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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30만부 기념 거울 에디션)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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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를 맞이하며 세운 목표 중 하나는 더 많이, 적극적으로 사회 문제에 연대하는 것이었다. 1월 2일 아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지하철 다이인(Die-in) 행동 참여를 위해 안국역을 찾았다. 처음 마주한 현장은 그야말로 막막했다. 이동권 시위에 대한 경찰과 서울교통공사의 태도를 눈 앞에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권력은 장애인의 이동권을 위한 시민 불복종 운동을 불법 행위로 못박았다. 승강장에 누워서 이동권 투쟁이 그동안 마주쳐 왔을 어려움을 생각했다. 세상은 변한 것 하나 없단 생각이 들었다. 2019년에 출간된 <선량한 차별주의자>에 묘사된 사회의 모습은 2025년에도 그대로 재연되고 있었다.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어떤 배제와 차별을 경험하는 일인지에 몰두했던 2019년의 나에게 이 책은 나와 다른 사회적 정체성을 지닌 사람에게 조금 더 섬세하게 눈을 돌리는 법을 알려 주었다. 내가 얼마나 쉽게 차별의 가해자가 될 수 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령 여성인 내가 난민 수용을 반대한다면, 나는 더 이상 약자가 아닌 강자로서 그들을 차별하는 셈이며 그 중에서도 여성 난민은 나와 달리 이중의 억압을 경험한다. 이렇듯 여러 사회적 정체성은 교차하며 나를 항상 약자이거나 강자의 자리에만 두지 않는다. 즉, 같은 여성이라도 각자가 처한 삶의 조건에 따라 차별을 다르게 경험하는 셈이다. 게다가 차별이 이미 당연한 구조로서 자리잡은 상황에서는 차별을 차별로 인식하는 일이 방해를 받으며, 내가 누군가를 차별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기 어려워진다. 제목 그대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생겨나는 이유다.


  책은 더 나아가 문제 삼기 어려운 방식으로 차별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다룬다. 소수자를 조롱하며 웃는 이들은 우월감과 편견을 조장하면서도 소수자의 문제제기를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고, 능력주의를 공정의 충분조건으로 여기는 이들은 능력에 따른 차등이 간접차별을 초래하며 되레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한다. 이주민과 외국인, 성소수자, 장애인을 ‘다른’ 사람으로 구분하며 차별하는 현실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출간 후 5년이 지났음에도, 이러한 문제의식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시사점을 던진다. 최근에도 일부 예능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웹툰 등 미디어에서 소수자가 재현되는 방식이 수차례 문제된 바 있고, 심지어 정치인이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일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평등한 세상 만들기는 요원한 걸까? 변화의 가능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이 책을 읽고 차별에 더욱 민감해지기로 한 사람들과 그 주변인의 실천에 주목하고 싶다. 미디어와 정치, 일부 차별주의자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크게 들리지만 우리 역시 그것은 차별이라고 비판할 수 있으며,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차별 철폐에 동참하자고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차별에 민감하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차별을 밝혀내고 보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이것은 나 스스로를 위한 다짐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내가 가진 유리한 조건을 당연한 듯 여기며 살다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다른 사람을 만나 그것의 존재를 자각하고 놀랄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불평등한 세상이 그대로인 것 같아서 무력해질 때에도, 나와 내 곁의 사람들이 조금씩이나마 만들어 온 변화와 앞으로 만들어 낼 가능성을 헤아리기로 했다. 최근 광장에서는 소수자 정체성을 드러낸 이들에게 많은 사람이 환호를 보냈다. 지난달 안국역에서 나는 동료 시민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하고, 소수자 집단을 하나씩 호명한 뒤 연대 의사를 밝히는 박경석 대표의 발언을 들으며 다시금 힘을 얻었다. 평등한 세상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이들과 14년간 논의가 미루어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도 뜻을 모을 수 있으면 좋겠다. 차별 행위를 즉각 시정하는 것은 물론, 평등하게 대우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방법을 더욱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싶기 때문이다. 차별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이 보장되는 인간 보편성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에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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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기획회의 614호 - 서평단 마케팅의 정석 기획회의 614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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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서평단이 보는 서평단 이야기



614호는 서평단 마케팅 방식을 소개하며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서평단의 사례를 다뤘다. 서평단으로서 서평단 얘기를 읽자니 재미있으면서도 엄청 찔리는 부분이 많았다(뭐가 찔렸는지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무튼 이번 호를 읽으며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으로서 서평단을 운영하는 이유와 그 방식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내가 서평을 써 왔던 방식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사실 책 이외의 물건을 사는 소비자로서 체험단 블로그 글을 볼 때는 광고라는 생각이 들어서 빠르게 보고 넘기게 된다. 정성 들여 솔직하게 쓴 체험단 후기도 없는 건 아니지만 자발적으로 좋아서 올린 후기가 아닌 만큼 완전히 신뢰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광고 표시가 없어 블로그 포스팅을 열심히 보다가도 글 하단에 “이 포스팅은 제품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와 같은 문구를 마주하면 김이 새는 이유다(12월 1일자로 블로그 체험단 포스팅을 작성할 때 경제적 이해관계를 표시하는 문구를 첫 부분에 게재하도록 공정거래위원회 지침이 개정됐다고 하니, 마지막에 실망하는 일은 줄어들 것 같다).

  서평단 마케팅 방식을 꺼리는 출판사 역시 비자발적인 서평으로 마케팅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경우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서평 내용을 불충분하게 작성하거나 다른 이의 서평을 베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심지어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받은 책으로 이익을 추구하려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반면 성실하게 서평단 활동을 하는 이들 중에는 오히려 출판사보다 독자 소통이나 출판 동향 파악에 뛰어난 경우도 적지 않다. 〈서평단, 아직 필요한가?〉에서 국내에 발간되지 않은 일본 원서를 스스로 번역해 알린다는 ‘만화 전문 서평단’ 소개를 읽고 말 그대로 ‘전문 서평단’이라고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동아일보 문화부 이호재 기자는 이번 호 첫 번째 기사에서 교육이나 의료 등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서평단 활동을 하면 오히려 출판 기자보다 깊이 있는 통찰을 담아내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변질된 서평단 문화가 보일 때도 있지만, 여전히 서평단은 저비용으로 독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만들 수 있는 마케팅 수단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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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인출판사, 서평단을 만나다에서 세나북스 대표가 말한 것처럼, 서평단 운영은 당장 마케팅 효과가 보이지 않더라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새로운 연결의 불씨”를 만드는 일이라고 볼 수 있겠다. 나만 해도 올해 한겨레출판 서평단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한겨레출판의 책에 더 애정을 갖게 되었다. 우리 엄마가 몇 권을 가져가 읽었고, 다 읽은 책 중 몇 권은 무료 나눔을 하기도 했다. 나눔을 받은 분이나 그 주변 분들이 책날개에 쓰인 ‘한겨레출판의 다른 책’ 목록에 관심을 갖고 다른 책을 더 찾아볼지도 모르는 일이다. 

  신기하게도 나는 다른 서평단분의 블로그 포스팅을 읽고 세나북스 책을 산 적이 있다…. JLPT를 준비할 때 일본어 공부 관련 포스팅을 많이 올리는 블로그에서 세나북스의 《손으로 쓰면서 외우는 JLPT N1 30일 완성》을 보고 공부하기에 좋아 보여서 구매했다. 필사하듯이 N1 문법을 공부할 수 있는 책인데, 사실 끝까지 다 쓰진 못했지만 이 책으로 N1 합격에 도움을 받은 건 분명하다. 아무튼, 급수별로 나온 책이니 JLPT를 준비하는 분이 있다면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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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칭찬하는 책은 사 보고 싶어진다. 하지만 누군가는 극찬하고, 다른 이는 깎아내리는 책은 더 읽고 싶다. 서평단이 발전하기 위해 비판적인 글쓰기가 필요하다는 건 과한 바람이 아닐 것이다. (p.31)

나 역시 서평단으로 활동하면서 무상으로 제공받은 책을 비판하면 안 될 것 같단 생각을 자주 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서평을 쓰면서 안 좋은 것을 억지로 좋다고 쓴 적은 없다.) 사실 꼭 서평단이 아니더라도 평소 독후감이나 서평을 쓸 때 ‘내가 감히’ 비판해도 되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고, 애초에 비판이 ‘찬양’보다 더 품이 많이 드는 작업 같기도 하다. 비판적인 글쓰기를 하려면 책이 말하는 요지를 잘 파악하는 것을 넘어서 비슷한 주제의 다른 책을 찾아보는 노력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 때 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저자의 주장을 다르게 볼 여유도 생기는 것 같다. 사실 매번 추가 자료를 찾아가면서 서평을 쓰지는 못했는데, 한 권의 책이 위치하는 지점을 찾아본다는 생각으로 여러 책을 함께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좋은 서평도 보는 사람이 없다면 서평으로서 가치가 없다. (p.33)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설명하자면, 이 문장은 서평단이나 서평을 쓰는 개인을 두고 말한 것이 아니라 마케터가 서평단을 선정할 때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하는가를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내가 쓴 서평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많이 도달하는지의 문제에도 관심을 두는 편이라 이 문장을 가지고 왔다. 나도 내가 쓴 글로 책의 장점을 널리 알리고 싶지만…! 다른 글에 비해 서평은 유독 유입되는 사람이 신기할 정도로 조회수가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 출판사가 서평단으로 마케팅 효과를 보고는 있는 건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많이 보는 서평의 특징은 뭘까? 클릭을 유도하는 제목? 호기심을 유발하는 첫 문장? 너무 길지 않은(…) 분량? 아니면 서평을 쓴 사람의 팔로워(이웃) 수? 서점 리뷰란의 서평을 클릭할 때는 제목이나 내용이 큰 영향을 미치는 데 비해 SNS에서 서평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달하려면 팔로워 수가 높은 편이 유리할 것 같다. 특히 인스타그램은 검색이 쉽지 않아 더 그렇게 느껴진다. 한편으로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리뷰하는 사람들이 특히 주목을 많이 받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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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기획회의 613호 - 평생공부의 동반자 기획회의 613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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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호는 ‘평생공부의 동반자’라는 주제가 보여주듯 공부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책들을 주로 다룬다. 꼭 책을 읽어야만 공부인 것은 아니지만, 책은 지식을 전하는 매체로서 공부와 뗄 수 없는 관계다. 또, 넓게 보면 어떤 분야의 책을 읽든 독서 자체가 배움과 연결된다고 하지 못할 이유가 없지만 이번 호에서는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을 습득하는 배움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학습지와 실용, 자기계발 분야의 책에 집중했다. 특히 노인 인구가 늘어나면서 시니어의 공부를 겨냥한 기획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 집중한 기사도 흥미롭다.


성인 학습지는 광고로 종종 접했기 때문에 그 존재를 알고 있었는데, 시니어 학습지가 나오고 있다는 건 첫 기사를 읽고 알게 되었다. 갈수록 아이들이 줄어드는 추세니, 학습지 회사로서는 새로운 소비자를 찾을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찾아본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업계 관계자가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젊은 세대와 달리 노년층은 종이에 무언가를 써야 공부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학습지가 시니어를 새로운 소비자로 삼아볼 만하다고 인터뷰한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 그런데 두 번째로 실린 ‘가벼운 학습지’(현 마이라이트) 기사를 보면 학습지 형태는 시니어가 아닌 그 아래의 젊은 층에도 충분히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손에 잡히는 물성의 힘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이 디지털 콘텐츠에 익숙하기 때문에 QR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기는 하지만, 단순히 온라인으로만 운영되는 강의와 비교해 학습지가 함께 제공되었을 때 완강률이 확연히 높아졌다고 하니 디지털 기기를 켜지 않아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종이 매체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인기 있는 캐릭터와의 콜라보레이션도 무시할 수 없는 듯하다. 최근에는 ‘명탐정 코난’이 그려진 마이라이트 학습지 광고를 보기도 했다….


  인스타 스토리를 주제로 한 실용서 《인스타 스토리, 어디까지 꾸며봤니》를 소개한 기사에서도 책만이 가질 수 있는 강점이 드러나서 흥미롭게 읽었다. 인플루언서인 저자가 원래 인스타 스토리 제작 방법을 숏폼 영상으로 올려서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 그 내용을 책으로 만들면서 짧은 영상 안에 다 담기지 못한 저자만의 노하우를 상세히 담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책이 영상 콘텐츠와 경쟁해야 한다면, 자세한 설명이나 심도 있는 지식처럼 책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를 담는 노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미를 책으로 연결하는 건 어렵다던데, 책이 인터넷 정보와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을지를 찾아낸다면 경쟁력 있는 취미서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물론 그 차별화 지점을 찾아내는 게 문제이겠지만…). 사람들이 끊임없이 배우면서 개성을 확립하고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과 소속감을 느낀다는 분석도 흥미로웠다.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자기계발서 《80세의 벽》을 다룬 기사에서는 출간 분야에 대한 고민도 살펴볼 수 있어서 유익했다. 시니어 기획의 차별화 포인트나 포지셔닝에 대한 고민, 홍보 방법이나 시리즈화 시도 등 기획부터 출간 이후의 과정에서 고민할 만한 문제를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시니어 대상 기획을 한다고 해서 특정 분야의 아이템 발간을 우선으로 하기보다는 독자의 니즈를 충족하는 것이 먼저라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는데, 독자가 무엇에 관심을 두는지를 살피는 일은 분야를 불문하고 적용될 수 있는 기획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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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기획회의 612호 - 로컬은 잡지로 통한다 기획회의 612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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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한나 작가의 《드라마》를 읽고 서한나 작가가 편집장으로 있는 대전 지역 잡지 《보슈(BOSHU)》를 알게 됐다. 저자 인터뷰를 몇 가지 찾아보면서 《보슈》가 잡지로서 지역의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여성 축구팀이나 주짓수 클래스를 운영하고 비혼 여성 커뮤니티를 만드는 등 다양한 활동을 기획해 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보슈》가 단지 ‘잡지’가 아니라 ‘문화기획자그룹’으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서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기획회의 612호 INTRO에서는 최근의 미디어가 사실상 사람이나 공간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포스트매스미디어’ 개념을 설명하며 지역 잡지 역시 사람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보슈》도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홍대의 이야기를 담은 《스트리트H》, 익산 전통시장인 ‘중앙시장’을 취재한 《비마이크(Be mike)》,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담은 《브리크brique》, 지역에서 생활하고 일하는 방식을 다룬 일본의 로컬 잡지 《턴즈》 등 도시와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지면 밖에서 사람들과의 연결을 만드는 잡지들의 사례를 살펴볼 수 있었다. 


  612호에 실린 로컬 잡지 이야기에서 돋보인 건 지역에 대한 애정이다. 《스트리트H》 편집장은 홍대를 15년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로 그만 둘 이유를 찾지 않는 관성을 꼽지만 사실 그 바탕에는 홍대만의 개성있는 문화 자산이 지속되길 바라는 그의 마음이 있었다. 《비마이크》를 창간한 로잇스페이스 대표는 고향인 익산에 돌아와 지역 재생의 주도자를 자처하고 할 일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위 사례처럼 지역을 아끼는 마음이 바탕이 될 때 잡지가 지면을 넘어 사람들을 직접 연결하는 플랫폼 형태가 될 수 있는 듯하다. 《스트리트H》가 쌓아 온 기록은 과거의 홍대 주민, 예술인들과 현재의 홍대 사람들을 연결하며 홍대의 변화 과정과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비춘다. 《비마이크》의 기록은 단순 인터뷰어로서가 아니라 지역 주민으로서 익산 중앙시장 상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관계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브리크brique》가 공간에 대한 관심을 사람들의 삶으로 확장해 온 시도 역시 로컬 잡지로서 그들이 만들어 갈 연결을 기대하게 한다. 지역 이주를 고려하는 20~40대 독자를 위한 일본의 로컬 잡지 《턴즈》는 지역의 여러 크리에이터와 함께 이벤트를 기획하고 온라인으로 지역 제품을 소개하거나 지역 비즈니스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앞서 언급한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함께 소개된 ‘지역부흥협력대’나 ‘다거점 주거’ 등 일본의 로컬 정책이나 사업 키워드도 흥미롭다.


  로잇스페이스 대표는 잡지가 사양산업(!)인 출판 중에서도 좁은 영역에 속하지 않냐는 걱정을 들은 적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브리크brique》 발행인은 잡지 다섯 권을 내고 6개월간 휴간을 거쳤다고 하니 괜한 걱정이라며 쉽게 넘길 수 있는 말은 아닐 것이다. 다만 레거시 미디어의 주간지가 폐간된 반면 독립 잡지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잡지라는 매체의 미래가 전부 불투명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치다 다쓰루는 현재 일본에 남아 있는 잡지의 특징을 분야의 전문성과 콘텐츠 스타일의 명확성으로 분석했다(p.25). 《브리크brique》 발행인 역시 창간 당시 《여성중앙》 등 대표적인 잡지가 폐간되고 오히려 개성 있는 콘텐츠를 다루는 독립 잡지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핵심 독자를 뾰족하게 설정하는 대신 독자 일반이 좋아하는 이야기로 지면을 채우다 보면 엇비슷한 잡지가 만들어지기 때문일까? 뚜렷한 개성을 지닌 콘텐츠와 매체를 원하는 독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지역 잡지를 비롯한 여러 독립 잡지가 지속할 가능성을 말해주는 것 같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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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기획회의 611호 - 지속 가능한 로컬 브랜딩 기획회의 611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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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호를 읽으며 '로컬' 개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기획회의》에서 올해 초부터 지속적으로 ‘로컬’을 다뤘는데 초기에 나온 로컬호의 경우 다소 수도권 중심적인 시각의 내용이 포함되었다면, 608호에서 관점이 전환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로컬을 서울의 관점이 아니라 지역의 관점에서 다시 봐야 한다는 기사가 실렸기 때문이다. 611호 역시 전반적으로 그 연장선상에서 ‘로컬 브랜딩’에 앞서 지금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많아서 로컬 특집호가 추가될수록 로컬에 관한 논의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로컬 브랜딩의 현재와 미래〉에서는 인문학과 IT에서 정의되는 ‘로컬리티’를 소개하며 서두를 여는데, 두 영역 모두 로컬리티가 지니는 핵심적인 의미를 공유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인문학의 '로컬리티'가 근대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편성된 세계 질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탈식민성이나 다양성을 내걸었다면, IT 영역의 '로컬' 역시 독립적인 성격이 강조되는 개념이다. 즉 로컬은 중심에 종속되지 않는 고유성을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로컬 브랜딩 역시 지역의 고유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또한 브랜딩 과정에서 사업 이후에도 지속될 지역 주민의 삶을 간과해선 안 된다. 지역 주민들의 삶과 지역이 이미 지닌 고유성에서 의미를 찾는 브랜딩이 지속 가능하고, 오히려 타 지역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데 집중하는 것보다 지역 주민의 삶에 집중할 때 효과적으로 유입을 촉진할 수 있다.


  얼마 전 읽은 《압축 소멸 사회》의 저자 역시 지역 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떠나는 청년을 붙잡는 정책보다 현재 지방에 살고 있는 청년들의 삶이 행복해질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러려면 지역에 사는 청년을 ‘실패자’로 바라보는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정책 결정자들부터 서울이라는 중앙에 종속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와 상황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우치다 다쓰루는 《로컬로 턴!》(이숲)에서 청년이 도시를 떠나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탈출로 분석했다. 이들은 도시 사회의 한계를 일찍 자각하고 생존을 위해 탈출한 사람이지,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앞서 지역 주민의 삶을 강조했듯, ‘로컬 브랜딩’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을 몰아내서는 안 될 일이다. 〈로컬은 브랜드가 아니라 삶의 터전〉에서는 지역민을 배제한 도시 재생 사업이 투기 바람과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부작용을 만든다는 점을 꼬집으며 지역민이 주체가 되는 도시 재생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일본의 ‘마치즈쿠리(마을 만들기)’는 100년의 계획을 가지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지며, 독일의 하펜시티 항만 도시재생 마스터플랜은 10년 이상의 전문가 토론을 거친 후 25년 이상 재생을 한다고 한다. 반면 한국은 5년 안에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주민이 스스로 결정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로컬 브랜딩이 단지 잠깐 사라질 유행을 만들어 내는 데 그치지 않으려면 단기 성과에 치중하는 관점 자체를 전환해야 할 듯하다. 또한 일본에서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차지차가법이나 독일에서 지가상승을 막기 위해 지자체가 개인의 토지나 주택을 매입하는 선매권 제도 등 기사에 소개된 해외 사례를 보며 관련 제도의 도입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기획회의 621호-로컬은 새로운 기회인가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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