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보라
강경수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책의 제목인 ‘눈보라’는 하얗고 빛나는 털을 가진 북극곰의 이름이다. 눈보라는 눈보라가 몰아치던 날 태어났다. 매년 따뜻해지는 북극에서 눈보라의 삶은 혹독했다. 빙하가 녹아 먹을 것을 구하기 어려워져 나날이 여위어 갔다. 하는 수 없이 눈보라는 인간이 사는 마을로 내려가서 쓰레기통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오늘날 북극곰이 처한 현실이다. 쓰레기통에서 눈보라가 보게 된 것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판다의 사진이었다. 아마 그때 눈보라는 어렴풋이 알게 되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때로 철저히 자신의 존재를 감추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마을 사람들에게 쫓기던 눈보라는 그렇게 해서 감쪽같이 판다로 위장했다. 하지만 비밀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는 없었다. 눈보라가 쫓기던 날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마치 눈보라가 태어나던 그 날처럼. 눈보라를 극한으로 내몬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총을 든 사냥꾼도, 그런 사냥꾼을 부추긴 마을 사람들도 모두 ‘공범’이다.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하얀 눈이 쏟아지던 차가운 밤. 필사적으로 달아난 눈보라는 과연 어디로 사라진 걸까. 글씨마저 지워진 마지막 페이지에서 눈보라를 향한 안타까움과 죄책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미안해, 눈보라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