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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자 씨, 지금 무슨 생각하세요? - 노년의 심리를 이해하는 112개 키워드
사토 신이치 지음, 우윤식 옮김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평점 :
나이를 불문하고 쇠약한 노년기의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두렵게 느껴지는 것 같다. 아직 20대인 나에게 노년의 일은 너무 먼 미래처럼 느껴져 막연하다가도,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예전 모습, 혹은 좀 더 시간이 지나 노년이 될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다 보면 나에게 다가올 노년이 버겁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 때가 있다.
최근 SNS에서 유행하는 ‘저속노화’를 위한 생활 습관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저속노화’란 말은 일명 ‘저속노화쌤’ 정희원 교수의 《당신도 느리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에 등장하는 단어다. 젊은 세대가 가속노화하는 습관을 들이면서 기성세대보다 빠르게 노화하기 시작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이 책은 말 그대로 ‘느리게 나이 드는 방법’으로 건강한 식사, 충분한 수면, 규칙적인 운동 따위의 알면서도 실천하기는 어려운 습관을 강조한다.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수명곡선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장수 의학 연구자 피터 아티아의 주장도 한 차례 화제가 되었다. 천천히 노화하고, 노년기에 쇠약하게 생활하는 기간은 최소한으로 줄이자는 것이다.
물론 건강하게 사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아직 노년기에 이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공감을 얻는 것은 쇠약한 신체로 인한 고통을 겪는 기간을 줄이겠다는 생각 이면에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의존은 민폐라는 인식이 일반적인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을 맞닥뜨리는 것은 상당히 두려운 일일 것이다. 건강하게 늙고 싶어하는 마음에는 쇠약하게 늙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도 숨어 있는 듯하다.
《고령자 씨, 지금 무슨 생각하세요?》는 노년에 접어든 ‘고령자 씨’에 대해 일반적으로 궁금해하는 질문에 답하고 관련 키워드 112개를 설명하며 고령자와의 관계에 실용적인 조언을 제공한다. 꼭지별로 큰 질문을 다루고 세부 키워드로 요약 정리가 되어 있어 궁금한 주제를 간단히 찾아보기에도 좋을 것 같다. 저자는 고령자가 ‘안티에이징’에 관심을 갖는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그들은 젊은이와 비교해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특히 그는 서두에서 노화는 성장이나 마찬가지이고, 고령자는 계속해서 발달하는 존재라며 노인과 노화의 기존 개념에 질문을 던진다. 책 전체에 걸쳐 자칫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는 ‘노인’이라는 단어 대신 ‘고령자 씨’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도 이런 관점 차이를 명확하게 하기 위함이다.
개인적으로 운전이 고령자에게 자기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라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디지털화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빠르게 생겨나는 환경에서 고령자가 젊은 층만큼 변화에 원활하게 적응하기 어렵단 얘기는 주변 어른들이나 뉴스를 통해서도 많이 접했지만 그것을 고령 운전자 문제로까지 연결해보지는 못했다. 고령 운전자 사고가 지속되고 있음에도 자기 효능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면허를 반납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저자는 고령자가 자주 화를 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도 단순히 고령자가 되면 화를 많이 낸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화로 인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스트레스가 쌓여서 화를 내게 된다고 설명하는데, 이렇게 사회 통념을 구체적으로 해설하는 부분이 많아 고령자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책을 읽으며 살아 있는 동안 계속 건강하다가 죽을 때 한 순간에 쓰러지는 형태를 이상적으로 여기는 것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일본에서는 ‘핑핑코로리’로, 미국에서는 ‘성공적 노화’라는 개념으로 표현되는 이 관점은 자립한 상태를 이상적으로 여기는 반면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상태는 예외적이고 자립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본다.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상태가 성공적이지 못한 노년기라고 보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반보성(反報性) 심리’라는 개념은 이런 고정관념이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을 잘 보여준다. 반보성 심리는 누군가에게 배려를 받을 때 그에 대한 보답을 하지 않으면 불편함을 느끼는 마음을 뜻하는데, 돌봄 제공자와 돌봄을 받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는 감정이다. 특히 고령자는 쇠약해진 상태에서 돌봄자에게 충분한 보답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반보성 심리로 부채감이 쌓이다 보면 돌봄을 ‘속박’으로 느낄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다른 사람에게 돌봄을 받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회라면 반보성에 얽매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고령자가 지역사회 내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사회관계 자본’을 쌓아나간다면 우리 사회가 서로 의지하는 일을 덜 불편하게 여길 수 있지 않을까. 꼭 고령자가 아니더라도 인생에서 일시적으로 돌봄을 받아야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때를 마주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돌봄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공동체 간 관계를 회복하고 풍부한 신뢰 자본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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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티에이징도 나쁜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을 맞이하는 날까지 하루라도 더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것은 고령자 씨의 솔직한 마음이자 가족과 사회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안티에이징이 더 이상 효과를 내지 못하는 시기는 반드시 돌아옵니다. 그때가 오면 사람은 어떻게 노화와 마주해야 할까요? 모든 사람이 생각해 두어야만 하는 문제입니다. (p.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