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 가장 나답게 사는 길은 무엇일까?
파커 J. 파머 지음, 홍윤주 옮김 / 한문화 / 200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가장 나답게 사는 길은 무엇일까?

이것이 정말 나의 길인가?

이 책이 던지는 화두다. 나답게 사는 길...
다소 딱딱한 개념을 빌면 소명을 확인하고 이에 따라 사는 삶을 표방하는 팔머의 나지막한 외침이다.

파커파머(Parker J. Pamer)를 처음 접한 것은 "가르침과 배움의 영성"이라는 책을 통해서다. 가르침과 배움이라는 소통 가운데서 영성을 논하는 다소 엉뚱한 시도여서도 눈에 띄는 책이었지만 마치 나우웬의 글을 통해 접하는 소위 마음 따스한 이야기 때문에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 책도 책꽂이의 다른 책들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한 일년은 대기하고 있었던 것 같다.-_-;;

이 책은 처음 접한 '한문화'라는 출판사에서 번역되고 출판되었다. 책의 껍데기는 꽤나 신경을 쓴 것으로 보이는데 파머의 이야기의 근저에 깔린 기독교적 사상에 대한 두루뭉수리한 뭉개버림 때문에 다소 인상찌푸리는 번역들이 눈에 띈다.

'하나님' 대신 나름 가치중립적이라고 '신'이라는 번역어를 썼겠지만 수차례 파머가 밝히는 대로 퀘이커교도라고 한다면 오히려 '하나님'이 더 의미전달에 도움이 됬으리라 보여지며 그에 따른 수식어의 번역도 더욱 실감나게 됬으리라 생각한다.

좋은 책이니 그런 고려없이 번역되어 누군가에게 읽히더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베짱과 충정으로 출판한 것인가!!

그렇다고 번역한 홍윤주씨가 번역을 잘못했다는 말은 아님을 밝혀두어야 겠다. 다만 추측가능한 것은 홍윤주씨가 기독교인은 아닐꺼라는 사실정도다. 기독교계 번역가가 번역을 했으면 더 좋았을 법한 책이다.

내용을 보자면, 팔머는 소명은 외적으로 부과된 그 무엇이 아니라 내적 여정 속에서 드러나는 내면의 소리라 정의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것이 정말 나의 길인가를 의심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은 내 본성에 맞지 않는 다른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내가 되어야만 하는 것과 내가 되고 싶은 것 간의 괴리에 대한 지적이다.
내 본성이 원하는 것을 하다가 소위 쪽박 차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사람에 대해서 그는 단호하다.

"한번 그 본성대로 살아보라."

기본적으로 그가 이야기하는 본성은 우리가 선악을 분별하는 이분법의 범주를 가지는 에고(ego)너머의 세계다.
그의 용어는 참자아다. 파머는 참자아가 하나님의 형상이라 말하며 이 목소리에 순명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풍요하게 한다는 것이다(이부분은 분명 검증이 필요하다. 그럴 듯해 보이지만 처음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융도 참자아가 곧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하기를 거부한 것을 보면...).

논리와 합리의 세계가 아니라 자연이 보여주는 역설의 신비를 그대로 인정하고 이에 따른 삶이 우리에게 더욱 좋은 열매와 의미를 건넨다고 말한다.

참자아의 목소리를 듣는 소명의 삶이 쉬운 길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적 여정을 포기하고 외적 과시에 열을 올린다. 외적 성과를 통해 정체성을 확인하고 조급해 하며 두려워하다,  죽음 앞에서 발악하며 스러져 간다.

읽어가며 느낀 것은 내적 여정을 운운하는 그의 논조가 참으로 융(Jung)을 닮았다.

몇번을 읽어야 행간의 의미가 충분히 삶으로 녹아내릴 것 같다.

감동의 몇구절을 적어본다.

"나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을 나타내는 하나의 징후는 소위 탈진이라는 상태이다. 대게는 너무 많은 것을 주려는 데서 나오는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내 경험상 탈진은 내가 갖지 않은 것을 주려고 할 때 나오는 결과이다."(p.75)

바클라프 하벨(Vaclav Havel) 체코 공화국 대통령의 미의회 양원 합동회의 연설의 전문(p. 112)에 공산주의 체제 속에서의 인간적 고통, 심각한 경제 침체, 인간적 굴욕감을 안고 살던 시절을 회상하며 "의식이 존재에 우선한다"는 말을 통해 마르크스 주의의 모순을 지적하는 부분이 있다. 깊이 공감하며 마르크스주의의 모순 지적에 우쭐해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던지는 파머의 말이 더욱 날카롭다.

 "물질이 의식 보다 더 강력하며, 경제가 정신보다 더 중요하고, 현금의 흐름이 비전과 아이디어의 흐름보다 더 많은 현실을 창조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자뿐만이 아니었다. 자본주의자들 역시 이것을 신봉한다....우리는 "의식의 힘이 우리를 이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이야기이나 가혹한 현실은..."하 는 식의 얘기를 얼마나 많이 들어왔고 말해왔는가? 측량하고 셀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중요한 변화로 여기지 않는 체제에서 일해 본 적이 얼마나 많은가?...이것은 어느 하나의 이념을 신봉하는 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인류적인 문제이다. 우리의 정신적인 전통을 살펴본다면 우리는 그러한 사회의 희생자라기 보다는 오히려 공모자이다."(p. 114)
얼마나 구구절절 맞는 말인가!
작금의 대선구도를 보면서 전형적인 자본주의적 천박한 논리에 젖어 있는 나를 본다.
배고픈 자가 없는데도 배고프다고 주장하며 정권교체를 요구하는 늘 부족한 국민...
이것이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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