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다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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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유명해져라, 그렇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쳐 줄 것이다"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이 한 말로 알려진 이 말은 사실은 그가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심지어 한국에서만 그렇게 알려져있다고.. GD 노래에도 나오는 말인데 그럼 GD가 한말이라고 해야 하나? 무튼 누가 했건 어디서 왔건 이번에 읽은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문득 이 말이 생각났다. 개인적으로 신작이 나오거나 예전 책이라도 안봤거나 하는 책이 있다면 내용이 어떻든 일단 사고 보는 작가가 두명 있는데 한국 작가는 박범신 작가님이고 또 한명이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이다. 물론 하루키는 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유명하지만 단순히 유명해서가 아니라 그동안 읽은 그의 여러 작품을 통해 입덕의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키 작가께서 똥을 싸든 똥을 싸는 사람이 등장 하는 소설을 쓰든 일단 눈에 하트 필터를 끼고 보게 된다. 근데 왜 하루키 소설 얘기 하면서 앤디 워홀이니 똥이니 얘기 하냐고? 긴 헛소리 끝에 하고픈 말은 이 소설은 재미로만 보지면 그게 없다는 거다. 그런데도 이게 참 묘하게 좋았다. 역시 하루키 작가야 하면서 읽게 되더라는. 불과 하루 밤 사이의 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과 불특정한 '시점'이라는 것을 마치 영상으로 보고 있는 듯한 설정도 뭔가 묘한 불안감과 동시에 호기심을 일게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걸수도 있지만 다 읽고 나서도 뭘 말하려는 것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래도 어쩐지 묘한 여운이 남았다.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게 오히려 흡입력 있게 읽었다.   




"인간은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사는게 아닐까? 그게 현실적으로 중요한 기억인지 아닌지 생명을 유지허는 데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 같아. 그냥 연료야. 신문 광고지 철학책이 됐든, 야한 화보사진이 됐든, 만 엔짜리 지폐 다발이 됐든, 불을 지필 때는 그냥 종이쪼가리잖아? 불은 '오오 이건 칸트잖아' 라든지 '이건 요미우리 신문 석간이군' 이라든지  ' 네' 라든지 생각하면서 타는게 아니야. 불 입장에선 전부 한낱 종이쪼가리에 불과해. 그거링 같은거야. 소중한 기억도, 별로 소중하지 않은 기억도,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가억도, 전부 공평하게 그냥 연료.(중략) 소중한거, 시시한거, 이런 저런 기억을 그때 그때 서랍에서 꺼낼 수 있으니까 이런 악몽같은 생활을 하고 있어도 그 나름대로 살아갈 수 있는 거야. 이젠 틀렸다, 더는 못해먹겠가 싶어도 그럭저럭 고비를 넘길 수 있어." - 202~203p




책을 읽고 나서 책에 대해서 찾아보니 뭔가 하루키의 다른 작품과도 연관이 되어 있었다. 가령 책에 등장하는 "천천히 걸어라, 물을 많이 마셔라" 라는 말은 그의 1980년작 <1973년의 핀볼>에도 나오는 말이고 '얼굴없는 남자'도 <태엽감는 새>에 등장한다던지 말이다. 그 외에도 하루키가 좋아하는 재즈음악이나 그가 이 작품의 영감을 받은 작품이랄지, 이건 거의 박사 논문을 보는 듯이 참고 문헌과 관련 작품이 많아 어디서 하루키 작가를 좋아한다고 명함도 못내밀 수준의 비기너였다는 나 자신에 대한 주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럼에도 하루키는 그 많은 작품들을 찾아보게 하고 그의 소설들은 오랫동안 서고에 꽂아두고 탐구하고 의미를 찾고 반복해서 읽게만드는 작가이다. 이 작품도 아마 그런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루키가 보여주는 하룻밤, 어둠의 저편은 쓸쓸하면서도 재즈처럼 감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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