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주는 레시피
공지영 지음, 이장미 그림 / 한겨레출판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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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무것도 없지만 앞으로 채워질 나를 위해
아무것도 없다. 나에게는 아직 딸에게 줄만한 맛있는 음식 레시피도 인생을 맛있게 요리할 인생의 레시피도 그걸 모두 중 딸조차 없다. 그러므로 나는 이 책을 딸의 입장에서 보았다. 이전에 작가가 쓴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 할 것이다>와 비슷한 느낌인데 그 책에서도 꽤나 큰 위로랄까 그런 느낌들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이번 에세이도 기대하며 봤다. 아니 사실 난 작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기대라기 보다는 당연히 좋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봤다는게 맞겠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 믿음과 기대에 충실히 부합해 주는 책이었다. 
먹는다는 것은
이 책은 앞서 말한 <나는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 할 것이다> 에서 인생의 어떤 순간 등에서 먹어보면 좋을 간단한 요리 레시피를  추가한 듯한 느낌이다. 요즘은 쿡방이다 먹방이다 하는 것들이 유행하는데 남이 먹는거나 요리하는 걸 처다보게 어떻게 보면 참 바보같은 짓이러고 볼 수도 있지만  어느새 나도 그 유행의 대열에 합류해 있었다. 먹는다는 행위,  먹을 것을 만든다는 일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자 생존의 본능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가장 단순하고 기초적인 일에 열광하고 좋아하는 것은 아마도 그 먹는데서 인생의 힘듦을 위로 받았거나 누군가에게 요리해주고 행복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그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알기 때문인 것 같다. 나 또한 요리라고 할 수도 없지만 간단하게 만들어 낸 음식을 누군가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행복을 느끼고 누군가가 해준 맛있는 음식에 위로 받아본 일이 있기에 먹는다는 것,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한다는 게 단지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심플한 요리, 크나 큰 위로
책에는 27가지의 간단한 요리 레시피가 나온다. 이 간단하다는 말이 실은 실현되기 어려운데 대부분 간단하다고 말하는 음식들을 보면 실은 간단해 보이는 것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말한는 레시피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정말 초간단한 레시피들이 많다. 이렇게도 맛이 날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 요리 실력이 형편없는 나에게 더욱 맞는 것 같았다. 물론 재료가 많이 들어가면 더 맛있겠만 간단한 재료에서 의외로 최상의 맛을 낸다면 더 좋지 않겠는가. 재료가 많이 필요하고 거창한 레시가 나왔다면 오히려 별로였을 듯하다. 세상도 인생도 복잡한데 먹는 음식이라도 단순해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딸에게 쉽지만 따듯한 위로가 담긴 엄마의 마음이 느껴지는 그런 레시피. 귀찮아서 인스턴트로  떼우려는 딸에게 단순하지만 좋은 재료로 자신의 몸을 소중히 생각하라는 엄마의 마음이 담긴 듯 했다.  
 
더 행복할 수 있도록


인생을 행복하게만 살다 간 사람은 없어. 다만 덜 행복하게 더 행복하게 살다 가는 사람들이 있단다. 어떤 것을 택할지는 네 몫이야   -작가의 말 中

물론 세상 모든 사람을 만나본건 아니라서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내 인생은 완벽하게 행복했노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행복한 인생을 위한 다양한 레시피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줄 수 있을까? 작가는 책에서 인생의 힘든 순간에 대해서도 말한다. 딸이라도 하기 힘든 이야기인 것 같은 것도. 또 그 순간을 어떻게 지내고 이겨냈는지도. 행복하게만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해줄 수 있는 말 같았다. 여러가지 맛이 있지만 때론 쓴 맛이 더 맛있는 요리로 완성시켜주는 것처럼. 물론 덜 행복한 인생보다 더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는게 좋을 것이다. 그런 인생을 딸이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인생의 레시피들이 이 책에는 가득하다.

실은 엄청 간단할 수 있는 일에 우리는 많은 시간과 고민을 쏟는 지도 모른다. 인간이 하는 대부분의 고민이 사실은 쓸모없는 것이라고 하니까. 그럴때 이 책에 나온 간단한 레시피의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작가가 알려주는 인생의 레시피에서 위로를 받아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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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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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번씩은 그런 생각을 해볼때가 있을것이다. 만약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또는 만약 불치의 병에 걸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죽을 때가 가까워 온다고 해서 사람은 갑자기 안하던 짓을 하진 않을 것 같지만 또 평소와 다른 사람을 보면 죽을 때가 되었다는 말도 있으니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그 중에 사랑하는 내 남편이나 아내의 행복을 위해 배우자를 찾아 주는 일은 과연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일까? 이성적으로 생각해볼 때에는 그다지 정상적인 일 같지 않지만 감성적으로 생각해 볼 때 정말 내 남편이나 내 아내를 사랑하고 걱정이 되어서 생각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아직은 죽기에 너무나 젊은 나이에 신혼의 단꿈에 빠져있는 여자 데이지가 얼마 남지 않은 생에서 남편의 배우자를 찾기 위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 <비포 아이 고>는 다시 재발한 암으로 인해서 남은 날이 6개월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형 선고를 받고 절망에 빠진 데이지가 자신의 죽음보다 더 큰 걱정에 빠지게 되고 그것은 자신 없이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남편 잭을 위해 자신을 대신할 배우자를 찾기 시작하면서 겪는 심경의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남편이 걱정되어서 시작한 일이지만 마냥 좋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정작 적임자라고 생각한 여자를 찾아 내었을 때에는 오히려 자신의 존재가 남편에게서 지워질까 두려워하고 두 사람이 가까워질수록 질투하기도 한다. 말기 암이라는 우울한 상황에도 억지 눈물을 짜내지 않고 오히려 시종 담담하고 때로는 유쾌한 느낌마저 드는건 아마도 주인공 데이지의 성격때문인 것 같다. 남편을 사랑해서 한 일이지만 질투심이 들기도 하고 죽이 잘 맞는 친구와도 환자와의 대화라기 보다는 그냥 여타의 여자 친구들이 하는 대화다. 솔직하고 당당한 데이지의 이러한 성격 때문에 암으로 인해 슬퍼지려 하다가도 오히려 읽는 사람에게는 그런 감정에 빠지게 하지 않는다. 데이지가 치료를 받거나 수술을 받기는 하지만 죽음은 예정되어있다. 다시 완치라는 희망은 소설에서 찾아볼 수 없다. 죽음이라는 바탕이 소설 전체에 깔려 있지만 읽으면서 슬픈 감정은 들지 않았다. 그것은 암환자라는 상황이 공감이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바탕에는 죽음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 요소들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당찬 데이지의 성격부터 암이 재발했다고 해도 여전히 예의없게(?) 대하는 친구 케일리, 딸이 암이지만 지속적으로 사교모임 활동을 하는 데이지의 유별난 엄마와 평소처럼 데이지를 사랑하는 남편 잭까지. 물론 그런 행동속에는 데이지의 죽음을 앞둔 슬픔과 배려가 깔려 있다. 소설은 끝까지 데이지의 시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암이라는 병과 죽음에 대한 심리 묘사가 대부분이지만 그런 것들에 대해 무게감을 적절히 느끼면서도 침울한 느낌 또한 없다는 점이 장점으로 다가왔다. 자연스럽지 못한 억지 눈물을 짜내는 이야기는 별로니까.

소설 제목과 줄거리 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미 비포 유'를 떠올릴 거라 생각한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두 소설 모두 재미있게 읽었고 그 재미도 다른 거지만 비교하자면 미 비포 유는 간병인 여주인공의 시점이 많고 그럼에도 존엄사 등의 무거운 주제가 깔려 있어 조금 더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무게감이 있다면 비포 아이 고는 암투병중인 여주인공의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미 비포 유에 비해서는 조금 더 라이트한 느낌이다.

여기서 또 한가지 떠올리게 되는 질문. 나라면 뭘할까? 앞서 떠올렸던 질문에 대한 내 생각은 데이지가 21살때 했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여행을 실컷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하지만 이런 생각은 정말 생각일 뿐인 것 같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데이지였다면, 내가 잭이었다면, 혹은 내가 케일리나 데이지의 엄마였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봤다. 데이지였다면 여행을 가거나(배우자를 찾지는 않을 것 같음) 잭처럼 여전히 아내를 사랑해주고 케일리처럼 데이지가 하고 싶다는 걸 돕거나 할 것 같다고. 하지만 그 누가 그 순간을 정확히 예상하겠는가. 죽음을 준비하면서도 죽음의 순간은 예상보더 더 두려울테고 아내나 친구를 잃는 슬픔은 예상보더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어느 누구도 그 순간이 아니면 모를 것 같기에 데이지처럼 절박하지 않은 내가 내 시간을 조금 더 충실하게 쓰지 못하고 있음이 생각났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배우자를 찾아 주는 일은 못할 것 같지만 한번쯤은 죽음이 예정된 마지막 시간들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소설이었다. 마지막에 잭의 이야기가 너무 짦아 아쉬웠지만 데이지의 마지막 선물은 사랑의 깊이에 대한 긴 여운을 남긴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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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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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더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를 출간한지 27년 후에 펴낸 책이다 멋진 신세계에서 보여준 미래 사회에 대해 주제별로 분석한 미래 문명 사회 비판론이다. 작가는 멋진 산세계에서 그린 미래의 사회가 생각보다 더 일찍 가속화되고 있다고 말하고 그애 따른 세부적인 요소를 11가지로 나누어 그에 따른 비판과 경고를 담고 있다.

분명 작가가 예상한 미래 사회의 현상은 지금도 진행중이며 그애 따른 폐해도 점점 커지고 있다. 다른 국가 정치적인 부분은 잘 느끼지 못하겠으나 인구 과잉은 훨씬 빨리 다가왔으며 상술이나 세뇌의 부분은 사람들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의식 중에 일어나고 있다. 작가는 조지 오웰의 1984에서의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지배보다는 멋진 신세계에서 나왔던 유아기의 습성 훈련이나  약물로 인한 통제가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통치자들은 깨닫게 될거라고 한다.  눈에 보이는 공포보다는 사람들이 느끼지 못할 정도의 통제로 지배한다면 어쩌면 더 공포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에 이러한 비판과 더불어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자유 의지를 잃지 않는 것 등 여러가지를  말해준다.

이 책은 전문적인 사회 과학서라고 해야 할 정도로 나에게는 어려웠다. 단순히 소설의 해설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어려워 읽는데 애를 먹었지만 분명 공상 과학을 즐길 거리로만 생각한 나에게는 더욱 더 그런 것들에 대해서 조금더 깊이 있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지금의 사회는 분명 과학이 많이 발달한 문명사회이기는 하나 아직 인간의 획일화나 상품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작가는 멋진 신세계에서처럼 인간의 생산이나 획일화는 어쩌면 불가능하지도 모르나 자신이 예측했던 미래의 일들이 예상보다 빨라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멋진 신세계에서 그려진 미래가 단순히 공상이라는 것을 넘어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메세지를 새겨볼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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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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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고 역겨웠다. 지금꺼지 내가 읽어본 미래에 관한 소설이나 영화 중 가장 그랬던 것 같다. 보통 미래상을 그린 작품들은 대부분 암울했지만 유토피아적 상상의 세계 또한 보여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옛날 올더스 헉슬리가 상상했던 미래는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서 보자면 상상이라기 보다는 거의 예언에 가까운 작품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그린 미래는 더욱 실감나게 느껴졌고 멋진 신세계에서 보여준 미래 사회는 끔찍하고 구역질이 났다.

사실 처음에 보여준 미래 사회에 대한 이야기는  구조나 내용을 파악하느라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 출판사 서평에도 나와 있었지만 이 소설은 공상 과학이라기 보다는 전문 지식을 요하는 전문 과학서 같은 느낌이랄까. 각주가 필요한 역사• 과학 분야의 전문 용어도 자주 등장한다. 공감하거나 흡입력있게 읽기 시작한 부분은 문명과는 격리된 원시 지역에 살던 존이 문명의 세계로 오면서 부터이다. 문명 세계에서 살다가 임신한 체로 원시 지역에서 살게된 린다라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존은 모체 태생이 아닌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듯이 만들어지는 인간들과 그 인간들 마저도 생산 과정에서 조작으로 다섯개(알파,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의 계급으로 나눠지고 인간이라고 불리우기에도 힘든 하급 계급(감마, 델타, 엡실론)은 평생 주입된 역할의 일만 하게 되며 가족이라는 개념이 없는 사회, 고통도 전쟁도 없이 소마라는 알약만으로 행복감을 느낄 수 있고 지배 계급은 소마만으로 사람들을 통제하며,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미명아래 어린 시절부터 자유로운 성생활을 하는 사회에서 '야만인' 존은 점차 환멸과 역겨움을 느끼고 문명 사회의 통제관인 무스타파 몬드에게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한다. 야만인 존이 느낀 문명 사회에 대한 감정은 고스란히 그대로 느껴지는 듯 했다.

이런 세계는 분명 인간이 만들었지만 이 세계에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다. 공장에서 계급별로 만들어지고 유아 때부터 철저하게 주입된 사고만 하고 가족이라는 개념조차 사라지고 종교나 예술도 사라진 사회에서 인간은 그저 이 세계를 유지하고 만들어가는 하나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불행감을 느낄 권리조차 없는 사회에서 가장 불필요한 것은 다른 모든 것들을 대신해 선택된 지나치게 발달된  과학인 듯 싶었다. 인간이 인간으로 느껴지지 않는 세계란 너무도 끔찍했다.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은 야만인과 문명 사회의 통제관 무스타파 몬드의 대화였다. 야만인의 입장에서 보던 문명 사회는 분명 끔찍했다. 하지만 과학이 발달한 세계가 왜 필요한지 소마가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무스타파 몬드의 말에도 묘하게 설득이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지나친 인간의 획일화와 통제는 분명 끔찍한 세계이지만 분명 이 세상에서 분명 불필요한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는 전쟁이나 질병 등이 그렇고 개인적으로는 뭔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소마 한알을 삼키고 그런 감정들을 없애버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의 대가가 더 크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은 인간을 더욱 인간답지 못하게 만들 뿐인 것도 분명한 듯 하다.

멋진 신세계는 멀게는 올더스 헉슬리의 제자였던 조지 오웰의 <1984 >에서부터 최근의 작품들까지 오늘날 수없이 쏟아지는 미래상을 그린 많은 공상과학의 소설이나 영화에서 유사한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 옛날 지금보다 과학이 발전하지 못했던 시절에 쓴 <멋진 신세계>는 아주 날카롭고 통찰력 깊게 미래를 내다본 공상과학 소설이자 그 후의 수많은 작품들의 선구자격 예언서로서의 높은 가치의 작품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더불어 단순히 미래상을 그린 공상과학의 소설로써가 아닌 발전해가는 과학의 폐해에 대한 경고의 메세지를 던져주었기에 더욱 수작이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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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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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나도 떠올렸다. 결말이 가까워질수록 이 이야기 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많이 닮았다는거. 마지막에 해설자도, 출판사 서평에도 언급되어 있으니 소설을 읽어본다면 누구나 떠올리지 싶다. 설정은 약간 다르지만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친다는 두 여자의 이야기라는 점은 꼭 닮아있다. 두 이야기 모두 뭔가 굉장히 미스터리한 스토리는 아니다. 오히려 그녀들의 범죄는 허술하기도 하고 우발적이며, 범죄계획에 필요한 요건들이 어떻게 이렇게 딱 맞춰서 나타나는지도 조금은 웃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 두 이야기는 범죄 자체 보다는 그녀들이 살아가는 주변 환경과 사회의 부당함과 부조리에 맞서는 여자들의 이야기이자 범죄를 저질렀지만 어쩐지 그녀들을 응원할 수 밖에 없는 기묘한 심리와 저항에 따르는 카타르시스를 주는 이야기라는 점에 초첨을 맞춰야 할 것이다.

 소설은 나오미 이야기와 가나코 이야기로 나뉜다. 친구인 가나코가 남편의 폭력으로 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해 남편을 제거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기 까지가 나오미 이야기. 남편을 제거한 후 잡힐까 전전긍긍 하고, 주변의 의심으로부터 점점 좁혀오는 포위망에서 도망치기 까지가 가나코 이야기이다. 소설에서 나는 세번의 고조되는 서스펜스를 느꼈다. 처음에 나오미의 시점에서 별다를 것 없는 그녀의 생활이 이어져서 뭔가 띠지에 쓰여있는 서스펜스는 낚인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오미의 생활에서의 이야기나 등장인물은 제거 계획에 재료가 되고 가나코를 동정하면서 오히려 그녀들의 계획이 성공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서스펜스는 크게 고조된다. 두번째는 계획을 실행하고 그녀들의 범죄가 발각될까 하는 조미조마함의 서스펜스, 마지막으로 범죄가 거의 발각되고 도주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근거림의 서스펜스다. 이렇듯 허술한 범죄계획과 도주에도 끝까지 놓치지 않는 서스펜스는 그녀들의 심리상태를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에게도 그녀들이 느끼는 심리가 그대로 전달되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소설에는 두 사람 이외에도 등장하는 여자들에게서도 두 사람과 같은 동질감이 느껴지는 인물들이 나오는데 먼저 폭력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어릴적 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폭력을 보고 자란 친구 나오미부터 이혼하고 혼자 타국에서 살아가는 여사장 리아케미와 남편의 외도와 돈문제로 괴로워했던 치매 걸린 독거노인 사이토씨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과거에 비추어 가나코를 동정하게 되고 알게 모르게 가나코의 조력자가 되어준다. 가나코가 이혼이 아닌 남편 제거라는 극단적 방법을 택한 것은 이혼후에도 자신을 괴롭힐 남편의 굴레에서는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정은 그녀들의 주변이나 사회적 장치가 그녀에게는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것을 꼬집는게 아닐까. 그런 마음이 내가 여자라서라거나 어쩌면 여성 독자들만이 느낄 수도 있다. 살인이 정당하다는 것도 절대 아니고 당연히 처벌 받아야 할 범죄이지만 반대로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하는 주위의 환경이 그녀들을 그렇게 몰고 간것 또한 생각해봐야할 문제라는 것을 느낀 소설이었다.

소설속에서 유머러스함과 스토리로 절묘하게 사회를 꼬집는 이야기는 오쿠다 히데오 만의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스토리 자체에서는 500페이지에 달하는 양을 차지할만한 이야기도 아니고 유머러스함 또한 이번 작품에서 느낄 수 없었지만 모자라는 재료로도 많은 생각할거리와 지루할틈 없는 서스펜스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절묘하게 멋진 작품을 만들어 냈다는게 이번 작품에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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