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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 경계의 시간, 이름 없는 시절의 이야기
허태준 지음 / 호밀밭 / 2020년 11월
평점 :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허태준)
수능이 끝나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올때면 ‘수험생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광고 문구를 흔하게 보게 된다. 그런데 수능을 보지 않은 학생들이 그 문구들을 볼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공고, 상고, 마이스스터고를 간 학생들은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그들도 나름대로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각종 자격증을 따고 밤늦게 공부를 하거나 일찍직장에 들어가 그 직장에 녹아들기 위해 부던히도 노력을 했는데, 그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없는 존재로 취급받는 기분이지 않았을까.
저자는 부산기계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장실습생을 거쳐 산업기능요원(군대 대신 직장에서 일하는 것)으로 지역 중소기업에서 3년 7개월간 근무했다. 일하는 청소년, 대학생이 아닌 이십대, 군인이 아닌 군 복무자였다.
작가님은 문학을 전공하고 싶어 예술고등학교에 가고 싶었지만, 작은 형이 대학을 가야 해서 두 사람 다 학비를 대줄 수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예술고등학교는 학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그냥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기는 싫어서 마이스터고등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생각보다 학교생활은 괜찮았고, 제법 기계 다루는 솜씨가 있었고, 자동화 연구 동아리에 들었고, 여러 자격증을 취득했고, 시험 기간엔 독서실에 친구들과 새벽까지 공부를 했다. 그러나 그 시절을 보낸 청소년과 청년의 이야기를 우리는 미디어나 소설, 에세이에서 만난 경험이 거의 없다. 그래서 작가님의 이 책이 무척 반가웠다.
작업장에서 처음 마주했던 기계들. 범용 선반, 복합 밀링, 탁상 드릴링 머신, 고속 절단기, 탁상 그라인더, 공구 연삭기, 용접기 등등. 30대 초에 일했던 몇몇 직장에서 보고 경험했던 기계들 명칭이다. 작가님은 ’공무팀‘에서 일했다. 정해진 업무가 있는게 아니라 공장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부서. 그래서 공부할게 너무나도 많았다. 유일한 직장 상사였던 차장님은 사실상 공무팀을 혼자 도맡은 상황이라 세세한 업무를 가르쳐줄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수첩을 들고 다니며 사소한 모든 것을 기록했다. 그리고 따로 시간을 내어 수첩에 적어두었던 것들을 노트에 정리해 적었다. 작가님이 그 공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성실함이었다. 그 성실함을 기특하게 본 차장님은 공책들을 보관할 수 있는 서랍장을 마련해주셨다.
누구는 어릴때부터 돈을 벌어서 좋겠다라고 말했다. 좋았을까. 현장실습생일때는 잔업을 하지 않은 기본수당과 정부보조금 합쳐 130만원정도의 급여가 들어왔지만 엄마가 관리했기에 실제로 확인한 적이 없고 한달에 20만원의 생활비를 받았다. 시간이 지나 돈 관리를 스스로 해보겠다고 말씀드렸고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다만 지금까지 번돈은 중요한 일에 썼으니 이유는 묻지 말아 달라고 하셨다. 적금 통장을 만들어 만기까지 붓고 돈을 찾고 새 적금을 부을때쯤 집에서 돈을 보내줄 수 있냐고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 해에도 한 번 더 돈을 보냈다. 집주인이 파산하는 바람에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했던 것도, 지금 집으로 옮기며 꽤 많은 빚이 생겼다는 것도, 급하게 돈을 구해야 했기 때문에 높은 이자를 내고 있었다는 것도, 부모님께 직접 듣지 않아도 적당히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면 집에 돈을 보낸 사람은 작가님 뿐만이 아니었다. 서로의 사정을 나누는 일은 힘이 되었다.
야근까지 12시간 일하고 그렇게 돈을 모았는데, 그 돈을 부모님께 이유도 듣지 못하고 돈을 보내야 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쉽게 번 돈이 아닌데. 부모님도 아들한테 돈을 달라고 하는게 쉽지 않을것 같다. 다만, 그래도, 말을 해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뭐 때문에 필요했다. 어디다 썼다. 고마웠다. 미안하다. 말해주면 좋았을텐데.
작가님은 12시간 일을 하고 기숙사에 돌아온 후 샤워를 하고 자격증 공부를 하고 소설이나 에세이 글을 썼다. 늘 피곤하고 졸음이 몰려왔다. 잘못하면 위험할수 있는 현장인데 시간을 쪼개썼던 작가님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잔업이 없는 수요일에는 도시로 나가 독서모임을 하고 밤늦게 돌아왔다. 피곤했겠지만, 그 시간이 참 좋았을 것 같다. 서울로 간 친구덕에 한달에 두어번 서울에가서 문화적인 행사나 모임을 경험하기도 했다.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업체 직원 사망사고, 2017년 제주 현장실습생 사망사고,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사고…등등 한번씩 청년들의 사고 소식을 듣지만,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우리들은 잘 알지 못한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대학을 가지만, 고3때 취직을 하고 일찍부터 돈을 벌고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를 해야하는 청년들의 고민과 불안과 일상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N은 아빠가 공장에서 2교대로 근무를 해서 어릴때부터 그 모습을 보니깐 조금이라도 아빠한테 도움이 되려고 공고에 갔다. 자신이 일찍 돈을 벌면 아빠가 조금이라도 편해지겠지 싶어서. 근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작업 프레스에 깔렸다는데, 그 얘기를 들으니깐 도저히 기계를 만질수가 없었다. 한동안 자신이 뭐하나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님과 한방을 쓴 N은 온종일 기타만 쳤다. 기타 연주에만 몰입했다.
62- 이제 공연은 하지 않는 거야? 응, 열정이 없어. 다른 이유는 없는거야? 그는 잠시 고민했다. 용기가 없어.(수련회에서 박효신의 ’야생화‘를 부르던 키가 190이 되던 친구 P의 대화이다.)
작가님은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 여름까지 프로 선수를 꿈꾸며 야구를 했다. 그 당시 경험했던 폭력의 경험. 결론부터 말하면, 그 시설의 기억이 작가님을 더 단단하거나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폭력에 훨씬 예민한 사람이 됐다. 야구부를 그만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공기처럼 떠도는 폭력에 적응하지 못한 탓도 있었다.
227 - 설명할 게 많다는 건, 그만큼 차별받고 있다는 거라 생각해. 아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안하는 거지.
인문계를 가지 않고 고3때 취직을 하고 19살 부터 돈을 벌고 군대 대신 산업기능요원으로 직장에서 근무하면서 자신의 삶을 상상하지 못하는 어른이나 또래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설명을 요구 받았을까. 공고를 간 많은 청소년과 청년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들의 삶이 궁금하고 그들의 고민과 불안, 방황, 공허, 미래가 궁금해졌다. 작가님이 그 물꼬를 터 주신것 같아 감사하고 반갑다. 작가님의 다음 책이 또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