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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미궁 - 나카무라 후미노리, 숨어있는 자아가 만들어낸 비극
예전에 ‘밀실탈출’이라는 게임을 재밌게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들어선 방에서 다음 방으로, 또 그 다음 방으로 계속해서 이동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 게임이었는데, 전체적으로 으스스한 배경이기도 했고 상당한 지혜를 요구하는 두뇌게임이었기 때문에 꽤 집중했던 걸로 기억된다. 이 게임이 많이도 인상 깊어서일까,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미궁>을 읽으면서 풀리지 않는 밀실살인사건의 배경을 꼭 그 게임 속 배경처럼 생각하고 읽었다. 게임에서 보았던 어두컴컴하고 뭔가 꺼림칙한 느낌의 그 배경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들이 살해된 사건을 오버랩해본 거다.
책을 읽으면서 때론 전혀 그려지지 않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장면을 맞닥뜨릴 때가 있다. 그럴 때 가상현실에서 보고 겪은 배경을 접목시켜 읽어보면 은근히 재밌다. 가보지 않은 장소에, 겪어 보지 않은 상황을 더해 완벽하게 새로운 상황을 이해하게 되는 일, 그런 게 독서하며 얻는 즐거움이지 않을까. 경험에 경험을 더하는 일, 낯선 것을 더 낯선 것과 비교해 익숙하고 편안한 것으로 만드는 일, 불가능한 것도 가능으로 만드는 힘, 이 모든 게 다 독서를 통해 펼칠 수 있는 것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마니아처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나 기시 유스케와 같은 특정 작가의 작품은 부러 구매해서 읽는 편이다. 혹은 일본소설을 전문적으로 번역하는 꽤 이름난 번역가들의 책은 일단 읽어보는 편이기도 하고. 이 책은 후자였다.
작가의 이름은 나에게 생소했지만 양윤옥이라는 번역가의 명성 때문에 선뜻 읽게 됐는데, 그 이상으로는 기대 이하였다. 히가시노 게이고처럼 추리소설로 뛰어난 작가의 이야기를 자주 읽는 독자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개연성의 부족함 때문에 약간 답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일가족 밀실살인이라는 잔인한 소재를 다루고 있고, 미스터리한 인과관계들을 많이 집어넣었지만 책의 끝에 가서 그 모든 소스들을 단번에 처리하려는 끝맺음이 아쉬웠다.
작가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함 보다는 이 사건을 이야기화시킬 때부터 어린아이 내면에 움튼 잔인함과 폭력성을 가정했다는 점에서 뭔가 내가 가진 정서와도 안 맞는 것 같았고, 결국 살인사건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 장본인이 어린 아이들의 내면에 숨은 무서운 자아였다는 점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책은 책으로만 읽는 어른 독자가 아니라면 어린 친구들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 이유로 작용할 듯싶다.
일본이기에 조금은 쉽게 용납될 이야기다. 다중인격, 또 다른 인격이 본래의 나를 제어하는 상황 등.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의 잔인함이 몹쓸 생각을 하고 있고, 혹은 더 몹쓸 행동을 이미 실천에 옮기고 있는, 그런 끔찍한 상황이 사실 일본이라는 국가에서는 아주 예전부터 다뤄지던 이야기였으니깐. 그런 맥락에선 이 소설은 전형적인 ‘일본추리소설’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거나 나카무라 후미노리라는 새로운 작가의, 그만의 스타일로 만들어진 이야기 <미궁>,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한 번은 더 읽어보고 싶다. 그때도 그저 그런 개연성에 그저 그런 스토리라면, 당신과는 안녕을 고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