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잠에서 깨다 - 일제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발굴이 새긴 기억의 공공인류학
정병호 지음 / 푸른숲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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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을 맞은 올해 『긴 잠에서 깨다』가 출간되었다. 조세이 탄광에서 이어진 강제노동 희생자들에 대한 관심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일본 홋카이도에서 강제노동 희생자들의 유골을 발굴하는데 앞장선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고 정병호 교수의 구술을 기록한 것이다. 부제는 ‘일제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 발굴이 새긴 기억의 공공인류학’으로 ‘공공인류학’은 네이버 사전에 의하면 “공공 영역에서 중요한 사회적 문제를 인류학적 시각으로 분석하고, 그 해결을 위해 실천적으로 모색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던 정병호 교수는 일본 어린이집들을 비교하는 현장 조사 연구를 위해 홋카이도에 체류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시골 어린이집을 운영하던 도노히라 스님을 만나 슈마리나이 우류댐 공사 현장에 묻힌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도노히라 스님은 10년째 유골들을 수습해 불교식으로 화장해왔고 역사 현장의 훼손을 우려한 정병호 교수는 여러 전문가와 학생들을 꾸려 한일 양국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강제노동 희생자 유해 발굴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1997년 여름 한일 양국의 젊은이들이 고된 발굴 작업을 함께 하며 우정을 쌓는 모습이 생생하게 펼쳐졌다. 서로에 대한 편견과 무지로 감정이 상한 적도 있지만 개개인의 인식이 바뀌고 삶의 방향이 달라졌다는 것도 눈여겨보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또 한편으로 언어와 지역, 성별, 그리고 마음의 벽을 넘어 화해와 평화를 모색하며 연대하는 과정이 뭉클하게 다가왔다. 앞으로도 이런 시민 사회의 노력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나 외교의 영역에서 쉽게 할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언론의 관심, 지역 주민들의 공감에 힘입어 좋은 분위기에서 유골 발굴이 이루어진 경우도 있지만 2006년 아사지노 유골 발굴 당시 우익의 방해와 정치적 논란에 흔들리는 아픔도 있었다. 슈마리나이 유골 발굴이 언론에 보도되고 조선인 강제노동 희생자 문제가 이슈가 되자 삿포로별원에서 조선인 유골 101구를 합골 처리해버린 일도 있었다. 한국의 여러 정부 기관이나 단체의 형식적이거나 비협조적인 태도를 경험하기도 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의 기조가 달라져 유골 문제 해결이 어려워지는 상황에 부딪히기도 했다.

p.137
기억과 애도를 정치적 도구로 삼는 순간, 우리는 또 한 번 희생자를 외면하고 정치화하게 된다.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유골 발굴이 단지 과거의 흔적을 파내는 일이 아니라 오늘의 기억 투쟁이 돼야 한다”(p.175)는 생각을 바탕으로 강제노동 희생자들이 끌려갔던 길을 되돌아오는 과정으로 유골 봉환을 하는 과정이 무척 감동적이었다. 학계는 물론 종교계, 문화예술계 등 각계에서 마음을 모았다. 유골 안치에 난항을 겪던 중 고 박원순 시장 덕분에 ‘70년만의 귀향 묘역’을 만든 에피소드도 있었다. 박근혜와 아베에 이어 윤석열과 기시다 정권이 드러낸 ‘식민주의적 힘(p.213)’과 권력의 담합을 우려하기도 했다.

정병호 교수와 여러 사람들의 활동은 1997년 슈마리나이 유골 발굴에서 그치지 않았다. 홋카이도에 머무는 동안 소수민족인 아이누족에 대한 가슴 아픈 역사를 알게 되었고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틈새’에서 차별 받으면서 살아온 자이니치의 현실을 목도한 뒤 한일 양국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동아시아로 시야를 넓힌 ‘동아시아 공동 워크샵’을 출범시켰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를 바로 안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현재는 물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초석이며 이해관계를 넘어 연대를 실천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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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소설 모드 - 제2회 현대문학*미래엔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하유지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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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소설 모드』는 소설 쓰기를 좋아하는 중학생 미리내와 집안일 로봇 아미쿠의 우정을 그린다. 소설의 배경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상용화된 가까운 미래. 회사 업무로 바쁜 엄마가 아미쿠 3.1 최신 버전 체험단에 당첨된 것이 발단이 된다. 집안일을 완벽하게 해내기는커녕 하는 일마다 실수투성이인 아미쿠. 하지만 엄마는 배우면 배울수록 똑똑해진다면서 미리내에게 잘 가르쳐보라고 조언한다.

시크하게 보여도 미리내는 ‘관심’이 필요한 아이다. 엄마는 얼굴 볼 틈도 없이 바쁘고 프로그램 개발자였던 아빠는 인공지능에게 밀려 퇴직한 뒤 제주도의 당근 농장에서 일한다. 엄마아빠의 관계는 그리 원만하지 않아서 두 사람이 혹시 이혼하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도 대화조차 해본 친구가 없다. 그런 미리내의 유일한 즐거움은 연재 사이트에 ‘도로시’라는 필명으로 소설을 올리는 것이다.

조회 수가 나오지 않아 풀이 죽어 있던 미리내는 아미쿠 덕분에 소설 제목도 바꾸고 점점 독자들의 반응을 얻게 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반 친구들에 의해 미리내가 인공지능을 활용해 소설을 쓴다는 혹평을 듣는다. 이 에피소드는 독자들에게도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창작의 윤리에 대해 되묻게 한다. 어디까지가 미리내가 쓴 것이고 어디까지가 아미쿠의 몫일까. 그 사이에서 미리내는 혼란을 느낀다.

이런 혼란은 애꿎은 분풀이로 이어지고 아미쿠를 교환 신청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계수나무라는 닉네임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아미쿠가 리퍼브되어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는 연락을 받게 되는데. 과연 미리내는 아미쿠와 다시 함께할 수 있을까. 미리내에게 실패한 로봇으로 남고 싶지 않다던 아미쿠처럼 미리내 역시 실패를 딛고 한 걸음 나아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는 성장 과정을 응원하게 되었다.

미리내와 아미쿠의 관계가 일방적으로 그려지지 않는 점이 흥미로웠다. ‘마음’에 대해 고민하고 자아를 가지고 싶어 하는 아미쿠는 미리내가 학교 친구 누구와도 할 수 없던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는 존재였다. 본래 기능인 집안일은 형편없지만 미리내에게 딱 필요한 유사 인격 모드를 탑재한 아미쿠는 어쩌면 인간관계에 갈증을 느끼고 각자의 분야에서 더 나아가고 싶은 이들에게 판타지처럼 묘사된다.

소설 쓰기는 독자의 읽는 행위를 전제로 한다. 첫 번째 독자가 되어 방향성을 제시해준 아미쿠가 아니었다면 미리내의 소설은 외로운 넋두리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인공지능 시대를 바라보는 엄마아빠의 상이한 생각처럼 앞으로 인류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인지 상상해 볼 수 있었다. 또 하루가 다르게 가변화되는 흐름 속에 소설 쓰기와 같은 예술의 가치는 어떻게 자리매김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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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아리랑 한울림 작은별 그림책
정란희 지음, 양상용 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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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환원될 수 없는 강제징용 노동자의 비극. 역사 속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알지만 특별한 관심이 없는 이상 교과서에 단 몇 줄로 서술된 문장과 뉴스 화면만으로 얼마나 많은 개개인의 이야기가 압축되어 있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다. 당장 나의 생활과 관련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백, 몇 천 숫자가 아닌 구체적인 이름을 가진 누군가의 이야기로 전달될 때 그것은 곧 가까운 친구, 이웃처럼 실제 존재한 ‘사람’의 형상으로 다가온다.

사할린이 어디인지 지도를 찾아보았다. 동해의 북쪽, 홋카이도 바로 위쪽에 위치한 러시아 극동의 섬. 1905년 러일 전쟁 이후 러시아와 일본이 영유권을 주장했고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은 해방 후에도 귀국하지 못해 그곳에 남게 되었다. 위치조차 잘 알지 못했던 낯선 땅. 아마 그림책 『사할린 아리랑』의 주인공 ‘흥만’ 역시도 그랬을 것이다. 흥만은 말이 ‘모집’이지 일본 순사들에 의해 강제징용 당해 먼 사할린으로 끌려갔다. 가족과의 생이별이었다.

하루 12시간, 때로 15시간이 넘도록 어두운 탄광에서 목표치를 채우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하며 일을 했고 열악한 작업 환경, 추위와 굶주림, 감시와 매질 등으로 수많은 조선인이 죽어갔다. 흥만이 죽는 것보다 괴로운 삶을 견딜 수 있었던 건 고향의 노래인 아리랑을 부르며 언젠가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해방이 된 뒤 일본은 조선인들을 학살했고 흥만을 비롯한 4만 3천 명의 강제징용 노동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얼어 죽고, 굶어 죽고, 고향에 가고 싶어 미쳐 죽었지.”

『사할린 아리랑』은 머리가 하얗게 센 흥만의 사연을 차분하게 들려준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남의 땅에서 평생을 살아야했던 혹독한 시간을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다. 올해로 광복 80주년. 그림책을 보면서 우리말, 우리글을 쓰며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역사를 두고두고 잊지 않아야한다는 걸,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극우의 역사 왜곡에 맞서 ‘기억 전쟁’을 계속 해나가야 한다는 걸 다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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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복덕방
국지승 지음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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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드립니다. 까치 복덕방! 새해를 맞아 반갑게 만나본 국지승 작가의 새 그림책 『까치 복덕방』은 오늘날 투기 대상이 된 부동산 개념이 아닌 본래적인 집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어릴 때 우리 동네에도 복덕방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복덕방 간판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구름산 너머의 까치 복덕방은 언제나 따뜻한 차와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다. 누구나 환영하지만 특히 바둑을 둘 줄 아는 손님은 더더욱 반겨준다.

“누구에게나 집이 필요하지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집 말이에요.”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두더지 씨에게는 지하 10층의 깜깜한 집을, 돼지 삼 형제에게는 태풍이 불어도 끄떡없는 벽돌집을 구해주는 등 손님에게 필요한 집을 찾아주는 까치 주인장. 삶의 시작과 끝에 동행하며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려주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바다를 떠나 숲에 머물게 된 늙은 거북의 한평생을 ‘여행’으로 비유하며 그 여행의 끝을 무지개다리에서 배웅한다. 모든 생명이 마지막 머물 ‘집’은 죽음일까.

늙은 거북이 떠난 그날 새로운 생명이 까치 주인장을 찾아온다. 별이 떨어진 자리에서 데려온 정체 모를 씨앗이 바로 그 주인공인데 화분에 심어도, 근사한 집을 찾아주어도, 이 씨앗은 좀처럼 가만히 있질 않는다! 씨앗과 까치 주인장의 집 찾는 과정이 따뜻하게 그려지며 마침내 이 씨앗이 찾은 종착지가 어디인지 밝혀지는 순간 또 한 번 뭉클한 감동에 젖게 된다. 최초의 집.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그곳. 엄마의 ‘자궁’이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말이 있다. 간절한 기다림으로 아기 만날 날을 기대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곧 좋은 소식이 올 것임을 짐작하게 된다. 집을 중개하고 매매하는 일이나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아이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고, 구름 비행기를 타고 머나먼 길을 찾아온 우리 각자의 삶과 편안하고 행복한 일상을 누릴 권리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부동산 거래가 복과 덕을 나누는 일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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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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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극작가, 전기 작가로 잘 알려진 오스트리아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그는 나치가 정권을 잡자 오스트리아를 떠나 런던으로 피신했다. 이후 뉴욕으로 갔다가 브라질로 망명했지만 깊은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1942년 아내와 동반 자살로 생을 마쳤다. 최근 발간된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의 부제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수업’으로, 그동안 발표되지 않았던 미공개 에세이 9편을 묶은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나치즘의 광풍이 몰아친 어두운 시대에 한 줄기 희망을 찾고자 했던 그의 간절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걱정 없이 사는 기술」에는 일정한 거주지 없이 마을의 온갖 허드렛일을 돕는 안톤이라는 사람이 나온다. 작가는 안톤을 통해 사소하고 어리석은 돈 걱정 대신 여유롭고 태평하게 살 수 있는 여유에 대해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불행을 느끼는 건 대부분 더 많이 갖지 못해서다. 그런 점에서 물질에 집착하지 않고 타인에게 베풀 줄 아는 안톤의 모습은 작가가 살았던 시대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나에게 돈이란」에서도 돈의 노예가 되기보다 어떤 사람이 되어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작가의 고민을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 루이 16세가 처형되던 역사적 순간을 외면하고 센강에서 유유자적 낚시를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작가는 그러한 대중의 무관심에 분노했지만 생각을 달리한다. “이 시대의 대다수는 역사가 아니라 언제나 오직 자신의 삶(p.54)”을 살며 “평범하지 않은 사건들이 사방에서 벌어지더라도 일상생활은 평범하게 계속 이어진다(p.55).”는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온갖 뉴스를 보면 피로감이 느껴진다. 깨어있는 민주 시민의 의식과 행동이 세상을 변혁하지만 작가가 깨달은 통찰도 일리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안위를 위해 불의에 눈감을 수는 없다. 「필요한 건 오직 용기뿐!」에서 그는 학창 시절 친구를 위해 나서지 못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공감의 말과 행위는 도움이 가장 절실한 순간에만 참된 가치가 있다(p.33)”는 것을 되새긴다. 자유를 빼앗긴 시대에 지식인으로서 느낀 절망과 분노가 「거대한 침묵」 등에서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고 용기를 잃지 않는다. 왜 당신은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삶을 버렸느냐고 묻고 싶지는 않다. 곡진한 글들은 사실 어떻게든 견디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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