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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국가의 배신 - 김학의 사건이 예고한 파국, 검찰정권은 공정과 상식을 어떻게 무너뜨리는가
이춘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평점 :
올해 초 한겨레신문에 실린 서지현 전 검사와 김승섭 교수의 대담 기사*는 검찰 조직의 폐쇄성을 실감하게 한다. 기사에 따르면 서 전 검사가 강제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한 이후에도 검찰 내부에서는 그를 향한 음해가 지속되었으며, 그가 2차 가해자 세 명을 고소했으나 검찰은 이들에게 불기소 처분을 내린 데 더해 검사장 승진까지 용인했다. “[검사로서 실적이 좋은] 언니마저 무능한 검사로 만드는 것을 보고 찍소리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서 전 검사의 후배가 말한 부분에서는 조직에 복종하지 않는 자를 따돌리는 검찰의 행태가 선연하게 드러난다. 서 전 검사뿐만 아니라 검찰의 부조리를 폭로한 임은정 검사 역시 내부고발을 이유로 검사 적격심사 대상이 된 바 있다. 정당한 문제 제기라도 조직의 이해관계와 충돌한다면 그 문제 제기자를 ‘조직 부적응자’로 낙인찍고 음해하려는 것은 사실상 검찰의 관행이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검찰의 행태가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공정과 상식을 기대한 국민을 배반한 듯 보이는 현 정부의 모습에는 검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검찰국가의 배신》은 검찰이 내부 고위 간부의 범죄에 대응하는 방식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는 김학의 사건을 통해 검찰 조직의 부조리를 짚어내며 궁극적으로는 제목에 드러난 바와 같이 현 ‘검찰국가’를 비판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저자의 전작 《검찰국가의 탄생》과 지난 4월 총선일에 출간된 《도취된 권력, 타락한 정의》(창비)가 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 실패 원인을 주로 다뤘다면 이 책은 김학의 사건에 집중하면서도 이 사건이 현 정부의 행보를 어떻게 비추는가를 논한다는 점에서 더욱 현재적인 문제를 다룬다고 할 수 있다.
2019년 김학의 사건 재수사가 시작되기 직전 김학의가 출국을 시도하자 긴급출국금지(이하 긴급출금)가 내려졌는데, 검찰은 이를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이하 ‘불법출금 의혹’)으로 명명해 출국금지를 내린 관련자를 기소했다. 해당 긴급출금 조치는 불법적이라거나 의혹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일이었음에도 검찰에 의해 부풀려졌다는 것이 책의 주된 문제 제기다. 저자는 해당 사건에서 검찰이 내세우는 모순적인 주장을 반박할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이루어진 김학의 1·2차 수사 과정 중 미진한 부분을 꼼꼼히 짚어 낸다. 김학의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 속에 드러난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행태와 지나친 조직 논리로 특정인을 악마화하는 경향은 검찰 조직의 민낯을 보여준다. 현 검찰 정권의 행보는 앞서 제시한 검찰 조직의 모습과 매우 닮아 있어, ‘불법출금 의혹’ 수사가 현 정권의 독단적 행태를 암시한 측면이 있단 저자의 주장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자는 김학의 사건 1·2차 수사의 한계와 그 원인을 먼저 드러냄으로써 검찰이 ‘봐주기’ 수사를 어떻게 진행했는지, 이것이 ‘제 식구 감싸기’라는 검찰 조직 일반의 폐쇄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준다. 1·2차 부실 수사의 원인은 검찰이 김학의 사건을 뇌물수수 혐의가 아닌 성폭력 혐의로 틀 지웠다는 점에 있다. 이는 김학의와 윤중천을 성폭력 피해자와 대립시킴으로써 김학의와 윤중천의 범죄 혐의를 은폐하려는 의도였다. 성폭력 사건을 손쉽게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검찰의 낮은 성 인지 감수성을 보여준다. 1·2차 수사 당시 검찰이 성폭력 피해자에게 비윤리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던 셈이다. 재수사로 출범한 특별수사단도 김학의에게 성폭행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고, 부실 수사와 수사 외압 의혹에도 면죄부를 줘 폐쇄성을 재생산하는 데 그친다. 다만 김학의에 대한 단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원인으로는 검찰 과거사 조사 기구에 내재한 구조적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문 정권이 검찰 과거사 조사와 함께 추진했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서둘러 완수하려고 한 나머지 과거사 조사 기구는 다소 졸속으로 구성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충분한 법적 근거의 부재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안고 출범한 조사 기구는 민간인을 강제로 수사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하지 못해 운신의 폭이 좁았다.
책의 주된 내용이 되는 ‘불법출금 의혹’에서는 제 식구인 김학의의 범죄 혐의를 은폐하려는 검찰의 폐쇄성이 되레 그들의 모순을 폭로하는 계기가 되었음이 드러난다. 저자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 김학의를 수사했음에도 긴급출금을 ‘불법 의혹’이라 칭하며 문제 삼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고, 이는 검찰이 그동안 긴급출금 제도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취해 온 긍정적인 태도와도 배치되는 주장이라는 점을 짚어낸다. 검찰은 ‘절차적 흠결’을 지적했지만 그렇다고 실체적 정의를 희생할 수는 없거니와, 애초 긴박하게 긴급출금을 내리게 된 원인이 그들의 1·2차 부실 수사란 점을 감안하면 절차적 정의에 대한 문제 제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특히 이 사건으로 기소된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 이광철은 조국과 함께 검찰개혁을 시도한 인물인데, 그에 대한 기소는 ‘불법출금 의혹’의 기저에 문 정권의 검찰개혁 시도에 대한 반동적인 의도가 담겨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가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할 때 법무부 국장에 정당한 문제 제기를 했다는 것만으로 검찰이 그를 눈엣가시 취급한 사례도 특징적이다.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은 애초 일반 행정 부처의 차관급을 상대하는데, 이 자리에 검사가 가는 경우가 많아 다른 부처와 달리 법무부만큼은 더 낮은 직급인 과장급을 상대한다. 그러나 이광철은 변호사 출신이었기 때문에 법무부 간부라고 해서 어려워하는 일 없이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었고, 검찰은 이런 이유로 그를 상대하기 꺼렸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조직의 입장에 반기를 들거나 위계 구조에 들어맞지 않는 자를 악마화하는 행태가 예시하듯, ‘불법출금 의혹’ 수사 과정에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폐쇄성은 독자에게 공정이나 상식과는 동떨어진 검찰의 실태를 보여준다.
여전히 재판은 진행 중이지만 피고인이 1심 무죄 판결을 받으며 검찰의 주장과 달리 ‘불법출금 의혹’은 결코 불법적이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이제 주목해야 할 것은 김학의 사건으로 드러난 검찰의 민낯이 현 정부에서 어떻게 재연되고 있는가이다. 책은 바로 이 지점을 독자에게, 나아가 ‘검찰국가’에게 묻는다. 검찰과 현 정부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확증편향 개념으로 설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김학의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피의자가 무죄를 주장할 증거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데도 이를 무시했다. 제 편 감싸기에 급급해 주변 상황을 간과하는 터널 시야에 빠진 결과다. 주지하듯 검찰의 의혹 제기는 자가당착으로 귀결되었다. 이처럼 확증편향에 빠지면 잘못된 판단을 내릴 때도 자각하지 못하고 정당한 반론에도 반감을 보일 공산이 크다. 임은정 검사와 서지현 검사가 검찰의 쇄신에 꼭 필요한 문제 제기를 했음에도 검찰 조직이 이를 무시하는 행태 역시 확증편향으로 인한 잘못된 판단이 조직 전반에 퍼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저자가 언급한 윤 정부의 언론 자유 탄압과 과도한 거부권 행사도 확증편향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외에도 집권 초기 만 5세 입학 정책부터 주 69시간 근무제 도입, 최근 ‘직구 금지’ 정책과 같이 국민 여론과 상충하고 심지어는 관련 부처와도 손발이 맞지 않는 설익은 정책을 쏟아낸 것 역시 마찬가지다. 총선 이후 윤 정부는 그간의 독단적인 행보를 돌아보고 있는가.
검찰과 정권의 반성에 더해 언론과 시민도 각자의 역할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일부 보수 언론은 김학의 사건을 보도하며 진실을 규명하기는커녕 오히려 의혹을 확산했다. 검사가 선택적으로 흘리는 정보를 검증 없이 받아들이고 그대로 기사화한다면 김학의 사건 당시처럼 검찰이 내세우는 프레임에 갇혀 진실을 파악하지 못할 위험이 크다. 식견 있는 시민으로서 사회에 참여하고 최선의 선택을 내리는 데 기반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 아닌가. 시민의 알 권리를 충실히 보장하기 위해 확증편향을 경계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나아가 시민으로서는 더 나은 선택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 선택은 현 정권과 검찰 조직의 쇄신 필요성을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검찰정권의 배신’을 신뢰로 회복하기 위해, 혹은 또 다른 정권의 배신을 마주하는 최악의 경우를 막기 위해 언론의 철저한 감시와 함께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때다.
* “검찰, 실제 교통사고를 거짓말이라 기록”… 미투 6년 서지현의 시간 (한겨레신문, 2024.01.29)
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