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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평점 :
불편하고 역겨웠다. 지금꺼지 내가 읽어본 미래에 관한 소설이나 영화 중 가장 그랬던 것 같다. 보통 미래상을 그린 작품들은 대부분 암울했지만 유토피아적 상상의 세계 또한 보여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옛날 올더스 헉슬리가 상상했던 미래는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서 보자면 상상이라기 보다는 거의 예언에 가까운 작품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작가가 그린 미래는 더욱 실감나게 느껴졌고 멋진 신세계에서 보여준 미래 사회는 끔찍하고 구역질이 났다.
사실 처음에 보여준 미래 사회에 대한 이야기는 구조나 내용을 파악하느라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 출판사 서평에도 나와 있었지만 이 소설은 공상 과학이라기 보다는 전문 지식을 요하는 전문 과학서 같은 느낌이랄까. 각주가 필요한 역사• 과학 분야의 전문 용어도 자주 등장한다. 공감하거나 흡입력있게 읽기 시작한 부분은 문명과는 격리된 원시 지역에 살던 존이 문명의 세계로 오면서 부터이다. 문명 세계에서 살다가 임신한 체로 원시 지역에서 살게된 린다라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존은 모체 태생이 아닌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듯이 만들어지는 인간들과 그 인간들 마저도 생산 과정에서 조작으로 다섯개(알파,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의 계급으로 나눠지고 인간이라고 불리우기에도 힘든 하급 계급(감마, 델타, 엡실론)은 평생 주입된 역할의 일만 하게 되며 가족이라는 개념이 없는 사회, 고통도 전쟁도 없이 소마라는 알약만으로 행복감을 느낄 수 있고 지배 계급은 소마만으로 사람들을 통제하며,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미명아래 어린 시절부터 자유로운 성생활을 하는 사회에서 '야만인' 존은 점차 환멸과 역겨움을 느끼고 문명 사회의 통제관인 무스타파 몬드에게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한다. 야만인 존이 느낀 문명 사회에 대한 감정은 고스란히 그대로 느껴지는 듯 했다.
이런 세계는 분명 인간이 만들었지만 이 세계에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다. 공장에서 계급별로 만들어지고 유아 때부터 철저하게 주입된 사고만 하고 가족이라는 개념조차 사라지고 종교나 예술도 사라진 사회에서 인간은 그저 이 세계를 유지하고 만들어가는 하나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다. 불행감을 느낄 권리조차 없는 사회에서 가장 불필요한 것은 다른 모든 것들을 대신해 선택된 지나치게 발달된 과학인 듯 싶었다. 인간이 인간으로 느껴지지 않는 세계란 너무도 끔찍했다.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은 야만인과 문명 사회의 통제관 무스타파 몬드의 대화였다. 야만인의 입장에서 보던 문명 사회는 분명 끔찍했다. 하지만 과학이 발달한 세계가 왜 필요한지 소마가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무스타파 몬드의 말에도 묘하게 설득이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했다. 지나친 인간의 획일화와 통제는 분명 끔찍한 세계이지만 분명 이 세상에서 분명 불필요한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는 전쟁이나 질병 등이 그렇고 개인적으로는 뭔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소마 한알을 삼키고 그런 감정들을 없애버려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의 대가가 더 크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은 인간을 더욱 인간답지 못하게 만들 뿐인 것도 분명한 듯 하다.
멋진 신세계는 멀게는 올더스 헉슬리의 제자였던 조지 오웰의 <1984 >에서부터 최근의 작품들까지 오늘날 수없이 쏟아지는 미래상을 그린 많은 공상과학의 소설이나 영화에서 유사한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그 옛날 지금보다 과학이 발전하지 못했던 시절에 쓴 <멋진 신세계>는 아주 날카롭고 통찰력 깊게 미래를 내다본 공상과학 소설이자 그 후의 수많은 작품들의 선구자격 예언서로서의 높은 가치의 작품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더불어 단순히 미래상을 그린 공상과학의 소설로써가 아닌 발전해가는 과학의 폐해에 대한 경고의 메세지를 던져주었기에 더욱 수작이었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