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에 대하여
아리요시 사와코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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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한 한 여자의 미스터리한 죽음을 더욱 미스터리한 결말로 끝낸 미스터리한 미스터리 소설. 문제, 여기서 미스터리가 몇번 들어갔을까? 내가 미스터리 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내내 미스터리한 기분으로 읽고 끝내 미스터리하게 결말이 난 소설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한 여자가 죽었고 난 늘 그렇듯 범인이 누구인가를 알아내기 위한 퍼즐 조각을 맞출 준비가 되어있었다. 내가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마음이란 늘 이랬다. 이 소설을 읽을 때에는 그런 마음가짐이 소용없어 졌다.

소설은 일명 '사업의 여왕'으로 유명한 여류 사업가 도미노코지 기요코가 자신의 빌딩 7층 사무실에서 붉은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체 추락사한 사건이 일어나고, 그녀와 관련된 주변 인물 27명의 인터뷰 형식으로 그녀의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설은 불친절 하게도 사건에 대한 개요나 심지어 화자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저 27명이 하는 이야기에서 이 모든것을 독자가 맞추어야 한다. 죽음이 등장하는 미스터리 소설은 당연히 그 죽음이 메인 스토리가 되겠지만 소설을 읽기 시작할 때 한 이런 생각과는 달리 여기서는 도미노코지 기요코라는 여자의 죽음이나 그것을 해결하는게 중심은 아니었다. 그녀의 탄생부터 죽음 까지가 철저하게 타인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는데 뒤로 갈수록 그녀의 삶에 대한 것이라던가 죽음에 관한 진실이 선명해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불분명하고 혼란스러워졌다. 그것은 소설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때 까지도 이어진다. 제목에서 보여지듯이 그녀가 악녀라서 죽은 것인가에 대해서도 모호하다. 그녀가 죽은 후 여러 매체에서 그녀의 과거가 파헤쳐지고 악녀라는 식의 보도가 난무하는데 오히려 그것이 거짓이며 오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이 등장한다. 적어도 소설에서 그녀의 삶 이라던가 죽음에 관한 진짜 '진실'은 사람들의 인터뷰 안에서는 알 수 없다. 만약 그녀가 직접 인터뷰를 했다해도 그것은 알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단지 그녀가 거짓말을 잘해서도 있지만 그녀 자신까지도 철저하게 속여가며 살아간 이유도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그녀의 삶이나 죽음에 관한 진실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들과 평가, 그것을 마치 진실인양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소설은 초점을 맞추고 있다.  

누군가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때가 있다. '그 사람 객관적으로 어때?'라고. 전에는 이 질문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주 큰 오류가 있다는걸 소설을 읽으며 깨달았다. 사람의 입을 통해서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 할때 그 '객관적'이라는 견해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그 사람의 키 라던지 성적같이 명확하게 밝힐 수 있는 사실이 아니고서야 사람에 대한 평가는 말하는 사람의 주관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대외적인 평판이라는 것도 있지만 그것이 진실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녀가 한 거짓말이 진실이 되어 받아들여질때도 있고 진실이 거짓된 말들로 인해 거짓으로 받아들여져 그녀를 악녀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 대해 말할때 그것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이야기 하는 것, 더 나아가 그런 말들을 진실처럼 듣는 것 등 소설은 이제까지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는 이런 오류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했다.

도미노코지 기요코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도, 원인이 무엇인지도, 심지어 그녀의 진짜 삶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면 미스터리 소설로 재미가 없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소설의 흡입력이랄지 작가가 던저주는 퍼즐을 맞추는 미스터리 소설만의 쾌감같은게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적어도 단순한 내 기준에서는 재미있는 소설이었고 충분히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 다 읽고나서 작가에 대해 알게됬는데 소설의 배경과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아주 오래전에 등단했고 이미 1987년에 발표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나오는 미스터리 소설과 비교해 결코 뒤처지지 않은다는게 놀라웠다. 당시에도 작가는 그 시기에 나오는 작품들과 달리 앞서가는 글을 썼던 작가였다고 하는데 그런 점들이 지금까지 사랑받는 소설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전 후 일본의 혼란기라는 시대적 배경이나 인터뷰 형식의 전개, 갈수록 불분명한 진실의 결말 등 여러가지로 신선한 소설이었지만 무엇보다 미스터리 소설이라면 있어야할 흡입력과 흥미진진함까지 갖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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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나이트 레베카 시리즈
오사 라르손 지음, 이수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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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스웨덴 범죄소설상’ 수상작, 24개국, 550만 독자를 사로잡은 레베카 시리즈 최다 판매작, 오프라 윈프리 쇼 선정 ‘여성이 읽어야 할 최고의 미스터리’, 〈밀레니엄〉 제작사 드라마화, 2017년 4개국 방영 이라는 화려한 수식에 빛나는 스웨덴의 떠오르는 범죄 소설의 여왕 오사 라르손의 이 소설은 전작 <블랙 오로라>에 이은 레베카 시리즈 두번째 이야기이다. 레베카는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회계 전문 변호사로 화이트 나이트를 읽기 전에 레베카의 탄생이 궁금해 먼저 블랙 오로라를 읽었다. 화이트 나이트 소설 자체는 블랙 오로라와 이어진 내용이 아니어서 이 책을 그냥 읽어도 상관없다. 레베카라는 인물이 중심에 있고 전작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도 같이 나오기는 하지만 소설의 사건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심리 범죄 소설이라는 점에서 레베카가 블랙 오로라에서 겪은 사건으로 어떤 심리상태인지를 안다면 화이트 나이트에서 또 다시 사건에 휘말리는 레베카의 심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레베카 시리즈에서 중요한건 소설속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의 해결이 아니라 그 사건을 대하는 등장 인물들의 심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보통의 심리 스릴러는 범인이 누구 인가를 작가와 독자가 줄다리기 하며 맞춰가는 전개가 보통이지만 이 소설은 읽다 보면 추리에 능한 사람이라면 범인이 누구인지 금새 알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범인이 누구인가가 중요하지 않다. 레베카와 사건을 담당하는 여형사가 사건을 파헤치면서 만나는 인물들의 각기 다른 사건에 대한 심리 묘사에 초점을 맞춘다면 레베카 시리즈를 이해하고 즐기기에 도움이 될것이다.  

사실 앞서 말한 화려한 수식은 이 책의 서평을 쓰기에 그다지 할말이 없어서 사실만 늘어놓은 것이다. 이 소설에서 재미나 생각거리 또는 메세지를 그다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꽤 두꺼운 분량의 소설이지만 레베카 시리즈라는 말이 무색하게 소설에서 등장하는 레베카의 분량은 미비하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 사건에 레베카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심리 묘사가 중점이라고는 하지만 소설은 너무나 길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소설 중간중간 노란 다리 늑대 이야기는 등장인물과 결부시켜 비유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히려 분량만 늘려 더 지루하게 한 불필요한 내용으로 느껴졌다. 오히려 전편인 블랙 오로라가 이 소설보다는 더 레베카 시리즈라는 타이틀에  더 맞았고 이야기 전개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레베카 시리즈는 총 6편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아직 레베카 시리즈의 전반일 뿐, 깊이 있고 재미있는 범죄소설을 많이 배출하는 북유럽 소설인 만큼 이 뒤에 나오는 시리즈는 흡입력 있는 이야기이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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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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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솔직한 말투와 점심은 12시 저녁은 6시에 먹어야만 교양인이며 순서대로 정리된 커트러리 서랍과 조금은 강박적인 깔끔함 아니 청소에 나름의 신념이 강한, 이 소설의 주인공 67세의 여자 브릿마리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오히려 융통성이라고는 없고 시니컬한 그녀를 처음 만나게 되었을 때 뭔가 되게 답답하고 싫다는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소설을 다 읽은 지금은 브릿마리가 매력적이라고 생각이 들거라고 생각한다면 경기도 오산!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난 그녀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소설이 재미없는거 아닌가라면 그건 또 아니다. 그게 뭐랄까 소설 자체가 재미있냐 없냐를 간단히 얘기한다면 기대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종전의 히트작 <오베라는 남자>와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의 프레드릭 배크만 작가의 이번 작품은 전작의 재미를 잇는 소설이 될 것 같다.

 

이번 소설의 주인공은 전작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에서 사람들의 뒷목을 잡게 했던 엘사의 이웃 브릿마리와 프레드릭 부부에서 브릿마리를 주인공으로 한 만큼 그 캐릭터가 그대로 소설에 살아있다. 내가 본 이번 소설은 캐릭터의 매력 보다는 공감이라는 감정에 더 초점이 맞춰졌다.

 먼저 브릿마리에 느끼는 공감이다. 평생 살림와 남편 프레드릭의 내조밖에 모르고 살던 그녀이지만 그 시니컬함 속에는 남모르는 아픔과 고민이 있었다. 늘 촉망받던 언니의 죽음으로 거의 부모에게 방치되다시피 한 어린시절, 첫사랑에 실패하고 만난 지금의 남편과 결혼해 평생 살림만 해오지만 그에 돌아오는건 멸시와 무시, 친엄마가 아니라는 이유로 냉담한 프레드릭의 아이들, 열심히 살아온 댓가라고는 남편의 외도였다. 그 일로 한계를 느낀 브릿마리는 남편이 그녀는 절대로 하지 못할거라는 이케아 가구를 싣고 떠난다. 물론 그녀와 상황은 다르지만 가장 가깝고 믿었던 가족의 무관심에서 오는 외로움은 누구나 느낄 법한 감정이다. 그녀에게 필요한건 단지 그녀에 대한 존재를 인정해주고 조금의 관심이었을 뿐인데 말이다.  보르그 사람들이 그랬듯이 브릿마리도 보르그 사람들로 인해 서서히 마음을 열면서 그녀에 대해 나도 모르게 정이 들어갔고 공감되면서 명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나도 보르그 사람들처럼 브릿마리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브릿마리가 고용센터 직원을 괴롭혀 가까스로 일자리를 얻어내어 떠난 보르그 지역의 스러저가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이다. 예산 부족이라는 이유로 여러가지 시설이나 지원이 끊겨 많은 사람들이 떠났지만 그 마을에서도 살아가는 보르그 사람들은 어느날 마을에 나타난 깔끔쟁이 브릿마리로 인해 활력을 찾게 된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다른 축구팀을 응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희망이 없어 보였지만 3대 0으로 지고 있어도 역전승을 했던 축구팀의 이야기처럼 언젠가 역전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간다. 비록 처음에는 브릿마리와 티격태격하며 부딪히지만 사랑과 관심이 필요했던 브릿마리와 활력과 희망이 필요했던 마을 사람들은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면서 나 또한 위로가 되는 듯 했다. 캐릭터나 스토리에 강한 임팩트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마음에 더 묵직하고 오래 남는다.

축구 경기를 즐겨보지만 보르그 사람들처럼 명확히 좋아하는 팀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선수나 감독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지만 한가지 분명한건 축구를 볼때 이상하게 나는 지고 있는 팀을 응원하게 된다. 이길 희망이 없어 보여도 혹시 모를 기적을 바라면서. 보르그의 아이들 조차도 분명 이길거라는 확신은 없이 경기에 나갔을 것이다. 비록 한골이라는 기록밖에 내지 못했지만 그마저도 그들에게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했던 일이었다. 브릿마리가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스스로 이케아 가구를 조립하고 보르그 사람들의 포기하지 않는 희망은 작지만 기적을 가져온다는 진부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메세지를 브릿마리와 보르그 사람들에게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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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천명관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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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고구마 같은 얼굴을 하고 요상한 포즈를 하고 있는 남자와 마초 냄새가 가득한 제목을 한 천명관의 신작 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가 출간되었다. 카카오 페이지에 인기리에 연재되던 웹소설이 책으로 나온 것이다. 사실 난 웹소설이나 전자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아하는 작가라도 어딘가 모니터로 보는 소설이란 정이 가지 않기 때문에 읽고 싶은 작가의 글이라도 종이책으로 나오기를 기다린다. 반면 요즘은 문화 컨텐츠 전반에서 웹상에서 나오는 장르들이 인기가 있다. 웹툰은 물론이고 드라마, 소설까지. 버스나 지하철에서 이동할 때나 출퇴근 할때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가볍게 읽기에는 간편한 웹장르 만한게 없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번 소설은 거기에 부합하는 것 같다. 마초 냄새가 나는 제목이라고 했지만 사실 읽으면서 남자답다거나 강한 마초 냄새가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한탕을 노리는 찌질한 남자들의 이야기일뿐.

뭐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 건 아니다. 고래를 시작으로 그동안 읽었던 천명관의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적 정서에 맞는 필체와 스토리라인은 여전히 그가 이야기꾼임을 보여준 것 같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 필체랄까.  이야기에 나오는 캐릭터도 다양하고 개성있게 그려지는데 각 캐릭터가 마지막에 그들이 목표한 인생의 한방을 위한 에피소드들은 유쾌하고 코믹하며 때론 실소를 터트리기도 한다. 응? 이렇게 말하고 보니 그냥 재미있는 소설이네?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은 재미있으나 그게 그냥 거기서 그친다는거다. 개인적으로는 딱 내 취향은 아니지만 예전 어릴때 유행하던 한국형 조폭영화가 생각난달까. 그래서 영화로 만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다. 팔도의 건달들이 개성있게 등장하고 각각의 에피도 재미있게 살리면 한편의 유쾌한 코믹 영화가 탄생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가볍고 재미있게 읽는 소설이라는게 단점이 될 순 없을 것 같다. 재미없는 예술영화나 어려운 문체로 메세지를 주려고 하는 소설보다는 아무 생각없이 웃을 수 있는 이야기가 어쩌면 요즘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남자는 여자가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가사가 있는 노래에서 제목을 따온 듯 한 이번 천명관의 신작은 그들이 마지막에 목숨걸고 가지려 했던 건 울트라라는 막내 건달이었고 그 남자를 가진건 지니라는 여자여서 결국엔 남자가 아무리 가오잡고 피터지게 전쟁해봐야 승리는 여자의 몫이란걸까? 아니면 찌질한 남자들에 대한 반어법일까? 아무튼 비범한 제목의 짜질한 남자들의 이야기는 작가가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야기에 살을 붙여 만든 이야기라고 한 만큼 토크쇼의 여느 연예인이 실제 에피소드에 msg 가득 담아 빵빵 터지게 이야기하듯 옆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 마냥 생생하고 재미있어 누구나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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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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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짜로 우리 시각 저녁 8시에 노벨 문학상의 수상자가 발표된다. 4명의 유력한 후보로 압축된 가운데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 가운데 있었다. 마침 하루키의 책을 읽고 있어서인지 몰라도 그의 수상을 조금 바라고 있기도 한데 책을 읽고 나니 그 마음이 더 강해졌다고 해야할까. 소설로만 접해 왔던 하루키였는데 처음 소설이 아닌 에세이로 만나봤다. 근데 자전적 에세이가 아니라 왜 강연 에세이라고 타이틀을 달았을까. 그건 책을 읽는 내내 재미있는 강연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작가 후기에 에세이를 쓸 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한다는 생각으로 썼다고 한다. 그 스스로도 이 에세이를 강연록이라고도 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학교때 이런 교수님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책은 작가가 처음 소설을 쓸때와 직업 소설가로써 살아온 자전적 이야기는 물론 자신이 어떻게 글을 쓰는지도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조금 지루한 기술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다면 적어도 내가 읽어 본 기술서 중 유일하게 재미있게 읽은 기술서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그런 의미로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지 어떨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내 생각엔 적어도 아주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글을 쓰는데 정말 테크닉적인 부분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나 멘토의 이런 이야기들은 그런 기술적인 부분보다 더 중요하고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작가는 소설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 글을 쓰기란 무척 어렵다고 했다. 그 역시 초기 신인일 때에는 일본이서 혹평과 냉담한 대우를 많이 받았다고 해서 놀라웠고 그래서 떠나게 된 외국에서의 어려움도 있었다고 했다. 작가로서의 타고난 재능도 물론 조금 있었겠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 지금까지 직업 소설가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는 성공한 작가로서 젠체하지 않고 무었이든 포용하는 마음과 자신만의 필력과 필체가 있지만 독자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스토리와 문장을 연구하는 자세가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비소설이나 기술서를 읽지 않는 나같은 사람도 사람들에게 강연한다는 마음으로 재미있게 기술서나 강연록을 쓰는 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노벨 문학상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는 대중성이 강점이라고 했다. 물론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가이지만 그의 소설 중에도 나에게는 한번 읽어서는 이해가 잘 안가거나 재미면에서는 조금 떨어지는 소설도 있었다. 하루키는 독자들 중에 그 작가를 신뢰하고 한번쯤 재미없는 소설을 읽더라도 다음 신작을 기다려 주거나 소설을 적어도 2번 이상 읽어주는 독자가 가장 고맙다고 했는데 나에게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런 작가중에 한명이다.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내가 더 고맙다고 해야할 것 같다. 그런 작가는 나에게 많지 않고 적어도 2번 이상 읽고 싶은 책이 아니고서야 책을 잘 사지 않는 나의 서고 컬렉션을 풍부하게 해주었으니까. 강연록이 되었든 기술서가 되었든 작가의 자전적인 에세이가 되었든 그건 읽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렸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모든것이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에 대한 신뢰감과 애정이 생긴 에세이이다. 그는 나에게 오리지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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