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보이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박현주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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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한 작품인 <오셀로> 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쓴 작품으로 오셀로의 인물들을 1970년대 미국 워싱턴의 한 외곽의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스토리 라인과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와 새롭게 그려진 소설이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다시 쓴 작품인 만큼 먼저 <오셀로>에 대해 먼저 알고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오셀로는 <햄릿>, <멕베스>, <리어왕>과 함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한 작품이다. '오셀로'는 여러 전장을 다니며 공을 세운 흑인 장군으로 로마의 원로의원의 딸 데스데모나와 사랑에 빠진다. 둘은 결혼하려 하지만 데스데모나의 아버지 브라반시오는 반대하고 오셀로의 공적이나 주변의 말들로 인해 허락한다. 오셀로가 이아고 대신 카시오를 승진시키자 이에 원한을 품고 카시오와 데스데모나를 부적절한 관계로 오셀로에게 거짓말하고 그 말을 믿은 오셀로는 자신의 아내인 데스데모나를 죽이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이야기를 1970년데 미국의 한 초등학교로 가져온다.

백인들만 다니던 학교에 유일한 흑인으로 전학온 ‘오’와 전학온 첫날 오에게 끌리는 소녀 ‘디’, 그 흑인 소년이 못마땅해 계략을 꾸며 모두를 불행으로 몰고가는 소년 이언, 오와 디가 갈등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 필통을 이언에게 전해준 이언의 여자친구 미미, 이언이 디가 오와 양다리라고 모함한 소년 캐스퍼와 그의 여자친구 블랑카까지 햄릿에 나오는 인물들을 그대로 차용하여 오가 전학 온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잔혹한 비극으로 그려놓았다. 오셀로를 비교적 현대의 초등학교로 옮겨왔지만 뉴 보이에 나오는 시대적 배경이나 초등학생들과 교사들의 행동과 관계 속에서, 그리고 그 결말은 오셀로의 비극만큼이나 잔혹하고 깊이있다.

오셀로에는 희대의 간악한 인물로 이아고가 뉴 보이에는 이언이라는 소년으로 부활한다. 대부분 이아고의 간계를 욕하고 그에 넘어가는 오셀로를 안타까워하지만 뉴 보이에서 이언의 간계로 갈등을 일으키는 오와 디의 관계에서는 이언의 나쁜짓에 대한 분노 보다는 오라는 소년에 답답함을 더 크게 느꼈다. 이언의 이간질을 위한 계책은 조금만 주변을 돌아보고 소통했다면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오셀로가 카시오와 데스데모나의 관계에 대해, 딸기가 그려진 손수건에 대해서 조금만 알아보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비극이었던 것처럼. 오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딸기 필통이 어째서 블랑카의 손에 들어가 있는지 한번만 물어보았다면 디와의 관계는 오해를 풀었을 것이고 마지막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셀로나 오는 자신이 흑인이라는 것, 항상 차별 대우를 받아왔고 교사들 조차도 그런 취급을 하는 상황에서는 주변과의 소통은 부제될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전학을 자주 다녀 주변의 반응에 대해 적절하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오가 아주 현명한 아이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다른 환경은 오로 하여금 그런 이간질에 넘어가게 만들었다.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저지른 이언의 잘못이 가장 크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오에게 꾸짖고 또 꾸짖어 주고 싶었다. 유치한 계략과 이간질에 넘어가지 말라고. 신기한 것은 그 이야기의 틀은 몇 세기전의 이야기를 또한 몇십년 전의 시대를 배경으로 그렸고 지금 현제 읽고 있지만 깊은 공감과 감정적 동요를 많이 느꼈다는 것이다. 그것은 셰익스피어가 작품을 쓰던 몇 백년 전이나 인종차별주의가 만연했던 몇 십년 전이나 지금에 이르기 까지 인간관계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와 생각들은 비슷한 것에서 오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한 사람이 간계와 질투심으로 어떻게 추락하는지에 대해 치밀하고 섬세하게 그린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비록 고전이지만 그 속에 그려진 인간관계는 현대에 와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이런 비극도 간혹 뉴스를 장식하는 걸 보면 말이다.

오셀로의 이야기를 다른 시대적 배경과 인물상으로 옮겨와 그린 이 작품은 비단 주인공인 오와 디, 이언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인물들의 생각과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해 더욱 더 작품에 흡입력을 높여주었다. 그래서인지 길지 않는 하루 동안을 그린 이야기지만 잠자리에 읽기 시작해  새벽까지 책을 놓을 수가 없는 소설이었다. 가까스로 다음날로 미루어 두었지만 잠에 들기 전까지 너무나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었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를 재미있게 읽었다면 새롭게 탄생한 버전의 오셀로를 즐길 수 있을 소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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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씨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송은주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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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고 시작하자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거나 연극으로 본적이 한번도 없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작품인 로미오와 줄리엣을 예전과 현대 버전으로 두어번 보았을 뿐. 템페스트는 그 중 제목 조차도 낯선 작품이었다.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호가스 출판사에서는 오늘날 사랑받는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셰익스피어의 걸작들을 재해석해 다시 쓰는 호가스 셰익스피어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캐나다 출신의 대표적 베스트 셀러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가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템페스트>를 재해석해 다시 쓴 <마녀의 씨>는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  템페스트를 모르는 나에게도 굉장하고 새로운 작품으로 느껴진 소설이었다.

마녀의 씨를 읽기전 템페스트가 어떤 작품인지를 알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걸작으로 배신과 복수, 용서와 포용의 내용을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그러낸 작품이다. 실제로 책으로 찾아봤을 때는 짧은 극작품이었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이러한 템페스트를 바탕으로 현대적 배경에서의 템페스트를 그려내었다. 동생 안토니오에게 배신당해 딸과 함께 섬으로 추방당하고 마법의 힘을 얻어 폭풍우를 읽으켜 동생이 탄 배를 섬으로 조난당하도록 유인해 복수의 꿈꾸며 그들에게 고통을 주지만 끝내 용서하고 집으로 돌려보내고 자신이 노예와 부하로 부리던 칼리반과 아리엘을 자신의 일부로 포용하고 자유롭게 해주었으며 자신도 제자리로 돌아온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이러한 템페스트의 내용을 재해석하여 템페스트가 주는 교훈을 그대로 주면서 현대적으로 훌륭하게 그려내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딸마저 잃은 연극연출가 필릭스 필립스가 템페스트에서는 섬으로 그려졌던 것을 감옥으로 하여 그곳에서 복수의 날을 꿈꾸며 템페스트를 연출하고 그날이 다가오지만 고통을 받는 이들을 보며 오히려 허망함을 느끼고 그동안 자신이 집착했던 복수가 자신에게는 감옥임을 느끼고 자유로워지려 한다.

 

그가 혼잣말을 한다. "어쨌든 해냈어. 적어도 실패하지는 않았어." 어째서 이렇게 허탈한 기분이 들까?
더 희귀한 행동은/ 복수보다는 미덕에 있네. 그의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말이다.
미란다다. 그녀가 그에게 대사를 불러주고 있다. - 349p 중

 

"좋아요, 하지만 아홉 번째 감옥은요?" 8핸즈가 묻는다.
..중략..
필릭스가 설명해 준다. "연극에서 '나를 자유롭게 풀어 주시오' 라는 마지막 말을 생각해 봐. 자유로운 몸이라면 '나를 풀어 주시오'라고 말하지 않겠지. 프로스페로는 자신이 구성한 연극 속에서 죄수야. 바로 그거지. 아홉 번째 감옥은 바로 연극 자체야." -398p 중

 

요즘 가장 즐겨보는 드라마 중에 감옥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있다.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감옥에는 분명 범죄를 저지르고 들어가는 곳이지만 실은 그 너머 바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선과 악에 대한 경계가 모호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돈의 유혹에 넘어가 대신 감옥에 들어가거나 모함으로 인한 누명으로, 또는 각박한 현실을 살아보려다 실수하게 되어 들어가게 되는 등 오히려 그들을 감옥으로 보냈으면서 법적으로 아무 죄가 없는 이들이 더 악해 보였다. 필릭스가 수감자들을 이용해 템페스트를 연출하고 그 수감자들은 다소 거칠어 보이지만 실은 필릭스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자들 역시 그들 못지않은 악한이다. 그런 누군가에게 원한이 생겨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건 상대방보다 자신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뿐이고 오히려 그들과 같은 악한이 되는 길이 아닐까. 템페스트의 내용이나 마녀의 씨에서 복수를 꿈꾸며 연극을 준비하는 이야기는 이런 인간의 선함과 악함이 사회적 위치가 아닌 인간 본연의 모습이며 그 구분이 무의미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그들에게 고통을 주어 무엇하겠는가. 오히려 자신이 그 복수와 분노로 고통받는 길임을 소설에서 느낄 수 있었다. 템페스트의 프로스페로와 마녀의 씨 필릭스 필립스는 복수를 준비하고 실행하면서 그것을 깨달았고 그들을 용서하였고 그것이 미란다와 페르디난드, 앤마리와 프레디의 미래와 자신이 마음대로 조종하려던 이들을 위한 길이라는 것을, 자신도 편해지는 길이라는 걸 복수의 과정을 통해 깨달았던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어느 나라건 고전 작품은 누구에게나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작품들이 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걸작이라는 칭호를 받는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가 들어보지도 못해 읽는 것 조차 망설여진다면 그런 생각은 넣어두어도 좋을 것 같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이번 작품으로 셰익스피어와 템페스트가 얼마나 훌륭한지 그리고 그녀가 재해석한 템페스트가 얼마나 훌륭하고 재미있게 재해석되었는지를 느껴보시길. 이 작품으로 템페스트에 다가가기 쉬워지고 오히려 재미와 흥미를 느껴 그런 걱정 따위가 필요없어지게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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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이시도로, 원더풀 라이프
엔리코 이안니엘로 지음, 최정윤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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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 자신보다도 더 사랑하는 조카들을 보면서 조금은 안타깝다고 할까. 기쁘면서도 슬픈 생각이 드는건 그 아이들이 점점 자란다는 것이다. 세상은 힘든곳이고 클수록 알아가는 것이지만 알필요도, 알아선 안되는 것들도 많다. 상처도 받고 좌절도 하면서 세상을 배우고 성장하는 거라고 하지만 그런걸 모르는게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아프지 않고 청춘을 디날수만 있다면 가장 좋은게 아닐까. 그런 면에서 아이들은 아직 많은 것을 모르고 그래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누구보다 순수하고 정직하다. 한꺼풀 더 올려 생각하는 어른들과는 다르게 순수한 민낯을 보는 눈이 있다. 성장 소설은 그런 순수한 아이들의 이야기이며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단순하지만 큰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장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어른들이 읽어야할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2015년 이탈리아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캄파엘로상과 반카렐라상을 동시에 수상한 엔리코 이안니엘로의 이 소설은 그동안 읽었던 성장소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성장소설의 장점은 감동이나 배움의 크기가 큼에도 아주 쉽게 읽힌다는 것인데 이 소설은 쉽게 읽히는 편은 아니었다. 문체나 내용이 어려운게 아니라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나 국가의 문화적 차이 때문에 모르는 부분이 많기 때문인 것 같다. 1980년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그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배경이라던지 이탈리아 특유의 언어적 특징이 많이 비침으로서 다른 세대 다른 국가의 문화적 배경의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설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예를 들어 설명없이 느닷없이 등장하는 단어들의 나열은 문맥이나 이시도로 엄마가 하는 일을 연관시켜 떠올려야만 파스타면의 이름들이라는 걸 알게되거나 이시도로의 아빠가 자주 쓰는 합성어 같은 것들은 이탈리아어를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어렵데 느껴질 것 같았다.

그럼에도 소설을 읽으면서 ‘아 좋다’ 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파스타면을 만드는 엄마와 특별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공산주의 아빠 사이에서 가난하지만 사랑받는 아이로 태어난 이시도로는 탄생에서부터 특별했다. 휘파람을 불며 태어난 이시도로는 훗날 가장 중요한 친구가 되고 휘파람과 함께 성장해가는 이시도로의 이야기는 시대적 배경에서의 사건들이 나와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판타지적 동화를 읽는 듯한 환상성도 느낄 수 있어 성장소설로의 순수함도 느낄 수 있었다. 소설은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이시도로의 성장과정은 이 둘로 나뉘어 많이 다르다. 실제 있었던 그때의 대지진을 바탕으로 그 전과 후로 나누어 이시도로의 인생도 많이 달라지는데 그 과장에서 이시도로가 겪는 일과 만나는 사람들은 이시도로의 성장에서 특별하게 작용하고 그 과정에서의 이야기에서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도 많았고 배움과 뭉클함도 느낄 수 있었다.

이시도로가 성장하며 대지진으로 가족들을 잃고 그 충격으로 말을 잃기는 했지만 인생을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이시도로의 성장 과정에서는 많은 행운과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상념들은 각자가 다르겠지만 분명 이시도로가 주는 희망의 메세지는 분명 모두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친하게 지낸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주고 다른 무엇도 누구도 아닌 그 사람에게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고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되새겨보고 생각해보는 것을 뜻합니다.

 

고통을 받는 게 두려워 꿈을 꾸지 않는 사람보다는 깨어났을 때 상처를 받을지라도 꿈을 꾸는 사람이 더 낫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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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개와 같은 말
임현 지음 / 현대문학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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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연휴는 유난히 긴 만큼 누군가는 긴 연휴가 반가웠을 것이고 누군가는 지루하고 힘든 기간이 될 수도 있겠다. 나 같은 경우 조카들과 지내다 보니 내 멘탈은 벌써 탈탈 털린지 오래이다. 추석이나 명절이 되면 선물들이 많이 오간다. 원하는 선물만 들어온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가령 한 선물상자 세트에 여러가지가 들어있지만 그 중 자신이 좋아하는 것도 있고 싫어하는 것도 있다. 추석 선물처럼 받아보고 읽어본 임현의 이 소설은 그런 선물 상자같은 소설집이다. 한사람이 썼지만 소설집에는 각자 다른 이야기들이 들어있고 그 중에는 내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이야기도 있었다. 모두 마음에 들었던 선물상자였자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그럴때 마음에 들었던 그 몇가지 때문에 선물을 만든 회사의 물건을 다시 찾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임현의 소설집도 그런 선물이 될 것 같다. 그 몇가지 소설은 읽으면서 오 하는 감탄이 나오기도 했으니까. 2014년 등단 후 올해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임현의 첫 소설집은 그래서 꽤 성공적 첫작품이 되지 않을까. 유명 작가들의 작품도 처음 읽은 작품이 별로여서(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에서) 다시 찾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소설집에는 총 10편의 짧은 소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 꽤 좋았다고 생각한 작품이 두편이고 이해하지 못했거나 그저 그랬던 작품이 3편, 나머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던 작품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목과 같은 작품이 그저 그랬던 작품에 속한다. 사실 10편 모두 후루룩 읽힐 만큼 쉬운 작품들은 아니었다. 대체적으로 뭔가 어려운 느낌들이었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두 가지 작품은 처음 나오는 작품 ‘가능한 세계’와 두번째 작품 ‘고두’ 였다.

첫번째 작품 ‘가능한 세계’는 이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었다. 예지력을 가진 소년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앞으로의 자신의 미래에 대해 주변에 경고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고 1년 후에 엄마가 보게될 노트에 그 일들을 써내려간다. 이 작품은 소년과 달리 앞으로의 일들을 알 수 없지만 미리 상상할 수 있는 가능한 일들 때문에 그 무엇도 하지 못하고 두려워하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일이 나 자신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일임을 상기시켰다. 9살 소년이 미리 내다본 자신의 가깝거나 먼 미래, 그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어날 거라는 믿음, 그것을 써내려가는 소년은 어쩌면 예지력이 없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노트에 써내려간 시점에서 엄마와의 대화 말고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소년의 미래는 무궁 무진하다. 앞으로의 시간에는 많은 선택이 있겠지만 자신이 예측한 미래때문에 선택을 망설이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일들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올드보이>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은 상상을 하기 때문에 두려운 거래. 상상하지 말아봐. 그럼 두렵지 않을 테니까." 머리가 비상하고 똑똑한 9살 소년의 시각에서의 이야기는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면서 구성이나 스토리 흐름도 좋았던 작품이었다.

두번째 작품 ‘고두’는 스토리 보다는 이야기의 구성이나 필체, 플롯 같은게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었다. 화자인 한 남자의 독백으로 채워진 작품으로 누군가와 이야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남자의 말로만 채워진 작품이다. 교사인 남자가 자신의 과거를 누군가에게(그 누군가는 마지막에 나옴) 말하는 형식의 이야기는 스토리 자체는 한 남자가 자신의 과오에 대해 지껄이는 변명의 개소리같기도 하지만 인간의 이기심이란걸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작품 ‘그 개와 같은 말’음 솔직히 이 작품집에서 가장 난해했던 작품이다. 그래서 그게 제목과 무슨 상관인지 말하려는게 무엇인지 모르겠다는게 솔직한 느낌. 어려운 작품 잘 못 읽는 나로서는 더 어렵게 느껴졌던 작품이었다.

그 외의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괜찮았던 작품들이었다. 어렵게 느껴졌지만 문체나 스토리 라인들이 마음에 들었다고 할까. 젊은 작가상을 받은 임현의 이번 소설집은 앞으로 그의 작품에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던 작품집으로 젊은 작가의 성장을 지켜보아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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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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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이메일이나 SNS가 없던 아주 먼 옛날에는 편지를 간혹 비둘기의 다리에 묶어 보내기도 했다. 전서구라고 하는 비둘기를 이용한 통신 수단은 비둘기의 강한 귀소 본능을 이용한 것인데 최근에는 거의 없어진 수단이지만 다른 통신수단과 다르게 해킹이나 도청의 위험이 없어 스파이들의 메세지 전송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다고 한다. 사극이나 중세 시대극에서나 나올 법한 비둘기 편지 이야기를 한 것은 소설을 읽고 문득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늘 따뜻한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감성 힐링을 선사하는 오가와 이토의 신작 '츠바키 문구점'의 주인공 포포는 원래 이름의 하토코의 하토가 비둘기를 의미하는데 비둘기의 우는 소리가 포포라고 해서 포포짱 이라고 불리운다. 우리 식으로 하면 '구구' 정도 되려나.  무튼 그런 의미에서 비둘기 편지를 떠올린 것이다. 어떻게든 편지를 전해주는 비둘기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담에 편지를 써 대신 전해 주는 포포가 닮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동백꽃이 많아 지어진 가게 이름일지도 모를 가마쿠라의 츠바키 문구점을 배경으로 유일한 가족이던 할머니가 돌아가신뒤 대를 이어 문구점을 맡아 문구점 일과 편지 대필이라는 일을 하게 된 포포와 편지을 의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눈앞에 선연히 보일듯한 정감어린 곳일 듯한 가마쿠라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요즘은 무엇이든 인터넷으로 찾고 메세지도 이메일이나 SNS의 DM으로 바로 보내버리는 시대에 문득 펜으로 글을 쓸일이 생기면 뭔가 어색한 기분이 들때가 있다. 지금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초등학교때 의무적으로나마 군인들에게 보내는 위로편지와 중고등 학교때에 잠시나마 팬팔이 유행해 손편지를 쓰곤 했다. 그 후로는 휴대폰이 나오고 지금은 뭐든 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생겨나 손편지를 쓸일은 없지만 누군가의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받아보는 것은 묘한 기분 좋음이 있었다. 서툰 글자체나 때론 틀릴때도 있는 맞춤법 등을 읽고 있으면 그 사람이 편지를 쓸때 내 생각을 하며 썼겠구나를 느낄 수 있어 더 정감이 갔다. 포포가 편지 대필 의뢰를 받고 간단히 사연을 들은 후 편지를 쓰는데 단지 내용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의뢰인이 쓸법한 필기체나 필기도구, 편지지의 종류며 잉크의 색깔까지 하나하나 마음을 써가며 편지를 쓰는 과정들을 보며 편지라는 것이 단순히 메세지를 보내는 것만이 아닌 오롯히 그 마음을 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계절의 시간 동안 선대에게 느꼈던 좋지 않았던 마음을 편지 대필을 하며 치유하고 위안 받는 포포를 보며 나도 모르게 내 마음도 위로받는 듯 했다. 소설을 읽으며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읽었던 비슷한 그 어떤 소설 보다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소설의 뒤쪽에 각각의 사연에 맞는 포포의 편지가 첨부되어 있다. 왠지 진짜 포포가 썼을 법한 손글씨 같은 편지를 보니 더 그런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때 1년정도 서예를 배운적이 있다. 나이가 많았던 동네 할아버지 집에서 여러명이 모여 배웠는데 그때는 어째서 배우게 된건지 생각이 나지 않지만 그때의 느낌만은 지금도 생각난다. 은은하게 나는 먹향이며 차분히 붓을 들고 할아버지가 가르쳐주는 대로 써보는 글씨며 글을 쓸때의 느낌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차분하고 평온해지는 느낌이다. 요즘은 그런 목적의 하나로 캘리그라피나 필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감성은 많이 사라졌지만 또 다시 다른 형태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해주는 일은 적어도 계속되지 않을까. 몇 초면 간단히 보내는 메신저에도 물론 마음을 담지만 오가와 이토의 츠바키 문구점을 보며 가을날 포포처럼 글자 하나 종이 하나에도 그 사람을 생각하며 손편지로 마음을 전해보며 그 사람도 자신도 위로와 힐링을 받아보아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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