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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서바이버
나가타 도요타카 지음, 서라미 옮김 / 다다서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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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서바이버(나가타 도요타카 지음)

저자의 아내는 섭식장애가 있고, 알코올 의존도 있어서 정신병원에서 입퇴원을 30번 넘게 했다. 저자는 그 곁에서 20년을 함께했다. 저자는 신문기자로 동료가 아내의 상태에 대해서 글로 기록을 해보라 권했고 아내도 혼쾌히 동의해서 2018년에 총 6회에 걸쳐 아사히 신문 디지털판에 “아내는 서바이버”로 연재를 했고 그 후 4년에 걸쳐 글을 더하고 수정해서 나온 책이다.

아내는 가정폭력피해자였고, 어머니도 딸의 상처를 외면했고 딸을 장애물처럼 여겼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섭식장애가 있었다. 아내에게 위 속의 남은 음식을 한꺼번에 토해내는 순간, 폭력도 폭언도 잊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내가 29년동안의 우울증 시절, 잠과 무기력으로 도피했듯이 아내에게도 섭식장애는 생존하기 위한 자기만의 방이었다. 아내는 저자를 만나기전에 한번 결혼을 했는데 상대는 지배욕이 강한 사람이고 충동적인 사람이라 결혼 한달만에 이혼했다. 2년후, 아내는 저자와 결혼하고 부모와 연을 끊었다. 아내에게 다시 섭식장애가 생겨난건 결혼한지 4년째인 2002년, 아내는 29세 남편은 34세 때였다. 남편은 요미우리 신문사에서 아사히 신문으로 이직을 했는데 남편의 불규칙한 근무와 낯선 곳에서 집에 홀로 남겨진 아내는 꽤 불안했을 것이고 그렇게 다시 섭식장애가 시작되었다.

아내의 한밤까지 이어지는 과식과 구토, 무턱대고 폭발하는 감정, 파탄 직전의 살림, 공황장애 때문에 도시중산층이던 저자는 아내의 병 이후 ‘사회적 소수자’가 되었다. 세상의 약자들이 기자인 그의 눈에 들어왔고 빈곤, 다중 채무, 자살예방들을 취재해 2007년, 2009년 빈곤저널리즘상을 수상했다. 아내는 2008년 들어 알코올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저영양으로 인해 아내의 몸무게는 24~28kg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2013년에는 남편이 동석한 가운데 4년간 상담이 계속되었고 남편도 아내의 간병에 지쳐 정신과 클리닉에서 상담도 받고 일을 잠시 쉬길 권유받아 3개월간 휴직하며 무위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아내는 건망증도 심해지고 2019~2020년에는 양발 대퇴골두괴사증이 악화되어 휠체어 생활을 했다.

20년동안 저자는 아내의 죽음을 의식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하지만 아내의 살려는 몸부림도 차츰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책은 얇은 편이고 글도 기사처럼 건조하다. 20년 동안 아내의 마음과 생각들이 궁금했다. 아내의 옆에서 20년을 지킨 남편의 마음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사랑? 연민? 이혼을 하면 아내는 더 낭떠러지로 떨어질것이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책임감? 20년동안 있었던 일을 관찰하듯이 쓰기보다 에세이처럼 어떤 마음과 생각들이 오갔는지 구체적으로 적어주었다면 비슷한 경험을 겪는 사람에게 좀더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책이었다. 이들부부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서 관련글을 찾아보았지만 일본분들이라 그런지 작가의 인터뷰도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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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이랑 지음 / 이야기장수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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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이랑 지음)

이랑이라는 아티스트에 대해서 그렇게 잘알지 못했고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의 에세이와 만화를 한권정도씩 읽어본 정도? 책 시작에 ‘죽기 살기로’ 쓴 책이라고 말하고 다른 창작물들보다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발표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한다. 지인들의 죽음의 연대기이기도 하다.

이랑의 언니가 2021년 자살했다. 2016년에는 오랜친구 M이 자살했다. 2019년에는 소중한 동갑내기 친구 D가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중 2020년에 사망을 했다. 이랑은 2021년에 자궁경부담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다. 2023년에는 양쪽 눈에 희귀병 진단을 받고 최근까지 세 차례 수술을 받았다.

책 마지막에는 이랑의 연대기가 적혀 있다. 15세 고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자 말자 자퇴를 하고 40세인 지금까지 너무나도 많은 작업을 하며 살아왔다. 그 연대기만 보면 60~70대 작가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정도다. 이랑은 어릴때부터 말하기를 좋아하고 혼잣말을 하다가 노래를 만드는 창작자였다. 혼자 공부해서 검정고시를 쳤고 두번이나 홍대 미대 회화과 입시를 준비했지만, 2번다 실패. 19세에 한예종 영화과 입시를 합격했다. 23세에 임신, 임신중절 수술의 경험이 있었고 웹드라마도 제작하고 영화도 찍고 수업을 하는 선생님이기도 했다. 31세에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노래상’을 수상하고 32세에 학자금대출 전액을 상환했다. 36세에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 ‘최우수 포크음반’ 상, 서울가요대상 ‘올해의 발견상’을 수상했다. 2025년에는 20년간 함께한 고양이 준이치가 사망했다. 26년은 그녀 나이 40이다. 영화감독, 음악가, 에세이시트, 만화가, 선생님, 페미니스트, 소설가이다.

그녀에게 집은 억압의 공간이었던거 같다. 맘껏 울수도 없었고 감정을 누르기만 해야하는 곳. 그래서 이랑은 일찍 집을 나왔다. 그러나 언니 이슬은 집을 떠나지 못하고 엄마와 아버지를 챙겼다. 이슬은 중학교때부터 밤을 새워 집에 있는 책들을 거의 읽었고 단국대 사범대에 수석으로 입학한 뒤엔 낮엔 장학생으로 공부하고 저녁엔 아르바이트로 과외하고, 밤엔 클럽에서 춤추며 억압된 감정을 발산했다. 이슬은 20대부터 우울증약을 먹었다. 이랑은 언니의 죽음이 자살이라기보다 힘이 다 빠져 죽은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소진사? 이랑이 일찍이 원가족을 탈출해 거리감을 둔것처럼 언니 이슬도 원가족의 상황들을 모른척하고 외면하고 거리감을 두었다면 이랑처럼 자기 삶을 계속 살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이랑이 기억하는 어릴적 엄마는 항상 우울하고 자주 울고 소리지르고 신경질 나 있고 누워있는 모습이었다. 아빠는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을뿐더러 공공연하게 바람을 피우고 가끔 집에 와서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부수는 그냥 괴물일 뿐이라고 기억한다.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이 이랑이 쓴 이야기라면, 부록으로 함께 받은 <이랑 엄마 김경형의 이야기>는 엄마가 쓴 자기 이야기이다. 소책자를 읽어보면 엄마도 아빠도 자신들의 원가족과 거리감을 두지 못했고 원가족의 영향아래 우울하고 힘든 사람이었다.

이랑은 2016년부터 돌연히 시작된 연속된 죽음을 도저히 소화할 수가 없었고 죄책감으로 괴로웠고 무력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 몸과 시간을 바쳐 열심히 도왔다고 고백한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계속 죽어 사라졌다.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게 싫었다. 이전에는 거울을 보는 것, 스스로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온갖 미디어로 기록하는 것이 중요했는데 무기력하고 지쳐서 더는 볼 수가 없었다. 돕다보니 도움을 청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찾아왔다. 언제가부터 이랑은 ‘돕는 사람’이 되어갔다. 이랑은 모든 사람을 도울수가 없다. 원가족을 탈출해 거리감을 두었던 것처럼 자신에게 아픔을 털어놓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구원자가 될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고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예전에 오은영박사의 프로그램에 나온 홍석천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퀴어계에서는 시조새 겪이다보니 불안한 어린 친구들이 자신에게 고민상담을 끊임없이 털어놓았고 그걸 다 들어주지 못하고 도움이 되지 못하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오은영박사는 홍석천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에게 구원자가 될수 없음을 지적했다. 나도 29년간의 우울증 경험이 있다보니 내게 우울증의 경험을 털어놓는 사라들이 많다. 한번은 생각을 해봤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중에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사람이 생길수도 있지 않을까. 냉정하지만 그건 내 잘못도 아니고 내가 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줄수는 없다는걸 인지해야 한다. 이랑의 가난, 죽음, 불안과 고통을 직시하며 말과 노래의 쓰임을 고민하는 아티스라고 자신을 말하지만 자신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친구들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한계를 직시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이랑이라는 아티스트에 대해서 잘 모른다는 생각에 유튜브에서 이랑을 검색해서 이랑의 음악과 인터뷰를 찾아 보았다. EBS 스페이스 공감을 봤다. 음악이 좋았다. 이랑이 말하듯 예술은 구원이 될수 없고 위로를 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게 예술의 기능이자 한계이기도 하다. 타인의 아픔에 공명하는 것은 좋지만 그 한계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언니 이슬은 엄마와 아빠의 아픔에 공명해서 그 책임감으로 그렇게 열심히 살다가 소진사를 했다. 그래서 안타깝고 슬펐다. 이랑의 동갑내기 친구가 암투병을 할때 그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프로젝트 때문에 1년을 쉼없이 일했고 오히려 친구랑 함께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한다. 가난한 이랑이 가난한 친구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1년을 정신없이 일하다가 소진되었다. 그때 당시에는 친구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 생각해서 그렇게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매진하기 보다 친구랑 시간을 더 보냈어야 했나라고 질문하고 회의한다.

이랑의 작업실에는 오랜시간동안 써온 일기장 노트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무언가 오래 기록하는 행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 한번씩 그 일기장을 들쳐보면 하지 못한 작업들이 너무나도 많다고 한다. 이랑은 참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아티스트이고 나이가 들어가며 더 성숙한 아티스트가 되어갈 것 같다. 인터뷰에서 본 이랑은 할 일정들이 너무 많은 빡빡한 스케줄의 아티스트였다. 어떻게 그런 많은 일정들을 소화할수 있는지 경이롭게 느껴졌다. 지인들의 죽음을 목격했고 자신도 자궁경부함 수술을 받았고 시력도 안좋아졌으니 이제는 자기몸을 돌보며 느린속도로 작업하는 아티스트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40대의 이랑을 보고 싶고 50대 60대의 이랑을 보고 싶다. 많은 이들을 위로하는 아티스트로 오래 보고 싶다. 자신을 돌보고 살피고 위로하는 작업도 동시에 같이 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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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서툰 사람들 - 불가해한 상실 앞에 선 당신을 위한 심리학자의 애도 강의
고선규 지음 / 아몬드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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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서툰 사람들(고선규 지음)

부제는 ‘불가해한 상실 앞에 선 당신을 위한 심리학자의 애도 강의’ 이다.

29년의 우울증 기간동안 죽고 싶은 생각을 많이 했었다. 우울증이 심해질때면 늘 자살 생각을 했었다. 여기서 ‘자살’이라는 단어를 일부로 쓴 것은 이 사회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터부시 되지만, ‘자살’이라는 단어는 더욱 더 터부시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죽음’이나 ‘자살’이라는 단어를 쓰기 꺼리는 것은 그것을 이야기하고 다루는 일이 두렵고 무섭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울증 기간이 길다보니 우연한 기회에 책을 읽으며 ‘자살사별자’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자살한 사람 주변의 사람들을 ‘자살사별자’라고 일컫는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터부시 되는 사회이기에 자살사별자들은 자신의 슬픔을 제대로 이야기 하기가 더욱더 쉽지 않다. 자살사별자들 또한 심적 고통을 오래오래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고선규 선생님을 알게 된 건 고선규 선생님의 <우리는 모두 자살사별자입니다>라는 책을 통해서이다. 얇은 책자인데 우리 사회에 ‘자살사별자’ 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책이다. 그리고 이어서 <여섯 밤의 애도>라는 책을 읽었다. 애도 작업을 하고 있는 다섯분의 자살사별자들과 함께 여섯 밤의 애도 시간을 가진 책이다. 우리 사회는 타인의 고통을 인내하는 걸 힘들어하는 사회이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자신의 슬픔을 온전히 다 이야기하지 못하게 오히려 입을 닫아라고 외치는 사회이다. 물론 누군가의 아픔을 바라보는 일은 힘든 일이다. 쉽게 조언하고 시간이 약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들이 빨리 회복되어 그들의 고통을 오래 보고싶지 않은 마음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가까운 사람이 죽었는데 그 치유와 회복이 어떻게 빠를수가 있겠는가. 누군가는 3년만에 일상생활이 가능하게 돌아오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10년이 지나도 힘들어 한다.

<슬픔이 서툰 사람들>은 애도와 상실에 대한 영화 열편을 골랐다. 영화속 주인공들이 내담자가 되어서 상담 선생님에게 자신의 사연과 고민을 털어놓으면 고선규 선생님이 상담실에서 내담자를 대하듯이 영화주인공에게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세번째 챕터에서는 영화속 주인공과 관련된 상실과 애도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 준다. 열편의 영화중 두 편만 본 영화였다. <아무르>를 예전에 봤을때는 존엄한 죽음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만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는 상실과 애도를 타인들과 함께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관점으로 제시해주어서 좋았다. 고레에다 히코카즈의 장편데뷔작인 <환상의 빛>도 상실과 애도의 측면에서 다시 반추해보았다. 집에는 넷플릭스와 쿠팡 OTT만 있어서 그중에 블랙 미러 시리즈2의 “돌아올께”편을 봤고, 쿠팡에서 1400원 대여를 해서 <매스>를 짝지랑 같이 봤다. 나머지 여섯 편도 기회가 있으면 보고 싶다.

에필로그 글에서 영화 <스틸 라이프>를 소개해 주셨다. 런던 구청에서 일하는 공무원 존 메이는 무연고 시신을 처리하는 업무를 한다. 존은 무연고 시신들의 사연을 찾아 정성을 다해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지만 구청입장에서는 아무도 찾지 않는 시신에 들어가는 비용이 많다는 이유로 그를 해고한다. 사회에서 지워진 존재들. 정상적이지 않다고 여겨져 무시되는 사람들. 우리들은 사회에서 버려지지 않으려 무단히 애쓰고 괜찮은 척 연기하며 살아간다. 사회에서 지워진 존재에 대한 애도는 어떻게 보면 내 안의 그런 요소들에 대한 애도이기도 하다. 얼마전에 읽었던 <양양>에서 가족의 역사속에서 지워진 고모의 흔적을 추적하던 감독님의 모습도 존이 하는 역할과 비슷하게 여겨진다. 죽음은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오는 것이 아닌데도 늘 외면하며 살아가다가 어느날 막닥드리게 되면 당황하고 억울해 한다. 짝지랑 나랑 건강하게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지만, 어느날, 1년 혹은 2년뒤에 짝지에게 큰 병이 생길수 있음을, 내가 어느날 시한부 선고를 받을수 있음을, 짝지나 나 중에 크게 다쳐 장애가 생길수 있음을 한번씩 생각해 본다. 우리 모두 오래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그건 이 세상 누구도 알수 없는 일이다. 내 부모의 죽음을 생각해 보고 돌아가시기 전 까지 어떻게 애도하고 상실을 받아들일지 미리 공부해둘 필요가 있다. 부모의 죽음을 형제들과 미리 이야기하는 것은 부모에 대한 무례가 아니다. 잘 이별하기 위한 준비이고 돌아가시기 전 까지 충분히 사랑하고 시간을 잘 보내려는 노력이다.

279페이지에 있는 고선규 선생님의 글로 리뷰를 마무리 하려고 한다.

“죽음은 본질적으로 ‘관계적 사건’ 입니다. 사별자들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의 슬픔을 안전하게 담아낼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상실의 슬픔이 억눌리지 않게 관계속에서 철철 흘러나오길 바랍니다. 슬픔이 흐를 수 있는 사회는 악하지 않습니다. 슬픔이 흐를 수 있는 관계는 치유적입니다. 상실의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을 마주하고 다시 꺼내어 충분히 아파한 뒤 기꺼이 살아낼 용기를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저 역시 계속 애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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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죽을 복 - 순리대로 살다 깔끔하게 가겠다는
신문자 지음 / 한사람연구소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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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죽을 복(신문자)

예전에 우울증을 검색해서 관련된 책을 자주 찾아 읽을때가 있었다. 2022년에 <아버지가 우울증에 걸렸습니다>를 읽었다. 여성들의 글을 책으로 엮어내는 ‘아미가’라는 e북 출판사에서 나온 책인데 읽고 후기를 썼었다. 작가님에게 디엠을 드린 것인지 그냥 후기를 올린 것인지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다. 작년 말에 신문자 선생님으로부터 디엠이 와서 이번에 나온 책을 보내드리고 싶다고 해서 감사히 받았었다. 출간일 전에 받아본 책이다. <엄마의 죽을 복>

신문자 선생님의 엄마 박순철님은 어느날 파킨슨과 췌장암 3기 진단을 받았고 이 책은 어머님과 아버님을 돌본 기록이다. 어머님이 아프시면 아버지가 어느정도 돌볼 여력이 있으면 괜찮을텐데 작가님은 아버지도 함께 케어해야 했다. 아버지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열네 살 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해 평생 쉴틈 없이 일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2년만에 아버지는 여든을 얼마 안남기고 삶의 의지를 잃어버렸다. 소위 자식들 모두 잘 키워 내고 먹고살 만한 시점에 아빠는 우울증에 걸린 것이다. 아빠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고 친목계나 종친회 총무도 도맡았었다. 관절 문제로 고관절부터 발가락까지 크고 작은 수술을 한 엄마와 달리 아버지는 심각한 병을 앓은 적이 없었다.

어머니를 돌보는 기간동안 대학병원 두 곳, 노인 요양병원 한 곳, 암 전문 요양병원 한 곳, 요양원 연계병원 한 곳. 총 다섯 곳을 돌았다. 병원과 병원 사이에 응급실 두 번, 입원은 하지 않고 상담만 받은 호스피스 병원도 세 곳이 더 있다. 완치를 바라는 것이 아닌 엄마가 사는 동안 덜 고통스럽도록 암이 전이 되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 항암치료를 선택했다. 항암치료는 문제 세포만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 세포 또한 공격을 하는 것이라 온 몸을 초토화시킨 뒤 다시 회복을 기다리는 시스템이다보니 치료전보다 엄마의 몸이 더 쇠약해진것에 작가님은 다른 선택을 했다면 하는 미안함 혹은 죄책감을 느끼셨다.

암 전문 요양병원은 4인실 기준으로 월 400만원에서 시작한다. 어머니 처럼 거동이 어려운 경우 병원에서는 개인 간병인을 필수로 요구한다. 간병비는 1일에 13만원, 7일에 91만원. 월 364만원이 들어간다. 여기에 환자의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각종 주사는 따로 금액이 책정된다. 요양 목적으로 보기 때문에 보험 혜택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보험으로 받은 암 진단료 2000만원과 아빠에게 받은 1000만원을 마련해 그 돈으로 야금야금 병원비와 간병비를 충당했다. 암전문 병원에서 5개월 동안 병원비로 2300만원, 간병비로 1950만원 총 4250만원을 썼다.

p196~197 - 그래서 요즘 나는 ‘곱게 늙은’ 이라는 말이나 ‘젊은이 못지않은 노인’ 이라는 말이 고깝다. 그 말만큼, 곱지 않게 늙거나 젊은이와 달리 늙고 병든 노인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나 사람들의 시선은 더 냉정해지는 것 같아서다. 곱지 않은 노인을 마치 자기 관리에 소홀한 사람으로 취급하거나 병든 것이 마치 천벌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sns에 보면 30대 같은 외모를 가진 50대 60대 여성 남성의 릴스를 종종 볼때가 있다. 멋지다기 보다는 늙음을 거부하는 이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슬한 기분이 들곤 했다. 내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내 나이답게 늙어보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말이다.

많은 사람에게 어떻게 죽고 싶으냐고 물으면 ‘병원에서 짧게 머물고 죽었으면 좋겠다’ ‘정신을 잃기 전에 내 죽음의 방식을 결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상태로 송장처럼 오래 누워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답하지만 자신의 부모에 대해서는 그러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있다. 부모의 자녀로서의 마음보다는 그래도 부모의 마음을 따라드리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싶다.

오늘 퇴근할 즈음에 엄마로부터 “오후에 약속이나 일정없으면 집에 올레? 별일은 아니다”라는 문자가 왔다. 짝지에게 엄마 집에 잠시 들렸다 간다고 전화를 하고 엄마 집에 갔다. 엄마(78)는 홀어머니(99) 밑에서 자랐다. 그래서 늘 모든 고민을 혼자서 끌어 안고 78년을 살아오셨다. 어떤 걱정이 생겼는데, 이제는 혼자만 안고 고민하지 않고 자식에게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싶어 문자를 보내신거였다. 간단한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1시간 넘게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의 죽음, 할머니의 죽음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년전에 연명치료 거부 서명도 했다고 하셨다. 나도 엄마가 궁금해 하는 부분에 대한 답을 알고 있지는 않아서 나도 집에가서 짝지에게 이야기 하고 같이 관련 정보를 찾아보겠다 했다. 엄마는 예전엔 죽음이라는게 조금 두렵긴 했는데, 이제는 언제가도 아쉽지는 않다고 하시며 내게 죽음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셨다. 물론 자신은 오래 살려고 병원도 부지런히 다니고 그러실꺼라 했다.

작가님의 어머님은 이 책이 나오고 한달 정도 지나서 임종을 맞으셨다. 작가님의 인스타에 올라온 부고 소식을 보고 알았다.

p275- 내가 가까스로 도착한 생각은 죽을 복이 없어도 괜찮다는 것 정도다……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좌절이거나 패배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니, 몸이 병든 엄마와 마음이 병든 아빠 모두 특별한 불행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살아 내야 할 하루, 그리고 하루가 있을 뿐이다.

책 후반부에 그래도 괜히 항암치료를 했다고 후회하고 죄책감을 크게 가지시기보단 어머님의 늙음과 병듦을 받아들이시는 모습에 조금은 안심이 되기도 했다. 작가님은 어머님과 아버님의 돌봄기간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이다. 어떤 것이 조금 더 나은 선택일지 형제자매들과 의논하고 고민하셨다. 무거운 돌봄의 시간에 함께하는 형제자매들이 있어 다행이라고 말씀하셨다.

p276-‘엄마, 요양원 침대에서 사는 것도 죽는 것도 아니게 살아도 괜찮아.’
‘엄마, 엄마가 지금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 든든해. 그러니 너무 속상해하지 말자. 그래도 괜찮아.‘
’아빠, 엄마 없이 그렇게 잘 견뎌 줘서 고마워. 밥만 겨우 해 먹어도 괜찮아.‘
’아빠, 사람 만나기 싫고 집 안에만 있고 싶으면 그렇게 있어도 돼. 괜찮아.‘
’엄마 아빠가 하루 그리고 또 하루 주어진 날을 살아 내는 것만으로도 장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엄마 아빠,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마지막 구절을 보고 나도 크게 위로 받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자기 부모의 병듦과 죽음을 지켜보는 과정은 쉽지 않을텐데 작가님의 경험을 공유해 주셔서 정보적으로도 마음적으로 큰 도움과 위로가 되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아플때 나는 어떤 고민과 선택을 해야할지 참조가 되는 책이었다.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어머님 박순철님의 명복을 빌고 아버님 신동주님도 무기력하더라도 잘 지내시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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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맨손문고 2
이지원 지음 / 곳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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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이지원)

지원쌤을 문학의 곳간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합천에서 독서모임을 하러 부산까지 온다고? 그 원동력이 궁금했다. 대성쌤이 하는 글쓰기 수업에 여러차례 참석을 했고, 곳간에서 나온 <살림문학(2024)>에 징원쌤의 글이 많이 실렸는데, 지원쌤에 대한 호기심으로 지원쌤 글만 우선적으로 먼저 찾아 읽었다. 다른분들의 글도 좋지만, 지원쌤의 글이 내게는 흥미로워서 더 관심이 갔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글방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신앙인임에도 불구하고 다양성과 소수자성의 이야기에 열려있는 태도가 있는 분이라 오히려 지원쌤의 관점과 이야기가 궁금해서 매번 곳간 모임을 기다렸다. 아버님의 사랑을 흠뻑 받았고 직장암4기를 선고 받고 아버지 곁을 지킨 경험이 있다. 부모로부터 그런 사랑을 받은 경험이 없는 나로서 지원쌤의 경험이 궁금하고 신기했다. (물론 나는 짝지로부터 충만한 사랑을 받았고 받고 있다. 충만함의 성격으로는 비슷한 거 같다) 대성쌤이 맨손문고 시리즈로 얇은 책을 두 권 내는데, 지원쌤의 책이 한권이라 해서 너무너무 읽고 싶었다.

<살림문학>에서 읽었던 글도 좋았지만, 더 깊이 들어가고 분량도 조금 더 긴 글들을 만날수 있어 좋았다. 글을 계속 쓰시다가 또 다음 책이 엮어 나온다면 그 책은 묻지 않고 사서 읽고 싶은 글이었다. 아버님에게서 받은 사랑, 아버님을 향한 애착, 아버님의 마지막을 곁에선 지킨 이야기가 한권의 책으로 엮여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내 일상을 구체적으로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글을 종종 쓴다. 궂이 그런것까지 디테일하게 쓸 필요가 있나 싶을정도로 평범한 일상속의 어떤 이야기들을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선택하는 방식이다. 타인에게 말걸기에 필요한 일상의 디테일 묘사다. 지원샘이 사시는 곳은 합천이고, 살림과 양육을 하고 사각사각이라는 글방을 2017년부터 운영했고, 시골에서의 생활은 단조로움에도 불구하고 지원쌤의 글은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만나는 것 같은 기분이라 좋았다. 살림의 일상속에서 폄범한 속에서 비범한 것들을 발굴해 내는 시선이 있다. 그래서 그녀의 활동반경이 그리 넓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글 하나하나가 흥미롭고 흥미진진하다. 고요하고 평화로운데 그안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읽힌다.

중1, 여덟살 딸 두 명과 일곱살 막내아들과의 생활을 읽었다. 그 아이들은 참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은 범생이스럽고 성실하게 살았지만, 아이들은 그러지 않기를 바라면서 아이들 각자가 자신의 경험으로 삶을 살아갈수 있도록 자녀들과 거리감도 적절히 두려고 한다. 첫째가 지니는 무게감을, 둘째가 중간에 낀 자녀로서의 느끼는 눈치, 긴장감, 그래서 어른스러울수 밖에 없는 것을, 누나들과는 다르게 조용하고 에겐남 같은 막내의 특성들을 잘 이해하고 그 특성에 맞게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양육방식은 무엇언지 고민하는 양육자다. 아이들이 놀이처럼 책을 읽고 마이쮸와 뒹구는 아이들의 소란함이 있는 독서교실‘사각사각’을 운영한다. 한번도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생각없이 함께 책을 읽고 즐기고 대화를 나누다가 공감하고 질문하는 선생님이다. 강남 대치동에서 강사로 일할때는 생각할수 없는 시골이기에 가능한 교육방식이지만, 요즘은 시골도 입시의 압박을 무시할수 없기에 그녀의 교육방식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선명한 글도 있고 모호하고 불안정하고 잡히지 않는 글도 있다. 나는 선명한 글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책 뒤쪽에 실린 불안함과 혼란의 마음들을 잡아보려는 글쓰기도 좋았다.

95p - 무엇을 드러내고자 함이 아니라 가리고자 하는 글쓰기. 쓰고 싶은 무엇을 쓰려는게 아니라 쓰고 싶지 않은 무엇을 외면하기 위해 쓰는 글.

곳간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회피하고 외면하는 지원쌤을 만난다. 그런데 아마 지원쌤은 그 주제들을 오랫동안 천착해가며 글로 자기 마음을 잘 퍼올릴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의 지원쌤의 글쓰기도 기다려지고 궁금해진다.

세 아이를 키우며 자기 시간을 내어 글을 계속해서 써내는 것은 특별하고 대단한 일이다. 나도 내 일상속에서 부러 시간을 내어 운동을 하고 그림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일상을 담은 글을 쓴다. 지원쌤의 이야기와 내 이야기가 전혀 결을 달리하기도 하지만, 어떤면에서는 만나는 느낌이 든다. 합천이 아니라 양산이나 부산, 경주, 울산에 사셨다면 아마 차한잔하며 이야기 나누고 싶어 달려갔을지도 모른다. SNS도 안하시기 때문에 내가 지원쌤을 만나는 기회는 한달에 한번 곳간이 유일하다 그녀가 들려줄 이야기가 기다려져서 한달을 설레며 기다린다. <사각사각>을 읽으니 이지원 유니버스를 조금 만난 것 같아 흡족하다. 자신이 쓰는 글을 누가 읽을까 하는 생각은 글을 쓰는 사람이면 자주 하는 질문이다. 지원쌤에게 독자한명이 있다고, 그러니 누군가 읽는 글이라 생각하고 오래오래 계속 글을 써 달라고 이야기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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