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점심
장은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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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기도 한 단편 〈가벼운 점심〉은 봄의 풍경이 짙게 드러나는 소설이다. 으레 ‘봄’ 하면 떠오르는 즐거움이나 희망 따위의 긍정적인 이미지와 달리 소설 속 아버지에게 봄은 ‘좋아해서 좋아하지 않았‘던 계절이다. 그러나 아들인 '나'가 10년 만에 만난 아버지는 다시 봄을 만끽하는 듯 보인다. "봄이 왔는데도 행복하지 않다면 그 사람은 진짜 불행한 사람인 거야." 라며. 


떠나버린 아버지를 증오할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마음과 스스로를 버리지 않기 위해 떠나야만 했던 아버지의 마음 중 그 어느 것도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둘 다 온당한 감정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마음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그 둘을 모두 이해하려 애쓰는 ‘나’의 모습에 공감이 가면서도 과연 나라면 그 상황을 소설 속 화자처럼 차분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됐다. 물론 ‘나’는 아버지와의 만남에 앞서 어머니가 만들어 준 ‘침묵의 10년’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이해하는 일이 수월했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았던 10년이라는 시간이 ‘나’에게는 오히려 아버지와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 셈이다. ‘나’는 아버지를 이해하는 것을 계기로 앞으로 마주할 복잡한 현실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나에게는 이 말이 지금 어려움을 마주했더라도 시간을 두고 천천히 나아가려고 한다면 그 뒤에 올 역경도 이겨낼 수 있는 근육이 생길 것이라는 위로처럼 들렸다.


개인적으로 아버지가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결정을 재확인하면서도 떠나온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을 인식하는 장면이 위로와 응원을 동시에 건네는 느낌이라 기억에 남는다.


"난 내 삶을 살고 싶다. 그때로 돌아가도 똑같은 선택을 할 거야. 아무리 손가락질하고 비난해도 사는 거 같거든. 밥도 맛있고 물도 맛있는 삶이면 된 거 아니겠니. 잠을 잘 자면 괜찮은 인생 아니겠니."

아버지가 숨을 가다듬었다.

"다만 가슴 한쪽에 미안함을 품고 내가 선택한 삶이 불행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해."


다들 행복한 봄인데 나만 불행해서 봄이 싫었고, 그래서 자신의 삶을 선택했지만 포기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 복잡한 마음을 품고 있는 아버지처럼 삶의 여러 갈래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말이 특히 와닿지 않을까. 모두 앞으로 나아가는 봄인 것 같은데 나만 멈춰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또 삶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한 사람이라면 소설 속에서 남들과 똑같은 길이 아니어도 된다고, 나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응원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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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 씨, 지금 무슨 생각하세요? - 노년의 심리를 이해하는 112개 키워드
사토 신이치 지음, 우윤식 옮김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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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불문하고 쇠약한 노년기의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두렵게 느껴지는 것 같다. 아직 20대인 나에게 노년의 일은 너무 먼 미래처럼 느껴져 막연하다가도,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예전 모습, 혹은 좀 더 시간이 지나 노년이 될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다 보면 나에게 다가올 노년이 버겁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때가 있다. 


  최근 SNS에서 유행하는 ‘저속노화’를 위한 생활 습관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저속노화’란 말은 일명 ‘저속노화쌤’ 정희원 교수의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에 등장하는 단어다. 젊은 세대가 가속노화하는 습관을 들이면서 기성세대보다 빠르게 노화하기 시작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이 책은 말 그대로 ‘느리게 나이 드는 방법’으로 건강한 식사, 충분한 수면, 규칙적인 운동 따위의 알면서도 실천하기는 어려운 습관을 강조한다.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수명곡선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장수 의학 연구자 피터 아티아의 주장도 한 차례 화제가 되었다. 천천히 노화하고, 노년기에 쇠약하게 생활하는 기간은 최소한으로 줄이자는 것이다. 


  물론 건강하게 사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아직 노년기에 이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공감을 얻는 것은 쇠약한 신체로 인한 고통을 겪는 기간을 줄이겠다는 생각 이면에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의존은 민폐라는 인식이 일반적인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을 맞닥뜨리는 것은 상당히 두려운 일일 것이다. 건강하게 늙고 싶어하는 마음에는 쇠약하게 늙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도 숨어 있는 듯하다.


  《고령자 씨, 지금 무슨 생각하세요?》는 노년에 접어든 ‘고령자 씨’에 대해 일반적으로 궁금해하는 질문에 답하고 관련 키워드 112개를 설명하며 고령자와의 관계에 실용적인 조언을 제공한다. 꼭지별로 큰 질문을 다루고 세부 키워드로 요약 정리가 되어 있어 궁금한 주제를 간단히 찾아보기에도 좋을 것 같다. 저자는 고령자가 ‘안티에이징’에 관심을 갖는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그들은 젊은이와 비교해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특히 그는 서두에서 노화는 성장이나 마찬가지이고, 고령자는 계속해서 발달하는 존재라며 노인과 노화의 기존 개념에 질문을 던진다. 책 전체에 걸쳐 자칫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는 ‘노인’이라는 단어 대신 ‘고령자 씨’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도 이런 관점 차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함이다.


  개인적으로 운전이 고령자에게 자기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라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디지털화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빠르게 생겨나는 환경에서 고령자가 젊은 층만큼 변화에 원활하게 적응하기 어렵단 얘기는 주변 어른들이나 뉴스를 통해서도 많이 접했지만 그것을 고령 운전자 문제로까지 연결해보지는 못했다. 고령 운전자 사고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자기 효능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면허를 반납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저자는 고령자가 자주 화를 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단순히 고령자가 되면 화를 많이 낸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화로 인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스트레스가 쌓여서 화를 내게 된다고 설명하는데, 이렇게 사회 통념을 구체적으로 해설하는 부분이 많아 고령자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책을 읽으며 살아 있는 동안 계속 건강하다가 죽을 때 한 순간에 쓰러지는 형태를 이상적으로 여기는 것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일본에서는 ‘핑핑코로리’로, 미국에서는 ‘성공적 노화’라는 개념으로 표현되는 이 관점은 자립한 상태를 이상적으로 여기는 반면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상태는 예외적이고 자립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본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상태가 성공적이지 못한 노년기라고 보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반보성(反報性) 심리’라는 개념은 이런 고정관념이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을 잘 보여준다. 반보성 심리는 누군가에게 배려를 받을 때 그에 대한 보답을 하지 않으면 불편함을 느끼는 마음을 뜻하는데, 돌봄 제공자와 돌봄을 받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는 감정이다. 특히 고령자는 쇠약해진 상태에서 돌봄자에게 충분한 보답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반보성 심리로 부채감이 쌓이다 보면 돌봄을 ‘속박’으로 느낄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다른 사람에게 돌봄을 받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회라면 반보성에 얽매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고령자가 지역사회 내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사회관계 자본’을 쌓아나간다면 우리 사회가 서로 의지하는 일을 덜 불편하게 여길 수 있지 않을까. 꼭 고령자가 아니더라도 인생에서 일시적으로 돌봄을 받아야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때를 마주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돌봄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공동체 간 관계를 회복하고 풍부한 신뢰 자본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


◆ 안티에이징도 나쁜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을 맞이하는 날까지 하루라도 더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것은 고령자 씨의 솔직한 마음이자 가족과 사회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티에이징이 더 이상 효과를 내지 못하는 시기는 반드시 돌아옵니다. 그때가 오면 사람은 어떻게 노화와 마주해야 할까요? 모든 사람이 생각해 두어야만 하는 문제입니다.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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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 604호 : 2024.03.20 - #지금 편집자의 학교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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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판 교육을 듣기 시작해서 이번 호는 내 얘기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교육을 들으며 편집자의 여러 직무 영역에서 갖춰야 할 마음 자세를 체험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동안 시간에 쫓겼던 면도 없진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완성도를 낮춰가며 시간 내에 결과물을 만드는 데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교육의 한계를 우려하는 글에 좀 찔렸다. 편집 교육을 듣는다고 해서 에디터에게 필요한 기초 체력을 단기간에 늘릴 수도 없는 일이란 얘기에도 공감했다. 교육 일정 따라가기에 바빠서 정작 중요한 기본 소양을 쌓는 일에는 다소 소홀해졌기 때문이다.


애초에 출판 산업의 생산성 문제는 교육으로 해결할 수 없단 지적도 중요하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좀 주제넘은 생각인가 싶지만, 출판업의 불황이 계속된다면 오늘날 한국 사회가 마주한 대학 입시 위주 교육의 문제처럼 (엄밀히 얘기하면 객관식, 상대평가 중심의 입시 제도 때문에 생긴 문제이지만. 604호 이 주의 논점을 참고할 것.) 우리 사회에 필요한 책이 아니라 팔리는 책을 만드는 방법에 더 치중한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필자가 얘기한 '아마추어 편집자'들이 많아진다면 시장 중심적인 출판 구조에서 탈피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이번 로컬X컬처 키워드 연재는 '좋은 일'에 대한 정의를 다시 짚어주고 있다. 필자는 사회의 통념에서 벗어나 자신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종사하는 지역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는데, 이러한 만남을 통해 임금 수준이 높거나 안정적이라고 여겨지는 직장에서 일하는 것만을 정답으로 여기는 기존의 통념을 깰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줘서 좋았다.


'뭐가 새롭지?'와 '이런 책을 독자들이 찾나?'라는 굴레 안에서 매일 빙빙 도는 게 편집자란 직업인 것이다. (p.69)


《인생은 순간이다》의 편집자님이 쓰신 기획자 노트 릴레이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역시 새로운 점, 차별점은 그냥 찾아지는 것이 아니다. 요행에 기대지 않고 끝까지 파고드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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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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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느끼는 열등감,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한 결핍 등을 되짚으며 자신이 죽지 않은 이유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원도가 이해되면서도 이 인물에게 완전히 공감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생각을 예견하기라도 한 듯한 구절에 뜨끔했다.

“지금까지 원도의 기억을 쫓아온 당신도 한 번쯤은 이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 이런 인물이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은가?” - p.239

다만 나라고 해서 내 인생에 얼마나 떳떳한가, 과연 어떤 모순이나 흠결도 없는 사람인가를 생각해본다면 내가 원도와 완전히 다르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애초에 선악을 떠나서 (행여 어떤 사람이 악인이라고 해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 일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문제다. 그리고 그 이유를 탐구하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직접, 나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다. 그 때문인지 여관방을 대실하며 혼자라고 말하는 원도의 마지막 모습이 강렬하게 남았다.

** 소설이 진행되는 와중에 굵은 글씨로 원도 내면의 목소리와 다른 인물의 목소리가 표현된 부분에서 원도의 복잡한 고민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 자기 존재 이유를 계속해서 고민하는 내용이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과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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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 603호 : 2024.03.05 - #편집자의 위기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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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를 목표로 하는 입장에서 이번 호는 제목부터 정말 궁금했는데, 기대한 대로 유익한 내용이 가득했다. 구직난과 구인난이 공존하는 출판계 상황을 뜯어보는 글부터 퇴사 후에 출판사 창업한 이야기, 마케터와 편집자의 관계 등 편집자를 둘러싼 여러 상황과 고민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외주자에 대한 이야기는 잘 몰랐던 터라 더 흥미로웠다. 편집자가 마주한 출판계 노동 환경이나 출판 산업의 어려움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글에 겁이 나면서도 이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면 나도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그러려면 더 부지런히 노력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게 된다.


문학동네 마케터님의 글을 읽으며 책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니란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한 명의 편집자가 연속성을 가지고 기획부터 출간 이후의 과정 전체에 참여해야 마케터를 비롯한 여러 협업자와 원활하게 일할 수 있고, 이 협업의 질이 독자가 책을 얼마나 납득하는가의 문제와도 연관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하나의 맥락으로 잘 정리된 책을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마음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 말하자면 일종의 독특한 사랑에 빠진 셈인데, ‘독특하다’고 말한 이유는 사랑에 빠졌음에도 편집자는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그 대상의 개선 사항을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것도 사랑이라면 사랑일 것이다. 하나 더 독특한 것은 그 사랑의 끝엔 그 대상을 타인에게 소개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나에게 유일무이한 이 책이 다른 이들에게는 하루에도 새롭게 쏟아지는 무수한 책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편집자는 자신이 만든 책을 잘 소개하기 위해 그 책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한창 사랑에 빠진 와중에도, 또 그 사랑을 전파하는 와중에도 편집자는 자신의 사랑에서 끊임없이 벗어나야 하는 고약한 운명에 빠진 게 아닐까. (p.56-57. 주관과 객관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편집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


이번 로컬X컬처 키워드 연재에서는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친화적인 춘천의 공간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담작은도서관과 맡겨놓은 카페 등, 어린이와 청소년이 존재 자체로 응원받아야 하는 이들이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형성된 공간이라는 점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번 호 '이 주의 큐레이션' 중 ‘어린이가 주인인 문학’도 비슷한 맥락이어서 기억에 남았는데, 어른의 관점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로는 어린이에게 다가갈 수 없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다들 어린이였던 시기가 있었을 텐데 그 시간을 너무 쉽게 망각하고 어린이에게 어른의 시선을 강요하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볼 수 있었다.


▶ 게다가 어린이문학은 어른이 쓰고, 어른이 만들고, 어른이 사는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어린이 손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만드는 과정에 어린이의 욕구나 바람보다는 어린이를 향한 어른의 욕구나 바람이 반영되기 더 쉬운 구조인 셈이죠. (p.90)


▶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공부에 지친 아이들이 자기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울거나 한숨을 푹푹 쉬는 인물이 나오는 이야기를 읽고 싶어 할까요? 정말 아이들을 위한다면, 아이의 입장에서 동화에서라도 바다를 가르고 하늘을 날고 땅을 뚫고 내려가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일을 시원하게 해내는 주인공을 볼 때, 아이들이 숨을 쉬고 꿈을 꿀 수 있지 않을까요?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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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의 영화를 다룬 시네마틱 쇼츠 코너에서는 영상 표현 방식으로 윤리적인 메시지를 표현하고 관객의 개입을 이끌어내고자 한 감독의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감독이 주로 ‘노동자’라는 소재에 천착해 왔다는 것뿐만 아니라 롱 숏을 사용해 관찰자의 태도를 고수하고, 관객에게 선택의 여지를 남긴 것도 감독의 메시지를 보여주는 요소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특히 그가 직접적으로 노동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전개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자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포착함으로써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한다는 점에서 필자가 그를 ‘행동하는 목격자’라고 표현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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