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sus 코드 - 역사적 예수의 도전
N. T. Wright 지음, 이진섭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도발적으로 독자를 향해 쳐다보고 있는 표지의 저 사람은 머리에 가시관을 쓴 예수시다. 늘 온화한 상상 속의 예수의 그림만을 보다가 이런 사진을 보니 당혹스럽기는 한데 원제가 The Challenge of Jesus라고 하니 이해할만하다.

『다 빈치코드』때문에 시류에 맞게 제목을 뽑느라 '코드'를 제목에 넣은 것 같은데 '예수의 도전'이 더 낫지 않았을까? 출판사야 한 권이라도 더 팔아야 하니 유행에 민감한 독자들을 위해 '코드'를 삽입했겠지만 그림하고 영~맞지 않는다.

최근 톰 라이트를 깊이 파볼 요량으로 워밍업이 될만한 얇은 책들을 선별해서 읽고 있는데 이 책은 그의 학술 총서가운데 하나인 1000페이지에 육박하는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의 요약 안내서라 한다. 요약이라고 하는 것은 이 책이 1000페이지의 책을 압축한 것이기에 논리를 따라갈 때 난해한 부분이 있음을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이고 안내서라 함은 1000페이지의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를 읽기 편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말일터다.

원제를 기준으로 이 책은 예수의 삶이 이 세상에 도전이 되는 이유를 1세기 유대적 관점, 유대적 유산을 최대한 역사적으로 복원하여 제시하려 한다. 그러나 읽으면서 내내 오히려 도전이 되었던 것은 예수를 이해하는 그의 방식이 내가 기존에 알고 있는 지식에 주는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유대적 유산과 배경을 이해하면서 신약성서를 읽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의 지적 앞에 내가 알고 있던 바는 참으로 미천하고 종교개혁 이후의 교리적 이해 수준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여기까지 그의 논지에 동의하면서 일세기 유대인들의 세계관과 문화적 유산들을 그의 안내에 따라가면서 "출애굽"이라는 안경으로 바라본 예수의 십자가 사건의 궁극성까지 이해할 수 있었는데 그 예수가 지금 나에게 혹은 현재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는 어마어마한 갭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라이트는 유대적 관점에서 역사적 예수를 접근하고 메시아에 대한 이해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초자연적 능력을 가지신 분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18세기 이후의 신 이해에 근거한 신성을 전제하는 개념도 아니고 오로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 속에서 '의미'를 얻는 예수의 메시아성을 말하고 있다. 잠깐 잠깐의 논리적 불연속이 있으면서 여기까지는 참 잘 이해를 했는데 유대적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성취한 예수가 21세기 한국에 살아가는 '나'에게 구원의 주로 선포될 수 있는 논리적 연결이 발견되지 않는 것 같아 끝까지 개운치가 않다.

결국 1000페이지에 육박하는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를 읽어야 하는 건가?

유대적인 세계관 속에서 새 창조의 첫 날을 여신 예수...

그러나 그 예수가 우리에게 어떻게 의미가 있는지를 설명해야 하는데 갑작스럽게 그는 논리적으로 비약해서 덮어 놓고 그가 길게 설명한 유대적 세계관에서 나와 구원의 주로 선포하고 있으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심 리적이고 극히 개인적 차원의 속죄 신학이 '종교개혁'의 산물이지 1세기 예수에게 까지 소급되는 것은 아니라던 그가 결국 포스트모던 세계에서 그의 사랑을 경험한 자들이 그 터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집을 세우는 것이 사명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더욱 미궁으로 빠져든다. 어쩌라는 것인지...

일천한 지식으로 이해하기에는 높은 지식을 전하고 있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겸손을 가지고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을 읽어야겠다.

그 래도 톰 라이트가 조금씩 좋아지는 것은 그가 복음주의자이면서 역사적 연구에 비중을 두고 있으며 이해가능한 예수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학자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는 자신의 실존이 덮어 놓고 믿으라고 강요하는 복음주의 진영에서는 유사 자유주의자라 욕먹고 역사적 연구의 첨단을 달리는 자유주의자들에게는 근본주의자라 무시당하고 있다고 인정한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소명의 자리가 그 자리라고 고백하고 그 자리에서 '사랑'의 해석학을 통해 예수를 학문적인 책을 통해 매주의 설교를 통해 전하고 있다고 말한다.
참 훌륭한 사람이다. 배우고 싶고 도전받고 싶고...

나의 실존이 그렇지 않은가? 70년대 80년대의 근본주의적 교회 교육을 받고 90년대 종교학이라는 '계몽주의'의 최고봉을 맛보았고 역사적 연구를 통한 성서 이해를 본격적으로 배우길 5년...그래서 더욱 그의 입장에 대한 관심이 생기는 것 같다.

어쨌든 모든 것을 제쳐 두고 올 여름엔 그가 전하는 예수와 하나님 나라에 빠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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