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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댓말로 여행하는 네 명의 남자
마미야 유리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7월
평점 :
여행을 하는데 있어 중요한 사항은 많다. 금전적인 문제부터 여행지를 정하는 일이나 여행 일정을 정하는 일, 숙소를 정하고 먹거리를 알아보는 것 등.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건 여행을 함께하는 여행 메이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은 혼자 하는 여행도 흔해져있어 이것 저것 신경쓰지 않고 내 마음대로 여행을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마음 맞는 친구와의 여행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반면 맞지 않는 사람과의 여행 만큼 괴로운 것도 없으리라. 아무리 좋은 곳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여행 메이트와 맞지 않는다면 이 모든 게 의미없어짐은 한순간이다. 그만큼 여행에 있어 동행자는 매우 중요하다. 나 역시 지금은 혼자만의 여행을 꿈꾸고 있지만 마음 맞는 사람들과의 여행에서 추억 만들기 역시 많이 하고 싶은 일 중 하나이다. 나 아닌 누군가가 동행이 있거나 여럿이서 여행을 가면 비교적 내 의견은 잘 내지 않는 편이다. 무엇이건 딱히 불편하지 않는다면 대세를 따르는 편이라서 내 주장을 강하게 내비친 적은 없다.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면 혼자 여행을 떠나면 될 일이다. 친한 친구들 끼리 여행을 가도 꼭 싸우기 쉬운게 여행인데 더군다나 친하지도 않고 존댓말까지 해야하는 여행 메이트와의 여행은 생각만 해도 숨막힌다. 여기 그런 네 명의 남자 이야기가 있다.
소설은 네 명의 남자가 각각 화자가 되어 네 군데의 여행지를 떠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네 명의 남자중에 특히 중심이 되는 캐릭터는 사이키라는 인물. 선천적이라고 해도 될만큼 타인의 감정에 공감 능력이 마이너스이고 공감은 커녕 지나치게 솔직한 말들로 상처를 주기도 한다. 아침은 반드시 빵으로 해결해야 하고 밤 10시에는 목욕을 반드시 해야하며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패닉에 빠진다. 자폐적인 성향과 공항장애가 심하고 강박증도 심하다. 하지만 신은 공평하다고 했던가. 그런 사이키는 누구보다 주목받는 꽃미남이라는 것. 사이키를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단번에 호감을 사고 마는 이케맨인 것이다. 그의 학교 후배이자 등장인물인 마시마 조차도 동경할 정도. 처음에는 정말 이런 사람과 여행이 가능한 것일까. 상종하기 싫다는 느낌뿐이었다. 하지만 네 명 각자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여행을 하면서 사이키를 제외한 세 사람은 서서히 사이키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듯이 나 또한 사이키라는 인물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뭐든 제멋대로인 사이키지만 딱히 모든 말과 행동에는 악의가 없다. 사이키는 조금 극단적이게 그려진 인물이지만 누구나 사이키가 가지고 있는 성향은 조금씩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사이키는 자신이 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며 어머니의 불단 앞에서 고하고 반성도 한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사과한다. 누군가는 어쩌면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거에 비하면 사이키는 악의 없고 솔직함이 지나친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는 어이 없어서 풋 하고 실소가 터지기도 했다. 사이키는 어째서 사교성 제로인데도 세사람의 여행에는 동행한 것일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아마도 그런 자신을 누군가는 꼭 이해해줬으면 하는 마음에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이키라는 인물이 중심이기는 하지만 다른 세서람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사이키를 동경하고 네 사람의 여행이 시작되는 마시마는 10년만에 어머니를 만나기 위한 여행을 세사람과 떠나고이혼한 아내와의 사이에서의 아들과 떠나는 여행어서 추억을 쌓는 시게타, 애인에게 헤어지지자는 말을 못하고 첫사랑을 잊지 못한 채로 여행을 떠나는 나카스기, 그리고 가까스로 마음에 든 여자와의 여행에서도 실수를 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여행을 하는 사이키까지 각자의 여행에서 서로는 때로는 트러블이 있지만 분명 위로와 힐링이 되어주는 여행 메이트가 된다.
그런데 그녀는 어젯밤 같은 관계라도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아 준 것일까. 아니면 단순한 우연으로 재회한 것일까. 이 세상은 모른는 것 투성이라고 사이키는 생각한다. 그래도 단 하나, 알 수 있는게 있다. 겨울처럼 투명한 하늘도 아니고, 여름처럼 비구름이 잔뜩 낀 것도 아니다. 어중간하게, 오늘처럼 맑기는 하지만 안개 같은 빛깔을 띠는 세계도 있다는 것.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일정 나이가 들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릴때는 타인의 좋지 않은 점을 내가 고쳐줄 수 있다고 착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 큰 착각애 불과했다. 그래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점은 내가 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냐는 점이다. 그사람의 단점까지도. 그렇지 못한다면 관계는 지속되지 못한다. 네 사람이 여행을 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여행을 통해 각자를 받아들이고 이해했기 때문이 아닐까. 사이키라는 극단적인 사람이라도 말이다. 그 사람이 단지 악의가 없다는 걸 알고 그 사람 자체를 받아들였듯이. 여행이란 자기 자신도 돌아볼 수 있지만 타인과의 관계에서 진정으로 그 사람을 이해하고 받어들여 그 관계가 더욱 단단해 지는 계기을 만들어 준다는걸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해본다. 본격적으로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는 요즘 다른 사람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내 여행 메이트를 떠올리며 소설을 읽어보는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