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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야 끝난다 - 전세를 뒤집는 약자의 병법
다카하시 히데미네 지음, 허강 옮김 / 어바웃어북 / 2014년 9월
평점 :
옛날 경인방송(?)이라는 곳에서 박찬호 중계를 해주었던 때에도(그때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 문방구에 새로 나온 카드 뽑기 게임이 프로야구 스티커를 모으는 것이었던 때에도, 전국적인 야구 열풍이 일어 최초로 600만 관중이 넘었다고 많은 언론에서 떠들었던 때에도, 야구라는 종목에 관심도 흥미도 없었던 나였다.
그런데 재작년이었나? 색다른 데이트의 일환으로 잠실에서 두산과 잘 기억나지 않는 상대의 경기를 보러 두산의 응원석에 앉게 되었는데, 응원가를 하나부터 열까지 다 외워 크게 따라 부르는 사람부터 직장 퇴근 후 곧장 왔는지 양복을 입은 중년 아저씨, 그리고 단체로 응원 와서 치킨에 맥주를 마시며 즐겁게 관람하는 사람들까지 그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환희를 느끼게 되었다.
그 이후로 틈날 때마다 야구에 관련된 기사와 내가 좋아하는 팀(지금은 신생 NC가 좋다)의 경기 스코어까지 종종 들여다보는 야구팬까지는 아니어도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일본의 만화작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주제가 고교 야구인 것과 류현진과 추신수가 소속되어 있는 메이저리그가 엄청난 사랑을 받는 것을 생각해보면, 야구란 정말 매력적인 스포츠라는 것을 반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 야구를 소재로 한 이 책은 30년 넘게 도쿄대학(우리로 따지면 서울대) 합격률 1위를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입시 최고 명문고의 학생들이 벌이는 야구 이야기를 기록한 논픽션이다. 저자는 파울볼을 인생에 비유한다. 적어도 힘껏 스윙을 해야 파울볼이라도 쳐내지 않느냐고. 휘두르지 않아 볼넷이 되어 주자가 되어 나갈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삼진 아웃되어 방망이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 야구란 기다리는 스포츠다. 야구는 아홉 번의 공수 교대 사이를, 자신의 타격 순서가 오기까지를, 투수가 공을 던지기까지의 인터벌을, 심지어 수비수가 자신에게 공이 오기까지를 집중력을 잃지 않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한다. 흔히 스포츠의 세계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을 야구에 적용하면 '최선을 다해서 기다린다'는 것이 된다. 기다릴 줄 아는 자에게 기회가 오기 때문이다. - p.8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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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스포츠 경기에 비유하곤 하지만 야구야말로 인생을 대변하는데 있어 가장 적합한 스포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하게 되었다. 흔히 사람들이 야구란 9회 말 2아웃까지 가봐야 한다고 할 만큼 야구란 스포츠는 대 이변이 매 경기 일어나는 스포츠이다. 2014년 국내 프로야구를 기준으로 한 시즌에 128경기가 치러지는데, 몇몇의 한쪽으로 치우친 경기들을 제외하면 9개 프로야구팀의 수많은 선수들은 매 경기에서 9회 말 2아웃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할 것이다.
| 그저 '고시엔 출전을 목표로 한다'고 하면, 뭔가 먼 곳을 보는 것 같고 몸도 그냥 서 있는 것처럼 된다. 그런데 '강팀을 격파한다'고 목표를 세우면 몸이 어느새 상대방과 겨루는 자세로 바뀌게 된다. 바로 이미지가 몸의 움직임을 이끌어 스윙도 힘껏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슨 일이건 목표를 세울 때는 공격적일수록 이를 대하는 자세도 달라진다. 좀 더 적극적이고 도전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 p.1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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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고등학생도 아닌, 명문대 진학률이 엄청나게 높은 한 고등학교에서 야구를 한다. 우리나라로 예를 들자면 소위 강남 몇 학군이라고 불리는 학교들이나 대학교 등록금 수준의 학비를 내고 새벽까지 공부하는 자사고 같은 곳에서 공부를 해야 할 시간에 야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그런 행동이 일어난다면, 엄청난 주목을 받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물론 일주일에 하루뿐인 훈련이지만 가이세이고등학교의 미래 도쿄대학을 갈 인재들은 야구를 하면서 인생을 배워간다. 이 가이 세이고등학교에서 야구를 배운 학생들은 세상에 나가서도 분명 남들보다 더 폭넓은 사고와 행동들을 할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정말 우리 인생도 야구와 똑같다. 우리가 희망을 잃고 소극적인 인생관과 성격을 유지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경기는 큰 점수 차가 나 콜드게임 선언이 될 것이고, 우리가 긴장을 늦추지 않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파울 일변도였던 우리의 스윙이 9회 말 투아웃에서 짜릿한 역전 홈런이 되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파울볼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가끔 TV나 인터넷으로 야구 중계를 보면 이승엽 같은 최고의 타자들은 전성기가 지났음에도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한방을 쳐낸다. 그 한방을 쳐내기까지 수많은 파울볼을 쳐냄은 물론이다. 이처럼 우리 삶도 아직 좌절하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이 든다. 내 처치가 이래서 자꾸 긍정적인 책들과 긍정적인 말만 늘어놓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시험에 떨어졌다거나 취업의 문에서 떨어졌다고 해도 더 힘껏 방망이를 휘두른다면 9회 말 역전 만루홈런을 날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렇게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저자 : 다카하시 히데미네 요코하마에서 태어나 도쿄외국어대학교 몽골어학과를 졸업했다. 한때 복서이자 트레이너로 링 위에 오르기도 했던 그는, 1992년부터 방송 일과 글쓰기를 함께 해오다 지금은 인기 논픽션 작가로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2011년에 발표한 [조상들은 어떤 분?]으로 제10회 고바야시 히데오 상(小林秀雄賞)을 수상하면서 문단으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