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회의 608호 : 2024.05.20 - #로컬이라는 테마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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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번 호는 앞선 두 개의 로컬 특집호보다 로컬 이야기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를 더 고민한 흔적이 돋보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편집위원 인트로와 첫 번째 꼭지인 〈로컬출판, 언제까지 존재할 수 있을까〉가 특히 그렇게 느껴졌다. 이 두 개의 글을 읽으면서 얼마 전 읽었던 의성 ‘자두청년’ 기사가 생각나기도 했다. 


  의성 ‘자두청년’ 기사를 처음 읽었을 때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그저 이상적으로만 소비되는 로컬의 모습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 나의 무신경함을 깨닫고 머리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특정 지역에서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과 같은 긍정적인 측면은 이미 많은 매체가 다뤘듯 분명 존재하는 로컬의 여러 모습 중 하나일 것이다. 다만, 실제로 그 지역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고민은 바깥으로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당사자의 입장이 담긴 이야기에 주목할 필요성을 느꼈다. 지역민이 아닌 외부자의 입장에서는 문제를 수박 겉 핥기 식으로만 이해하기 쉽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로컬출판, 언제까지 존재할 수 있을까〉 역시 현 로컬 담론이 사실상 서울의 입장에서 식민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비판한다. 서울로 대표되는 주류가 원하는 로컬은 ‘치열한 경쟁을 벗어나 도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이런 지역 외부의 얄팍한 인식은 로컬 출판을 비롯해 여러 로컬 콘텐츠가 차별화된 내용을 만들지 못하는 원인이다. 지역 외부에서는 로컬을 유토피아처럼 그리기 때문에 로컬 콘텐츠 창작자들도 지역의 위기나 한계를 다루기보다는 외부의 시선에 맞춰 지역의 좋은 점만을 부각할 수밖에 없고, 이런 콘텐츠가 천편일률적인 로컬 이해를 확대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정작 지역에서는 사람이 사라져서 소멸을 걱정하고 있는 처지인데 말이다.


  외부의 시선과 함께 로컬 내부의 안일함도 비판 지점이다. 구체적으로 필자는 출판 부문에서 드러나는 문제로 제도권 등단 방식에만 초점을 맞춘 출판 지원 사업, 문학을 상업적 출판 활동으로 인식하지 않는 보수적인 태도, 공정한 경쟁보다는 지역 문인협회에 의존해 출판 관련 사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지적한다. 지역 외부에서 로컬 콘텐츠가 부흥한다며 로컬을 유토피아화하는 것과 달리 신진 로컬 창작자들은 변화에 안일하게 대응하는 지방 정부의 행정에 가로막혀 제대로 된 지원조차 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며, 그나마 만들어진 로컬 콘텐츠도 지역을 찬양하는 수준에 그친다. 이에 필자는 로컬출판이 지역의 현안을 포착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담론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지방 정부의 변화와 지원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주장한다. 


  그가 강조한 ‘지금, 여기’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옥천의 문해교육 사례를 다룬 로컬X컬처 키워드 연재 〈여성 노인 문해교육이 만든 연결의 감각들〉에서 잘 나타난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이번 호에 실린 글 중에서 로컬X컬처 키워드 연재가 특히 눈에 들어온 이유다. 옥천 안남면의 문해학교 ‘안남어머니학교’는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어머니 학생’에게 문해 교육을 제공하고 주체적인 역할을 부여했는데, 이는 어머니 학생들이 지역 현안에 목소리를 내며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어머니 학생들의 요청으로 버스가 없던 안남면에서 지역 순환버스가 시작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필자는 옥천에서 《월간 옥이네》를 발간하며 이러한 안남어머니학교의 성과를 조명했고, 농민 운동 보도를 하며 여성 농민을 직접 만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으며 길고양이 보도를 할 때는 동물보호 조례 제정과 길고양이 TNR 사업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로컬 콘텐츠는 바로 이렇게 지역 고유의 문제가 무엇인지,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관해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지역민이 아닌 입장에서 로컬 콘텐츠에 말 얹는 것이 다소 주제넘게 느껴지지만) 지역 콘텐츠 창작자가 지역민의 시선으로 현안을 다룸으로써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 참여를 촉구하는 콘텐츠를 제공한다면 지역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는 일도 기대해 볼 수 있을 듯하다. 〈로컬출판, 언제까지 존재할 수 있을까〉의 필자가 말한 것처럼, 지역 소멸을 막아야 로컬 콘텐츠도 이어질 수 있을 테니 로컬 콘텐츠 창작자라면 지역이 마주한 문제에 관심 가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양한 로컬 콘텐츠 생산을 위해 사회적 차원에서 정책적, 행정적 변화도 동반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개인적으로도 앞으로 외부인의 시선에서 로컬을 유토피아로 바라보는 콘텐츠를 경계하고, 실제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긴 콘텐츠에 주목해야겠다는 생각이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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