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미궁 - 나카무라 후미노리, 숨어있는 자아가 만들어낸 비극

  

예전에 ‘밀실탈출’이라는 게임을 재밌게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들어선 방에서 다음 방으로, 또 그 다음 방으로 계속해서 이동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 게임이었는데, 전체적으로 으스스한 배경이기도 했고 상당한 지혜를 요구하는 두뇌게임이었기 때문에 꽤 집중했던 걸로 기억된다. 이 게임이 많이도 인상 깊어서일까,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미궁>을 읽으면서 풀리지 않는 밀실살인사건의 배경을 꼭 그 게임 속 배경처럼 생각하고 읽었다. 게임에서 보았던 어두컴컴하고 뭔가 꺼림칙한 느낌의 그 배경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들이 살해된 사건을 오버랩해본 거다.

 

책을 읽으면서 때론 전혀 그려지지 않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장면을 맞닥뜨릴 때가 있다. 그럴 때 가상현실에서 보고 겪은 배경을 접목시켜 읽어보면 은근히 재밌다. 가보지 않은 장소에, 겪어 보지 않은 상황을 더해 완벽하게 새로운 상황을 이해하게 되는 일, 그런 게 독서하며 얻는 즐거움이지 않을까. 경험에 경험을 더하는 일, 낯선 것을 더 낯선 것과 비교해 익숙하고 편안한 것으로 만드는 일, 불가능한 것도 가능으로 만드는 힘, 이 모든 게 다 독서를 통해 펼칠 수 있는 것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마니아처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나 기시 유스케와 같은 특정 작가의 작품은 부러 구매해서 읽는 편이다. 혹은 일본소설을 전문적으로 번역하는 꽤 이름난 번역가들의 책은 일단 읽어보는 편이기도 하고. 이 책은 후자였다.


작가의 이름은 나에게 생소했지만 양윤옥이라는 번역가의 명성 때문에 선뜻 읽게 됐는데, 그 이상으로는 기대 이하였다. 히가시노 게이고처럼 추리소설로 뛰어난 작가의 이야기를 자주 읽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개연성의 부족함 때문에 약간 답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일가족 밀실살인이라는 잔인한 소재를 다루고 있고, 미스터리한 인과관계들을 많이 집어넣었지만 책의 끝에 가서 그 모든 소스들을 단번에 처리하려는 끝맺음이 아쉬웠다.

 

작가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함 보다는 이 사건을 이야기화시킬 때부터 어린아이 내면에 움튼 잔인함과 폭력성을 가정했다는 점에서 뭔가 내가 가진 정서와도 안 맞는 것 같았고, 결국 살인사건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 장본인이 어린 아이들의 내면에 숨은 무서운 자아였다는 점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책은 책으로만 읽는 어른 독자가 아니라면 어린 친구들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 이유로 작용할 듯싶다.

 

일본이기에 조금은 쉽게 용납될 이야기다. 다중인격, 또 다른 인격이 본래의 나를 제어하는 상황 등.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의 잔인함이 몹쓸 생각을 하고 있고, 혹은 더 몹쓸 행동을 이미 실천에 옮기고 있는, 그런 끔찍한 상황이 사실 일본이라는 국가에서는 아주 예전부터 다뤄지던 이야기였으니깐. 그런 맥락에선 이 소설은 전형적인 ‘일본추리소설’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거나 나카무라 후미노리라는 새로운 작가의, 그만의 스타일로 만들어진 이야기 <미궁>,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한 번은 더 읽어보고 싶다. 그때도 그저 그런 개연성에 그저 그런 스토리라면, 당신과는 안녕을 고하겠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너편 섬
이경자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기준에서는 꽤 오랜 시간 책을 읽지 않았던 지난 한 달 반의 시간. 여행 준비하랴, 퇴사 준비하랴, 여유를 가지고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이게 한동안 뜸했던 독서에 대한 첫 번째 변명이고, 두 번째 변명을 굳이 붙여 보자면 읽고픈 책이 없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터.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책들은 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그러니깐 얼른 읽어줘야 할 순서대로 쌓여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책들 중에서 역순으로, 그러니깐 가장 위에 있는 책을 집었다. 읽어야 해서 읽는 책 말고 읽고 싶은 책을 간만에 만난 그 반가움 때문에.

 

 

그렇게 만난 책이 이경자 작가의 <건너편 섬>이다. ‘여성의 근원적 상처와 고독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된 짧은 문구 가운데서 ‘여성’이라는 단어에만 초점을 맞춘 채 읽었다. 여자의 이야기, 여자의 입장에서, 여자가 바라보는,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 있겠구나 싶었다.

여성이 쓰는 여성의 이야기는 어떨까. 남성들 앞에 맞서는 페미니즘적인 글이거나 아니면 여성이라서 유독 잘 느낄 수 있는 지독한 감성소설 정도로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알이 굵은 이야기가 아니라 촘촘한 이야기들이 연속적으로 펼쳐졌고, 수록된 8개의 이야기가 모두 비슷한 듯 다 달랐다. 저마다 다른 깊이로 감동을 안겨줬다. 나 또한 여자여서 유난히 잘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소스들도 구석구석 찾아볼 수 있었다.

 

 

<건너편 섬>을 읽으면서 각각의 이야기가 ‘뒷심이 세다’는 느낌을 종종 받았다. 수록된 8개의 단편 가운데 적어도 6편 이상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물 흘러가듯 읽고 또 읽다가 마지막 문단에서 ‘쿵’하고 뜨거워지는 감동들. 그런 게 느껴지니깐 다음 이야기, 또 다음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그 뒷심을 기대하게 됐다.

 

 

유독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 중 하나는 세 번째 이야기인 ‘언니를 놓치다’다. 전쟁 중에 헤어진 언니와 이산가족상봉의 기회를 통해 다시 만났던 여동생. 하지만 분단되고 얼굴 못 보며 지낸 50년에 가까운 시간이 가져다 준 차이는 너무 크고 깊었다. 감정적으로 언니를 대하고 싶은 동생과 달리 언니는 북한의 체제를 찬양하기에 바빴고, 가족의 정보다 그 가족에게 내가 잘 지내고 있는 이유가 나를 둘러 싼 국가라는 껍데기였음을 고백하는데 급급했다. 이별했고, 다시 만났고, 눈물 흘리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런 자매의 만남을 예상했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 이어 ‘박제된 슬픔’이라는 다음 이야기를 읽으며 한 번 더 분단된 현실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읽어 보니, 어쩌면 이렇게 상상하기 어려운 이 상황이야말로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은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물 여섯의 여름을 지나면서 스물 다섯의 여름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것을 많이 생각하게 됐는데, 이 책을 작년에 읽었더라면 아마 지금의 내 감정만큼, 지금의 내 이해만큼의 깨달음은 분명 느끼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녹록지 않은 삶을 조금 더 경험하며 살아왔고 그 축적된 경험 덕분에 이 짧은 이야기 속 인물들의 아픔을 조금은 더 끄덕거리며 읽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삶은 녹록하지 않으며 반복되는 고민 속에서, 하나씩 그 고민이 해결되어 가는 과정에 ‘하루치의 위안’을 얻으며 산다는 생각을 했다. 이경자 작가가 만들어 낸 각각의 인물은 분단의 아픔을 느끼거나 혹은 이혼의 경험을 가졌거나, 또는 남편에게조차 말할 수 없는 치욕스럽고도 비밀스러운 상처를 간직하고 있거나, 홀로 남은 인생 속에서 서서히 늙어가는 스스로를 마주해야 하는 묘한 고통스러움을 누렸던 적이 있었다. 내가 이해하는 것이 그들과 온전히 겹치는 동일한 경험들은 아닐지라도 인물들의 상황을 내 상황인양 가져와 느끼며 읽으니 이경자 작가의 뒷심이 더욱 강렬하게 느껴졌던 걸까? <건너편 섬>은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을 일컫는 말은 아닐까. 나라는 ‘섬’말고 내가 바라보는 또 다른 각각의 섬들, 그 모든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인생’을 보여준다. 이경자 작가의 주변에 있던 이 섬, 저 섬들 말고 내 주변에 있는 이 섬, 저 섬들을 관찰해보자. 분명 녹록지 않은 누군가의 삶을 또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책에서 끄덕거려줬던 것처럼 가까운 이들의 아픔에도 끄덕거려주고 싶은 그런 날이다.

 

 

 

 

 

 

책속 밑줄 긋기

 

 

 

58쪽 - ‘미움 뒤에 숨다’ 중에서

승용차 뒤에서 옷을 갈아입는 가부장들. 그들의 존엄은 임금(임금)인가, 아내와 자식들로부터 보장되고 확인되는 권력인가? 존엄과 권력을 잃지 않기 위해 그가 감춘 비애나 치욕감은 술집이나 연인만이 위로할 수 있었을까.

나는 너무 늦게 아버지의 감추어진 존재감을 본 것 같았다.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면 아버지와 자식인 우리와 아내인 엄마 사이엔 친구 같은, 동지 같은 유대감이 생겼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224쪽 - ‘이별은 나의 것’ 중에서

28년 살림을 끝냈을 때, 저절로 배워진 것 한 가지가 있었다. 사람 사는 데 필요한 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딱 필요한 것만 가질수록, 놀랍게도 주변이 풍성해진다는 걸 알게 됐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처럼 여겼던 남편과도 헤어질 수 있고 남 보기에도 균형을 맞췄던 가족이 흩어졌는데 여벌의 그릇이며 가구며 살림살이가 무슨 대수인가. 결국 우리 모두 죽음으로 헤어진다는 걸 일상으로 간직하면, 모든 탐욕이 짐이었다.

 

 

257쪽 - ‘건너편 섬’ 중에서

그런데도 그 여자는 할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왔다. 베란다에 서서 어둠에 물들어가는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할머니의 흔들의자를 떠올리거나 동이 트는 보랏빛 여명을 바라볼 때 할머니를 떠올리면 울컥 가슴이 미어졌다. 정(情)은, 서로의 마음을 흔들어 마음이 굳지 않게 해주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한 것도 할머니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70가지 - <씨네21> 주성철 기자의 영화감상법
주성철 지음 / 소울메이트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70가지

- 주성철, 한국영화 다시보기

 


씨네21 대표기자인 주성철 기자는 영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더 맛깔나게 드러내는 뛰어난 글 솜씨 때문에 내가 참 좋아하는 기자다.

작년이었던가, 그가 장국영을 추모하며 출간한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기사’가 아닌 ‘책 한 권’으로 만나는 그의 이야기는 더 재밌었고 풍부한 소스가 한가득이었다.

장국영이라는 인물의 AtoZ를 다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책이었는데, 이번에는 하나의 인물이 아니라 ‘영화’라는 거대한 장르에 대한 고찰을 시도했다.

영화감상을 잘 하는 법, 기본적인 영화 지식, 또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며 그가 생각하고 털어놓는 한 작품 한 작품에 대한 코멘트까지

모두 만날 수 있는 책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70가지>를 통해 그간 ‘관심거리’로 생각해 온 영화라는 장르를 좀 더 진지하게

접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게 일렁이게 된 듯하다.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의 작품부터 올해 개봉한 따끈따끈한 최신 영화까지 두루 섭렵하고 있는 책은,

그래서 지루할 틈이 없었던 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내가 모르는 영화 이야기만 줄곧 늘어 놨더라면 답답했을테지만,

내가 감명깊게 본 작품, 봤으나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던 작품 등에 대한 언급도 이뤄지고 있었기에 미처 못 다한 영화공부를 하는 느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시네마테라피’라는 부분.

대부분의 미디어가 앉은 자리에서 주문을 통해 받아보고, 시청하고, 읽는 그런 형식을 꾀함에도 불구하고 영화만큼은 여전히 극장이라는 장소적 공간에 직접 찾아가

거대한 스크린 앞에서 시청하는 행위로 이어진다는 점을 통해 영화만이 주는 매력이 남다르다는 것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었다.

스크린과 작품, 그리고 러닝타임 동안은 무조건 꼼짝없이 감독의 의도대로 그 작품을 시청할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관객이 되는 이 상황을 통해

‘영화가 미치는 숨은 파급력’이 꽤 크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점과 이어져 시네마테라피라는 용어가 생겨난 건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인물에 자연스레 감정이입하는 관객, 그리고 그 감정이입만큼 자연스러운 자가치유. 이것이 영화가 줄 수 있는 무궁무진한 매력 중에서도 단연 최고라고

손꼽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싶었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이 주인공은 더 최악의 상황을 경험하고 있구나’를 관객이 알게될 때 받는 위로, 그게 주는 힘이

꽤 크단거다. 그리고 더 나아가 심지어 그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관객이 얻는 위로는 더 증폭될 수밖에 없는 거고.

쉽고도 어려운 영화지만, 그 가운데서도 꾸준히 극장가로 몰리고, 거대한 화면 앞에서 무기력한 존재가 되기를 기꺼이 자처하는 관객들,

진화하는 미디어시대 속에서도 영화를 시청하는 방법은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부분이 더 강한, 그래서 영화는 그 어떤 미디어보다도 큰 치유력을 지닌

매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시대별 영화, 특정 감독에 대한 이야기,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등 세분화한 파트는 단번에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될 이유를 마련했다.

소설처럼 이어지는 스토리가 아니라 주제에 따른 짤막한 이야기를 정리해뒀기에 급급한 독서가 되지 않아서 좋았다. 읽고 싶었던 파트를 위해 한참이나 건너 뛰어

파트5의 ‘한국영화, 전설을 말한다’ 부분을 먼저 읽었다. 읽고 싶은 부분을 찾아가며 영화에 대한 이해를 그때그때 높일 수 있어서 좋았다.

두꺼운 분량 덕분에 들고 다니며 읽기엔 제약이 많은 책이지만, 마치 영화에 대한 ‘사전’같은 느낌의 책이기에 언제든지 펼쳐서 부분 부분 찾아보고픈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함께 살아서 좋아 - 도시 속 둥지, 셰어하우스
아베 다마에 & 모하라 나오미 지음, 김윤수 옮김 / 이지북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셰어하우스라는 단어는 이 책이 아닌 케이블채널의 어느 방송을 통해 먼저 접했다.
다양한 분야의 연예인들이 한 집에서 살면서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엮은 프로그램이었는데, 매번 꾸준히 시청한 건 아니였지만 큰 집에서 성별도, 직업도,
나이도, 고향도 다른 여러 명의 사람들이 복작복작 함께 산다는 설정은 시청자의 흥미를 끌기에는 충분한 소재가 아니었나 싶다.
근데 사실 이 프로그램 덕분에 나는 '셰어하우스'라는 단어를 제대로 접했다고 생각했지만,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꽤 예전에도
이런 소재를 다룬 드라마나 예능, 시트콤이 종종 있었던 것 같다. 하나의 집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나누면서 산다는 의미의 셰어하우스는
사실 '민박' 개념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하나의 집을 오롯이 소유하고 있는 주인이 그 집에 속한 여러 방을 세입자들에게 나눠주는 것과,
여러명의 소유로 가진 집을 그 여러명이 함께 산다는 것이 사실 별반 다를 바는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셰어하우스가 요즘 붐이다'라고 말하는 그 분위기는 단지 '셰어'라는 생소한 단어가 주는 느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잠깐 해보며.
 
 
 
우선 이 책은 일본의 셰어하우스 예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서 셰어하우스의 AtoZ를 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셰어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점, 셰어하우스의 운영 방법에 따라 분류되는 방법이 다르다는 점 등을 초반에 언급하면서
이 단어에 대한 의미를 잘 몰랐던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셰어하우스는 이런 것이다!'를 소개해준다.
맨션 등의 원룸을 두 명 이상이 셰어하는 경우에는 '룸 셰어', 단독주택에서 자신의 방을 갖고 거실과 부엌 등 기타 주거 설비를 공용하는 경우는 '하우스 셰어',
맨션의 한 집을 빌려서 자신의 방을 갖고 거실과 부엌 등 기타 주거 설비를 공용하는 경우는 '플랫 셰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일본 내에서 가장 먼저 셰어하우스 전용 미디어로 출발한 <히쓰지 부동산>은 운영 방법에 따라 'DIY형'과 '사업체 개재형'으로 나누고 있는데,
전자는 입주자들끼리 물건을 빌려 그 집세를 함께 부담하는 스타일이고, 후자는 사업체가 물건을 중개하고 입주자들로부터 집세 징수, 물건 관리,
문제 대응 등을 하는 스타일이다. 얼핏 들으면 거기서 거기인 것 같지만, 세세한 부분들로 셰어하우스를 잘게 나누고 있어서
'진정한 맞춤식 주거공간이란 이런 것이다!'를 알게 되는 것 같다.
 
 
 
책을 읽던 초반에는 셰어하우스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돈' 때문에 이런 공간을 선택한다고 느꼈다.
하나의 집을 여러 명이 함께 살기 때문에 모든 비용을 대체적으로 1/N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많은 메리트를 느낀다고 생각했다.
근데 어느 조사기관에서 실시한 설문을 통한 답변을 보니 셰어하우스에 살기로 한 이유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부분이 '즐거워 보여서'였다. 무려 50%나!
그 다음이 '생활비가 줄어서'였다. 셰어하우스의 이점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답변은 '친구가 있다'는 부분이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적막함, 그게 싫은 사람들이 셰어하우스로 몰리고 있었다. 단순하게 '돈을 아끼자'는 취지 그 이상으로, 인간과 인간이 부대끼며 사는 가운데
느끼는 그 따뜻함을 맛보고 싶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남은 남이고, 나는 나다'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이
보편적인 생각이 아닌 이기적인 판단이었음을 느꼈다. 일본에서 붐을 일으킨 셰어하우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담은 이 책.
 
하지만 이건 일본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절대 아니었다. 이제 셰어라는 단어가 가져오는 효과는 한국에서 힘찬 스타트를 시작했다.
부산에선 아직 생소한 편이지만, 서울에서는 이미 셰어하우스를 사업으로 시작한 청년사업가들도 꽤 나온 걸로 알고 있고, 셰어하우스만을 전용으로 알선하고
또 중개하는 사이트도 공식적으로 몇 군데 인정받기도 했다. 경제적 이점을 초월하는 셰어하우스만의 즐거움에 빠져든 사람들이 선호하는 이 독특한 집 공유의 매력, 책을 덮는 그 순간부터 더 셰어하우스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는 것 같다.
 
이론으로 빠싹하게 익힌 셰어하우스, 언젠가 '독립'을 하게 된다면 이런 공간에 대한 로망을 현실에서 한번 이뤄보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다.
외국인과 한국인의 비율을 반반으로 맞춰 무조건 입주하게 만든 특징을 갖춘 셰어하우스도 서울에는 몇 군데 있다고 하니! 같은 목적을 둔, 거기에 심지어
언어까지 서로를 위해 가르쳐줄 수 있을 그런 좋은 인연들과의 셰어 하우스는 꽤 매력적인 일일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허영만 식객 Ⅱ 1 : 그리움을 맛보다 허영만 식객 Ⅱ 1
허영만 지음 / 시루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식객2 - 허영만, 그리움을 맛보다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닐 정도로 허영만의 식객은 하나의 문화콘텐츠로 자리를 잡은 작품이라 봐도 무방하다. 영화 혹은 드라마로 제작된 허영만 작가의 무수한 작품들은 만화가 만화 그 이상의 가치를 나타낼 수 있음을 다분히 보여준 예가 아닐까. 그 가운데서도 식객은 음식카툰이라는 생소한 듯 빠져드는 묘한 매력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하기까지 한 작품. 그런데 그만큼 대단한 작품을 나는 이제야 접하고 말았다. 출간된 시기에 비교하면 뒤늦은 접근이지만, 책 역시 사람과 사람사이의 인연처럼, 각각의 독자를 만나는 가장 좋은 때가 있다는 걸 믿으며 살아온 나에게는 지금이라는 시기에 이 책을 읽은 게 많은 울림과 감동을 배가시켜준 것 같다. 다섯 가지 음식에 대해 짧지만 여운만큼은 길게 남기는 에피소드들. 특히 ‘그리움을 맛보다’라는 부제와 어울리듯 ‘과거’, ‘고향’과 같은 단어들로 접목시킨 음식 이야기는 ‘만화를, 그것도 음식만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기 현상’까지 만들어 냈을 정도.(하긴, 원래 내가 눈물이 많다는 전제도 깔아두긴 해야 겠다) 

 


1화 대구내장젓 /

2화 김해뒷고기 /

3화 된장찌개 /

4화 아이들을 위한 채소요리 /

5화 보리밥 한 그릇

 


총 다섯 가지의 에피소드가 펼쳐지는데 어느 이야기 하나 부족함이 없다. 부족함 여부에 대한 기준은 오직 음식과 이야기의 긴밀성. 스토리의 흐름만 떼서 보면 사실 억지적인 요소, 혹은  현실불가능한 요소가 몇 가지 보이지만, 음식과 조화를 시켜 보면 그럴싸하다. '다소 유치하거나 억지일 수 있음'을 깔고 보면, 충분히 가치있는 이야기라는 점, 그게 내가 식객2를 읽고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대구내장젓'과 관련해서는 기억은 잃어도 맛에 대한 기억은 잃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부모님에 대한 마음을 증폭시킬 수 있었고, '김해뒷고기' 이야기에서는 내 고향과 가까운 지역의 음식이었기에 나도 자주 접했던 뒷고기 이야기를 직장상황과 접목시켜 재밌게 풀어낸 점이 꽤 유쾌하게 작용했던 것 같다. 지금은 직장인이기에 이 에피소드도 내 마음이 충분한 공감을 불러 일으키긴 했으나, 실은 대학생이던 스무살 때 처음 뒷고기를 맛 봤던 그때가 더 새록새록 떠올랐다. 대학시절 학교 밑 골목길에 줄지어 있던 뒷고기집, 그 중에서도 가격은 저렴한데 양은 제일 푸짐했던 어느 이모의 가게에서 진탕 시켜 먹었던 그 뒷고기를 떠올리게 해준 두 번째 에피소드. 허영만 작가가 겪은 실화 그 이상으로 나에게도 옛 기억을 불러오는 아련한 소재가 아니었나 싶다.

'된장찌개', '채소요리' 역시 음식 소재와 어울리는 캐릭터 구성으로 이야기를 이해하는 속도를 한층 더 높여준 재미난 이야기. 하지만 마지막에 배치된 다섯 번째 이야기, '보리밥 한 그릇'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만화 읽다가 울게 만드는 그런 찡한 스토리 덕분에 아직도 그 여운이 진하게 남는 듯 하다.

 

 

 

일년에 한 번은 꼭 먹어야 하는 음식, 그게 고 사장에게는 보리밥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친구에 대한 애틋한 기억. 자연스레 '나에게는 꼭 먹어야 하는, 꼭 기억해야 하는 음식과 사람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떠올랐다. 내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아직'.

하루 세 끼 꼬박꼬박 챙겨먹는 음식들이지만, 그 가운데서 기억해야 할 만큼 애틋한 음식 하나가 나에게는 없었다는 사실이 뭔가 짠했다. 음식에 대한 추억 하나 가지고 있지 않았구나, 싶었고, 주린 배 채우기에만 급급한 식사를 그동안 해온 게 아닌가 싶었다. 식객을 읽으면서 음식에도 철학이 있다는 누군가의 말이 보다 가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말만 들을 때는 몰랐는데, 하나의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과정에 깃든 스토리를 들으니깐 음식이 의미하는 바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라는 점도 충분히 와닿게 된 것 같고.

 

 

 

명불허전 허영만. 명불허전 식객. 내 인생을, 내가 살아가는 동안, 내 입으로 먹은, 그리고 먹게 될 수많은 먹거리가 모이고 순환하며 오늘의 나, 내일의 나를 만들어간다는 사실을 느꼈다. 먹는 것 하나에 감사를. 먹는 것 하나에 기쁨을. 그리고 먹는 것 하나에 작은 의미를 부여해서 보다 사소한 즐거움을 많이 많이 만드는 삶을 살고파졌다. 식객이 나에게 준 교훈은 바로 이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