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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구광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6월
평점 :
1967년 10월 9일 볼리비아의 시골에서 체 게바라는 살해되었다. 그가 지닌 배낭에서 발견된 노트 한 권에 69편의 체가 직접 필사한 시 69편의 이야기를 추적하면서 이 책은 시작한다.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 페루의 세사르 바예흐, 쿠바의 니콜라스 기옌, 스페인의 레온 펠리뻬 이 네 시인의 시들을 체는 왜 필사하여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전쟁터에서 가지고 다녔을까하는 궁금증을 찾아서 이 책은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스페인의 신부인 라스카사스가 남긴 '인디아의 파과에 대한 간략한 보고서' 에 나온 스페인군사들의 만행의 몇가지 구절을 보자
스페인 사람들은 또 어머니의 가슴에서 젖먹이들을 떼내, 공처럼 발로 차고 바윗덩어리에다 머리글 박아버렸다...그들은 긴 교수대를 만들고 열두 제자와 예수의 영광을 위한다는 의미에서 한꺼번에 13명의 인디오들을 매달아 산 채로 태워 죽였다....스페인 군인들은 남성적이 힘을 자랑하기 위해 인디오들의 머리나 신체 부위를 단칼에 베는 시합을 했었다. 그들은 인디오들의 손을 자르고 잘려나간 손들이 잠시 꼼지락거리는 걸 보고 즐거워했다...'
이러한 슬픈 역사를 안고 있는 라틴아메리카를 젊은 시절 두 번에 걸쳐서오토바이를 타고 여행하면서 가난한 민중들의 삶을 지켜본 체는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혁명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세상의 모순을 치료하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터넷과 게임 티브이등 많은 오락이 있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즘에는 시를 읽는 사람이 별로 없다.
하지만 20년전만 해도 시집이 베스트셀러였던 시절이 있었고 그 이전에는 젊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앞에서 시 한편을 멋지게 외우는것을 자랑으로 알고 그렇게 사랑을 고백하던 시절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세상이 얼마나 팍팍해졌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시는 인간이 가진 희노애락의 모든 감정을 순간적으로 불러일으키고 공감하게 만들고 머리보다 가슴으로 느끼게 해준다.
따라서 냉철한 머리만 있고 뜨거운 가슴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세상을 바꾸겠다는 감정은 그저 허망한 일이라고 느낄법하다.
체는 말한다.
"아빠는 너희들이 이 세상 어디서든 누군가에에 행해질 모든 불의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다. 그것이 바로 혁명가가 지녀야 할 가장 아름다운 자질이란다." -자녀들에게 남긴 마지막편지중-
"사랑없는 혁명은 진정한 혁명이 아니다".
뜨거운 가슴과 정열은 사랑없이는 일어날 수 없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남을 좋아하는것을 어찌 머리로 계산할 수 있을까?
체는 또 말한다.
" 진정한 혁명가는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성에 의해 인도된다. 사랑 없는 사람은 결코 진정한 혁명가가 될 수 없다."
그래서다.
하늘은 숨죽이고
하늘 아래 그 노예는
검붉은 피에 물든 노예는...
채찍,
땀과 채찍
피에 물든
채찍.
주인에 의해
피에 물든 - 니콜라스 기예의 시 '땀과 채찍' 에서 -
위 시를 읽고 남미의 슬픈 역사에 공감하고
수수밭 옆에는
검둥이
수수밭 위에는
양키
수수밭 아래는
흙
수숫대 속엔
피! - 니콜라스 기옌의 시 '사탕수수' 전문 -
위 시를 읽고 제국주의의 약탈성과 잔인함에 분노하였으며
내 존재에로 다가오라,
죽은 왕국은 여전히 살아 있으니
내 새벽으로
왕관을 쓴 고독들까지
시계 속에선 콘도르의 핏빛 그림자가
검은 함선인 양 가로지르니...... - 파블로 네루다의 시 '마추픽추 산정' 의 일부-
위 시를 읽으면서 라틴 아메리카의 위대한 토작문명을 느끼고 정복자들의 침략 속에 숨죽인 영혼들이 석벽과 돌계단 틈에서 여전히
꿈틀거리는 영혼을 느낀것이다.
왜 체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도 시를 읽었을까 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어려운 학문적 지식에 의해서만 혁명이 이루어지는것은 아니다.
남의 불행을 공감하고 함께 아파하며 함게 해결하고자 하는 인간의 순수한 감정이 혁명의 출발점이다.
이 출발은 시를 통해서 더욱 힘을 얻게 되고 힘들고 괴로울때 위로가 된다.
우리나라도 일제시절의 윤동주, 이육사등등부터 이승만 시절, 유신시절과 5공시절 수많은 시인들의 시를 좋아햇던 시절이 있었다.
김수영, 신동엽, 김지하, 김남주등등.
그러나 우리나라가 아닌 라틴아메리카의 위와같은 시인들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이 책이 갖는 미덕은 다음과 같이 참 크다
첫째. 우리가 몰랐던 라틴아메리카의 위대한 저항시인들의 시를 그것도 체가 엄선하여 골라준것을 읽는 즐거움을 주고
둘째, 민중의 어려움을 가슴아파했던 체가 왜 혁명전선에 뛰어들었는지를 논리가 아닌 감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지 알게 해주고
셌재, 일대기가 아닌 짦은 시를 통해서 인간이 어떻게 변화해 나가는지를 알게 해준다.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안에는 잘들어 있던 우리의 사랑을 다시금 일깨워줄 멋진 시가 들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