는 백성들로부터 뽑아내야

하기 때문이란다. 아니면 백성에게 나가야할 재정을 줄이던가.

 

지금 복지에 써야할 재정을 대폭 축소하고자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외에도 성호는 모든 산물은 백성에게서 나옴을 지적하고 소위 부국강병이나

국가경쟁력 또는 국격이라는 것도 백성이 고루 잘 사는 것이 기본중의 기본이라 강조하고 있는데 

저자는 다양한 성호의 글을 인용하여 이를 잘 풀어서 이야기 한다.

 

지금 이 나라는 정부에 비판적인 말과 글을 이야기하면 유언비어 유포니 전기통신법위반이니 하면서

모두가 종북좌파라고 낙인을 찍고 있다.

 

이럴 때 성호 이익이 이랬어요 하는 말도 그들은 종북좌파라 할까?

 

그러나 저자는 성호를 최고의 가치로 높이 숭상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성호 이익이 기본적으로 유학자이며

가부장제에 의식화된 사람이며, 양반이 다스리는 세상 이외의 세상은 상상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기에

양반이 원래 의지했던 유학(성리학)이란 원칙에 따라 조선 사회가 충실히 작동되기를 바랐을 뿐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역사는 자꾸 반복되고 망각되는 것인지 조선이 망조의 길에 들어선 시기의 사회상이

지금-여기의 사회상과 너무나 비슷하게 반복되는 점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

 

이념에 앞서서 사람이 있는 점을 생각한다면 조선후기 지배집단은 입으로는 민생과 백성을 위한다면서

실제로는 그들만의 철옹성과 부정부패, 매관매직을 철저히 옹호하고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하여는

사문난적이니 지엄한 국법을 들먹이면서 탄압에 앞장섰으나 나라의 운명에 대하여는 나몰라라 햇던 것을

지금 이시대에 다시 되돌아보게 만든다.

 

결국 새로운 세상을 위한 것은 멋진 이론이나 다른 사상보다는 역사에서 길어올리는 교훈이 아닐까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을 현대에 맞게 설명한 이 책은 그런 인식의 깊이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성호, 세상을 논하다/강명관/자음과 모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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