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3 - 하늘이 알려준 시간
다니 미즈에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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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이펙트라는 현상이 있다. 위가 아픈 환자들에게 낫게 해준다고 하고 밀가루를 거짓약으로 투약했을때 진짜 위가 나은 현상에서 나온 말이다. 다니 미즈에의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그 세번째 이야기를 다 읽은 지금 문득 그 말이 생각났다. 사람이 한적한 쓰쿠모 신사거리 상가 그 중에서도 간판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낡은 시계를 수리하는 시계사 슈지가 운영하는 '추억의 시時 수리합니다'라는 기묘한 이름의 시계방이 있다. 소설은 전작에서와 마찬가지로 시계방과 시계사 슈지 그리고 그의 연인 상가의 헤어살롱 유이를 하는 아카리를 중심으로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시계방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져있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보기도 하고 일부러 찾아오기도 하는 곳이지만 시계방의 그 기묘한 간판을 보고 한 글자가 떨어져 나갔다는 것쯤은 안다. 하지만 슈지의 시계방을 찾는 사람들은 고장난 시계를 고치듯 지나간 추억을 고치고 싶은 마음으로 가계를 찾는다. 고장난 시계를 고치면 그 시간에 멈춰버린 지나간 그래서 후회되는 추억도 함께 고쳐지지 않을까 하는 믿음으로. 물론 시계사 슈지에게 그런 마법같은 힘은 없다. 다만 슈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읽고 시계가 고쳐지듯 지나간 추억이 수리될 거라는 사람들의 믿음을 후회되는 시간들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힘이 있다.


슈지는 시계만 수리한다. 하지만 이 간판은 여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품게 만든다. 만약 풀린 실타래를 되감듯 안 좋은 추억을 복구할 수 있다면 자신의 미래도 바꿀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315p 중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건 백 투 더 퓨처 같은 공상과학이나 판타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후회되는시간들을 바로잡을 수는 있다. 만약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면 말이다. 시간을 되돌리거나 후회되는 일을 바로잡을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것쯤은 시계방을 찾는 사람들은 알것이다. 하지만 슈지의 시계방을 다녀가고 지나간 시간들을 바로 잡을 수 있었던건 시계가 수리되는 것을 보면서 추억 또한 수리할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의 마음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한 것이 아닌가 한다. 터무니 없는 약으로도 병세가 호전되는 것은 100%는 아니지만 그 병이 나을 거라는 믿음과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다. 새삼 깨닫는 감정이지만 어쩐지 마음이 차분래지고 힐링되는 느낌은 세번째 이야기까지 읽게 만드는 추억의 시간을 수리합니다 시리즈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번 세번째 이야기가 전편과 다른 점이라면 각각 다른 네가지 이야기 모두 부모와 자식 간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요즘 매스컴에서 한창 이슈가 되는 뉴스가 바로 아동 학대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론 직접적 혈연관계의 가족안에서의 일이다. 친부모임에도 학대를 하다 못해 죽음에 이르게까지 한 사건은 차마 믿기 힘든 일이었다. 가끔 실제 사건이나 영화나 소설에서 보여지는 이러한 일들에서 보여지는 것과 반대로 부모라면 자식에 대한 모성애나 부성애가 당연히 있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것이 부모에게 결여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적지 않게 충격이었다. 소설을 읽는 시간들과 맞물려 들려온 뉴스와 소설 속에서 틀어진 부모와 자식간의 시간들을 바로잡고 싶어하는 이야기들을 보면서 그 관계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해봤다. 시리즈의 소제목에서 처럼 부모와 자식은 떼려야 떼어낼 수 없는 하늘에서 정해주는 천륜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있다. 슈지의 시계방을 찾는 사람들에는 자식인 사람도 있고 부모인 사람도 있다. 어떻게해서든 지나간 시간을 바로 잡고 싶은 아니 그럴 수 밖에 없는 관계인 것이다. 관계가 틀어졌다고 해서 끊어버리고 말면 되는 관계가 아니기에 슈지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뭔가 더 절실함이 느껴졌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일도 있겠지만 반대로 시간이 오래 지날 수록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와는 더 멀어질 수도 있다. 그게 비록 천륜으로 이어진 부모 자식간의 관계라도 말이다. 시간의 중요성을 보통은 돈과 연관지어 말하지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이다. 지금 수리하고 싶은 추억이 바로잡을 수 있는지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는 시간이 됨과 동시에 위로받을 수 있는 힐링 미스터리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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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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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 휴먼 드라마의 적절한 공존
2008년 믿기 힘든 잔혹한 범죄가 세상에 알려졌다. 오스트리아에서 24년간 지하 밀실에 자신의 친딸을 감금하고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해왔으며 그 결과 밀실에서 7명의 아이를 낳은 사건은 세상에 많은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을 모티브로 쓴 엠마 도노휴의 소설 <룸>은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범죄의 잔혹함 보다는 따뜻함과 감동을 주는 소설이었다. 범죄의 사건성 보다는 피해자의 입장에 초점을 맞춘 소설이라고 들었고 아무리 그래도 실제 사건이 끔찍했던 만큼 어느 정도의 사건에 대한 잔혹함이라던지 아니면 피해자의 입장이라고 했으니 더 끔찍한 상황에 대한 묘사나 아주 힘든 범죄의 후유증 위주일 줄 알았는데 예상하지 못한 감동에 일격(?)을 당해서인지 책을 다 읽고 나서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여운과 뭉클함이 남아있는 소설이었다. 물론 사건에 대한 잔혹함이나 안타까움을 전혀 느낄 수없는 것은 아니다. 감금 상태에서 시작해 탈출에 성공하고 그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에는 사건이 주는 잔인함과 후유증이 소설 전반에 흐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열쇠는 바로 작은 방에서 태어나 방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아온 5살 소년 잭이 쥐고 있다.

위험한 방안? 안전한 바깥세상?
소설은 철저하게 소년 잭에게 초점을 맞추려는 듯  잭을 화자로 5살 소년의 시선으로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끌어간다. 그리고 잭의 시선을 따라 가는 동안 이야기에 더욱 집중 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처음 납치 당한 사건의 당사자인 잭의 엄마나 그들을 가둔 범인은 이름 조차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있었다. 잭의 입장에서 엄마는 그저 엄마일 뿐이고 그들을 가둔 범인은 잭이 본 TV 만화 속에 등장인물 이름에서 따온 올드닉으로 불리운다. 방 안의 모든 물건이 잭의 친구이고 유일하게 밖을 볼 수 있는 천장의 채광창에 비친 해는 하느님의 얼굴이고 달은 둥근 모양이라고만 생각하는, TV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은 진짜가 아닌 그냥  TV속에만 존재하는 그림이라고만 생각하는 잭의 이야기는 어린 아이의 순수를 넘는 그 이상의 순수가 느껴진다. 물론 잭의 이런 시선은 감금 상태의 작은 방에서 엄마가 잭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잭에게 엄마는 끔찍한 상황에 대한 인지을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거짓말이었지만 그 때문에 방은 잭에게 지옥의 공간이 아닌 그저 작은 세상으로 여긴다. 목숨을 건 대탈주 후 잭은 태어나 처음으로 '진짜 세상'을 만나게 되는데 많은 것이 혼란스럽지만 천천히 알아간다. 제 삼자의 입장에서 잭은 기적의 아이이자 연민의 대상이다. 감금 상태에서 세상의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살지 못한 불쌍한 소년.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잭에게는 바깥 세상이 더 무섭고 방이 더 안전하다고 느낀다.


클레이 박사를 만나러 갔을 때, 엄마는 내가 꾼 꿈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박사는 내 두뇌가 봄 청소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안전해졌으니 더 이상 필요 없는 무서운 생각들을 모두 모아서 악몽으로 밖에 던져버리는 거란다."
그의 손이 던지는 시늉을 했다. 예외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실 거꾸로다. 방 안에서는 안전했고 바깥은 무서웠다. - p349 중

물론 감금이라는 끔찍한 상황을 재대로 인지하지 못한 어린 아이의 시선이지만 잠깐이나마 겪은 세상은 잭에게 방보다 무서운 곳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세상에 나와 안전해졌다고 생각하는 타인의 시선은 어쩌면 다 옳은 생각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다양함을 경험할 수 있는 만큼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건 사실이고 바깥 세상이 온전히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아닐까.

선택일 수 없는 선택
탈출 후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잭과 잭의 엄마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게 되는데 돈을 받는 대가로 잭의 엄마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한다. 화제성만을 쫓는 언론과의 인터뷰는 잔인한 질문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아이를 왜 바깥으로 보내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게된다. 좀 더 안전하고 더 많은 경험을 하면서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도록 말이다. 잭의 엄마에게 그것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잭은 절망속에서 온 하나의 희망이었기에. 하지만 정말 어떤 선택이 옳았던 걸까. 엄마와 떨어져 지내지만 안전하고 정상적으로 성장하는것, 감금 상태이지만 엄마 곁에 있는 것, 어쩌면 밖에 나가도 위험해 질 수 있고 아얘 밖으로 보내주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어떤 선택이 옳다고 말하기 힘든 문제임에 분명한 것 같다. 실제 사건 에서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피해자를 오롯이 피해자로만 보지는 않는 이러한 시선은 다소 놀라웠다. 소설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있을 법한 문제를 던져주어 사건에 대한 다양한 시선이 있다는 현실성을 느낄 수 있었다.


"명심해. 낯선 사람은 끌어안는게 아니란다. 착한 사람이라도."
"왜?"
"그냥 안 해. 끌어안는 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렴."
"난 그 워커라는 아이를 사랑했어."
"잭, 오늘 처음 보는 아이였잖아." -p461 중

페루의 고대 잉카 시대의 언어인 케추아어에는 도둑질이나 거짓말에 관련된 단어들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만큼 그 말들을 쓸 일이 없을 만큼 평화로웠다는  얘기겠지만 세상에 모든 말을 안다고 해서 행복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처음 보는 아이를 스스럼 없이 사랑했다 말하고 안아주려 하는 잭을 보면서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강한 '바깥 사람'인 나는 잭의 이런 순수함은 잭을 분재처럼 불쌍하게 자라난 소년이라 생각할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배워야 할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5살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놀랍도록 감동적으로 그려낸 엠마 도노휴의 소설 <룸>은 어떤 예상을 하든 더 많은 생각을 던져주고  더 따뜻하고 더 감동스러운 소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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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 - 그리움을 안고 떠난 손미나의 페루 이야기
손미나 지음 / 예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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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철이면 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바다를 품고 있는 도시에 살고 있다. 여러 매체에서 내게는 익숙한 그 바다를 비출때면 항상 든 생각은 정말 그 풍경을 직접 보는 것의 백만 분의 일도 담지 못한다는 것이다. 원래 유명한 곳이기 때문에 굳이 멋있게 나오지 않아도 많은 시람들이 찾는 곳이지만 그럼에도 뭔가 아쉬웠다. 그런 곳이 비단 그 바다 뿐일까? 유명하든 그렇지 않든 많은 곳이 TV나 책 속에 나오는 모습은 직접 눈으로 보는 것만큼의 감동과 느낌을 그대로 담는데는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손바닥만한 책속에 담긴 풍경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한 곳을 작은 책속에 담아 낸 수많은 여행책은 그 여행지에 꼭 한번 가고싶게 하는게 책을 내는 여러가지 의미 중에 하나일 거리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손미나는 그 의미를 가장 잘 담아내는 여행 작가 중에 한명임에 분명하다. 그 곳에 가보지 않았거나 그 여행지를 처음 접해본 사람들에게는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이미 그곳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그 여행지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을 자극해 다시 가고픈 마음으로 들끓게 하는 마력을 지녔으니 말이다. 나 같은 경우는 여행 경험이 적어 전자에 속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비소설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간접적이나마 여행 기분을 내보려 여행 에세이를 많이 읽는 편이다. 이번 그녀의 페루 여행기는 페루라는 곳을 잘 몰랐던 생소한 곳이라는 생각을 언젠가 꼭 가봐야 할 여행지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 책이다.

페루라는 곳은 사실 정말 막연하고 잘 모르는 곳이었는데 꽃보다 청춘이라는 프로그램를 통해 조금 괸심을 갖게 되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마추픽추가 있고 해발고도가 높아 하늘이 어느 곳보다 가깝고 맑은 곳. 여러가지 신비한 무드가 풍기는 페루의 풍경은 낯설지만 그만큼 호기심이 생기는 곳이었다. 원래가 겁도 많고 도전정신이 많이 없는 나로써는 유럽이나 북미의 대도시 보다는 여전히 어렵다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페루가 마치 지상 낙원이나 되는 것처럼 나오거나 해서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건 아니었다. 페루로 떠나기 전부터 온갖 예방주사를 맞아야 하는 아픔을 보여주는데 웬만한 주사는 잘 겁내지 않는 나같은 사람이야 괜찮겠지만 주사를 정말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진저리를 칠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 것 같은 도입부터 갑작스런 날씨 변화로 인한 불편함이나 해발 고도가 높아 생겨난 고산병으로 인한 고생담, 새똥으로 인한 악취가 진동하는 숙소에서의 잠 못 이루는 밤 등 그녀가 느낀 고생담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페루를 평생 잊지 못할 곳으로 기억한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가보고 싶어한 곳이었고 소중한 친구가 사는 곳이라는 개인적으로 무척 유의미한 곳이라는 것도 있지만 그런 마음과 여러가지 고생담, 우연히 알게된 페루 친구에게 느꼈던 따뜻함, 페루의 신비함을 담은 곳곳의 풍경에서 느낀 작가의 감동이 어우러져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느낌이 고스란히 마음에 전달되는게 글에서 느껴졌다. 단락 말미에 간간히 있는 QR코드를 통해 그녀가 직접 찍은 페루의 모습을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 작가가 얼마나 페루에 대해 애정을 갖고 감동했는지도 느낄 수 있다.

패루가 단순히 남미의 어느 나라, 마추픽추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면 이 책을 읽고 달라질 것이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물론 마추픽추라는 대표적인 명소는 꼭 가보아야 할 곳이라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페루 사람들의 따뜻함과 맑은 영혼, 세상 어느 곳보다 맑은 하늘, 신과 인간을 연결해준다는 콘도르의 신비함과 자유로움, 그 속에서 부는 바람에 내 영혼과 마음도 바람을 쐐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이 책으로 더 커졌다. 책의 마지막에 알아야 할 유용한 페루 여행팁도 있어 언젠가 페루로 떠날 때 짐 한켠에 싣고 가기에 더없이 좋은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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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다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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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유명해져라, 그렇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쳐 줄 것이다"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이 한 말로 알려진 이 말은 사실은 그가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심지어 한국에서만 그렇게 알려져있다고.. GD 노래에도 나오는 말인데 그럼 GD가 한말이라고 해야 하나? 무튼 누가 했건 어디서 왔건 이번에 읽은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문득 이 말이 생각났다. 개인적으로 신작이 나오거나 예전 책이라도 안봤거나 하는 책이 있다면 내용이 어떻든 일단 사고 보는 작가가 두명 있는데 한국 작가는 박범신 작가님이고 또 한명이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이다. 물론 하루키는 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유명하지만 단순히 유명해서가 아니라 그동안 읽은 그의 여러 작품을 통해 입덕의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키 작가께서 똥을 싸든 똥을 싸는 사람이 등장 하는 소설을 쓰든 일단 눈에 하트 필터를 끼고 보게 된다. 근데 왜 하루키 소설 얘기 하면서 앤디 워홀이니 똥이니 얘기 하냐고? 긴 헛소리 끝에 하고픈 말은 이 소설은 재미로만 보지면 그게 없다는 거다. 그런데도 이게 참 묘하게 좋았다. 역시 하루키 작가야 하면서 읽게 되더라는. 불과 하루 밤 사이의 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과 불특정한 '시점'이라는 것을 마치 영상으로 보고 있는 듯한 설정도 뭔가 묘한 불안감과 동시에 호기심을 일게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걸수도 있지만 다 읽고 나서도 뭘 말하려는 것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도 어쩐지 묘한 여운이 남았다.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게 오히려 흡입력 있게 읽었다.   




"인간은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사는게 아닐까? 그게 현실적으로 중요한 기억인지 아닌지 생명을 유지허는 데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 같아. 그냥 연료야. 신문 광고지 철학책이 됐든, 야한 화보사진이 됐든, 만 엔짜리 지폐 다발이 됐든, 불을 지필 때는 그냥 종이쪼가리잖아? 불은 '오오 이건 칸트잖아' 라든지 '이건 요미우리 신문 석간이군' 이라든지  ' 네' 라든지 생각하면서 타는게 아니야. 불 입장에선 전부 한낱 종이쪼가리에 불과해. 그거링 같은거야. 소중한 기억도, 별로 소중하지 않은 기억도,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가억도, 전부 공평하게 그냥 연료.(중략) 소중한거, 시시한거, 이런 저런 기억을 그때 그때 서랍에서 꺼낼 수 있으니까 이런 악몽같은 생활을 하고 있어도 그 나름대로 살아갈 수 있는 거야. 이젠 틀렸다, 더는 못해먹겠가 싶어도 그럭저럭 고비를 넘길 수 있어." - 202~203p




책을 읽고 나서 책에 대해서 찾아보니 뭔가 하루키의 다른 작품과도 연관이 되어 있었다. 가령 책에 등장하는 "천천히 걸어라, 물을 많이 마셔라" 라는 말은 그의 1980년작 <1973년의 핀볼>에도 나오는 말이고 '얼굴없는 남자'도 <태엽감는 새>에 등장한다던지 말이다. 그 외에도 하루키가 좋아하는 재즈음악이나 그가 이 작품의 영감을 받은 작품이랄지, 이건 거의 박사 논문을 보는 듯이 참고 문헌과 관련 작품이 많아 어디서 하루키 작가를 좋아한다고 명함도 못내밀 수준의 비기너였다는 나 자신에 대한 주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하루키는 그 많은 작품들을 찾아보게 하고 그의 소설들은 오랫동안 서고에 꽂아두고 탐구하고 의미를 찾고 반복해서 읽게만드는 작가이다. 이 작품도 아마 그런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루키가 보여주는 하룻밤, 어둠의 저편은 쓸쓸하면서도 재즈처럼 감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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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팽창 스토리 살롱 Story Salon 3
구보 미스미 지음, 권남희 옮김 / 레드박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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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남자주인공이 어느날 자신의 약혼녀가 중병에 걸린걸 알게된다. 그 남자는 여자의 상태에 대해서 알기 위해 의사를 찾아간다. 의사는 뭐라 알아들을 수 없는 의학 용어를 들먹이며 장황하게 설명한다. 남자는 다소 뻥찌면서도 화난 표정으로 "그래서 살 수 있다는 겁니까, 죽는다는 겁니까? 얼마나 남은 거죠?" 라고 묻는다. 그러면 의사는 "대략 6개월정도 이지만 기적이라는 것도 있으니 지켜보죠" 라고 대답한다. 소설의 문학성이라든지 작품성이라던지 하는 것에 대해서는 나같은 독자에게 아무리 설명해봐야 알아듣지 못하는 의학용어 같은 것이다. 학창시절 문학 시간에 배운 소설에 관한 내용은 벌써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기억이 떠난지 오래. 아무리 뭐라고 소설에 대해서 프로패셔널한 해설을 떠들어봐야 그래서 그 소설 재미있다는 거야 재미없다는 거야? 라는게 나같이 단순한 사람에게는 가장 궁금한 것이다. 위대한 작가라고 해서 다 재미있는건 아니고 듣보의 작가라고 해서 재미없는 것도 아닌 것처럼. 구보 미스미는 이미 일본이서나 국내에서 인정 받고  있는 작가이니 만큼 듣보는 아니지만 처음 읽은 작가의 작품인 만큼 좋은 작가 한명을 알게 되었다는 작은 희열이 느껴졌다. 그래서 이 소설이 재미있다는 거야 뭐야? 장황한 상황극을 늘어놓으며 하려는 말은 의외로 꽤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흔한 예술적 소재가 남녀간의 연애나 사랑이야기일 것이다. 이런 소재에서는 뭔가 뻔한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에 가장 흔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소재라고 생각하는데 그동안 내가 읽은 연애 소설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달까. 소설은 두 형제와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벌써 뻔한 삼각관계가 떠오르겠지만 그 뻔한 이야기를 아주 솔직하고 재미있게 그려낸게 이 소설이다.

책을 받아보고 그날 밤부터 시작해 다음날 저녁쯤 까지 다 읽었으니 거의 24시간 안에 다 읽은 셈이다. 그만큼 소설은 술술 읽히면서도 흡입력 있었다. 처음에 등장하는 29살 여자 주인공 미히로의 시점으로부터 시작해 미히로와 동거하는 연인 게이스케, 게이스케의 동생이자 미히로를 오랫동안 좋아한 동급생이었던 유타의 시점으로 차례대로 바뀌면서 이야기는 흘러간다. 삼각 관계라고 하면 으례 뻔히 이루어지는 커플을 중심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세 남녀의 이야기가 차례대로 균형있게 나옴으로 어느 한사람 어느 한 커플에 마음이 가지 않고 어쩐지 세 사람 모두에게 마음아 간다. 애잔하면서도 공감의 마음으로 응원하게 되는. 처음 미히로의 이야기에서는 꽤 과감하다 싶을 만큼 자신의 욕구에 대해서 솔직하게 그려져서 여자로써 꽤나 공감가면서도 흥미진진한 시작이었다. 그래서 계속 이런 이야기로 흘러가려나 했는데 그건 또 아님. 과감하면서 솔직한 여자의 욕망과 심리를 그리면서도 자극적이거나 무겁지 않다는 소설에 대한 설명이 공감이 간다. 욕망과 감성은 어울리는 것 같지 않지만 두 가지의 요소가 이 소설에서는 공존하는 듯 했다. 소설은 삼각관계의 남녀 이야기를 그린 만큼 큰 사건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데 각자의 입장이 교차되면서 다른 인물과의 이해관계도 알 수 있는 구성 또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 일으키면서 소설의 재미를 더해주는 것 같다. 이야기 설정상 형제간에 그런 일이 있다고 한다면 (소설의 재미와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결말이 이해되지 않는 경향이 없지않아 있지만(feat. 모스트스러운 똘기자) 그건 개인적인 견해 차이지 문화적 차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사랑이라는 핑계로 많은 연애 이야기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보면 이해 못할것도 없지 않을까.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면서도 어쩐지 이들을 섣불리 비난하지는 못하겠다. 오히려 그런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기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에 마음으로는 응원을 하게 된다.

째째하고 꼴사납고, 그래서 사랑스러운 '어른아이'들의 연애 이야기라고 쓰여진 것처럼 이 소설은 어쩌면 주인공 남녀의 또래 정도에게 가장 공감이 가지 싶은 소설이다. 째째하고 꼴사납더라도 그게 흔한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개인 차이겠지만 어릴때 읽었다면 재미있다고는 생각했겠지만 지금처럼 공감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앞서 나온 작가의 소설이 여자에 의한 여자를 위한 문학상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을 만큼 여성의 심리에 대해 솔직하고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여자라면 소설을 읽으며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해보는 시간이 될것 같다. 그리고 여자 뿐 아니라 사랑을 하는 모든 이들이라면 자신이나 상대의 입장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또는 위로나 공감을 주는 소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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