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댓말로 여행하는 네 명의 남자
마미야 유리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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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는데 있어 중요한 사항은 많다. 금전적인 문제부터 여행지를 정하는 일이나 여행 일정을 정하는 일, 숙소를 정하고 먹거리를 알아보는 것 등.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건 여행을 함께하는 여행 메이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은 혼자 하는 여행도 흔해져있어 이것 저것 신경쓰지 않고 내 마음대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마음 맞는 친구와의 여행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반면 맞지 않는 사람과의 여행 만큼 괴로운 것도 없으리라. 아무리 좋은 곳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여행 메이트와 맞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게 의미없어짐은 한순간이다. 그만큼 여행에 있어 동행자는 매우 중요하다. 나 역시 지금은 혼자만의 여행을 꿈꾸고 있지만 마음 맞는 사람들과의 여행에서 추억 만들기 역시 많이 하고 싶은 일 중 하나이다. 나 아닌 누군가가 동행이 있거나 여럿이서 여행을 가면 비교적 내 의견은 잘 내지 않는 편이다. 무엇이건 딱히 불편하지 않는다면 대세를 따르는 편이라서 내 주장을 강하게 내비친 적은 없다.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면 혼자 여행을 떠나면 될 일이다. 친한 친구들 끼리 여행을 가도 꼭 싸우기 쉬운게 여행인데 더군다나 친하지도 않고 존댓말까지 해야하는 여행 메이트와의 여행은 생각만 해도 숨막힌다. 여기 그런 네 명의 남자 이야기가 있다.

소설은 네 명의 남자가 각각 화자가 되어 네 군데의 여행지를 떠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네 명의 남자중에 특히 중심이 되는 캐릭터는 사이키라는 인물. 선천적이라고 해도 될만큼 타인의 감정에 공감 능력이 마이너스이고 공감은 커녕 지나치게 솔직한 말들로 상처를 주기도 한다. 아침은 반드시 빵으로 해결해야 하고 밤 10시에는 목욕을 반드시 해야하며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패닉에 빠진다. 자폐적인 성향과 공항장애가 심하고 강박증도 심하다. 하지만 신은 공평하다고 했던가. 그런 사이키는 누구보다 주목받는 꽃미남이라는 것. 사이키를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단번에 호감을 사고 마는 이케맨인 것이다. 그의 학교 후배이자 등장인물인 마시마 조차도 동경할 정도. 처음에는 정말 이런 사람과 여행이 가능한 것일까. 상종하기 싫다는 느낌뿐이었다. 하지만 네 명 각자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여행을 하면서 사이키를 제외한 세 사람은 서서히 사이키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듯이 나 또한 사이키라는 인물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뭐든 제멋대로인 사이키지만 딱히 모든 말과 행동에는 악의가 없다. 사이키는 조금 극단적이게 그려진 인물이지만 누구나 사이키가 가지고 있는 성향은 조금씩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사이키는 자신이 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며 어머니의 불단 앞에서 고하고 반성도 한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사과한다. 누군가는 어쩌면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거에 비하면 사이키는 악의 없고 솔직함이 지나친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는 어이 없어서 풋 하고 실소가 터지기도 했다. 사이키는 어째서 사교성 제로인데도 세사람의 여행에는 동행한 것일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아마도 그런 자신을 누군가는 꼭 이해해줬으면 하는 마음에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이키라는 인물이 중심이기는 하지만 다른 세서람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사이키를 동경하고 네 사람의 여행이 시작되는 마시마는 10년만에 어머니를 만나기 위한 여행을 세사람과 떠나고이혼한 아내와의 사이에서의 아들과 떠나는 여행어서 추억을 쌓는 시게타, 애인에게 헤어지지자는 말을 못하고 첫사랑을 잊지 못한 채로 여행을 떠나는 나카스기, 그리고 가까스로 마음에 든 여자와의 여행에서도 실수를 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여행을 하는 사이키까지 각자의 여행에서 서로는 때로는 트러블이 있지만 분명 위로와 힐링이 되어주는 여행 메이트가 된다.



그런데 그녀는 어젯밤 같은 관계라도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아 준 것일까. 아니면 단순한 우연으로 재회한 것일까. 이 세상은 모른는 것 투성이라고 사이키는 생각한다. 그래도 단 하나, 알 수 있는게 있다. 겨울처럼 투명한 하늘도 아니고, 여름처럼 비구름이 잔뜩 낀 것도 아니다. 어중간하게, 오늘처럼 맑기는 하지만 안개 같은 빛깔을 띠는 세계도 있다는 것.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일정 나이가 들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릴때는 타인의 좋지 않은 점을 내가 고쳐줄 수 있다고 착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 큰 착각애 불과했다. 그래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점은 내가 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냐는 점이다. 그사람의 단점까지도. 그렇지 못한다면 관계는 지속되지 못한다. 네 사람이 여행을 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여행을 통해 각자를 받아들이고 이해했기 때문이 아닐까. 사이키라는 극단적인 사람이라도 말이다. 그 사람이 단지 악의가 없다는 걸 알고 그 사람 자체를 받아들였듯이. 여행이란 자기 자신도 돌아볼 수 있지만 타인과의 관계에서 진정으로 그 사람을 이해하고 받어들여 그 관계가 더욱 단단해 지는 계기을 만들어 준다는걸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해본다. 본격적으로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는 요즘 다른 사람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내 여행 메이트를 떠올리며 소설을 읽어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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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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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 시대의 몰락과 러시아 혁명 후 정권과 사회 체제의 변혁이 한창인 러시아 모스크바. 몰락한 왕조 시대의 귀족 백작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는 시대가 변함에 따라 숙청되어야할 계급에 속해 심판받지만 혁명을 지지하는 시를 썼다는 점을 고려하려 감옥에 수감시키거나 시베리아행 열차에 태워지지 않고 자신이 머물던 모스크바의 메트로폴 호텔에 종신 연금형이라는 다행스러운(?) 선고를 받게된다. 국가적, 시대적 배경을 생각한다면 분명 읽지 않았을 소설이었다. 어렴풋이 배웠던 그 시대의 사건이나 배경의 지식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고 관심을 두어본 적도 없기 때문이겠지만 한 남자가 호텔에 종신 연금에 처해진다는 이야기는 분명 무척 내 흥미를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이 남자는 왜 호텔에 영원히 갇혀 지내야 했을까. 그 안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며 그 남자의 심리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등등을 상상하게 했다. 우리에게는 미국 전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가추천하는 11권의 작품 중에 하나로 알려진 이 소설은 러시아를 배경으로 했지만 정작 작가는 미국 출신이다. 출신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러시아 출신이 아닌 사람이 이토록 타국의 이야기를 섬세하고 깊이있게 써내려갔다는게 우선 놀라웠다. 시대적 배경이 낯설지만 구시대의 백작 신사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흥미로울 것 같다.

연금형에 처해지면서 로스토프 백작은 자신이 묵던 스위트룸에서 허름한 단칸방인 호텔 꼭대기 구석 다락방으로 쫓겨가게 되는 신세가 된다. 가지고 있던 소지품도 나라의 재산으로 몇몇은 빼앗기고 몇가지만 가진 채 좁은 다락방에 살게 된다면 어떨까. 나라면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백작은 그러지 않았다. 방은 바뀌었지만 늘 식사를 하던 레스토랑에 가고 늘 이발을 하던 이발소에도 다닌다. 그러면서도 신사의 품위는 지키려 한다. 사실 이런 상황이라면 사람은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절망감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거나 자신이 처한 환경에 하루 빨리 적응하는 방법. 백작은 후자를 택했다. 그리고 아주 훌륭히 그것을 해낸다. 작가는 그런 백작을 소설속에서 맨체스터의 나방으로 빗대었다. 날개의 색이 흰색이던 나방은 산업이 발달하는 영국의 환경에 따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검은 날개로 바뀌어 진화한다는 것. 극한의 상황에서도 절망 대신 선택한 삶은 사람을 그 환경에 맞게 변화시키고 살도록 하는 것 같다.

 

“그 옛날 너에게 평생 메트로폴을 떠날 수 없다는 연금형이 선고되었을 때, 네가 러시아 최고의 행운아가 되리라는 걸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그가 말했다. -460 p 중

 

미국의 한 청년은 몇 해 전 벨기에에서 있었던 폭탄 테러 현장에 있다가 심하게 다쳤다. 전신에 화상을 입는 심한 부상을 입은 청년은 알고보니 이전에 파리와 보스턴에서 일어났던 폭탄테러 현장에도 있었으며 그 테러로 인해서 부상을 당했었다고 한다. 이 청년은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 테러 현장에 우연이지만 몇번이나 있었고 죽을 수도 있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부상만 당한체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이 청년은 불운의 사나이가 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때마다 살아남은 행운의 사나이일까? 난 둘 모두에 해당하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비록 우연이지만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친 위험한 테러현장에 몇번이고 있었던 것은 불운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반면 정말 죽을 수도 있었던 현장에서 몇번이고 살아남은 행운아 라고도 할 수 있지 안을까. 한번 겪고 나면 밖에 돌아다니는게 무서울 법도 하지만 그러지 않고 지금은 건강을 회복해 해군사관학교에 재학중이라고 한다. 아마도 이 청년은 멋진 해군장교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면 로스토프 백작의 경우는 불운한 것일까 행운아인 것일까. 소설을 읽으면서 어디선가 본 미국청년의 이야기가 떠올랐는데 로스토프 백작 역시 둘 다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평생을 호텔 밖으로 나갈 수 없어 한때는 자신을 버리려 했던 절망감도 느꼈지만 호텔에 있으므로 해서 겪었던 많은 일들과 만날 수 있었던 많은 사람들은 연금형이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는 행운인 것이다. 어린 소녀 니나를 만나고 니나로 인해 평생을 사랑한 딸 소피야를 만났고 사랑하는 연인 안나를 만났으며 늘 식사를 책임졌던 레스토랑에 웨이터로 일하면서 평생의 친구들을 만났다. 러시아의 역사적 소용돌이 한 가운데 있었던 메트로폴 호텔은 그로 하여금 그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도록 해주는 보호막이 되어주기도 했다. 친구 미시카의 말대로 최고하고 할 수는 없지만 연금이라는 불운을 자신에게 행운으로 바꾸어 놓은 백작의 인내와 노력은 지금도 자신의 환경을 탓하며 불운한 삶을 산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선택이 주변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소중해지는지 보여주는 듯 하다.

 

“내겐 너를 자랑스러워할 이유가 셀 수 없을 만큼 많단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음악원 경연 대회가 열렸던 밤이었어. 하지만 정작 내가 최고의 자부심을 느낀 순간은 안나와 네가 우승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가 아니야. 그것은 바로 그날 저녁, 경연을 몇 시간 앞두고 네가 경연장으로 가기 위해 호텔 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았을 때였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박수 갈채를 받느냐 못 받느냐가 아니야. 중요한 건 우리가 환호를 받게 될 것인지의 여부가 불확실함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점이란다.” -609p 중

 

백작의 상황은 어쩌면 절망만이 있을 것 같은 미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평생을 호텔에서 나오지 못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모스크바의 신사는 그러지 않았다. 호텔에 한정된 삶이었지만 로스코프 백작은 그 안에서 자신만의 큰 세상을 만들었다.

세계적으로도 큰 영토인 러시아에 비하면 작은 호텔이라는 한정된 배경이지만 혼돈기의 러시아의 시대적 배경과 함께 깊은 서사를 느낄 수 있었다는데에 놀라운 소설이었다. 거기에 구시대의 표본인 백작이라는 신분의 남자가 호텔 연금형이라는 설정과 생각지 못한 반전이 소설로서의 흥미로움도 놓치지 않아 만만치 않은 두께의 긴 호흡의 소설임에도 지치지 않고 읽을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지금 자신의 환경이 못마땅하고 답답하다면 여기, 구시대의 모스크바의 신사에게서 용기와 위로를 받아봐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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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기원
천희란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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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등장한 작가이자 2017년 현대문학 젊은 작가상을 받은 신예 작가 천희란의 첫 소설집인 이번 작품은 신인 작가의 작품인 만큼 못미더우면서도 설레였다. 심사를 시작한지 5분만에 만장일치로 당선이 결정되었다는 작가의 작품은 독특한 매력과 문장력이 돋보였다는 심사평을 작품을 다 읽은 후 찾아본 작품 해설에서 알게되었는데 분명 동의할 수 있는 심사평이었다. 총 8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집은 각기 다른 스토리의 단편임에도 그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하나이다. 바로 '죽음'이라는 것.

소설을 읽기 사작하고 얼마 있지 않아서 다소 읽기 어려운 소설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다소 무거운 죽음이라는 소재 때문인가? 아니면 스토리가 어려운건가? 소화되지 않는 위화감이 내내 들었다. 소설집의 마지작 작품을 읽기 시작했을 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죽음이라는 묵직한 소재 때문도 스토리 때문도 아니었다. 읽으면서 자꾸 문장의 처음으로 또는 문단의 처음으로 되돌아가 반복해 읽어야 겨우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문장들 때문이었다. 각각의 스토리는 간단히 생각하자면 어려울게 없었고 딱히 죽음이 주제인것도 무겁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그런데 어렵게 느껴지는 문장의 표현들은 소설을 읽어 나가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이야기와 상관없는 작가만의 사유가 불쑥 튀어나올때에도 이해하기 어렵기도 했다. 이런점은 분명 스토리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작품을 느끼기에 큰 걸림돌이다. 작품 하나하나 스토리를 생각해보면 꽤나 괜찮다고 생각하는 작품들이었고 특히나 누구나 상상해보았을 근 미래의 이야기들 - 멸망의 날이 정해지고 나서의 사람들의 심리를 묘사한 '예언자들'이나 화성으로의 여행이 가져온 아내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직접 화성으로 떠나는 남자의 이야기 '화성, 스위치, 삭제된 장면들' -은 흥미로우면서도 독자들로 하여금 여러 사유들을 떠올릴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나같이 이렇게 어렵게 느껴지는 문장이 걸린다면 이런 점은 작품의 호불호가 분명 갈리는 요인이 될 것 같다. 이 소설집의 단점이자 아쉬운점이었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는 늘상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어왔다. 하지만 인간이란 자신은 죽음과는 상관이 없는 것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과연 일생에서 죽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시기가 얼마나 될까 싶다. 죽음을 나와 상관없는 먼 미래라고 생각하는 해맑은 젊음도 죽음이 가까워 오고 있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 죽음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도, 인간이 죽음에 대해 잘 아는 듯이 이렇듯 이야기 하는 것은 실로 오만하고 건방지다고 생각한다. 분명 인간은 유한한 시한부의 삶을 살고 죽음은 언젠가 다가올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죽음을 안다고 할 수는 없다. 멀게는 하루에도 수백명의 무고한 목숨이 세상을 떠나고 가까이는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을 목도하더라도 말이다. 죽은 자에게 죽음이 무엇인지 듣지 못하듯이 죽음은 인간에게 영원히 알 수 없는 주제가 아닐까. 그럼에도 이렇듯 그것도 죽음을 말하기에 젊은 작가의 작품에서는 죽음을 기저에 깔고 있는 작품을 읽을 때면 죽음이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죽음을 얼마 안남겨 죽음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누구나 필요한 시간인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과 엄마의 죽음에 대해 주고받은 편지 형식의 작품 ‘다섯개의 프렐류드, 그리고 푸가’ 와 아내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기위해 화성으로의 여행을 떠나는 남자 이야기인 마지막 작품 ‘화성, 스위치, 삭제된 장면들’ 이다.

 

그는 캄캄한 어둠이 내린 지구의 땅에 발을 딛고 섰다. 그의 발밑에 그의 그림자가 있었다. 누군가의 눈에 보이는 그림자가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을 리 만무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모든 선택과 믿음이 일시적인 광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여자는 분명 자신의 아버지가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누가 보아도 헛소리일 것이 분명한 문서의 내용이 진실일 수도 있다는 기대를 품었던 이유 또한 광기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것을 인정하자 자신은 광기에 휩싸이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건 그의 마음속에 늘 간직되어온 감정이기 때문이었다. 외로움이었다. 한시도 빠짐없이 그는 외로웠다. (중략) 광활안 우주는 한 인간을 그 자신의 심연으로 내동댕이치고, 외롭지 않은 인간조차 외로움의 의미를 알게 되는 그곳에서 마음이 허약한 자는 어둠에 마음을 빼앗긴다. 아내에게도 우주는 그런 것이었으리라. 그는 많은 것을 새롭게 이해했다. - p293-294 '화성,스위치,삭제된 장면들' 중

 

특히 마지막 작품에서 평생 화성 여행을 꿈꾸며 화성으로의 여행을 위한 우주선에서 일하는 남자가 혼자 화성 여행을 떠난 아내가 돌아온 후 자살하고 그 죽음이 화성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화성으로 떠난다는 이야기인데 화성을 떠났던 사람들의 모두 기이하게도 그림자를 화성에서 잃어버린채 돌아온다. 그림자를 잃어버린다는건 무엇일까에 대해 남자는 화성을 다녀온 후 알게된다. 소설에서는 정확히 나오지 않았지만 그것은 아마도 화성으로의 여행을 소망한 사람들의 외로운 영혼들이 아니었을까. 화성을 다녀온 후 비로소 아내의 외로움을 알게 된 남자. 화성은 외로운 사람들의 영혼이 깃든 그림자들을 붙들어 놓는 곳이었다. 견딜 수 없는 외로움에 어딘가로 가지 않으면 안되는 순간들. 몸은 돌아왔지만 영혼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몸이 있는 곳은 더이상 무의미한 곳이 되는 듯한 감각. 어쩐지 알것만 같았다.

묵직한 주제, 의미를 완전히 파악하기 힘든 문장들이 분명 읽기에 쉬운 작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외면하기도 어려운 마음을 사로잡는 무언가가 있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예사롭지 않은 신인 작가의 이번 작품이 앞으로의 작품을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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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로 하여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
편혜영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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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을 시작으로 매달 25일 현대문학에서 출간하는 핀(PIN) 시리즈의 첫번째 도서 편혜영의 이 소설은 처음 읽어보는 작가의 작품이기도 하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흥미로움이 궁금증을 자아내는 소설이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가의 다른 작품이나 앞으로의 작품들을 기대해 볼 만큼 꽤 괜찮은 소설이었다. 이 소설은 병원이 주 무대이지만 병원의 의료진이 주인공인 메디컬 드라마는 아니다. 소설은 병원의 경영과 그 권력층 하부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흔한 메디컬 드라마와는 다른 소재의 그런 점이 사뭇 새롭고 흥미로운 소설인 것 같다. 한때 큰 조선소 때문에 호황을 누리면서 종합병원으로 승격되어 같이 호활이던 병원이 조선소가 망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떠나고 유령도시 같이 변하면서 쇠락해가는 지방의 한 병원에서 관리부 구매담당으로 일하는 무주라는 남자가 같은 병원의 관리부 직원 이석의 비리를 폭로하고자 하면서 일어나는 병원 내부의 일들과 당사자나 주변 사람들의 심리묘사와 권력의 하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언젠가 tv에서 내부고발자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적이 있다. 거기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내부고발자가 잘못된 점을 바로 잡은 올바른 사람이 아니라 동료를 배신하고 언제든 돌아설 수 있는 변절자로 비추어 졌다. 언제든 내가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를 멀리하게 된다. 소설 속 무주 역시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된다. 서울의 큰 병원에서 근무하다가 상사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저지른 부정 때문에 희생양으로 해고되고 내쫓기듯이 지방의 병원으로 옮겨왔는데 아내의 임신과 전적의 과오를 떠올리며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어설픈 정의감과 괜한 공명심에 이석의 비리를 남몰래 고발하려 한다. 그 일이 있고 무주가 이석을 내쫓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시작된다. 아픈 아이의 병원비가 많이 필요하다는 점과 이석이 병원을 나간 후 이석의 아이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서 옳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이 드는 동시에 여기 저기서 날아오는 비난의 화살에 무주는 내적 갈등이 심해지고 그로 인해 아내와의 관계도 소원해진다. 그 후에 병원을 떠난 줄로만 알았던 이석이 요직으로 다시 돌아오면서 무주의 내적 갈등은 더욱 심해진다.

실제의 삶과 같이 소설에서도 무주가 행한 일은 이미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 주위에 배신자가 있다는 것과 언제 다시 내가 지목당할 지도 모른다는 자신의 안위에 대한 걱정이다. 그리고 이미 그런 사람들에게는 비리를 고발한 사람이 아니라 권력을 누가 쥐고 있냐가 중요하다. 사건에 대한 옮고 그름이 아니라 권력이 있고 없고에 대한 옳고 그름이 중요한 것이다. 소설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사상에 대한 부조리를 느낀 것은 아니다. 다만 역시 무주나 이석이 어떻게 아등바등 하든 그 위에 있는 권력층들은 신경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돌을 던진 사람은 누가 그 돌을 맞든 신경쓰지 않는데 정작 돌에 맞을 위기에 처한 사람들끼리 서로 맞지 않으려고 서로를 밀치고 싸우는 상황같은 것이 아닐까. 작가가 말한 대로 시스템의 모순은 사람이 살아가는 한 계속될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고 보며 역시 x같은 세상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더더군다나 소설은 동화처럼 해피엔딩이 아닌 그러한 삶은 계속 될거라는 이야기를 하는 듯 해 씁쓸함이 입안에서 맴돈다. 하지만 무주같은 사람이 있기에 어쩌면 그 균형에 깨어지지 않고 세상이 유지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소설은 그럼에도 희망이 있다가 아니라 그런 부조리와 모순은 계속되고 이석과 무주같은 사람은 계속해서 나온다고 얘기하고 있다. 소설은 그런 사람들에게 주고자 하는 희망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서인지 복잡하지 않은 스토리 라인에도 불구하고 심리묘사가 탁월하고 묵직하고 진중한 느낌이 든다. 굳이 소설에서 이야기 하지 않아도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그 시스템의 모순이 대해서는 잘 알 것이다. 소설은 그 시스템의 모순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 초점을 맞춘 만큼 거기에 집중한다면 흥미롭게 읽을 소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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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래빗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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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언젠가는 나도 독자가 읽다가 깜짝 놀랄 만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라는 작가의 말과 함께 돌아온 이사카 고타로의 신작을 미리 읽어보았다. 사실 이사카 고타로는 처음 소설을 읽고 매료되어서 한동안 계속 찾아 읽어 볼 정도로 손꼽히는 좋아하는 작가 중 한명이다. 뭐 본인은 미스터리 작가로의 부족함을 이야기 했지만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마니아로서 충분히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는 작가인데 도데체 얼마나 깜짝 놀랄 이야기를 하도 싶은 걸까. 작가님 지금도 충분히 훌륭한 미스터리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다구요. 그렇지만 그런 각오만큼 앞으로도 기대되는 작가이가도 하다. 국내에도 많은 팬이 있으며 최근에는 국내 영화로도 리메이크 되어 더 많은 팬이 생긴 이사카 고타로의 이번 신작도 그만의 스토리텔링과 필력으로 돌아왔다.



자업자득, 자승자박, 인과응보 이 말들의 의미는 모두 비슷하다. 영어로는 아이러니 라는 말쯤이 되려나. 아무튼 소설을 읽고 떠오르는 말들이다. 유괴를 돈벌이 사업으로 하는 조직에서 유괴를 할 사람의 매입을 담당하고 있는 우사기타. 어느날 조직으로부터 당신의 아내를 납치했다는 전화를 받는다. 조직의 자금을 들고 튄 오리오라는 남자를 하루안에 잡아오지 않으면 그의 아내는 무사하지 못하다는 것.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누구보다 인질의 앞날을 잘 알고 있을 우사기타는 오리오를 잡기위해 동분서주하고 그러던 중 그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 가정집에 침입하여 또 다른 인질극을 벌인다. 소설 자체에서 뭔가 굉장한 유머나 코믹함이 느껴지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소설은 ‘웃픈’ 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실소가 터진다는게 더 맞는건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유괴사업 조직에서 일하는 우사기타는 의외로 평범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 조직이 자신의 아내를 납치하는 촌극같은 상황이라니. 황당하고 어이없어 실소가 터질 지경 아닌가. 아무리 유괴를 돈벌이로 한다지만 자신의 아내가 납치되는 상황은 웃지 못할 상황이다. 자업자득이라고 하기에는 그 아내가 당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 좀 안스럽기도 하다. 범죄 미스터리는 그동안 수 없이 많이 읽어왔지만 이번 소설은 뭔가 소재도 신선하고 새롭다. 그리고 이 소설에는 그의 작품 ‘러시 라이프’에 등장하는 도둑 구로사와가 이 소설에도 등장하는데다 센다이라는 곳을 배경으로 하여 그의 팬이라면 친숙할 요소들도 갖추고 있다. 중요하지 않은 일로 빈집에 침입했다가 인질이 되는 빈집털이 구로사와와 사랑스러운 아내가 있지만 직업은 유괴조직의 매입 담당 우사기타, 그리고 우사기타가 찾아야 할 인물인 오리오는 이름 때문인지 오리온 자리에 관해 지식이 혜박하고 그 때문에 경찰들에게 엉뚱한 말만 늘어놓는 등 각각의 등장 인물들은 소설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캐릭터로서 재미을 더해주고 있다. 지루하지 않은 스토리 라인과 각각의 개성이 살아있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실소가 터지는 웃지못할 유머 등 이사카 고타로만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이 소설의 특이한 점이라면 소설의 화자이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는 중간중간 바뀐다. 보통은 등장인물이 번갈아 등장하지만 이 작품은 거기에 작가가 낀다. 작가 자체가 화자가 되는 건 특이한 점이 아니지만 소설에서는 마치 작가가 글을 쓰다가 해설을 해주는 듯한 느낌으로 끼어든다는 느낌이다. 친절하다면 친절하달까. 뭐 이런점도 재미있는 요소 중 하나이다. 우사기타가 절절히 찾고 있는 오리오라는 인물 덕분에 오리온 자리에 관한 강제 지식 쌓기(?)는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소설을 읽고도 여전이 조금 이해가 안되는 점은 제목과 같은 소설속 사건이 왜 흰토끼 사건이라는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는 것 정도를 제외하고는 막힘없이 술술 읽히는 이야기이다.   

내가 아둔한건지 모르겠지만 거의 마지막에 알 수 있었던 작가의 트릭에서 또 한번 당했다! 하는 생각과 함께 감탄한 이번 작품은 독자들을 놀라게 해주고 싶다는 작가의 마음 만큼 놀랍고 신선함과 함께 강한 흡입력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그의 팬이라면 돌아왔구나! 라는 반가움을, 처음 소설을 읽는 사람이라면 이사카 고타로의 세계에 빠질 수 있는 소설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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