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회의 607호 : 2024.05.05 - #오컬트의 세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24년 4월
평점 :
품절


호러 영화가 인기를 얻는 이유는 통제할 수 없는 힘에 대한 두려움이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라서 특히 공감이 쉽기 때문일까? 사실 나름대로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도 공포스러운 느낌을 기피하는 나로서는 오컬트나 호러가 멀게만 느껴졌다. 그렇지만 이번 호를 읽으면서 어쩌면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오컬트 콘텐츠를 즐기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당신은 이미 오컬트에 빠져 있다〉를 읽고 마법사를 소재로 한 콘텐츠를 오컬트와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에 놀랐다. 《해리포터》나 《꼬마마법사 레미》 등 마법사 소재의 콘텐츠는 얼핏 보면 호러 장르와 전혀 무관해 보이지만, 둘 다 통제할 수 없는 대상이나 상황에 인물이 대응하는 방식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즉, 필자의 표현처럼 마법사든, 호러든 “위기를 잘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 잘 살고자 하는 마음”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특징은 《괴물》이나 《고질라》 등 괴수를 소재로 하는 영화도 공유하는 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호러 영화를 전보다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오컬트 영화가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사례도 있었다는 〈한국의 호러 그리고 오컬트〉의 내용도 흥미로웠다. 앞서 언급한 괴수 영화나 《진격의 거인》, 《에반게리온》 등의 애니메이션에서도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를 상정해 사회 현상을 비유적으로 드러내려고 했다는 점에서 유사한 듯하다. 덧붙여 한국 전통 소재와 미신을 주제로 한 닷텍스트의 책도 흥미로웠는데, 영화 《파묘》가 선전한 만큼 한국적인 오컬트 콘텐츠가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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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기획자 노트 릴레이에서는 《조응》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어떤 고민과 선택이 있었는지 엿볼 수 있었다. 아래 내용이 특히 기억에 남는데, 학자이기 이전에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세계와 연결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돋보이는 문장이라 인상적이었다.


잉골드는 자신이 학계에 몸담았으면서도, 학계 바깥과 분리된 현학적 지식을 생산하는 학술적 글쓰기를 맵차게 비판한다. 《조응》의 글들은 “아마추어로서 자유롭게” 썼다고 밝힌다. 여기서 아마추어는 “세계를 대상화하고 거리를 유지하는” 학자의 말 대신 “이끌림과 자율성, 책임감으로 몰두하는 말”을 쓰는 연구자다. 그러다 보니 이 세계를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고 그 사랑의 연원을 알고자 뜨겁게 노력하는 심장 박동이, 지도 교수에게 가져갔다면 빨간 펜이 죽죽 그어졌을 감상과 열망과 근심이 생생히 살아 있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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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큐레이션 중에서 《워크는 좌파가 아니다》가 가장 흥미로웠다. 저자는 정체성 정치의 한계를 지적하며, 정체성 정치가 편협한 부족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전에 《계급, 소외, 차별》에서 정체성 정치를 비판하는 내용을 읽으며 꽤 공감했던 적이 있어서 더 궁금해졌다.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모두 같은 위치에 서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교차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생각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이 초래한 부작용을 보여주는 사례도 여럿 제시된다. 다만 이 내용을 한국 사회에 얼마나 적용할 수 있을지는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5월 31일 경향신문 북 섹션에 소개된 《우리에겐 논쟁이 필요하다》는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를 지적하는 《워크는 좌파가 아니다》와 다르게 정치적 올바름을 요구하는 운동이 만들어낼 수 있는 효과가 뚜렷하게 존재한다고 본다. 저자는 어떤 단어가 특정 집단에게 상처를 준다면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야 하며, 이를 표현의 자유와 연결 짓는 것은 비약임을 강조한다. 기사에 같이 소개된 《잘못된 단어》는 반대로 정치적 올바름의 한계를 지적하며 《워크는 좌파가 아니다》와 유사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세 책을 비교하면서 읽어 보면 차별과 혐오에 대응하는 운동을 더 풍부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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