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회의 608호 : 2024.05.20 - #로컬이라는 테마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4년 5월
평점 :
품절


이번 호는 앞선 두 개의 로컬 특집호보다 로컬 이야기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를 더 고민한 흔적이 돋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편집위원 인트로와 첫 번째 꼭지인 〈로컬출판, 언제까지 존재할 수 있을까〉가 특히 그렇게 느껴졌다. 이 두 개의 글을 읽으면서 얼마 전 읽었던 의성 ‘자두청년’ 기사가 생각나기도 했다. 


  의성 ‘자두청년’ 기사를 처음 읽었을 때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그저 이상적으로만 소비되는 로컬의 모습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 나의 무신경함을 깨닫고 머리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특정 지역에서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과 같은 긍정적인 측면은 이미 많은 매체가 다뤘듯 분명 존재하는 로컬의 여러 모습 중 하나일 것이다. 다만, 실제로 그 지역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고민은 바깥으로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당사자의 입장이 담긴 이야기에 주목할 필요성을 느꼈다. 지역민이 아닌 외부자의 입장에서는 문제를 수박 겉 핥기 식으로만 이해하기 쉽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로컬출판, 언제까지 존재할 수 있을까〉 역시 현 로컬 담론이 사실상 서울의 입장에서 식민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비판한다. 서울로 대표되는 주류가 원하는 로컬은 ‘치열한 경쟁을 벗어나 도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이런 지역 외부의 얄팍한 인식은 로컬 출판을 비롯해 여러 로컬 콘텐츠가 차별화된 내용을 만들지 못하는 원인이다. 지역 외부에서는 로컬을 유토피아처럼 그리기 때문에 로컬 콘텐츠 창작자들도 지역의 위기나 한계를 다루기보다는 외부의 시선에 맞춰 지역의 좋은 점만을 부각할 수밖에 없고, 이런 콘텐츠가 천편일률적인 로컬 이해를 확대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정작 지역에서는 사람이 사라져서 소멸을 걱정하고 있는 처지인데 말이다.


  외부의 시선과 함께 로컬 내부의 안일함도 비판 지점이다. 구체적으로 필자는 출판 부문에서 드러나는 문제로 제도권 등단 방식에만 초점을 맞춘 출판 지원 사업, 문학을 상업적 출판 활동으로 인식하지 않는 보수적인 태도, 공정한 경쟁보다는 지역 문인협회에 의존해 출판 관련 사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지적한다. 지역 외부에서 로컬 콘텐츠가 부흥한다며 로컬을 유토피아화하는 것과 달리 신진 로컬 창작자들은 변화에 안일하게 대응하는 지방 정부의 행정에 가로막혀 제대로 된 지원조차 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며, 그나마 만들어진 로컬 콘텐츠도 지역을 찬양하는 수준에 그친다. 이에 필자는 로컬출판이 지역의 현안을 포착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담론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지방 정부의 변화와 지원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주장한다. 


  그가 강조한 ‘지금, 여기’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옥천의 문해교육 사례를 다룬 로컬X컬처 키워드 연재 〈여성 노인 문해교육이 만든 연결의 감각들〉에서 잘 나타난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이번 호에 실린 글 중에서 로컬X컬처 키워드 연재가 특히 눈에 들어온 이유다. 옥천 안남면의 문해학교 ‘안남어머니학교’는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어머니 학생’에게 문해 교육을 제공하고 주체적인 역할을 부여했는데, 이는 어머니 학생들이 지역 현안에 목소리를 내며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어머니 학생들의 요청으로 버스가 없던 안남면에서 지역 순환버스가 시작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필자는 옥천에서 《월간 옥이네》를 발간하며 이러한 안남어머니학교의 성과를 조명했고, 농민 운동 보도를 하며 여성 농민을 직접 만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으며 길고양이 보도를 할 때는 동물보호 조례 제정과 길고양이 TNR 사업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로컬 콘텐츠는 바로 이렇게 지역 고유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관해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지역민이 아닌 입장에서 로컬 콘텐츠에 말 얹는 것이 다소 주제넘게 느껴지지만) 지역 콘텐츠 창작자가 지역민의 시선으로 현안을 다룸으로써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 참여를 촉구하는 콘텐츠를 제공한다면 지역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는 일도 기대해 볼 수 있을 듯하다. 〈로컬출판, 언제까지 존재할 수 있을까〉의 필자가 말한 것처럼, 지역 소멸을 막아야 로컬 콘텐츠도 이어질 수 있을 테니 로컬 콘텐츠 창작자라면 지역이 마주한 문제에 관심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양한 로컬 콘텐츠 생산을 위해 사회적 차원에서 정책적, 행정적 변화도 동반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개인적으로도 앞으로 외부인의 시선에서 로컬을 유토피아로 바라보는 콘텐츠를 경계하고, 실제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긴 콘텐츠에 주목해야겠다는 생각이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검찰국가의 배신 - 김학의 사건이 예고한 파국, 검찰정권은 공정과 상식을 어떻게 무너뜨리는가
이춘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 초 한겨레신문에 실린 서지현 전 검사와 김승섭 교수의 대담 기사*는 검찰 조직의 폐쇄성을 실감하게 한다. 기사에 따르면 서 전 검사가 강제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한 이후에도 검찰 내부에서는 그를 향한 음해가 지속되었으며, 그가 2차 가해자 세 명을 고소했으나 검찰은 이들에게 불기소 처분을 내린 데 더해 검사장 승진까지 용인했다. “[검사로서 실적이 좋은] 언니마저 무능한 검사로 만드는 것을 보고 찍소리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서 전 검사의 후배가 말한 부분에서는 조직에 복종하지 않는 자를 따돌리는 검찰의 행태가 선연하게 드러난다. 서 전 검사뿐만 아니라 검찰의 부조리를 폭로한 임은정 검사 역시 내부고발을 이유로 검사 적격심사 대상이 된 바 있다. 정당한 문제 제기라도 조직의 이해관계와 충돌한다면 그 문제 제기자를 ‘조직 부적응자’로 낙인찍고 음해하려는 것은 사실상 검찰의 관행이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검찰의 행태가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공정과 상식을 기대한 국민을 배반한 듯 보이는 현 정부의 모습에는 검찰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검찰국가의 배신》은 검찰이 내부 고위 간부의 범죄에 대응하는 방식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는 김학의 사건을 통해 검찰 조직의 부조리를 짚어내며 궁극적으로는 제목에 드러난 바와 같이 현 ‘검찰국가’를 비판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저자의 전작 《검찰국가의 탄생》과 지난 4월 총선일에 출간된 《도취된 권력, 타락한 정의》(창비)가 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 실패 원인을 주로 다뤘다면 이 책은 김학의 사건에 집중하면서도 이 사건이 현 정부의 행보를 어떻게 비추는가를 논한다는 점에서 더욱 현재적인 문제를 다룬다고 할 수 있다.


  2019년 김학의 사건 재수사가 시작되기 직전 김학의가 출국을 시도하자 긴급출국금지(이하 긴급출금)가 내려졌는데, 검찰은 이를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이하 ‘불법출금 의혹’)으로 명명해 출국금지를 내린 관련자를 기소했다. 해당 긴급출금 조치는 불법적이라거나 의혹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일이었음에도 검찰에 의해 부풀려졌다는 것이 책의 주된 문제 제기다. 저자는 해당 사건에서 검찰이 내세우는 모순적인 주장을 반박할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이루어진 김학의 1·2차 수사 과정 중 미진한 부분을 꼼꼼히 짚어 낸다. 김학의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 속에 드러난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행태와 지나친 조직 논리로 특정인을 악마화하는 경향은 검찰 조직의 민낯을 보여준다. 현 검찰 정권의 행보는 앞서 제시한 검찰 조직의 모습과 매우 닮아 있어, ‘불법출금 의혹’ 수사가 현 정권의 독단적 행태를 암시한 측면이 있단 저자의 주장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자는 김학의 사건 1·2차 수사의 한계와 그 원인을 먼저 드러냄으로써 검찰이 ‘봐주기’ 수사를 어떻게 진행했는지, 이것이 ‘제 식구 감싸기’라는 검찰 조직 일반의 폐쇄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준다. 1·2차 부실 수사의 원인은 검찰이 김학의 사건을 뇌물수수 혐의가 아닌 성폭력 혐의로 틀 지웠다는 점에 있다. 이는 김학의와 윤중천을 성폭력 피해자와 대립시킴으로써 김학의와 윤중천의 범죄 혐의를 은폐하려는 의도였다. 성폭력 사건을 손쉽게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다는 사고방식은 검찰의 낮은 성 인지 감수성을 보여준다. 1·2차 수사 당시 검찰이 성폭력 피해자에게 비윤리적인 태도를 보인 것도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던 셈이다. 재수사로 출범한 특별수사단도 김학의에게 성폭행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고, 부실 수사와 수사 외압 의혹에도 면죄부를 줘 폐쇄성을 재생산하는 데 그친다. 다만 김학의에 대한 단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원인으로는 검찰 과거사 조사 기구에 내재한 구조적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당시 문 정권이 검찰 과거사 조사와 함께 추진했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서둘러 완수하려고 한 나머지 과거사 조사 기구는 다소 졸속으로 구성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충분한 법적 근거의 부재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안고 출범한 조사 기구는 민간인을 강제로 수사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하지 못해 운신의 폭이 좁았다.


  책의 주된 내용이 되는 ‘불법출금 의혹’에서는 제 식구인 김학의의 범죄 혐의를 은폐하려는 검찰의 폐쇄성이 되레 그들의 모순을 폭로하는 계기가 되었음이 드러난다. 저자는 이미 두 차례에 걸쳐 김학의를 수사했음에도 긴급출금을 ‘불법 의혹’이라 칭하며 문제 삼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이고, 이는 검찰이 그동안 긴급출금 제도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취해 온 긍정적인 태도와도 배치되는 주장이라는 점을 짚어낸다. 검찰은 ‘절차적 흠결’을 지적했지만 그렇다고 실체적 정의를 희생할 수는 없거니와, 애초 긴박하게 긴급출금을 내리게 된 원인이 그들의 1·2차 부실 수사란 점을 감안하면 절차적 정의에 대한 문제 제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특히 이 사건으로 기소된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 이광철은 조국과 함께 검찰개혁을 시도한 인물인데, 그에 대한 기소는 ‘불법출금 의혹’의 기저에 문 정권의 검찰개혁 시도에 대한 반동적인 의도가 담겨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가 선임행정관으로 근무할 때 법무부 국장에 정당한 문제 제기를 했다는 것만으로 검찰이 그를 눈엣가시 취급한 사례도 특징적이다.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은 애초 일반 행정 부처의 차관급을 상대하는데, 이 자리에 검사가 가는 경우가 많아 다른 부처와 달리 법무부만큼은 더 낮은 직급인 과장급을 상대한다. 그러나 이광철은 변호사 출신이었기 때문에 법무부 간부라고 해서 어려워하는 일 없이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었고, 검찰은 이런 이유로 그를 상대하기 꺼렸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조직의 입장에 반기를 들거나 위계 구조에 들어맞지 않는 자를 악마화하는 행태가 예시하듯, ‘불법출금 의혹’ 수사 과정에서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폐쇄성은 독자에게 공정이나 상식과는 동떨어진 검찰의 실태를 보여준다.


  여전히 재판은 진행 중이지만 피고인이 1심 무죄 판결을 받으며 검찰의 주장과 달리 ‘불법출금 의혹’은 결코 불법적이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이제 주목해야 할 것은 김학의 사건으로 드러난 검찰의 민낯이 현 정부에서 어떻게 재연되고 있는가이다. 책은 바로 이 지점을 독자에게, 나아가 ‘검찰국가’에게 묻는다. 검찰과 현 정부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확증편향 개념으로 설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김학의 수사 과정에서 검찰은 피의자가 무죄를 주장할 증거를 충분히 가지고 있는데도 이를 무시했다. 제 편 감싸기에 급급해 주변 상황을 간과하는 터널 시야에 빠진 결과다. 주지하듯 검찰의 의혹 제기는 자가당착으로 귀결되었다. 이처럼 확증편향에 빠지면 잘못된 판단을 내릴 때도 자각하지 못하고 정당한 반론에도 반감을 보일 공산이 크다. 임은정 검사와 서지현 검사가 검찰의 쇄신에 꼭 필요한 문제 제기를 했음에도 검찰 조직이 이를 무시하는 행태 역시 확증편향으로 인한 잘못된 판단이 조직 전반에 퍼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저자가 언급한 윤 정부의 언론 자유 탄압과 과도한 거부권 행사도 확증편향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외에도 집권 초기 만 5세 입학 정책부터 주 69시간 근무제 도입, 최근 ‘직구 금지’ 정책과 같이 국민 여론과 상충하고 심지어는 관련 부처와도 손발이 맞지 않는 설익은 정책을 쏟아낸 것 역시 마찬가지다. 총선 이후 윤 정부는 그간의 독단적인 행보를 돌아보고 있는가.


  검찰과 정권의 반성에 더해 언론과 시민도 각자의 역할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일부 보수 언론은 김학의 사건을 보도하며 진실을 규명하기는커녕 오히려 의혹을 확산했다. 검사가 선택적으로 흘리는 정보를 검증 없이 받아들이고 그대로 기사화한다면 김학의 사건 당시처럼 검찰이 내세우는 프레임에 갇혀 진실을 파악하지 못할 위험이 크다. 식견 있는 시민으로서 사회에 참여하고 최선의 선택을 내리는 데 기반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 아닌가. 시민의 알 권리를 충실히 보장하기 위해 확증편향을 경계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나아가 시민으로서는 더 나은 선택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 선택은 현 정권과 검찰 조직의 쇄신 필요성을 인식하는 데서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검찰정권의 배신’을 신뢰로 회복하기 위해, 혹은 또 다른 정권의 배신을 마주하는 최악의 경우를 막기 위해 언론의 철저한 감시와 함께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 때다.


* “검찰, 실제 교통사고를 거짓말이라 기록”… 미투 6년 서지현의 시간 (한겨레신문, 2024.01.29)



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획회의 607호 : 2024.05.05 - #오컬트의 세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4년 4월
평점 :
품절


호러 영화가 인기를 얻는 이유는 통제할 수 없는 힘에 대한 두려움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라서 특히 공감이 쉽기 때문일까? 사실 나름대로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도 공포스러운 느낌을 기피하는 나로서는 오컬트나 호러가 멀게만 느껴졌다. 그렇지만 이번 호를 읽으면서 어쩌면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오컬트 콘텐츠를 즐기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당신은 이미 오컬트에 빠져 있다〉를 읽고 마법사를 소재로 한 콘텐츠를 오컬트와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 놀랐다. 《해리포터》나 《꼬마마법사 레미》 등 마법사 소재의 콘텐츠는 얼핏 보면 호러 장르와 전혀 무관해 보이지만, 둘 다 통제할 수 없는 대상이나 상황에 인물이 대응하는 방식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즉, 필자의 표현처럼 마법사든, 호러든 “위기를 잘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 잘 살고자 하는 마음”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특징은 《괴물》이나 《고질라》 등 괴수를 소재로 하는 영화도 공유하는 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호러 영화를 전보다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오컬트 영화가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사례도 있었다는 〈한국의 호러 그리고 오컬트〉의 내용도 흥미로웠다. 앞서 언급한 괴수 영화나 《진격의 거인》, 《에반게리온》 등의 애니메이션에서도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를 상정해 사회 현상을 비유적으로 드러내려고 했다는 점에서 유사한 듯하다. 덧붙여 한국 전통 소재와 미신을 주제로 한 닷텍스트의 책도 흥미로웠는데, 영화 《파묘》가 선전한 만큼 한국적인 오컬트 콘텐츠가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이번 기획자 노트 릴레이에서는 《조응》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어떤 고민과 선택이 있었는지 엿볼 수 있었다. 아래 내용이 특히 기억에 남는데, 학자이기 이전에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세계와 연결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돋보이는 문장이라 인상적이었다.


잉골드는 자신이 학계에 몸담았으면서도, 학계 바깥과 분리된 현학적 지식을 생산하는 학술적 글쓰기를 맵차게 비판한다. 《조응》의 글들은 “아마추어로서 자유롭게” 썼다고 밝힌다. 여기서 아마추어는 “세계를 대상화하고 거리를 유지하는” 학자의 말 대신 “이끌림과 자율성, 책임감으로 몰두하는 말”을 쓰는 연구자다. 그러다 보니 이 세계를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고 그 사랑의 연원을 알고자 뜨겁게 노력하는 심장 박동이, 지도 교수에게 가져갔다면 빨간 펜이 죽죽 그어졌을 감상과 열망과 근심이 생생히 살아 있다. ··· p.74


*


이번 호 큐레이션 중에서 《워크는 좌파가 아니다》가 가장 흥미로웠다. 저자는 정체성 정치의 한계를 지적하며, 정체성 정치가 편협한 부족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전에 《계급, 소외, 차별》에서 정체성 정치를 비판하는 내용을 읽으며 꽤 공감했던 적이 있어서 더 궁금해졌다.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모두 같은 위치에 서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교차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생각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이 초래한 부작용을 보여주는 사례도 여럿 제시된다. 다만 이 내용을 한국 사회에 얼마나 적용할 수 있을지는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5월 31일 경향신문 북 섹션에 소개된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는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를 지적하는 《워크는 좌파가 아니다》와 다르게 정치적 올바름을 요구하는 운동이 만들어낼 수 있는 효과가 뚜렷하게 존재한다고 본다. 저자는 어떤 단어가 특정 집단에게 상처를 준다면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야 하며, 이를 표현의 자유와 연결 짓는 것은 비약임을 강조한다. 기사에 같이 소개된 《잘못된 단어》는 반대로 정치적 올바름의 한계를 지적하며 《워크는 좌파가 아니다》와 유사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세 책을 비교하면서 읽어 보면 차별과 혐오에 대응하는 운동을 더 풍부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획회의 606호 : 2024.04.20 - #책방, 관계 비즈니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4년 4월
평점 :
품절


이번 호에서는 동네책방이 형성된 과정과 최근 현황, 동네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제목《책방, 관계 비즈니스》에도 드러나듯 동네책방 운영을 위해서는 책방을 방문하는 손님들과의 관계를 잘 형성하는 것이 핵심적임을 알 수 있었고,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독자와의 관계를 염두에 두는 일은 지금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그 고민의 폭이 더 넓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동네책방의 미덕은 더 빨리, 더 싸게, 더 재미있고 더 대중적인 책을 제공하는 데 있지 않다. 도리어 오래전에 존재했던 개인책방과 비슷해져야 한다. ··· p.31

특히 첫 번째로 실린 글 <동네책방의 오래된 미래>에서 위 문장을 읽고 그동안 간과했던 부분을 지적받은 기분이 들어서 깜짝 놀랐다. 필자에 따르면 동네책방은 온라인 서점이나 전자책, 더 나아가서는 OTT 플랫폼과는 다른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들과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다. 책이 지속적으로 인기를 확장해가는 OTT 플랫폼의 콘텐츠나 웹툰, 기타 무료 콘텐츠 등과 경쟁하고 있으니 막연히 책방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동네책방은 책방만의 미덕을 파악하고 그 매력을 강점으로 살려야 한다. 필자가 주목한 동네책방의 본질은 지역 커뮤니티로서의 역할이다. 책방과 손님 사이, 손님과 다른 손님 사이의 관계를 쌓을 수 있다는 것이 동네책방만의 매력이라는 것인데, 필자의 말처럼 자본주의적 관계에 지친 사람들에게 동네책방에서 만날 수 있는 지역 커뮤니티는 어쩌면 책방을 찾는 동기가 될지도 모른다. 다만 <책방의 중력>에서도 언급되었듯 팬데믹 이후 개인주의적 관계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책방 내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 자체를 낯설게 여길 위험이 있다. 동네책방만의 매력인 ‘관계 형성’을 최근 현실에 맞게 응용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라는 명제 안에 끊임없이 수상하고 멋진 일들이 얽히고설켜 자꾸만 ‘서점이 아니게 되기’를. 공간 아닌 공간, 서점 아닌 서점, 우리 아닌 우리를 위해 오늘도 이서점의 문을 연다. ··· p.49

이어지는 글 세 꼭지에서는 실제로 동네책방을 이끄는 책방지기들이 각자의 책방을 소개하는데, 세 서점 모두 손님과의 관계를 만든다는 하나의 맥락을 공유하지만 각자 관계 맺기의 방식이 모두 달라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서점 리스본은 신인 작가와 독자의 관계 형성을 위한 북토크를 기획했고, 책방카페 바이허니는 지역에서 독서모임과 각종 강좌를 열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소개된 책방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는 이름부터 심상치 않아서 더 눈길이 갔는데, 서점이라는 업종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일을 벌이겠다는 의미가 포함됐다는 소개가 매력적이었다. 줄여서 ‘이서점’으로 불리는 이 책방은 책과 기획, 손님들에게 상호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독립서점’이 아니라 ‘의존서점’이라는 소개도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사실 나에게 ‘서점’은 동네책방의 모습보다는 인터넷 서점이나 대형서점 등 책을 사고 파는 행위가 주를 이루는 공간이란 인상이 강하다. 앞선 세 책방의 이야기처럼 단순히 책을 사고 파는 공간을 넘어 독자가 다른 독자나 작가, 책방지기 등과 관계를 형성하는 공간을 제공하는 동네책방이라면 기존 서점과는 차별화된 효용을 주는 곳으로서 포지셔닝할 수 있을 것 같다.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획회의 605호 : 2024.04.05 - #출판, 팬덤 비즈니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4년 4월
평점 :
품절


최근의 출판 환경에서는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일 만큼이나 팬을 만드는 일이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를 만든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발견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콘텐츠의 가치가 실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팬덤, 초연결시대 출판의 존재 양식〉의 필자가 말하듯 책 외에 다양한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책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일은 쉽지 않은 것 같다. 때문에 앞으로는 소규모 공동체와 강하게 연결된 출판사의 생존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예측에도 공감할 수 있었다. 무료 콘텐츠 이상을 원하는 독자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은 최근 언론사가 마주한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최근 콘텐츠 유료화를 시도하는 언론사들의 행보에서도 힌트를 얻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따지고 보면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일이 결국 독자와의 연결을 잘 만들어내는 일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우리는 무엇 때문에 서로를 찾는가〉에서도 볼 수 있듯, 타깃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적중률 높은 콘텐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애초에 좋은 콘텐츠를 만들려면 독자와의 연결이 필수적인 것 같다. 인플루언서의 유명세, 팔로워 수, 지위보다는 그들이 전하려는 사유의 영향력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팬덤이 작가로부터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지속할 수 있는 화제성을 고민해야 한다는 말도 인상적이었다. 오랫동안 주목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화제성 속에서도 역사성을 끌어내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