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 도노휴 지음, 유소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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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범죄와 휴먼 드라마의 적절한 공존
2008년 믿기 힘든 잔혹한 범죄가 세상에 알려졌다. 오스트리아에서 24년간 지하 밀실에 자신의 친딸을 감금하고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해왔으며 그 결과 밀실에서 7명의 아이를 낳은 사건은 세상에 많은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을 모티브로 쓴 엠마 도노휴의 소설 <룸>은 그러나 예상과는 다르게 범죄의 잔혹함 보다는 따뜻함과 감동을 주는 소설이었다. 범죄의 사건성 보다는 피해자의 입장에 초점을 맞춘 소설이라고 들었고 아무리 그래도 실제 사건이 끔찍했던 만큼 어느 정도의 사건에 대한 잔혹함이라던지 아니면 피해자의 입장이라고 했으니 더 끔찍한 상황에 대한 묘사나 아주 힘든 범죄의 후유증 위주일 줄 알았는데 예상하지 못한 감동에 일격(?)을 당해서인지 책을 다 읽고 나서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여운과 뭉클함이 남아있는 소설이었다. 물론 사건에 대한 잔혹함이나 안타까움을 전혀 느낄 수없는 것은 아니다. 감금 상태에서 시작해 탈출에 성공하고 그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에는 사건이 주는 잔인함과 후유증이 소설 전반에 흐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열쇠는 바로 작은 방에서 태어나 방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알고 살아온 5살 소년 잭이 쥐고 있다.

위험한 방안? 안전한 바깥세상?
소설은 철저하게 소년 잭에게 초점을 맞추려는 듯  잭을 화자로 5살 소년의 시선으로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끌어간다. 그리고 잭의 시선을 따라 가는 동안 이야기에 더욱 집중 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처음 납치 당한 사건의 당사자인 잭의 엄마나 그들을 가둔 범인은 이름 조차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있었다. 잭의 입장에서 엄마는 그저 엄마일 뿐이고 그들을 가둔 범인은 잭이 본 TV 만화 속에 등장인물 이름에서 따온 올드닉으로 불리운다. 방 안의 모든 물건이 잭의 친구이고 유일하게 밖을 볼 수 있는 천장의 채광창에 비친 해는 하느님의 얼굴이고 달은 둥근 모양이라고만 생각하는, TV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은 진짜가 아닌 그냥  TV속에만 존재하는 그림이라고만 생각하는 잭의 이야기는 어린 아이의 순수를 넘는 그 이상의 순수가 느껴진다. 물론 잭의 이런 시선은 감금 상태의 작은 방에서 엄마가 잭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잭에게 엄마는 끔찍한 상황에 대한 인지을 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거짓말이었지만 그 때문에 방은 잭에게 지옥의 공간이 아닌 그저 작은 세상으로 여긴다. 목숨을 건 대탈주 후 잭은 태어나 처음으로 '진짜 세상'을 만나게 되는데 많은 것이 혼란스럽지만 천천히 알아간다. 제 삼자의 입장에서 잭은 기적의 아이이자 연민의 대상이다. 감금 상태에서 세상의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살지 못한 불쌍한 소년.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잭에게는 바깥 세상이 더 무섭고 방이 더 안전하다고 느낀다.


클레이 박사를 만나러 갔을 때, 엄마는 내가 꾼 꿈 이야기를 하라고 했다. 박사는 내 두뇌가 봄 청소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안전해졌으니 더 이상 필요 없는 무서운 생각들을 모두 모아서 악몽으로 밖에 던져버리는 거란다."
그의 손이 던지는 시늉을 했다. 예외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실 거꾸로다. 방 안에서는 안전했고 바깥은 무서웠다. - p349 중

물론 감금이라는 끔찍한 상황을 재대로 인지하지 못한 어린 아이의 시선이지만 잠깐이나마 겪은 세상은 잭에게 방보다 무서운 곳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세상에 나와 안전해졌다고 생각하는 타인의 시선은 어쩌면 다 옳은 생각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다양함을 경험할 수 있는 만큼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건 사실이고 바깥 세상이 온전히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아닐까.

선택일 수 없는 선택
탈출 후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잭과 잭의 엄마는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게 되는데 돈을 받는 대가로 잭의 엄마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한다. 화제성만을 쫓는 언론과의 인터뷰는 잔인한 질문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아이를 왜 바깥으로 보내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게된다. 좀 더 안전하고 더 많은 경험을 하면서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도록 말이다. 잭의 엄마에게 그것은 선택지가 아니었다. 잭은 절망속에서 온 하나의 희망이었기에. 하지만 정말 어떤 선택이 옳았던 걸까. 엄마와 떨어져 지내지만 안전하고 정상적으로 성장하는것, 감금 상태이지만 엄마 곁에 있는 것, 어쩌면 밖에 나가도 위험해 질 수 있고 아얘 밖으로 보내주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어떤 선택이 옳다고 말하기 힘든 문제임에 분명한 것 같다. 실제 사건 에서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피해자를 오롯이 피해자로만 보지는 않는 이러한 시선은 다소 놀라웠다. 소설이었지만 현실적으로 있을 법한 문제를 던져주어 사건에 대한 다양한 시선이 있다는 현실성을 느낄 수 있었다.


"명심해. 낯선 사람은 끌어안는게 아니란다. 착한 사람이라도."
"왜?"
"그냥 안 해. 끌어안는 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렴."
"난 그 워커라는 아이를 사랑했어."
"잭, 오늘 처음 보는 아이였잖아." -p461 중

페루의 고대 잉카 시대의 언어인 케추아어에는 도둑질이나 거짓말에 관련된 단어들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만큼 그 말들을 쓸 일이 없을 만큼 평화로웠다는  얘기겠지만 세상에 모든 말을 안다고 해서 행복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처음 보는 아이를 스스럼 없이 사랑했다 말하고 안아주려 하는 잭을 보면서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강한 '바깥 사람'인 나는 잭의 이런 순수함은 잭을 분재처럼 불쌍하게 자라난 소년이라 생각할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배워야 할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5살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놀랍도록 감동적으로 그려낸 엠마 도노휴의 소설 <룸>은 어떤 예상을 하든 더 많은 생각을 던져주고  더 따뜻하고 더 감동스러운 소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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