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기도 전에 그 사람이 구식이 되어버리는 곳이었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무언가를 제대로 해 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나라 전체가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범속함을 거리낌 없이 찬양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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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이와 같은 행위를 할 수 있는 선험적 의무에 대한 규정, 즉 정언명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인 입법의 원리로 타당할 수 있도록 행위하라."(KpV, A54)

"그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도록 네가 그 준칙을 통하여 동시에 의욕할 수 있는, 오직 그런 준칙에 따라서만 행위하라."(GMS, B52)

"마치 너의 행위의 준칙이 너의 의지에 의하여 보편적 자연법칙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행위하라."(GMS, B52)

"네가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서 인간을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한갓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행위하라."(GMS, B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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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물자체가 아니라 현상만 인식한다"는 칸트의 주장은 일견 인간 인식의 한계를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한계를 논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상을 구성하는 자는 인간 자신이다. 현상을 구성하는 자가 인간 자신이라는 것은 곧 인간은 인식형식에 의해 제약되는 현상에 국한된 존재가 아니라 현상 너머의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인식하지 못하는 물자체는 결국 인간 자신이며, 이는 바로 인간이 현상 너머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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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정해진 익숙한 시간에 잠들 수 없고 침대에 누워도 잠을 자지 못하고 또한 깨어 있어야 할 때 깨어 있을 수 없는 증상을 병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머릿속에서 모든 생각들을 물리치라는 의사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그 생각들이나 그 자리에 다른 생각들이 다시 나타나서 깨어 있게 되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칸트는 "즉각적으로 그 생각으로부터 주의를 돌리는 것" 이외의 방법이 없다고 보았다.(SF, A183)

이때 칸트는 ‘수면에 방해된다고 느끼는 것’을 참지 않고, ‘나에 의해 선택된 무차별적인 대상’에 대한 집중과 연결시키는 수단, 즉 ‘스토아적 수단’을 해결책으로 제기한다.(SF, A186) 다시 말하면 고통에 대한 자신의 주의를 돌리는 결단으로 그런 병증 자체를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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