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클래식 6
프란츠 카프카 지음, 홍성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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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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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숨을 쉴 때마다 질소를 들이마신다. 그러나 대기 속의 질소는 쓸모가 없다. 질소 분자 속의 질소 원자 두개는 너무나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어서 본질적으로 불활성이다. 그것들은 다른 것들과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 질소의 이런 불활성성이 적어도 생명에 관한 한 자연의 만물 수선 장비에 결함이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우리는 질소의 바다에 살고 있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전혀 유용하지 않다.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그렇다 공기에 있는 질소를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몸은 우리가 먹는 음식 속의 덜 단단하게 결합된 분자들에서 질소 원자들을 뽑아내며, 이것들로부터 아미노산, 궁극적으로 단백질을 만든다. 그때에도 우리가 스스로 만들 수 없는 열 가지 아미노산 이른바 필수 아미노산이 있으며 이런 아미노산들을 얻기 위해 우리는 식물에 의존해야 한다. 왜냐하면 오직 식물만이 우리의 몸이 필요로 하는 스무 가지 아미노산 모두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식물이 없다면, 동물이 만들 수 없는 저 열 가지의 필수 아미노산이 없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면 식물은 아미노산을 만들기 위해 질소를 어디서 얻을까? 특정 식물과 공생하는 박테리아는 우리도 할 수 없고 식물 스스로도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능력이 있다. 즉 박테리아는 대기에서 질소를 뽑아내고, 저 지독한 결합을 끊고, 질소를 식물과 동물이 사용할 수 있는 분자로 결합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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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확실히 19세기의 기업가들이 소작농들보다 더 성취감 있고 나은 삶을 살았다거나, 혹은 식민지 개척 농부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보다 더 성취감 있고 나은 삶을 살았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우주가 본래 복잡성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이것은 또한 시간의 화살에는 저항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불가피성이 있음을 뜻한다.

우리가 아메리카 원주민이 토지와 맺은 관계나 소로의 농장이 있는 시골의 매력 적인 단순성을 아무리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해도, 사냥하고 채집하는 삶의 방식이나 콩코드의 소박한 경제생활로는 돌아갈 수 없다. 적어도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우리 60억 인구의 대다수에게는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수십억의 인구를 먹여살리고, 건강을 유지시키고, 약간의 생활의 즐거움을 주려면 훨씬 더 큰 밀도의 자유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다.

진화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 우리가 만약 어쨌든 시험 삼아 제이슨의 분석을 받아들인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들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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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로 마음이 소란할 때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최선임 옮김 / 지식여행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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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고통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옳은 번역이라 할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무조건 괴로움이라면 괴로움을 멸할 방법도 존재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불도는 고통을 소멸시키는 여정이기 때문에, 이래서는 완전 모순이 된다. 불도가 고통을 멸하는 길이라는 것은 괴로움이란 어떤 특정한 조건하에서만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특정한 조건은 번뇌의 충동적 에너지에 속고 조종당한다는 조건에 한정된다.

이 사실을 전재로, 전통적으로 모든 것은 고통이라고 번역 되기 쉬운 이 말을 원래의 오래된 인도어로 엄밀하게 다시 번역하면 제행개고 또는 일체행고라는 식이 될 것이다. 모든 생명을 움직이게 하는 모든 행, 다시 말해 모든 것의 충동적인 에너지는 전부 괴로움의 자극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만의 번뇌에 빠지면, 우리 마음은 굉장히 긴장하고 신체적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배가 살살 아프거나 하는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난다. 이와 같이 괴로운 자극이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일부러 만의 괴로움에 빠지는 것일까? 그것은 ‘자극적이다, 기분 좋다‘고 하는 마음의 프로그램이 자동적으로 움직여 정보를 다시 쓰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괴로움을 괴로움인 채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야기로 편집하는 ‘뇌 속의 편집부‘라고 내가 이름 붙인 기능에 저해를 받아 현실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뇌 속의 편집부가 멋대로 정보를 전환한다. 우리 의사는 완전히 제쳐둔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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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의 역습 - 무일푼 하류인생의 통쾌한 반란!
마쓰모토 하지메 지음, 김경원 옮김, 최규석 삽화 / 이루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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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이거 뭐야‘ 시시해‘ 답답해!!

말하자면 정사원으로 일하면서 결혼하고 아이 키우고 집도 사고 해서 이제는 우등반에 들어 갔다고 생각하는 자네! 우쭐거릴 일이 아닐세! 안된 얘기지만, 자네도 이미 각 잡힌 가난뱅이란 말씀이야.

진짜 우등반 이란 말이지, 잠깐 일을 쉬 거나 몇 년쯤 아무것도 안 해도 저절로 돈이 굴러 들어오는 시스템을 만들어놓은 놈들이라구. 이런 놈들은 무지무지 노력하고 무지무지 재수가 좋아야 해. 그리고 남을 벼랑에서 밀어 떨어뜨릴 용기가 있어야 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보통 사람한테는 무리지, 게다가 아무것도 안 하는데 돈이 들어온다는 말은 누군가 대신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이니까, 시대를 잘 타고났기에 망정이지 옛날같으면 가난뱅이들이 멍석 말이를 해서 먼지 나도록 흠씬 두들겨 패주었을 것이라는 말씀.

그런데 우리가 손가락 까딱 안 하고 빈둥빈둥 놀면 어떻게 되지? 백발백중 눈 깜짝할 새 돈이 떨어져서 찍소리도 못하게 될 거란 말이야.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져버리는 자전거 같은 우리 인생은 자타 공인 가난뱅이란 말씀, 아니 현재 일본 사회의 90퍼센트 이상은 가난뱅이 계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걸!

모범수냐 문제아냐 그런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은 강제노동 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거야, 호음, 이거 그렇다면 탈출해야 하는 거 아냐?
이기는 사람도 없는 경쟁사회에 휘둘리기는 죽기보다 싫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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