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애는 누가 봐요? - 오늘도 이 질문을 들었다
잼마 지음 / 보랏빛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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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강추!!! <그럼 애는 누가 봐요?> 잼마 지음

제목부터 맘에 들지 않는가? 아마 저녁 시간에 밖에서 활동하는 기혼여성은 다들 한번 이상 이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럼 애는 누가 봐요?” 가사와 육아는 맞살림을 해야하는 건데, 늘 여성의 몫으로 부담지어 진다.

부산의 북그러움 책방에서 구입한 독립출판물인데, 너무나 리얼한 경험담들이 담겨 있다. 출판사를 통해 다시 출판되어 많은 독자들과 만났으면 하는 책이다. 시중에 나오는 페미니즘 책 중에 시류에 편승해서 나온 어설픈 페미니즘 책도 많은데, 그 책들보다는 훨씬 좋다. 독립책방에 갈일이 있다면 이 책을 꼭 사보길 강추하고 싶다. 저자는 교사인데, 교직사회의 보수성과 가부장성도 잘 담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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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 Thirst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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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나는 욕망을 이야기하는 영화를 좋아한다. 욕망의 금기, 욕망의 절제, 타락한 욕망, 욕망의 발현........등등. 사람들안에는 누구나 악한 본성도 있고, 성적욕망, 폭력적인 욕망이 살아숨쉬고 있다. 상현은 신앙심에서 참가한 실험으로 뱀파이어가 된다. 몸안에서는 피의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러나 함부로 사람을 죽일수 없다. 그래서, 코마 상태에 빠진 환자의 몸에서 피를 빨아 마신다. 이제 친구 강우의 아내 태주에게 성적욕망까지 느낀다. 그는 그런 자신의 몸을 스스로 벌한다. 다리를 피리로 때리고 성기를 피리로 때린다. 나는 예전부터 가져온 궁금증이지만, 스님과 신부님들의 성적 욕구는 어떻게 다스리는걸까 궁금증이 인다. 상현처럼 금욕적인 태도로 자신의 욕망을 벌하는 사람들도 있을것이고, 자신안의 욕망을 수용함으로써 그 욕구가 점점 약해지는 경우도 있을것 같다. 여전히 그들의 성적 욕망을 다스리는법이 궁금해진다.

 

 

 

 

   상현은 태주와 육체적 욕망을 풀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김옥빈은 <박쥐>에서 엉뚱하면서도 귀여우면서 섹시하며 피해자이기도 한 태주를 리얼하게 연기한다. 김옥빈의 재발견이다. 마치 상현과 대치되는 욕망덩어리 같았다. 태주에게 속아서 남편이 태주를 학대하는줄 알고 상현은 강우를 태주와 함께 죽여버린다. 그를 죽인 죄책감은 영화속에 강우가 등장하는 환상으로 등장하며 괴롭힌다. 웃기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한 기이한 장면들을 박찬욱감독은 좋아하는것 같다. 강우 엄마인 라여사가 사지마비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려둔것은 그들에게 남아있는 양심을 상징한게 아닐까? 그러던 중에 강우가 태주를 육체적으로 학대한 사실이 없다는걸 알고 그는 죄책감으로 그녀를 죽여버린다. 그러나 상현은 태주를 사랑해서였을까? 그녀를 살리기위해 자신의 피를 그녀에게 먹인다. 드디어 두마리의 뱀파이어가 탄생한것이다. 상현은 뱀파이어가 되어서도 최소한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으면서 피를 구해 먹으려는 반면, 그녀는 배가 고프면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생피를 마셨다. 어마어마한 힘에 불사의 힘, 상현은 태주가 컨트롤이 되지 않는다. 태주는 상현안에 있는 이성으로 억지로 누르고 있는 튀어나가고 싶은 욕망같았다. 강우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강우의 엄마에 의해 들통이 나자 상현또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죽이는 일에 동참한다. 이제 그는 더이상 이런식으로 살수 없다고 생각하고 사지마비인 강우의 어머니를 차뒤에 태우고 어디론가 떠난다. 여기서 말도 많은 성기노출이 잠깐 등장한다.

 

 

 

 

 

   그는 영화초반에 실험에서 기적으로 살아온 자신을 구원의 존재로 믿는 텐트촌에 가서 한 여성을 강간한다. 마을사람들에게 들통이 나서 뒤돌아 서며 바지를 추스리는데 성기가 잠깐 보인다. 같이 본 여성관객은 그런다. 왜 궂이 그걸 보여줘야 하냐? 그냥 강간을 한것을 들킨 상황으로 보여주면 되지 않느냐? 고 이야기 한다. 물론 그래도 된다. 그의 강간은 자신을 신격화해서 믿는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때문에 행한일이다. 자신은 정말 형편없는 인간이라는것을 알고 더이상 자신을 신격화하지말라는 의사전달이었다. 그러나 왜 송강호의 성기를 노출시켰을까?  나는 관객들에게까지 충격적으로 그의 타락과 위선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주 잠깐 노출시켰다고 생각을 한다. 나는 그장면이 통쾌했다. 일단 한국영화에서 성기가 등장한다는 사실이 반가웠고, 그의 위선과 밑바닥을 충격적으로 전달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면서 완행버스를 타면서 걸어오면서 관객이 여자라면 내가 여자였다면 그 장면이 어땠을까 생각했다. 불편할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바바리코트맨의 성기노출도 아니고 영화상에서 성기노출이 여성에게 폭력일까? 박찬욱감독은 여성관객에게 성적 충격(폭력)을 가한것일까? 그런데, 얼마전에 특별전에서 봤던 장률의 영화에는 섹스장면이 아닌데도 성기 음모 노출장면이 많았다. 총을 잃어버린 경찰관(총기분실은 엄청난 실책)은 그 충격으로 넋을 놓고 길거리를 발가벗고 걸어가는 장면이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 영화속에서도 섹스장면중에 자연스럽게 성기나 음모가 노출되기도 한다. 영화와 뮤지컬 헤드윅으로 유명한 존 카메론 미첼의 <숏버스>는 얼마전에 상영되었는데, 영화 초반부터 남자의 자위하는 장면이 그대로 등장한다. 게이 감독의 이 작품은 남자친구를 위해 거짓오르가즘을 느낀척 했던 주인공이 다양한 섹스를 경험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결국 자신의 오르가즘을 찾게 되는 자기성장의 이야기였다. 그게 물론 우리가 터부시하는 몸들로 이루어지긴 했지만.... 외국은 문화가 달라서 그렇다고? 나는 우리나라영화에서도 성의 자유로운 표현이 더 자주 나왔으면 좋겠다. 여성에게 천사와 창녀를 기대하는 우리나라의 보수적인 성윤리가 밖으로 나와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그런면에서도 나는 <박쥐>에서의 성기노출이 아주 반가웠다. 그러나 내가 여자관객이 아닌 이상, 내가 더 이상 접근할 부분은 아닌것 같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최악을 보여주고나서 그는 차로 돌아와 바다로 향한다. 주위가 아무것도 없어서 햇빛을 숨을 공간이 없는 바닷가 절벽으로 차를 몰았다. 멋모르고 자고 일어난 태주는 어둠이 사라져가는 상황에 당황해 차트렁크에 숨기도 하고 그들의 괴력에 멀리 날아가버린 트렁크를 다시 가져와서 덮기도 하고 차밑에도 숨는다. 그러나 상현은 태주의 시도를 계속 무마시킨다. 그런데 그장면이 좀 귀엽게 묘사가 된다. 태주에겐 양심이나 도덕이나 죄책감이 없다. 그냥 살고 싶다. 사람들 죽여서 먹고 싶을때 마시고 뱀파이어로 살아가고 싶다. 그러나 죄책감많은 상현은 자기가 뿌린 씨앗을 거두려고 함께 데려가려한다. 자신이 화가 나서 죽였다가 다시 살려놓고는 그녀의 존재까지 데려가려한다. 자신이 다시 살렸으니 그녀를 데려갈 권리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B급 뱀파이어 무비에서 자주 봤던 엔딩처럼 해가뜨고 그들은 타서 재로 변한다. 나는 솔직히 상현은 죽더라도 태주는 살았으면 생각했다. 왜냐면 그는 끝까지 도덕과 죄책감과 양심을 내려놓지 못했고 욕망을 긍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태주가 살아서 많은 사람들을 죽이는것을 떠나서 그녀의 존재가 욕망의 긍정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내안의 어떤 욕망이든지 다 긍정하고 싶으니까. 그게 밖으로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다면 그 욕망은 긍정해주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자신을 존중하는것이니까. 상현처럼 끊임없이 부정하고 억누르면 자신이 병이 든다.

 

 

 

 

 

   영화는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133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던것 같다. 영화의 평가는 아마 극과 극이리라. 대중적인 송강호씨가 나와서 서민적이지 않은 캐릭터로 엉뚱한 웃음이나 가끔 주고 나중에가선 성기노출이나 하니 비호감으로 느낄분도 많을 것같다. 영화의 느낌은 <친절한 금자씨>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일단 <올드보이>와 <친절한>에서의 비장미 넘치는 고급스러운 느낌의 음악. 그리고 B급요소적이고 키치적인 요소(강우 엄마역을 맡은 김해숙씨의 진한 화장과 그녀가 듣는 음악들)가 묘한 웃음을 자아낸다. 그리고 송강호도 <복수는 나의 것>과는 달리 중간중간 그 특유의 애드립 같은 대사로 웃음을 안겨준다. 뱀파이어라는 소재로 단순히 액션영화가 아니라 욕망과 도덕의 딜레마를 재미있게 잘 보여준 영화같다. 나는 박찬욱감독은 JSA를 만들긴 했지만, 대중적인 감독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는 네임밸류를 쌓은 이상 자기가 만들고 싶은 취향의 영화들만 만든다. 그래서, 스타일이 독특하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후반의 구원에 대한 메세지는 나스스로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지만 <친절한>과 <JSA>가 재미있었다. 그다음이 <올드보이>이다. <복수는 나의 것>은 영화가 너무 메마르고 삭막해서 보고 나서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 영화다.(지금 다시 보면 또 어떨지 모르겠다.) <사이보그지만 괜찮아>가 젤 재미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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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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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산 센텀시티 롯데에서 황석영 개밥바라기별 독자와의 만남이 있다고 해서 무심결에 선택한 책이 <개밥바라기별>이다. 60이 넘은 작가와 내가 통할만한 연결고리 있을까 싶어서 별 기대없이 읽었다. 그런데, 시대는 달라도 젊음이 갖는 특성은 비슷하기때문일까?  마지막 작가의 말중에 "너의 모든것을 긍정하라"라는 대목에선 눈물마저 흘러내린다. 여전히 고전에 대해서 지루함이라는 거리감을 가지고 있긴하지만, 고전이 고전일수밖에 없는건 인간의 속성혹은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표현방법에 있어서 현재의 표현과 방식이 다르기에 젊은이들이 읽을때 지루함을 느끼기도 한다고 생각하고 삶을 많이 산 사람일수록 삶에 대해 인간에 대해 많이 고민한 사람일수록 고전에 대한 이해력의 깊이가 커진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만 아직은 고전을 거의 읽지 않는편이고 그다지 읽고 싶은 생각도 없다. 언젠가 고전이 나를 부를때 그때 만나련다.

  한일회담 반대시위에 참여했다가 경찰서 유치장에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 "장씨"와의 만남은 자신이 책으로 접하는 지식과 현실의 괴리를 풀수있는 해답으로 주인공 준에게 다가온다. 전국의 공사판과 오징어잡이배, 빵공장, 행자생활등의 자신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있기에 나는 오히려 그 경험이 직접적으로 와닿는다. 누구는 작가의 개인경험담을 끊임없이 재탕 삼탕하는것을 보고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나는 문학적 감수성 보다는 체험의 직접성을 더 좋아하는지라 이 책이 참 마음에 들었다. 체험의 소설화는 이야기를 추상적으로 만들지 않고 우리곁의 이야기로 머물게 한다. 나는 작가의 사소설을 좋아한다. 어쩌면 소설이라는 문학자체가 대부분 작가의 사소설이 아닐까? 처음에는 베트남 전쟁에 참여하기전의 준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과거를 회상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구성된다. 그런데, 읽어가다보니, 자꾸 화자가 누구인지 헤깔렸었다. 오른쪽밑에 보니, 준, 인호, 영길, 미아, 선이, 상진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고, 그 이름이 그 단락에서 화자가 되어서 이야길 한다는걸 알아차리고 금방 이야기를 따라잡을수 있었다. 화자가 자꾸 바뀌면서 이야기를 연결시켜가는 모습은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을 배경으로한 영화-와 <라스트데이즈>-커트 코베인의 자살의 순간을 담은 영화-와 닮아 있었다. 같은 사건이라도 이야기하는 화자에 따라 다르게 묘사되기때문에 그러한 이야기 전개방식이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각자의 감정속으로 직접적으로 들어갈수있어서 소설의 주인공은 "준"이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소설속의 여러 젊은이들이 모두 주인공인듯한 느낌이 들었다.

  준은 기존의 학교교육과 평균적인 삶의 진행방식에 회의를 느끼는데, 나는 왜 그 나이때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생각이 든다. 왜 자율학습이란 이름으로 강제로 학생을 잡아두는것에 대하여 반항한번 제대로 못했는지, 왜 학생들의 두발권과 옷을 자유롭게 입을 권리조차 선생님에게 의해 제재를 받아야 하는건지, 왜 학교에서 배우는 교육자체가 오로지 대학을 가기위한 공부여야 되고, 점수로 인간의 등급이 결정되는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반항하지 않았을까....나이 서른즈음이 되어서야 사회인문학학 책들을 접하며 내가 12년넘게 대학까지 합하면 16년이라는 긴 시간을 바보같은 교육을 받아왔다는걸 깨닫는다. 바보같이 살도록 무의식적으로 세뇌를 당하며 살아온거같다. 사회에 속았다는 느낌이 든다. 나를 나로 살게 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살도록 교육을 받아왔던것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스스로 나의 답을 하나하나씩 찾아 가는중이다. 아직도 나는 소설속 준의 과정을 지나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그당시 주인공 "준"처럼 반항을 하거나 학교를 떠나서 사회를 경험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모범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제아도 아닌 아주 평범한 아이였다. 아니 친구들과의 추억거리도 없는 암흑시대로 기억을 하고 있다. 그래서, 준과 같은 그런 행복(?)한 추억혹은 방황의 기억은 없다. 다만, 준이 베트남에 가기전에 겪었던 많은 경험을 오히려 20대때 동안 오랜시간에 걸쳐서 방황으로 경험했다. 나도 배낭여행이랍시고 떠나보았지만(나는 결국 3일만에 돌아왔었다.), 나는 혼자 하는 여행의 의미를 제대로 즐기는 스타일이 아님을 깨달았고 소설속에 나오는 말처럼 ‘어디에서나 기억은 거기 있는 사람과 함께 남는다’는 말에 동의를 표하고 싶다.

  준이 사랑(?)했던 미아와의 관계. 그당시 준은 오직 자신에게로 시선이 집중되어있었다. 미아는 여자가 대학을 가겠다해서 아빠에게 뺨을 맞은 것처럼 현실이 싫었고 가족이 싫어서 현실을 벋어 나고자 했다. 그래서, 준이를 만나면 현실의 이야기는 하지않고, 읽었던 책이야기나 영화이야기만 했다. 그러자, 준이는 화를 내며, "왜 니 이야기는 하지않고, 책속의 이야기만 하니? " "나는 이 현실이 싫단 말이야" 그 지점에서 둘간의 벽이 보였다. 준은 책속에서 읽는 진실이 자신이 체험한 것이 아니기에 자신이 발을 딛고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가 끊임없이 질문하고 회의했다. 그래서, 그는 우연히 경찰서 유치장에서 만난 "장씨"를 따라 전국을 유랑하며 힘든 노동을 잠깐(?)이나마 경험하게된다. 그는 몸으로 직접 겪는 삶을 체험하고 싶었던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적응이 된다고 하지만, 육체적 노동을 통한 삶은 참 힘들다는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장씨와의 자유로운 삶을 이별하고 자신만의 여행을 하다가 행자노릇도 잠시 하게된다.

  작가의 말은 소설과 달리 작가가 인문학서적을 많이 읽고 철학과 출신이라 그런지 참 딱딱하였다. 하지만,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의 본질은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너의 모든 것을 긍정하라"라는 이말이 나에게 눈물을 떨구게 만들었다. 별볼일 없었던거 같고, 초라했던 나의 삶, 그 삶 하나하나가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과정이었다. 다만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기위해 끊임없이 방황했던것이다. 그러니, 그방황의 모든것을 긍정하라는 그말. 그말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모든 사람이 준이와 같은 방황은 하지 않는다. 현실과 자신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 과정하나하나가 각자의 방황이며 각자의 삶이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준에게 많은 감정이입이 되었지만, 그림을 그리던 정수, 부잣집 도련님 상진, 돼지라고 불리던 인호,  장씨아찌에게 그림을 배우던 선이, 집을 벋어나 독립하고 공부를 하기위해 직장생활하며 밤에는 공부를 하던 미아의 각각의 삶을 모두 긍정하고 싶다. 누가 누구보다 더 멋진 방황을 하고, 더 멋진 성장을 하고 그런것은 없는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기준에 따라 자신이 추구하는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는것뿐이다. 어떤이는 기존의 사회에 잘 적응하고 진입하는것이 가치있다고 여길것이고 어떤이는 준처럼 자신과 제대로 만나길 원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도 어떤 삶도 자신의 삶을 긍정하라는 주인공의 메세지가 나에게 큰 울림을 준다. 그래서, 이젠 나의 짧았던 3일의 배낭여행도 긍정하고 싶다. 지금 내가 서있는곳에서 발을 딛고 내가 할수 있는 그 무엇을 찾아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나아가고 싶다. 황석영작가와 <개밥바라기별>로 처음 만났지만, 요근래 나왔던 <바리데기>보다는 임상수 감독의 영화로 먼저 만났던 <오래된 정원 상,하>, <모랫말 아이들>, <객지>, <삼포가는길><무기의 그늘 상,하>-베트남전 이야기, <심청, 연꽃의 길>등이 더 읽고 싶어졌다. 준의 베트남의 경험이 <무기의 그늘>을 만드러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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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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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스스로도 무식한 접근이라면서 "봉고차 인신매매범"이 갑자기 줄어든것이 많은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인신매매 시장에 뛰어듦으로써 공급이 늘었다고 하는 답변에 최소한 90점이상의 점수를 줄수있다는 망발적 발언을 보고 속으로 미친새끼라고 욕을 했다. 외국에서 유학을 하고 논문도 쓰는 경제학자라는 양반이  여성주의시각에서 보면 거의 망발에 가까운 이야기를 최소한 90점이상의 점수를 주겠다는 당당함에 어이를 상실했다. 책의 시작이 첫섹스와 동거에 개념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가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세자빈이 되는 나이가 13세였음을 이야기하며 첫섹스 개념을 이야기하는데, 그게 과연 자발적인 섹스냐는 말이지.. 신분상승의 유일한 길로써 궁에 들어가게 된것을 어떻게 자발적인 섹스개념과 연결을 시키냐는 말이다. 나는 공부를 했다는 사람일수록 이런 망발에 가까운 생각들을 뜬금없이 하는 분들을 보면 섬찟할때가 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 두부분이 걸려서 나의 분노를 짧은글로 무마시켜본다. 그래도 현시대의 우리네 모습을 경제학적으로 아주 잘 분석했다고 생각하기때문에 도입부의 두 망발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책을 권하고 싶다. 토론거리가 많은 책이고, 10대와 20대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수능 참고서보다 더 읽어야 될 책이다. 어떻게 살아갈것인가 고민을 던지는 책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체 비정규직 평균 임금(월급)은 약 119만원 이라고 한다. 여기에 전체 임금과 20대의 임금 비율인 74%를 곱해서 숫자를 뽑아보니깐, 우연의 결과지만 대략 88만원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건 세전(稅前) 임금이다. 아니, 12년에 걸쳐 거기다가 4년 또는 대학원까지 거쳐서 배운 사람이 버는 월급이 꼴랑 88만원이라면 너무나 끔찍한 일이 아닐까? 물론 고임금정규직 직장에 진입할수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갈수록 그 범위는 좁아질것이다. 한학기 등록금이 이제 500만원에 가까워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나이 50이 되어서도 자녀 대학뒷바라지가 당연하다는 부모인식이나, 당연히 부모가 대학등록금지원을 해줘야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무능력한 20대 젊은이들이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고등학생의 반정도는 대학에 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대학들도 경쟁력을 가지려고 노력할것이고 부모들도 자신들을 위해서 노후자금을 마련할수있을것이다. 공무원 양산사관학교인 대학교를 궂이 4000만원가까이 들여서 보낼필요가 있을까? 예전처럼 공부많이 하고 좋은 대학졸업하면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할수있던 시대는 물건너 갔음을 부모들이 정확하게 볼수있어야 한다. 다른 나라들에서도 20세전후로 동거를 하고 독립을 하고 결혼을 고민하고 어떻게 돈을 벌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할때, 우리네 젊은이들은 세상모르고 오로지 공부만하는 어린애로 남아있다. 나는 중학생 고등학생이 학생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학교 행정전반에 걸쳐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과정속에서 토의와 주장을 제대로 하지도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회에 나와 경쟁력있게 활동하겠는가. 18살이나 된 학생들이 자신들의 두발에 대한 자유권조차 확보못한 시점이니 말해 무엇하랴. 도대체 언제까지 선생들은 학생들을 훈육의 대상으로만 여길것인가. 투표권도 만 18세로 낮춰져야한다. 왜 우리들은 학생들을 아이로만 보는가. 판단력의 부실? 그건 어른들 생각일뿐이다. 하지만, 학생들의 권리는 그들스스로 싸워서 쟁취해야한다. 자신스스로 피흘리며 쟁취하지 않고 공짜로 얻은 시민권이나 투표권에 대해서 그 의미를 제대로 모르기때문이다. 서구의 민주주의를 쫓아가다보니 프랑스처럼 투표권을 얻기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고 공짜로 얻었기때문에 사람들이 투표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학을 가지 않은 고졸 학생이, 거기다가 고졸여성이 얻을수있는 직업의 기회는 얼마나 넓을까?  그들이 선택할수있는 길은 대부분 비정규직뿐이다. 대학을 보내기에는 너무 많이 들고, 안보내자니 그들의 미래는 너무 어두워 보인다. 근데, 그건 10대와 20대들이 고민을 해야 한다. 부모들이 자녀들의 미래까지 걱정해서 그들이 짊어져야할 삶의 무게를 대신짊어지는것은 아이를 여전히 어린애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 짐의 무게는 상당하다. 하지만, 자신이 스스로 짊어지고 나아가야 한다. 대학은 스스로 벌어서 가야하고, 그만큼의 가치가 없다면 가지 말고 다른길을 모색해야 한다. 이책은 사회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볼수있게 한다. 다른 나라들의 다양한 사례들과 비교를 하지만 시원한 답을 주는것은 아니다. 결국은 각자의 몫이다. 길을 아는것과 길을 걷는것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길을 잘 걷기 위해선 아는것이 필수적이다. 10대 20대들은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아는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야한다.




  나는 정부가 사교육시장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교육종사자들의 수와 그 시장의 규모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그들은 절대 찬성하지 않을것이다. 강제적이고 확고한 정책이 있지 않고서는 사교육시장은 죽지 않고 끊임없이 자가생식하며 번성할것이다. 사교육시장이 죽지 않으면 공교육은 살아나지 못한다. 모두 경쟁적으로 사교육을 받고 공교육에 들어와서 뭘 배우겠는가. 살기도 어려운데 왜 자기살 깍아먹기 사교육을 하는지 걱정스럽다. 안하기는 불안하고 하기에는 경제적으로 너무 부담스럽다. 사교육종사자들의 생계가 달린 문제이기때문에 갑작스레 사교육을 금지시킬수는없고 5년정도의 시간을 두고 그동안 그들이 다른 직업에 종사할 준비를 할 시간을 주고 5년뒤엔 엄격하게 금지 시켜야 한다. 물론 내생각이다. 20대들은 세대내 경쟁뿐만아니라, 세대간 경쟁또한 해야 한다. 정말 치열해진다. 그 좁은문에 들어가기위해 옆사람을 밝고 일어서야 하는 약육강식의 세상이다. 다른 대안들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한 공부와 고민이 절실하다. 남들처럼 산다고 행복해지는것이 아니다.




  세계화라는것이 좋은것이 아니다. 세계 1등이 무엇이 중요할까. 사람답게 사는게 중요하다. 적게 벌더라도 자신의 존재의미를 발견하며 살아가는것이 중요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경제 정책들을 보면 참 살벌하다. 큰공룡만 살아남게 만드니깐. 근데, 획일적인 집단은 아무리 강하더라도 아주 작은 변동사항에 의해 무너져버린다. 다양성만이 살길이다. 영화 우주전쟁에서 지구를 침공하는 어마어마한 외계인은 지구의 아주 작은 바이러스에 의해 전멸되어버는 이치와 같다. 우리사회는 너무 획일화된 창의적이지 않은 1등만 추구한다. 다양성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 소수자도 살만한 세상이 내가 살기좋은 세상이다. 진지하게 읽어볼만한 책이었다. 아는것은 고통스럽지만, 나자신을 제대로 아는것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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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아 창비아동문고 175
박기범 지음, 박경진 그림 / 창비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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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에 장편동화를 읽으면서 동화는 꼭 해피엔딩이여 하나?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해피엔딩이 아닌 동화를 만나서 나는 참 반가웠다. 박기범님의 동화집을 읽으며 많이 울었다. 공장에서 손가락이 잘린 아버지가 등장하는 <손가락 무덤>, 정리해고를 다룬 <아빠와 큰아빠>, 오세영의 그림일기를 인용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다룬 <독후감 숙제>, 자기 동네의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부자 동네 학교에다니면서 겪는 주인공의 쫄아드는 마음을 그린 <전학>, 보통아이로 봐주지 않고 문제아로만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 때문에 문제아로써 살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룬 <문제아>, 촌지문제와 싱글맘의 이야기를 다룬 <김미선 선생님>, 아파트개발을 위해 쫓겨나는 철거민을 그린 <끝방 아저씨>, 죽어가는 촉산농가의 문제를 다룬 <송아지의 꿈>,1988년 6월 분신자살한  민중 해방 박래전 열사(실제 인물)를 그린 <거울꽃 삼촌>, 버려지고 병든 강아지와 가족의 문제를 다룬 <어진이>까지...  이 동화집은 어른 소설집으로 담기 힘든 많은 아픈 이야기들을 담는다. 결말이 꼭 해피엔딩이 아닌것도 많다. 

 
  나는 아이들도 이런 세상을 조금씩 맛보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것만 먹고 좋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나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아이의 아픔에 대해서 어떻게 알수 있을까? 아이들이 이 동화집을 읽으면 궁금할게 많을거같다. 그래서, 어른들에게 질문을 한다. 그런데, 대답하는 어른의 가치관이 참 중요할거 같다. 사람의 힘으로도 되지 않은 세상의 부조리함에 대해서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할것인가? 타인에 대한 이해의 동기로 잘 활용해서 설명할 어른이 많이 있을까? 과거에는 모두 가난했다. 그래서, 먹고 살기 너무 힘들었지만 상대적 박탈감이란것을 잘 모르고 자랐다. 하지만,지금은 중산층의 자녀로 이쁨받으며 자란 아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있다. 그들이 느끼는 박탈감은 너무나 크다. 세상의 부조리함속에서 어른으로써도 희망적으로 이야기하기 힘들때가 있다.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의 반응이 궁금하고, 이 책을 읽은 어른들의 반응들이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마음에 드는 동화집이고, 나와 다른 타인의 아픔과 환경을 이해하는 계기로 삼기에 좋은 동화집인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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