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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끝자락에 도착한 

<백련재문학의집>


<백련재문학의집 주차장에서>



  날이 따뜻하면 미세 먼지로 뿌옇고, 하늘 빛이 맑다 싶으면 날이 차던 초봄 기운은 거의 가신 듯 화창하면서도 따뜻한 입주 작가의 첫날이다. 전날 밤 낯선 길에 대한 걱정과 긴 시간 운전에 대한 긴장 탓으로 밤을 꼬박 샌 상태라 얼른 이불 펴서 한숨 잘 생각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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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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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각종 문학지와 신문 등에 발표했던 작품이 실려 있다. <그리움을 위하여><그 남자네 집><마흔아홉 살><후남아, 밥 먹어라><거저나 마찬가지><촛불 밝힌 식탁><대범한 밥상><친절한 복희씨><그래도 해피 엔드> 단편소설 아홉 편이다.

 이 책 이전에 작가의 <못 가 본 길이 더 아름답다>가 읽은 유일한 책이다. 이십 대 도스토옙스키와 헤르만 헤세, 카프카, 까뮈 등 해외 소설가들에게는 열광했지만 국내 소설가들은 대표작 정도 읽었다. 그 중 박완서 작가의 소설들은 왜 그리 내게 오는 데 오래 걸렸는지 모를 일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원낙 유명해서 있는 줄도 모르고 구입하는 바람에 집에 두 권이나 있어 여러 번 손에 들었으나 끝내 다 읽지 못한 채다.  김민철의 <꽃으로 박완서를 읽다>에서 인용문으로 나오는 <그 남자네 집> 부분에서 집에 있던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를 찾아내 마침 그 소설이 있어서 먼저 읽다가 그만 반했다. 박완서의 소설로는 처음 읽은 셈이다.

 주인공이 몇 살인지는 분명하게 나오지 않지만 아파트에 살다가 땅집으로 이사 간 후배집을 찾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의 처녀 적 마지막 집이 있던 곳도 같은 동네였고, 그 동네 있던 그 남자네 집의 남자와 주인공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현재와 과거가 자연스럽게 뒤섞여 오히려 절묘한 긴장감을 줘 역시 대가답구나 싶었다.

 "안감대를 남쪽으로 남쪽으로 한없이 따라가면 개천이 어디론가 숨었다가 또 나타나곤 하면서 살곶이 다리와 살곶이 벌판이 나온다."는 앞부분의 묘사가 일단 좋았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남자는 궁기를 가장 참을 수 없어했다. 궁기를 좋아할 사람은 없지만 그는 좀 유별나서 특정 냄새를 못 참는 것처럼 즉각 생리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그의 턱 운동은 철저하고 집중적이었다. 그러나 하나도 게걸스럽지는 않았다."

 "화음이 잘 맞는 웃음소리였다."

 "딱 고 길이에 분량을 맞춘 것처럼, 그 거리는 얼마 안 됐다. 따라서 그의 이야기도 간결하게 요약된 것이었다."

 "나는 마치 길 가다 강풍을 만나 치마가 활짝 부풀어오른 계집에처럼 붕 떠오르고 싶은 갈망과 얼른 치마를 다독거리며 땅바닥에 주저앉고 싶은 수치심을 동시에 느꼈다."

 "나미 쳐다보고 부러워하지 않는 비단옷과 보석이 무의미하듯이 남이 샘 내지 않은 애인은 있으나마나 하지 않을까. 그가 멋있어 보일수록 나도 예뻐지고 싶었다. 나는 내 몸에 물이 오르는 걸 느꼈다."

 "그 암울하고 극빈하던 흉흉한 전시를 견디게 한 것은 내핍도 원한도 이념도 아닌고 사치였다. 시였다."

 "서양 여자의 속눈썹을 연상시키는 정교하고 섬세한 솔이었다 부드러울 것도 같고 빳빳할 것도 같은 그 솔에 닿으면 전류가 통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음반을 어루만지고 싶어서 그러는지 먼지를 닦으려고 그러는지 분간이 안 되는 그의 골똘하고도 탐미적인 손놀림 때문일 것이다."

 "향기 짙은 흰 라일락을 비롯해서 보라빛 아이리스, 불꽃 같은 영산홍, 간드러지게 요염한 유도화, 홍등가의 등불 같은 석류꽃, 숨가쁜 치자꽃, 그런 것들이 불온한 열정 - 화냥기처럼 걷잡을 수 없이 분출했다."

 등의 문장들에 밑줄을 긋다가 

 "그런 꽃들을 분출시킨 참을 수 없는 힘은 남아돌아 주춧돌과 문짝까지 흔들어대는 듯 오래된 조선 기와집이 표류하는 배처럼 출렁였다."

는 문장에서 잠시 책을 덮고 박완서의 다른 책들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소설 막바지에 주인공의 결혼에 대한 결정을 TV 내용으로 싹 정리해준다.

 "...거기서 보여준 건 새들이 짝을 구하는 방법이었는데, 주로 수컷이 노래로 몸짓으로 깃털로 암컷의 환심을 사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니까 그저 그렇고,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자기가 지어놓은 집으로 암컷의 환심을 사려는 새였다. 그런 새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수컷은 청청한 잎이 달린 단단한 가지를 물어다가 견고하고 네모난 집을 짓고, 드나들 수 있는 홍예문도 내고, 빨갛고 노란 꽃가지를 물어다가 실내 장식까지 하는 것이었다. 암놈은 요기조기 집 구경을 하고 나서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집을 골라잡기만 하면 짝짓기가 이루어진다.

 그래, 그때 난 새대가리였구나."

 마지막 문장에서 풉,하고 웃고 말았다.


 그 다음으로 <그리움을 위하여>에서 주인공의 사촌 동생의 입말에서, 진짜 끝내준다 싶었다. 옥탑방에서 물에 적신 옷을 입고 더위를 견뎌내던 사촌 동생이 사량도에서 겪었던 일을 들려주는 내용 6쪽이나 내쳐 이어진다. 얼마 안 가 또 사촌 동생의 얘기를 들려주는데, 마치 밤중 잠자리에서 여동생의 얘기를 실제로 듣고 있는 듯했다.


 책 뒤쪽 김병익의 해설도 좋았다. 박완서의 활자화된 소설을 가장 먼저 본 독자였을 거라며 시작해서 박완서의 작가와 작품 세계에 대해 해설하고 있다. 그 중에 

 "나는 여기서 비로소 우리에게도 박완서에 의해 '노년문학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내가 말하는 노년문학은 그냥 작가가 노년이라는 것, 혹은 단순히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노인이라는 것 이상의 것으로, 노인이기에 가능한 원숙한 세계 인식, 삶에 대한 중후한 감수성, 이것들에 따르는 지혜와 관용과 이해의 정서가 품어져 있는 작품 세계를 드러낼 경우를 말한다."

말에 깊은 공감을 했다.

 

 읽기 위해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은 박완서의 책과 그의 딸의 책을 눈으로 훑어본다.

올겨울 추위는 유별나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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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박완서를 읽다
김민철 지음 / 한길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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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에서 김민철의 꽃 이야기를 읽다가 읽게 된 책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인용문으로 성이 안 차 집에 사놓고 읽지 않았던 박완서의 소설집을 찾아 읽어가면서, 또 다른 단편소설집을 한 권 더 주문하면서 꽤 오랜 시간에 걸쳐 책을 읽었다. 

 책의 두께 만큼 저자의 수고가 읽혔다. 박완서의 소설들은 물론이고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 곷과 관련있는 내용들을 찾아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소설 속 꽃과 식물을 찾는 수고로움은 더했을 것이고.

 덕분에 아주 늦게 내게로 온 박완서 작가의 소설들을 맛나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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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보급판 문고본)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 이마고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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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을 잘 읽지 않게 되면서 읽게 된 책의 장르는 아주 다양해졌다. 그러다가 읽게 된 책이다. 오래 전 이 책이 온라인 서점에서 베스트셀러로 오를 때,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그저 제목이 가볍게 여겨져 지나갔다가 별 기대없이 사서 읽었다.

 '들어가는 말' 첫문장부터 확 끌렸다.

 "파스칼이 말했듯이 "책을 쓸 때 가장 마지막에 결정해야 하는 것은 처음에 무엇을 쓸 것인가이다."

긜고 이어서 말하고 있다.

 "병은 인간이 처한 본질적인 조건이다. 동물도 질병에 걸리기는 하지만, 병에 빠지는 것은 인간뿐이기 때문이다."

 

 책은 모두 4부로 나뉘져 있다.

 1부 '상실'에서" 신경학과 신경심리학의 역사는 좌반구 연구의 역사라고 해도 그리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라고 하면서, "...우반구에 원인을 가진 증후군이 나타나면 그것을 특이하고 기묘한 현상으로 간주했다."고 했다. 또 이어서 말하고 있는

 "그러나 먼저 이것만은 못박아두고 싶다. 즉 병이란 결코 상실이나 과잉만이 아니다. 병에 걸린 생명체, 다시 말해서 개인은 항상 반발하고 다시 일어서고 원래대로 돌아가려고 하고 주체성을 지키려고 한다. 혹은 잃어버린 주체성을 되찾으려고 하고 아주 기묘한 수단을 동원하면서까지 반드시 반응한다"는 부분에서 그 옆에다 쪽지글을 썼다. '글쓰기의 이유와도 일맥상통한다'고.

 

 책은 놀라운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아주 신비로운 현상들에 대해 임상사례를 통해 소설보다 더한 경험을 하게 해준다. 책 읽는 내내 책의 앞뒤 여백에 수시로 메모를 했다. 책 내용과는 무관한, 그러나 결코 다르지 않는 내 이야기들을.

어젯밤,  다른 경로로 소개받고 산 책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서문'을 읽다가 어투가 익숙해서 확인해보니 올리버 색스가 써준 서문이다. 막 펼치기 시작한 책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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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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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소설을 읽을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였는지 굳이 되짚어보면 서른 이후가 아니었을까. 특히 결혼 이후. 얼마 전에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어쩌면 내 삶이 소설과 다르지 않았기에 소설이 재미없지 않았나 싶어요." 단편소설은 그나마 문학상 수상작품집이나 신춘문예 등을 통해 조금씩 접했으나 장편소설은 아주 드물게 읽었다. 누군가 그랬다고 했다.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고. 장편소설을 읽다보면 그 말이 생각난다. 재미있는 장편소설을 잡으면 일상을 작파하게 된다.

 이번에 읽은 산도르 마라이의 <열정>이 그랬다. 276쪽에 목차 대신 20개의 번호가 달린 소설을 말 그대로 단숨에 읽다시피 했다. 번호로는 정확히 중간인 10을 기준으로 주인공인 장군이 친구 콘라드를 만나기까지70여년의 시간을 거슬려 기억하고, 친구를 만나 친구에게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는 걸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단 하루 동안의 일이다. 전날 오전에 시작해서 다음 날 오전이 채 되기 전까지.

 

 "그런 일들은 먼훗날 비로소 다시 생각난다. 몇십 년이 흘러가고, 누군가 세상을 떠난 어두운 방 안을 거닐고 있으면, 갑자기 오래 전에 사라진 말과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그 몇 마디 말이 삶의 의미를 표현했던 것처럼 생각된다."

 

 내 삶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어느 날 불쑥 떠오를 때가 있다. 그제서야 그 일이 내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깨닫고는 잠시 멍해진다. 그런 일들이 한 둘이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갈수록 새록새록 떠오르고, 되새기고, 정돈하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고서야 잠잠해지기도 한다. 소설의 주인공 역시 어느 날, 떠나가버린 친구를 기다리며 떠올린다. 어머니와 함께 쇼팽을 피아노로 연주한 친구를 두고 아버지와 주고받은 말이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야 이해했음을.

 

 "콘라드는 절대로 훌륭한 군인이 못 될 거다."

 "왜요?"

 아들은 놀라 물었다.

...

 "그가 다른 종류의 사람이기 때문이지."

 

 다른 종류의 사람이었던 그 친구로 인해 주인공은 사십일 년 동안 자신을 저택의 한 켠에 유폐시켜버린다. 그리고 말한다.

 

 "참 신기하게도 기억은 쌀과 뉘를 골라낸다네. 십 년, 이십 년이 지나보면, 커다란 사건들은 사람의 내면을 하나도 변화시키지 못한 것을 알 수 있어. 그런데 사냥 갔던 일이나 책의 한 구절, 아니면 이 방이 어느 날 불현듯 떠오르네. 우리가 마지막으로 함께 이 곳에 있었를 때는 세 사람이었지. 그 때는 크리스티나가 살아 있었어."

 

 사십일 년을 두 가지 질문을 묻기 위해 기다렸지만, 결국 답은 독자가 짐작해야 한다. 소설의 마지막에 주인공은 말한다. "다 부질없는 일이지."

 

 헝가리의 대문호 산도르 마라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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