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원 - 희망의 날개를 찾아서
소재원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9월
평점 :
2008년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살갗이 뜯길만큼의 차가운 온도쯤이야 겨울의 트레이드마크라 치부하면 그만이지만, 따뜻한 피로 이뤄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삭막함, 잔인함이 제 얼굴을 드러낸 그 겨울은 소름끼치도록 춥고 무서웠다. 8살 여아에게 추악한 성폭행으로 평생 불구로 살아가야 하는 비극을 안긴 ‘조두순 사건’이 이준익 감독의 신작 ‘소원’과 소재원 작가의 ‘소원’으로 각각 극장가와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다. ‘들춰내기보단 피해자를 보듬는 쪽에 초점을 맞췄다’는 두 사람의 의도가 고스란히 담긴 ‘소원’이라는 작품을 먼저 책으로 만나봤다.
-소재원 작가의 <소원>, 무엇에 초점맞췄나.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 아이의 아버지와 충분한 논의 끝에 책을 펴내기로 한 소재원 작가. 직접 피해아동도 만나고, 그의 아버지를 통해 ‘이같은 더러운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꼭 도움을 주고 싶다’는 강렬한 의지도 받아냈다. ‘왜 이런 사건이 이뤄졌나’가 아닌 ‘사건 이후’의 아동 상태와 한 가정이 파괴되고 다시 재기하는 과정을 느릿느릿하게 풀어낸 책은 ‘숲이 아닌 나무를 봐달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종일관 주장하고 있는 듯 했다.
지윤이라는 이름의 아이, 그 아이가 사라졌다. 경찰과 가족들이 아이를 찾는 장면부터 시작되는 책 속 이야기. ‘제발 나쁜 사람만은 만난 게 아니기를’하고 바랬던 경찰과 가족의 기대는 지윤이의 발견과 함께 처참하게 무너졌다. 2008년 사건 당시, 뉴스를 통해 피해 아동이 얼마만큼의 큰 피해를 입었는지는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알고 있었기에 작가는 그 어떤 표현으로도 책 속 지윤이의 상처를 그려내지 않았다. ‘어디는 얼만큼 다쳤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거에요’ 식의 직접적인 언급은 부러 피했던 것이다. 다만 지윤이의 상처에 가정의 단란함이 파괴되고 부모가 이혼의 위기를 겪고, 아버지가 자살 결심을 하게 된다는 소설의 구조만을 강하게 표현할 뿐이었다.
범인을 향한 분노는 지윤이의 가정에 감정을 열심히 이입한 독자들이라도 그 부모만큼 깊지는 않을 터다. 하지만 작가는 그렇다고 그런 부모의 분노 역시 소설 속에서 주로 다루진 않았다. 지윤이의 상처는 너무나도 아프지만, 살아온 시간보다 앞으로 함께 살아갈 날들이 무수히 많이 남았기에 어떻게든 일어나려는 가족의 의지를 그려냈다. 사건 이후 이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지윤엄마의 모습, 남들은 ‘자식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한 나쁜 엄마’라고 손가락질 할 때에도 ‘더 잘 할거다. 무조건 우리 가정을 지켜낼거다’라는 스스로의 다짐을 통해 스스로 강인해지는 길을 택한 그 모습에 눈시울이 자주 붉어졌다.
조두순 사건이라는 틀만 가져온 채 피해 아동의 가정환경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그려내는 걸 택한 소재원 작가. 생활환경이 어려웠던 실제 피해 아동의 가정환경과는 다르게 일반적인 형편, 평범하게 살아가던 가정을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못살고 열악한 환경에서만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려던게 아니었을까. 가난해서 만만한 사람들에게만 슬픈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잘 살고 행복하게 살아오던 사람들에게도 악마같은 사람들이 어느 순간 그 행복을 뺏어갈 수 있으며, 그러니 우리는 모두의 아픔을 제 것 마냥 보듬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아이의 몸에 남은 상처는 영원하지만 그 영원한 기억마저도 상쇄시킬만큼의 넘치는 사랑을 부어주는 일. 이제는 그 일을 열심을 다해 해야 할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당신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전부 말이다.
-사건에 대한 명칭, 온라인상에선 여전히 부족한 인식
‘조두순 사건’은 처음에는 피해 아동의 가명을 따 ‘나영이 사건’으로 조명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피해 아동의 가명이라 할지라도 피해자에게 초점이 맞춰진 사건명은 옳지 않다는 주장 아래 ‘조두순 사건’이 정식 명칭으로 정정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터넷 등에서는 ‘나영이 사건’으로 이 아동성폭행 사건을 상기하게 만드는 이들이 많다.
사건 자체에 집착하기 보다는, 이번 ‘소원’이라는 두 장르의 작품에서 감독과 작가가 의도한 것처럼 피해자와 그의 가족을 향한 배려와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인식제고가 가장 시급한 부분이 아닐까. 인터넷 포털에서는 ‘나영이 사건’, ‘은지 사건’ 등 피해 아동들의 이름을 딴 검색어를 입력할 경우 ‘(가해자 이름) 사건’으로 정정된 것을 제대로 공지하고 피해 아동이름으로 사건을 검색할 경우에도 자동으로 필터링하여 ‘조두순 사건’, ‘김길태 사건’ 등과 같은 정확한 표기로 뜰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하는데 조금의 성의를 보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피해를 입고 긴긴 시간을 자신과의 싸움과 사회적 인식과의 싸움에서 버텨나가야 할 어린 아이들이 10년 후, 20년 후 자신의 이름 혹은 가명으로 불려지는 사건명을 검색하고 받을 그 충격이 너무 클 것이란 생각을 지금의 어른들이 미리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개인적으로 이번 ‘소원’의 작품화를 기점으로 새로운 인식의 제고가 반드시 뒤따랐으면 좋겠다.
오늘 정부에서는 아동성폭행범에게 가해지는 집행유예의 빈도가 이전에 비해 훨씬 증가했다는 점을 들며 아동성폭행 횟수는 해가 거듭될수록 심각해지는 반면,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의 경우가 점점 늘어나는 수치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성인이 성인을 해하는 사건보다 성인이 아동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더욱 심각한 범죄라는 사실을 간과한 채 범죄자의 인권마저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상한 나라, 대한민국. 이번 ‘소원’의 작품화가 이상한 대한민국을 정상궤도로 올려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 부디 ‘소원’의 처음 의도가 올 연말에 따뜻한 결실이 되고, 그것이 피해 아동과 그 가정에 따뜻한 시선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