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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소설가의 고백 - 세상의 모든 지식을 읽고 쓰는 즐거움
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혜원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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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옴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추> 때문에 에코와 미셀 푸코가 한번씩 헷갈린다. 또 에코와 파울로 코옐로도 '예'가 들어가는 통에 헷갈리기도 하구.

 책을 시작하자 마자 저자는 말한다. '제목을 보고 의아해 할 만도 하다'고. 이어서

 

 "...세상에는 두 종류의 시인이 존재한다. 하나는 열여덟 살에 자기 시를 모두 불태워버리는 좋은 시인이요, 다른 하나는 평생 시를 쓰는 나쁜 시인다."

 

 후 웃음이 났다.

 그 다음 꼭지 '창작이란 무엇인가?'에서 저자가 토머스 아퀴나스의 미학을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제출했을 때, 한 논문 심사위원이 그에게 일종의 '서사의 오류'라는 비판을 가한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어떤 학문에 대한 책이건 일종의 추리소설, 즉 어떤 종류의 성배聖杯를 찾는 탐구 보고서처럼 써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역시 대가 다운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딱 펼쳤을 때, 혼자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웃었다. 첫번 째 단락 제목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글쓰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글쓰기의 가장 기본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기가 아닌가하는 생각에서였다. 가장 흥미진진했던 부분은 네번 째 '궁극의 리스트'였다. 부제부터 좋았다. '진짜 좋은 책은 두 번, 세 번 읽어도 새로운 해석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중간중간 밑줄 친 부분을 옮겨본다.

 

 "나는 내가 목록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랐던 것 같다."

 

 "좋은 목록이 갖는 단 하나의 진정한 목적은 무한의 관념과 '기타 등등'의 현기증을 전달하는 것이다."

 

 "사실 호메로스는 완전하고 유한한 형태에 대한 묘사와 불완전하고 잠재적으로 무한한 목록에 대한 묘사 사이의 아름다운 대조를 보여준다."

 

 "불안함은 수집된 대상들의 부조화가 커질수록 더 증대된다."

 

 "이와 같이 형태는 성숙한 문화의 특징이고, 그 문화는 자신들이 성공적으로 탐험하고 정의한 세계를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목록은 원시적 문화의 전형이다. 원시적 문화는 아직 우주에 대한 상이 모호하고, 할 수 있는 한 우주의 많은 속성들을 항목으로 정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러한 항목들 사이에 위계적 관계를 세우지는 못한다."

 

 

이런 목록들 중에서  조이스와 보르헤스의 목록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호메로스가 목록에 의지했던 이유는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충분히 보여줄 단어들이 부족했고, 형언불가의 토포스가 수세기 동안 목록의 시학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이스와 보르헤스가 만들어낸 목록들을 보면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그런 목록을 내놓은 게 아니었다. 그들은 과잉에 대한 애정과 충동적인 오만, 단어에 대한 탐욕 그리고 무한한 열거가 주는 쾌락(그리고 드물게는 강박적인), 과학을 향한 욕심에서 사물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목록은 세계를 개편하는 방법이 되어, 이질적인 사물들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를 끌어내기 위해, 그리고 어쨌든 상식이라 통용되는 것들에 의구심을 던지기 위해 속성의 축적이라는 테사우로의 방법론을 실천한다...목록을 정말로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분류 항목들 중에 '이 분류에 포함되는 동물'이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을 원소로 갖지 않는 집합이 표준이고 (모든 고양이가 포함된 집합은 고양이가 아니라 개념이다) 자신을 원소로 갖는 집합이 비표준이라면(모든 개념이 포함된 집합은 개념이다), '모든 표준 집합의 집합'은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이러한 목록들이 소설에 꼭 필요한 요소일까 생각하게 한다. 그에 대해 어느 정도의 대답으로 저자는 말한다.

 

 "진정으로 혼돈스러운 목록은 오직 시로만 작성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소설가들은 정해진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얘기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일종의 뼈대를 설계하여 어떤 부조화적 요소도 뼈대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다른 모든 요소들과 '접착면'을 갖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소설에서의 목록과 열거에 대해 그 의미를 생가해보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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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 - 소설을 둘러싼 일곱 가지 이야기 밀란 쿤데라 전집 13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 민음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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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도끼다>를 통해 읽게 된 책이다.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내 이십 대의 한 지점에 방점을 찍었다. 그 이후 <농담>을 샀으나 읽지는 못했다. 최근에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다시 펼쳤지만 이상하게도 읽어낼 수가 없었다. 그런 책들이 꽤 많다. 예전에 아주 인상 깊게 읽었으나 이후에 다시 읽을 때는 그만한 감흥을 느낄 수 없는 책.

 리뷰 제목인 책의 부제, 부제에서 말하고 있듯이 책은 모두 7부로 나뉘져 있다. 1부 연속성의 의식, 2부 세계 문학, 3부 사물의 핵심에 도달하기, 4부 소설가란 무엇인가, 5부 미학과 삶, 6부 찢어진 커튼, 7부 소설, 기억, 망각이다. 부제의 꼭지 제목만으로도 성전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1부 '연속성의 의식' 중 '가련한 알폰소 키하다'의 마지막 부분

 

  "돈키호테는 패배했다. 그리고 그 어떤 위대함도 없었다. 왜냐하면 있는 그대로의 인간 삶이 패배하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삶이라고 부르는 이 피할 수 없는 패배에 직면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그 패배를 이해하고자 애쓰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소설 기술의 존재 이유가 있다."

 

에서 '소설 기술의 존재 이유'가  과연 그런한가 생각하게 한다.

또 3부 '사물의 핵심에 도달하기' 중 '소설만이 말할 수 있는 것'에서

 "소설가는 역사가의 하인이 아니다. 소설가를 매혹하는 역사란, 인간 실존 주위를 돌며 빛을 비추는 탐조등, 역사가 움직이지 않는 평화로운 시기였다면 실현되지 않고 보이지 않고 알려지지 않았을 뜻밖의 가능성들에 빛은 던지는 탐조등으로서의 역사다."

 

소설가로서의 태도를 생각해본다.

 4부 '이해하려면 비교해야 한다'에서

 

 "범죄자란 무엇인가? 자신이 저지르는 온갖 도둑질과 사기 행각을 시민이라면 갖추어야 할 하나의 직업으로 간주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질서에 자리 잡고 기대어 사는 보수주의자가 범죄자다. 반대로 반역자는 기성 질서에 맞선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그 질서를 휘두르고 싶어 한다."

 

의 정의는 아주 통쾌했다.

 이 책의 길을 따라 또 책을 샀다. 곰브로비치의 <페르디두르케>, 브로흐의 <몽유병자들>등. 책값으로 지불되는 비용이 꽤 되지만, 읽을 책이 눈앞에 있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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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1 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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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읽은 책은 2004년 개정판 3쇄 <자전거 여행>이다. 이십 대에  아직 <대학별곡>을 읽지 않은 내게 첫사랑이 그랬다. 아직 그 책을 읽지 않았단 말이야. 그 이후 독서에 대해 올곧게 주장해왔다. 책도 사람도 집도 여행도...세상 모든 것들이 다 인연이 있다고.

 이 책 또한 그랬다. 남들이 이야기할 때는 선뜻 읽기 싫었다. 역시 뒤늦게 읽은 <책은 도끼다>로 인해 뒤늦게 읽게 되었다. 평소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지 못하는 이유는 책을 다이어리처럼 사용하기 때문인데, 이 책 역시 온통 밑줄에 형광띠지, 앞뒤 여백은 물론이고, 책장 여백에 메모가 가득이다. 아예 노트북에 타이핑 필사를 한 것도 있다. '흙의 노래를 들어라'이다. "봄의 흙은 헐겹다. 남해안 산비탈 경작지의 붉은 흙은 봄볕 속에서 부풀어 있고, 봄볕 스미는 밭들의 이 붉은색은 남도의 봄이 펼쳐내는 모든 색깔 중에서 가장 깊다...얼고 또 녹는 물의 싹들은 겨울 흙의 그 완강함을 흔들어서, 풀어진 흙속에서는 솜사탕 속처럼 빛과 물기와 공기의 미로들이 퍼져나간다. 풀의 싹들이 흙덩이의 무게를 치받고 땅 위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도, 흙덩이의 무게가 솟아오르는 풀싹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풀싹이 무슨 힘으로 흙덩이를 밀쳐낼 수 있겠는가. 이것을 물리 현상이 아니라 생명 현상이고, 역학이 아니라 리듬이다. 풀싹들은 헐거워진 봄 흙 속의 미로를 따라서 땅 위로 올라온다. 흙이 비켜준 자리를 따라서 풀은 올라온다. 생명은 시간의 리듬에 실려서 흔들리면서 솟아오르는 것이어서, 봄에 땅이 부푸는 사태는 음악에 가깝다."

 살아있는 우리는 떠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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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코드 - 서화에 숨겨둔 조선 정치인의 속마음
이성현 지음 / 들녘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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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현의 추사코드를 추리소설 읽듯 읽어냈다.

잠깐 내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내 삶의 경험이 추사코드라는 책을 읽게 된 맥락 속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한문 선생님이 동아리 활동으로 서예반을 운영하고 계셨다. 선생님은 어릴 때 서당에서 공부하신 분이라고 했다. 정년이 다 돼가던 선생님은 대학진학에 영향력이 없던 한문을 가르치면서도 수업시간에 굉장히 열정적이셨다. 평소 한문을 좋아했던 나는 선생님의 열의에 끌려 서예반을 기웃거렸다. 첫날, 선생님이 내 성명을 한자로 적어보라고 하셨다. 내 성명에 들어있는 한자를 선생님이 한지에 붓으로 다시 쓰면서 말씀하셨다. “밝게 살라는 이름이구나. 항상 밝게 살도록 해.”살아오는 날들 동안, 이러저러한 일로 인상을 찡그리거나 화가 나서 일을 그르치고 나면 뒤늦게 선생님의 이 말씀을 떠올리며 , 내가 좋지 않은 마음을 먹었구나.’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 한문 선생님이 내 성명 석자에 들어 있는 뜻을 헤아리시듯 한자는 글자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예 전시회나 서예교실에 가보면 남의 글을 베껴 쓰듯 글씨체에 그 방점이 찍혀있는 걸 보고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모름지기 문자라는 것은 그 속에 내용을 담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용보다 글자모양을 두고 잘 썼네, 못 썼네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지.

늘 추사체라는 추사글씨를 볼 때마다 참 특이하다고 여겼다. 이 책에서도 첫 번째로 다루고 있는 <계산무진 谿山無盡>부터 그랬다. ‘계산은 가로로 쓰고 무진은 세로로 겹쳐서 썼다. 서예에 무지한 내 눈에는 글씨라기보다 그림으로 보였다. 금석학의 대가이고 주역뿐만 아니라 대단한 석학이라고 하는 추사, 그러나 긴 유배로 유폐된 학자가 글씨로 재주를 부리고자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지만 박지원이나 정약용처럼 남긴 특정 저서가 없으니 그의 생각을 알 수가 없다. 그런 나였기에 이 책을 보면서 계속 맞어! 맞어!”혼잣말까지 하며 읽었다. 비록 내 눈에는 그림으로 보이는 글자들이 당시는 천자문으로 시작해서 사서삼경을 달달 욀 정도가 되어야 과거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으니, 선비라면 몇 글자의 편액에서도 그 뜻을 충분히 유추해낼 수 있었으리라. 추사가 남긴 현판이나 편지글 등의 글자 하나하나에 함의가 있으리라 충분히 공감됐다. 출세 길을 접고 금석학을 연구하고, 한창 세상에 본인의 뜻을 펼칠 시기에 제주 유배를 9년간 했다면, 그의 글씨에 자신의 사상이나 의도를 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지성인이라면 문사철文史哲은 기본이라고 하는데, 당시는 시서화詩書畵 삼절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림과 글, 글씨에 자신의 생각을 담던 선비들이고, 그걸 보는 사람들 또한 사서삼경을 욀 정도의 학식 있는 사람들이었으니, 추사의 글씨 속의 감추어둔 뜻을 찾고자 했을 것이다. 이어서 다루고 있는 <산숭해심><유천희애><사서루><죽로지실><일로향실><무량수각> 등의 글자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신비하다. 그런데, 저자가 읽어내는 그 뜻을 보면 흥분이 되기까지 했다.

452쪽에 달하는 책은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의 소제목은 천재가 설계한 미로’, 2부는 대밭에 묻힌 추사’, 3부는 추사의 가면극이다. 1부에 나오는 작품은 <모질도耄耋圖>라는 그림이다. 첫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천 마디 말보다 찰나의 눈빛이 진실에 가까운 법이다.”

이어서 저자는 쓰고 있다.

사람의 말이란 뇌가 걸러낸 것이지만 눈빛은 반응인 까닭에 꾸밀 틈이 없기 때문이다빼어난 예술작품은 많은 것을 암시할 뿐 친절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을 담고 있거나 설명할 수 없는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독립된 인격체와 대화를 나누는 일이라 하겠다위대한 예술작품은 당신의 눈길에 반응하고, 당신의 무뎌진 감각을 다듬어주며, 끝내 당신의 가슴을 벅차게 채워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에 명작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다만, 지금 당장은 끌림이 없다가도 어느 순간 가슴이 먹먹할 만큼 큰 울림과 함께 다가오는 것이 명작이므로, 함부로 당신의 몫의 감동을 타인의 지식과 바꾸는 것만을 피하시길 바란다이것이 추사에 대해 연구하며 깨달은 제일 큰 소득이며, 저명한 추사 연구자들의 수많은 책에도 불구하고 다시 책을 엮게 된 이유다.”

이렇게 밝힌 후 저자는 <모질도>를 이야기한다. ‘모질도라고 할 때, ‘은 노인을 뜻하는 것으로, 보통 나비와 고양이를 그려 장수를 축원한다. 그런데 추사의 <모질도>에는 나비도 없고, 늙은 고양이의 행색에서 안락한 노년의 모습을 찾을 수 없는 것이 이상하다고 했다. 그리고 김홍도의 <모질도>와 추사의 <모질도>를 비교해 보여준다. 조금 뒤에 신사임당과 겸재 정선의 수박을 파먹고 있는 쥐를 그린 두 작품 얘기를 하고 있다. 또 다시 최북과 심사정의 <서설홍청>, 순무를 갉아먹는 들쥐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면서

수박을 훔쳐 먹는 쥐의 모습이든 순무를 갉아먹는 쥐의 모습이든 결국 쥐가 하고 있는 짓은 농작물을 훔쳐 먹고 있는 것이다. 그런 위의 모습이 귀엽거나 예뻐서 그렸을 리 만무하건만, 오랜 세월 동안 다수의 작가에 의해 그려졌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하고 묻고 있다.

예술이 비유체계를 사용하는 한 비유의 수준은 예술작품의 수준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이 된다. 쥐의 형태를 통해 부패한 관리를 고발하는 신사임당과 겸재 정선의 비유법도 훌륭하지만, 수박은커녕 쥐 한 마리 그리지 않고도 부패한 관리를 몰아내겠다는 의중을 담아낸 추사의 <모질도>를 보고 있노라면, 그의 작품이 얼마나 고도로 정제된 비유체계 속에 완성된 것인지 실감하게 된다.”

책을 읽으며 밑줄을 치고, 형광 띠로 표시를 하다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쪽이 하나도 없다시피 해서 따로 표시하면서 읽는 일을 그만두었다. 책을 읽다가 한자의 변천에 대해서 자료 검색을 해보았다. 예를 들면 비우()’갑골문금석문전서예서해서행서초서로 바뀌는 동안 그 글자 모양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왜 추사는 금석학을 연구하게 되었을까?”에 대한 저저의 생각이 어렴풋하게나마 동감이 되었다.

어젯밤에는 다 읽은 책을 처음부터 펼쳐서 한자 부분만 따라 써보다가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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