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그림책향 15
김혜은 지음 / 향출판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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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은 글 없는 그림책이다. 색연필로 그린 아기자기한 그림만으로 이 그림책이 주는 메시지는 충분하다. 나무가 빽빽이 그려진 표지가 호기심을 자아낸다. 표지에 그려진 나무는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것이 없다. 저마다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다. 면지를 넘기면 연필 한 자루가 등장한다. 누군가의 손이 사각사각 연필을 깎는다. 예리한 칼끝에서 떨어져 나온 연필 부스러기들은 그 자리에서 하나 둘 나무가 된다. 나무가 되어 숲을 이룬다. 그 숲에 여러 생명이 깃드는 과정이 아름다운 색채로 표현된다. 숲은 생명의 근원이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은 나무를 베어 숲을 폐허로 만든다. 트럭에 실려 간 나무들은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공장으로 향한다. 이 그림책이 절망적인 현실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연필 한 자루에서 시작된 상상력이 놀랍다. 숲을 파괴하는 것도 인간이지만 나무를 심어 가꿀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이다. 우리 또한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과 공생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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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아이
안녕달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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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 그림책 조금 슬퍼.”라고 우리 집 초3이 말했다. 안녕달 작가의 신간이 나왔다기에 서점에 가서 바로 확인해 보았다. 눈사람이 살아나 아이와 우정을 나누는 이야기였다. 레이먼드 브릭스의 『Snowman』이 떠올랐다. 『Snowman』이 워낙 유명한 고전이라 그 이상의 감동과 재미를 줄 수 있을까 갸웃했다. 안녕달 작가 특유의 애니메이션 같은 화면 구성과 의성어, 의태어의 빈번한 사용이 그림책의 서사를 더 실감나게 했다. 무엇보다 소나무 숲과 새떼가 날아가는 하얀 눈밭 풍경이 아름다웠다.

 

눈이 내린 날 학교에 가던 아이는 길에서 우연히 눈사람을 보았다. 밋밋한 얼굴에 눈과 입도 그려주고 눈을 동그랗게 뭉쳐 ‘눈빵’이라며 건넸다. 뽀득뽀득 살아난 눈아이는 ‘눈빵’을 기쁘게 받아먹으며 환하게 웃었다. 친구가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먹을 것을 나눠주는 것이다. 그렇게 둘은 친구가 되었고 눈밭의 토끼를 쫓거나 책가방을 깔고 앉아 신나게 눈썰매를 탔다. 하지만 즐거운 시간이 영원할 수 없었다. 눈아이는 계절이 바뀌면 사라질 테니까. 언젠가 사라질 존재라고 해서 우정을 포기할 수는 없다.

 

마음을 나눈다는 건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것이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계산하거나 온 마음을 다 내어주고도 혹시 돌려받지 못할까 전전긍긍하지도 않는다. 눈아이는 눈이라는 특성상 손을 잡으면 스르르 녹아 버린다. 아이는 눈아이의 손을 놓는 대신 장갑 한 쪽을 나누어주고 그 손을 다정히 맞잡는다. 놀라운 디테일이었다. 그런 진심을 눈아이도 느꼈을 것이다. 넘어진 눈아이가 아플까봐 호오 입김을 불어주는 아이를 보며 눈물을 흘렸으니까. 차가운 눈아이의 가슴에 온기가 지펴진 것이다.

 

드넓게 펼쳐진 눈밭에서 그동안 눈아이는 혼자 외로이 서있었다. 아무도 눈아이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그날 자신에게 다가온 아이만큼은 달랐다. “내가 더러운 물이 되어도 우리는 친구야?” 눈아이의 물음이 뭉클했다. 진정한 친구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한결같은 우정을 지속할 것이다. 점점 녹기 시작한 눈아이는 아이와 숨바꼭질을 하며 자신의 흔적을 감춘다. 그런 배려로 인해 이들의 우정은 영원한 단절이 아니라 또 다른 만남을 기대하게 했다. 눈아이는 無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잠시 숨은 것이니까.

 

짧은 만남이었을 뿐인데 왜 아이는 눈아이를 잊지 못하고 봄, 여름, 가을이 지나도록 찾아다닌 걸까. 그것은 아이가 아무 것도 계산하지 않고 온 마음을 다 내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숨바꼭질은 술래가 찾아낼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아이는 눈아이를 다시 찾기 위해 술래로서의 본분을 다한 것이다. 기쁨과 슬픔도, 그리움마저도 모두 아이의 몫으로 남았다. 눈아이와의 추억을 간직한 아이는 나중에 어떤 어른이 될까. 이제 겨울이 되면 『Snowman』과 함께 『눈아이』가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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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강경수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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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책의 제목인 ‘눈보라’는 하얗고 빛나는 털을 가진 북극곰의 이름이다. 눈보라는 눈보라가 몰아치던 날 태어났다. 매년 따뜻해지는 북극에서 눈보라의 삶은 혹독했다. 빙하가 녹아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워져 나날이 여위어 갔다. 하는 수 없이 눈보라는 인간이 사는 마을로 내려가서 쓰레기통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오늘날 북극곰이 처한 현실이다. 쓰레기통에서 눈보라가 보게 된 것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판다의 사진이었다. 아마 그때 눈보라는 어렴풋이 알게 되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때로 철저히 자신의 존재를 감추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쫓기던 눈보라는 그렇게 해서 감쪽같이 판다로 위장했다. 하지만 비밀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는 없었다. 눈보라가 쫓기던 날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마치 눈보라가 태어나던 그 날처럼. 눈보라를 극한으로 내몬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총을 든 사냥꾼도, 그런 사냥꾼을 부추긴 마을 사람들도 모두 ‘공범’이다.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하얀 눈이 쏟아지던 차가운 밤. 필사적으로 달아난 눈보라는 과연 어디로 사라진 걸까. 글씨마저 지워진 마지막 페이지에서 눈보라를 향한 안타까움과 죄책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미안해, 눈보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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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그아웃매거진 Dugout Magazine 2021.11
대단한미디어 편집부 지음 / 대단한미디어(잡지)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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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찬규, 고우석 선수 표지라 구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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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호라이 사계절 그림책
서현 지음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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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호라이>는 <호라이>의 스핀오프라고 해도 좋을 법한 호라이의 탄생과 모험을 다룬 그림책이다. 태초에 알이 있었다. 그 알을 깨고 나온 건 다름 아닌 계란 후라이. 동그란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던 계란 후라이는 두 다리로 벌떡 일어나 그 자리를 떠났다. 계란 후라이는 따뜻한 밥 위에 얌전히 올라가 있어야 하는 운명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호라이’라 명명한 이 발칙한 생명체는 밥 위를 벗어나 재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서였다. 나는 왜 호라이일까? 왜 하얗고 노란 걸까? 질문은 끝이 없었고 호라이는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났다. 고양이를 피해 이리저리 몸을 피하면서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었다.

식탁 위에 올라간 호라이는 그곳에서 수많은 호라이들을 만났고 그들은 식탁을 박차고 우주로 떠나갔다. 우주라는 거대한 냉장고 속에서 지구를 비롯한 수많은 행성들 역시 하나의 알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발상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 자아 탐구와 존재론적 운명 등을 다루는 것 같지만 사실 서현 작가의 여느 그림책처럼 유쾌하고 재미있었다.

우리가 사는 지구도 결국 톡하고 깨져버릴 알일 뿐인데 그 안에서 아옹다옹 다투면서 사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그러면서 나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탁을 벗어나 필사적으로 달아난 호라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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