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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년 동안 살았던 아이 - 조현병 엄마와 함께
나가노 하루 지음, 조지혜 옮김 / 낮은산 / 2023년 12월
평점 :
만 년 동안 살았던 아이: 조현병 엄마와 함께(나가노 하루)
누나의 조현병을 20년 넘게 기록한 다큐 <어떻게 해야 했을까>를 보고 큰 인상을 받아서 집에 사두었던 책 <만 년동안 살았던 아이>를 꺼내 읽었다. 엄마에게 조현병이 있었고 저자는 그로 인해 제 2형 양극성장애를 얻어 평생 그 병과 사투를 벌이며 일상을 일으키고 있는 이야기를 담았다. 제 1형 양극성 장애는 흔히 말하는 조울증에 해당하고 조증의 기간이 길다. 제 2형 양극성장애는 경조증과 우울증이 동반하는데, 우울증 기간이 길고, 나의 29년간의 우울증도 제 2형 양극성장애에 해당했던것 같다.
저자는 79년생으로 나(77년생)와 비슷한 나이인데다 결혼도 했고, 제 2형 양극성장애를 오래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책에 쉬이 몰입이 되었다. 친밀감이 들었다고 할까.
엄마에게 조현병이 온 것은 저자가 여덟살때이다. 충분히 부모로부터 돌봄을 받아야 할 시기에 오히려 여덟살 아이가 엄마를 돌보는 역할을 해야 했었다. 저자는 자신을 ’만 년 동안 살았던 아이‘로 굳게 믿었다. 스스로를 ’황금의 몸과 만 년의 마음‘을 지닌 신과 같은 존재라고 믿지 않고서는 살아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여덟살 아이의 생존전략이었던 셈이다. 다만 어린 시절을 어린아이로 살지 못하고 누구보다도 어른으로 산다는 건, 바꿔 발하면 영원히 아이로 살아왔다는 말이기도 하다.
17살에(1996년 1월) 오하라 선생님에게 진찰 받았던 때를 저자는 처음으로 땅위에 내려온 것이라 표현했다.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학교에 가기 힘들정도로 아침만 되면 과호흡증상에 피곤, 메슥거림, 설사, 몸이 축 늘어짐, 진땀, 복통, 두통, 불면증까지 온갖 증상이 나타나게 되어서 이다. 남의 눈치를 너무 살피는 것도 ’만 년 동안 살았던 아이‘ 시절에 키워진 ’엄마의 기분을 살피는 능력‘이 폭주했기 때문이다. 만 년 동안 살았던 아이로 산다는 건, 원래는 어른이 되어서 써야 할 힘을 아이 시절에 몽땅 써버리는 것이다. 유년기 시절에 기본적으로 익히는 사회성을 전혀 학습하지 못하고 아이인채로 어른의 외형만 가지고 살아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나도 중고교, 대학교 시절에 익히고 경험하고 배워야하는 사회성과 관계성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중학교 2학년인 아이인채로 어른이 되었고 막상 대학에 들어갔지만, 모든 것을 나 스스로 해야하는 그 자유가 내게는 너무나 큰 두려움과 망막함이었음을 기억한다. 20대 후반에 개인상담을 시작하며 그때부터 유년기와 청소년기 청년기에 익히지 못한 것들을 30즈음부터 몸으로 부딪히며 하나하나 익히고 배워갔었다.
저자는 스물여섯에 남편을 만나 스물일곱 살에 본가를 나왔고 자조모임에는 주 2회 참여한다고 한다. 자조모임에서의 경험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건 아직 용기가 나지 않아 자세히 서술하진 않지만, 저자가 자조모임에서 배워갔던 것들이 내가 개인상담, 집단상담을 통해서, 다양한 소수자성을 가진 이들의 에세이를 읽으며, 몸으로 세상과 부딪히고 넘어지며 체득한 지혜들과 내용이 비슷해서 울컥했다. 자조모임에서 경험과 배움을 나아중에 용기가 생겼을때 에세이 작업으로 따로 풀어주시면 이런 상황의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저자는 자조모임에서 다양한 심리적 힘듦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알코올 의존중 부모가 있는 사람, 학대를 받았던 사람, 자녀를 가혹하게 대했던 부모와 만나기도 했다. 영화 <매그놀리아>를 보며 각자의 큰 힘듦이 있는 10여명의 주인공들을 보며 위로를 받았던 것처럼 나혼자만 이렇게 억울하게 힘든게 아니라는 위로를 받은 셈이다. 나의 힘듦 속에 빠져 있을땐, 넓은 시각으로 나를 보지 못한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억울하고 불쌍하고 힘든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조금더 멀리서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면 나와 똑같은 사례는 아니지만, 세상에는 무수히도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겪게 된 상황들이다. 물론 행복한 사람들도 많지만,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다. 살아간다는 건 고통이 기본값이 라고 생각한다.
나의 부모도 취약했고, 저자의 엄마, 이모도 조현병이 있었다. 저자의 언니도 저자도 공부를 잘했지만, 두 자매는 우울증을 얻었다. 부모도 취약했고 그래서 그런 부로로부터 제대로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부모를 돌보다 보니 어린 나를 스스로 돌보는 능력을 습득하지 못하고 평생 아이로 살아온 셈인 것이다. 그건 어쩔수 없는 부분이다. 되돌릴수 없다. 나의 이런 우울의 습성과 감정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이 되어 뇌에 각인이 되어 있다. 부던히 노력해도 다시 무너지고 뒤로 돌아가고 실패하는 것은 오랜시간 내 뇌에 각인이 되어서이다. 그러니 좌절할 필요가 없다. 나의 심리적인 불안과 우울증은 그것이 만들어진 시간보다 곱절로 애를 써야 괜찮아 질까 말까이다. 원래의 괜찮은 나로 돌아갈수는 없다.(원래라는게 과연 있는걸까?) 이런 심리적인 불안과 우울증을 안고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생존법을 오랜시간에 걸쳐 배우고 실험해보고 만들어가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당연히 힘든 과정이고 자주 좌절하고 절망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도 우울증에서 벗어나 안정적으로 생활하기 까지 29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극복했다라는 말은 우울증에서 쓰진 않는다. 나의 우울증을 잘 관리하며 살아가는 것 뿐이다.
도와달라고 말하지 않으면 도움의 손길은 다가오지 않는다. 물론 그 도움이 내 고통의 본질을 해결해주진 않고 결국 본인이 직면하고 수용하고 직시하고 받아들이는대서 출발해야 하는 것은 절망스러운 대답이겠지만 진실이다. 저자는 도와달라고 요청하지 않고 그냥 싸워 버렸다. 변변한 무기도 없이 고군분투 했다. 8살 아이에게 어떤 사회적인 대처술과 무기가 있었겠는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비뚤어진 자신을 받아드리고 살아가기란 노력으로만 되는 일이 아니다. 세월이 필요하다. 양극성장애는 파도처럼 나빠졌다가 다시 좋아하지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태가 반복된다. 삶에 농락당하는 자신을 돌보는 것조차 싫어질 정도로 자포자기에 빠진다. 돌보지 않으면 계속 황폐해질 뿐인데도, 막을 기력조차 내지 못할때도 많다.
저자는 평생 낫지 않을 병 두가지를 등에 짊어지고 있다. ’만 년 동안 살았던 아이‘라는 병, 그리고 제 2형 양극성장애. 이 두가지 병은 제대로 잘 성장하지 못해 짊어지게 된 저자의 취약점이라고 말한다. 불공평하다고 원망한 적도 있다. 왜 나는 건강한 부모에게서 태어나지 못했을까 하고. 하지만, 지금은 원망하지 않는다. 저자의 마음은 비뚤어진 채 성장했다. 비뚤어진 마음 형태는 이제 되돌리지 못한다. 비뚤어진채로 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절망하고 지쳐버린 날도 많았다. 왜 나 같은 인간으로 살아야만 하는가 하고 자문한다. 가능하다면 과거로 돌아가, 여덟 살이었던 나를 구해 주고 싶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나는 나로 살아야만 하니깐.
책은 현재의 저자가 여덟살의 나에게 하는 말로 마무리 한다.
270- 이제야 여덟 살의 내게 말을 겁니다. 고마워, 용케 버텨냈구나. 애썼어. 네가 ’만 년 동안 살았던 아이‘이길 선택함으로써 나는 지금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어. 후회는 없어. 정말로 고마워. 내가 그때의 너와 만날 수 있다면, 무엇보다 먼저 꼭 안아 주고 싶어. 그렇게 고독하고 불안하고 부끄럽고 괴로워하는 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