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제국 - 상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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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래도 나름대로 베르베르의 작품을 읽은 셈인데 이번 작품은 전작들에 비해 내겐 조금 약발이 안받는 듯 싶다. 늘, 언제나 감탄사를 불러 일으킬 정도로 독창적이고 해박한 그의 작품들은 항상 단숨에 소설을 다 읽게끔 만드는 마약이었다. 하지만 왠지 이번엔 완전히 취하지 않고 뭔가 아쉬움 같은 것을 남겨놓은 듯 싶다.  

 완전한 몰두를 방해하게 만든 요인이 무엇일까 나름대로 생각해봤더니 처음부터 주인공이 죽어버린게 문제였던 것 같다. 그래서 천국에 간 주인공이 평균 이상의 점수를 받아 세 인물의 수호 천사가 되는 설정 자체가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을 너무 선명하게 각인시키고 있었다. 이전의 개미나 뇌 같은 경우에는 사건이 진행될 수록 갈등 상황이 선명하게 부각되면서 숨을 멎게 하는  팽팽한 긴장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주인공 미카엘 팽송이 수호천사가 되어 세 인물의 성장과정을 지켜보고 우주를 탐험하고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만화적 상상력을 유발하면서도 그닥 재밌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베르베르는 불교적 신앙관을 가진 작가인가? 결국 수호천사가 얻는 깨달음은 우리의 생이 환생을 멈출 때가지 끊임없이 탄생과 소멸의 과정을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각자 다른 공간에서 태어난 사람들일지라도 전생을 거슬러가보면 결국 어떤 식으로든 인연을 맺은 적이 있고 그래서 그 인연의 끈을 풀어내지 못하면 운명은 반복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그 영혼이 질적 도약을 거듭햇다고 재판에서 인정하면 더이상 인간으로 회귀하지 않고 천사가 되는데 그 재판과정이라는 것도 논리적 준거로 우겨되면 천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두 권에 걸쳐 베르베르가 말하고 싶었던 건,그러니 제대로 사시오 하는 거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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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기자의 대당서역기
리처드 번스타인 지음, 정동현 옮김 / 꿈꾸는돌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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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500페이지가 넘는 책을 다 읽을 때는 내겐 딱 두 종류의 요인이 있을 뿐이다. 우선 베르베르의 책처럼 너무 재미있어서 도저히 손을 뗄 수 없어 독파해버리는 경우, 다음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 중간에 포기하기도 얘매하고 다 읽자니 인내심을 요하고....

 뉴욕 타임즈 기자가 반생에 이르는 동안 일상으로부터의 매몰을 과감히 벅차고 동양의 대표적 고승인 현장의 길을 따라 여행한다는 소재는 우선 상당히 눈길을 끌었다. 그는 동양에서 특파원으로 일했고 불교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지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법의 진리를 찾아 위험한 길을 자처했던 현장처럼 그도 고행의 길을 통해 그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다시 불러 일으키고 싶어했다. 그는 성공했는가?

 여행을 한다는 것은 낯선 곳에서의 자기와 만남이다. 일상의 안락함과는 거리가 먼, 때로는 하루 종일 걷는 고행도 감행해야 하는 중노동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불교의 법을 찾아 젊은 현장이 머물렀던 궤적을 힘들게 따라가는 작가의 기행은 별로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우선 글 자체가 상당히 건조한 느낌을 준다. 서평을 목적으로 쓰여진 글이어서일까? 현장을 따라가는 길 역시 표피적으로만 다가온다. 자, 이렇게 현장이 힘들게 여행을 했다. 나도 여행을 하면서 힘들었다. 이젠 독신을 접고 중국인 연인과 결혼해야지 라니....

 이 얘매모호한 느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는 불교에도 상당히 박식해보이고 동양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근접해 있는 기자이다. 그런데 그의 글을 읽으면서 문제는 어떤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너무 대단한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서양의 기자를 따라가면서 가슴에 팍팍 와닿는 어떤 것을... 하지만 결론은 그는 서양 기자였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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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 뭉크 다빈치 art 1
에드바르드 뭉크 지음, 이충순 옮김 / 다빈치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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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고흐의 전기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후원자이자 동생이었던 테오를 향한 사랑과 신뢰, 그리고 외롭지만 흔들림없는 예술가의 길을 걷는 그의 심정이 편지글 속에 잘 녹아 있었다. 비록 가난하긴 했지만 그래도 고흐는 세상에 그를 알아주는 유일한 동생이 있어 정서적으로 외롭지는 않았을거란 생각이 들었었다.

뭉크의 책을 접했을 때 일단 표지의 '에로틱한 느낌의 마돈나'그림이 상당히 기분 좋았다. 그의 그림은 뭔가 다른 감수성을 내게서 끄집어내는 듯한 느낌이다. '특히 절규하는 사람'이란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땐 이 작가의 이력이 상당히 궁금했었다. 도저히 미치지 않고는 이 세상을 살아 나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림 속의 인간들. 입을 벌리고서 마치 '어떻게 맨정신으로 살수 있니?'라고 묻는 듯한! 나는 그의 그림을 보면서 소외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으로부터의 소외. 따스함과 모든 인간적인 것들로부터의 소외. 이런 치명적인 그림을 그리게 된 작가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머니와 누이를 잇따라 여의면서 뭉크는 너무나 일찍 생의 부조리와 고독을 경험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가난한 일상은 그에게 어떤 휴식도 제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그의 이력을 보면서 아하 하는 생각이 든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을 채우고 있는 대부분의 내용들은 후원자였던 쉬플러씨에게 보낸 편지글들이다. 화랑의 행위에 대한 비판과 분노, 그리고 후원자에 대한 감사의 글만 보아서는 그가 81년이나 되는 긴 세월 동안 독신으로 살면서 정신분열증의 재발로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을 연상할 수 없다. 역시 화가는 그림으로 말할 뿐인가! 사실 전시와 관련된 행정적인 혹은 금전적인 내용을 담은 편지를 우리보고 보라는 것은 좀 억지이지 싶다. 그것은 뭉크에게 업무상의 일과일뿐 그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아닌 것이다. 단지 '알파와 오메가'라는 판화 연작 그림이 있는데 뭉크의 세상을 향한 시각이 어쩐지 그 안에 숨어 있는 듯한 특이한 글과 그림이 다행히도 옵션처럼 수록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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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로 보는 일본 기행 - 세계 인문 기행 4 세계인문기행 4
이경덕 지음 / 예담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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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서는 어차피 자기만의 느낌을 기록한 책이다. 그래서 아직 그 곳을 가보지 못한 독자들에게 정보와 설렘을 준다. 수없이 쏟아져나오는 여행서중에 어떤 유형을 선택할 지는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느낌과 정보가 똑같이 양분되기란 힘든 법, 자기가 좋아하는 취향으로 고르면야 뭐, 30일간을 여행하고 책을 내든, 일년을 살고 책을 내든 탓할 바 아닐 것이다.

사실 일본은 정말 말 그대로 가깝고도 먼나라다. 거리상으로 치면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지만 정작 일본의 문화나 역사에 대해서는 낯선 느낌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본이라야 임란과 2차대전을 일으켜 우리를 유린했으므로 우린 무조건 그들을 이겨야한다는 소명감을 심어주기에 급급이다. (사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중의 하나가 왜 스포츠는 일본에게 지면 안될 것인가? 이다. 이것도 좀 분석해볼 필요가 있는 유형이다. 물론 이기면야 좋겠지만...)

저자는 담담하게 일본의 도시들과 그 속의 유적들을 소개하고 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일본 민족이 어떻고 문화적 소양이 어떻고 하는 적확한 느낌은 오지 않는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간단하게나마 일본의 탄생부터 현대까지 일본의 배경을 먼저 알고 난 다음 이 책을 읽게 되면 즐거움이 배가될 것 같다. 그리고 일본을 여행가고자 한다면 가기 전에 어떤 도시를 선택할 지 좋은 기준이 될 것 같다.

물가만 좀 싸다면 현해탄을 넘어볼 법도 한데 역시 일본은 가깝고도 먼나라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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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 우리 문화 바로 찾기 1
조용헌 지음 / 생각의나무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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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흉흉할수록, 사는 일이 힘들어질수록 사람들은 더 점에 집착한다고 한다. 꽁꽁 얼어붙은 현실을 타개할 길이 보이지 않으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점은 과연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이 책을 쓰신 조용헌 선생은 조용조용히 점이 아니라 사주명리학이라고 말씀하신다. 한마디로 사주명리학이란 사람의 생년, 월, 일, 시를 간지로 환원해서 인간의 운명을 예측하는 학문이란 얘기다. 그것은 오랜 세월 하늘의 흐름을 관찰하여 과학적으로 배치했기 때문에 절대로 허황된 것이 아니다.

무릇 사람의 팔자란 이미 나면서부터 그 골격을 하늘로부터 받고 태어난다. 그래서 옛 조상들중에는 출생일까지 변칙적으로 조절해서 운명을 바꿔보려는 분들도 계셨단다. 또 왕이 될 사주팔자를 가지고 태어나면 왕의 혈통이 아니더라도 대권에 도전해볼 수 있으므로 신흥세력들에게는 혁명 이데올로기를 제공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주역이나 명리학의 흐름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뭐랄까, 이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내게는 이 책이 한마디로 강호에서 노니시는 고수들의 야담을 흥미진진하게 배열한 느낌이었다. 뭐라고 사족을 붙일 생각은 없지만 책을 덮고 나니 정말 잘 알려진 고수를 찾아가 내 미래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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