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새끼손가락은 수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 W-novel
사쿠라마치 하루 지음, 구수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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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기 힘든 수학 문제만큼이나 기묘하고 비밀스러운 제목의 소설을 읽었다. 그녀가 사랑한 상대는 내가 아니라 내 휴대폰 번호였다! 라는 띠지의 문구 역시 궁금증을 자아내면서 흥미롭다. 소설은 수학 천재의 신비스러운 소녀 아키야마 아스나와 있는 듯 없는 듯 한 아웃사이더 소년 ''의 이야기이다. 한달을 주기로 기억이 리셋되는 전향성 건망증을 앓고 있는 아키야마 아스나는 수학을 사랑하는 소녀지만 자신의 병때문에 친구가 없다. 나 역시 과거의 어떤 아픔때문에 늘 혼자이다. 그런 ''에게 어느날 소녀는 알 수 없는 말을 걸어온다. 주인공들의 상황만 봤을때 분명 비슷한 다른 작품들이 떠오른다. 병명에 대해서는 처음 들어봤지만 단기적으로 기억을 하지 못하는 주인공들은 종종 있어왔고 스토리 역시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전개로 이어진다. 특별한게 있다면 아스나가 좋아하는 수학이 소설속에 녹아있다는 것. 아키야마 아스나가 나에게 말을 걸게된 계기도 숫자 때문이었다. 소년이 가진 특별한 숫자 때문에. 사실 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특별할게 없는 숫자지만 수학을 사랑하는 아스나에게는 무엇보다 특별하다. 딱히 수학에 흥미도 재능도 없는 나에게는 그게 말을 걸만한 건지 의문이다. 소설을 읽고있는 나 역시 그건 마찬가지. 나가 가진 휴대폰 번호나 생일이 수학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말해줘도 알아듣기 힘들다. 그렇지만 이런점이 비슷한 상황이나 스토리의 다른 작품과 다르게 특별하게 해주는 점이다. 수학을 좋아하지 않고 흥미도 없지만 읽는게 딱히 어렵지는 않다. 오히려 등장인물이 많지 않아 일본 소설 특유의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어려워 처음에는 익숙해져야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고 라이트 노블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게 하루 이틀이면 읽어버릴만큼 속도감도 있다.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말했다 우주의 기본적인 규칙 중 하나는 완벽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불완전함이 없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 달 마다 기억이 리셋되는 소녀와 죄책감으로 마음의 문을 닫은 나 두 사람은 분명 불완전한 존재들이다. 두 사람은 만나 서로에게 끌리지만 자신들이 가진 아픔 때문에 애써 그런 감정들을 숨긴다. 수학을 사랑하는 아스나 덕분에 두 사람 사이에는 늘 수학과 숫자가 있다. 거기에는 확률에 대해서도 늘 이야기한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에 대해서, 아스나가 건강해져 기억이 정상으로 돌아올 확률, 두 사람이 연인이 될 확률 같은 것들을. 그런데 그 확률에서 빠진 숫자는 늘 0100이다. 무언가 일어나거나 일어나지 않거나 할 확률이 늘 0%100%는 없다는 것이다. 불확실한 일에도 늘 조금의 확률은 있다는 것이다. 불치의 병에 걸려 병이 낫거나 죽지 않을 확률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금의 확률은 0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확률에 기대어 무엇이든 시도해본다. 아스나가 처음 나에게 말을 걸어 친구가 될 적은 가능성에, 기억의 시간들이 점점 짧아지지만 일기를 쓰며 삶을 포기하지 않는 것에, 아스나가 건강해진 후 나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녀에게 전화해 받을 적은 확률에. 일말의 확률에 무언가를 시도해본다는건 용기와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마음들은 희박한 확률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작용한다는 것을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었다.

라이트 노블이지만 두 소년 소녀가 서로를 의지해 성장해가는 모습은 가볍지만은 않은 잔잔한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01사이에는 이 세상에 있는 사람의 숫자보다도 더 많은 무한대의 숫자가 있듯이 적은 확률의 일에도 무한의 가능성이 있다는걸 풋풋한 첫사랑의 설렘을 느끼면서 여러가지을 생각해보게 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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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 24시 - 상
마보융 지음, 양성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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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중국의 떠오르는 작가 마보융의 이 소설은 당나라 현종 천보 3재 '장안성에 큰 불이 났다'는 역사서의 짧은 기록으로부터 시작되어 조정의 수사관이었지만 상관을 살해한 죄명으로 사형수가 된 장소경이라는 상상의 인물과 뛰어난 지략가이자 정안사의 젊은 수장인 이필을 비롯한 중국 역사에 실존했던 인물을 더해 장안성에 침입하여 테러를 일으키려는 돌궐세력과 그 배후세력, 조정의 반대세력과 장안 뒷골목 지하 조직이 한데 뒤엉켜 테러를 막기 위한 24시간 동안의 고군분투를 그린 팩션 소설이다. 사실 중국 문학도 낯선데다 이런 중문 역사 소설은 처음 읽어보는 거라 기대 반 불안 반이었다. 예전에 대만 작가의 소설을 읽어 보긴 했지만 그 후로 읽는 두번째 중문학이자 첫 역사소설인 샘이다. 대만 작가의 소설에서도 느낀 거지만 사실 이번 소설도 중국 문학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놀라움을 느끼게 해준 소설이었다. 24시간을 그린 소설이지만 꽤나 두꺼운 분량의 2권으로 나뉘어서 만만치 않은 분량의 소설이지만 그만큼 사건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뛰어나다는게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인데 스토리가 이어지는 것 만으로 눈앞에 장안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 드라마로 재탄생할 작품에 더욱 기대가 된다. 인구 백만의 넓디 넓은 장안의 108개 방은 물론 장안의 곳곳과 사건이 일어나는 원소절 당일 수많은 등롱의 모습, 정안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장안의 통신 체계인 망루에서의 교신하는 모습, 장안 테러 세력과의 추격전에서 벌어지는 동안의 스펙터클한 사건 등 시각화 한다면 화려한 볼거리가 가득할 것 같은 세밀한 각각의 묘사는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 중에 하나이다.

이런 블록버스터 영화같은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사실 속도감이 빠르게 느껴지는 소설은 아니다. 개인적인 독서 경험과 지식의 차이일 수 있으나 디테일이 많은 만큼 중국 역사서에나 나올법한 지명이나 조정 관료들의 지위 관계나 그 밖의 단어들이 낯설어 주석이 없는 말들은 번역서임에도 불구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야 할때가 많았고 장안을 테러하려는 세력은 장소경과 이필의 공조로 추격을 하면 할수록 더 큰 배후세력이 나오고 두 사람과 대립하는 세력까지 더해져 스토리의 흐름을 파악하해야 함이 속도감이 나지 않는데에 한목한다. 장소경이 테러 세력을 쫓을 수록 점점 더 잡히지 않는 배후 세력 때문에 무기력함을 느낄때마다 그와 같이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함께한 독자들은 그와 함께 무력감을 같이 느끼게 했다. 이런 점은 추격전의 긴장감과 함께 주인공에게 이입되어 스토리에 빠지게 해주지만 그런 복잡함이 지치게 하는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분명 앞으로의 이야기를 궁금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장소경이 무력감에 빠질 때 마다 어디선가 나타나는 도움의 손길이 그를 일으키듯이 지칠 듯 놓을 수 없게 하는 매력이 있다. 전혀 상반되는 캐릭터의 장소경과 이필이 공조하여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만큼 매력적인 두 주인공과 함께 테러를 막기 위해 두 사람을 도와 고군분투하는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 역시 생동감과 매력이 소설을 더욱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으로 만들어 준다. 이 소설은 처음 SNS에 연재하면서 역사적 고증은 물론 작은 의문점까지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의견을 적극 수렴해 쓰인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높은 완성도가 느껴졌다. 아직 상권의 12시간 동안의 이야기밖에 읽지 않았지만 다음 12시간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진다. 중국의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불리우는 만큼 국내 독자들에게도 그의 첫 작품인 이번 소설은 아마도 다음 작품까지 기대하게 하기에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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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 욥기 43장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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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만이던가. 소설일 읽고 보니 문득 예전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미션 스쿨이었던 나의 모교는 그래서인지 학교 임원을 비롯한 교사들 까지 모두 카톨릭 신자였다. 뭐 나같이 종교가 없는 학생들도 많았으니 그냥 일반고와 다를게 없지만 딱 하나 있다면 그건 아침마다 짧게 예배를 드리고 일주일에 한번 성경시간이 교과목에 있었다는 거였다. 아침마다 하는 예배에서는 찬송가를 부르는 시간이 아니고는 그저 꾸벅꾸벅 조는 시간이었고 성경시간은 엄연히 교과목이라서 시험도 보는지라 어쩔 수 없이 책을 들여다보기는 했다. 그러면 이 소설의 부제인 욥기에 대해 잘 알지 않겠냐는 것에는 놉. 욥기라는 말은 아주 많이 들어 알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1도 모른다. 소설때문에 그 내용을 알아야 했기에 찾아보기는 했지만 그 때문에 예전 기억까지 떠오르기만 한것이다. 그렇다면 카톨릭 신자가 아니라면 소설이 어려운가 라는 의문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도 전혀 아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소설은 미스터리 같은 느낌으로 누구나 읽기에 무난하다. 다만 작가 후기에도 나왔듯이 욥기의 후속으로 이 소설을 썼다는 점에서 그 내용을 알고 있다면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소설은 목양면의 어느 건물에서의 화제 사건에 대해 12명의 인물들의 말을 통해 사건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형식이다. 일단 소설속에서 몇몇은 합선에 의한 화제라고 단정짓지만 제목은 방화라고 확정지었다. 그렇다면 범인이 확실히 있다는 것. 용의자로 의심되는 인물들을 비롯한 그 주변인물의 이야기와 증언들을 통해 범인이 누구인지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방화사건의 중심에는 건물에 있는 교회가 있고 화재로 인해 교회의 장로인 최근직 장로와 그의 아들 목사 최요한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흥미로운 제목만큼 종교적 색채를 띔에도 불구하고 꽤 재미있게 읽어 내려갔다. 작가의 작품은 처음 읽는데 적은 양이라는 점도 있지만 소설의 흡입력이 좋아 읽을 수록 다음이 궁금해져 단숨이 읽어내려갔다. 그저 이대로 재미있는 미스터리 소설로 읽어도 좋은 소설이 될 것 같지만 소설의 부제로 쓰인 욥기에 대해서 안다면 조금 더 작가의 의도와 그 내용을 파악하는데 좋을 것 같다. 욥기는 가족을 모두 잃는 고난으로 하나님에게 왜 자신에게 이런 시련을 주느냐 질문하고 원망하지만 뒤늦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믿음이 더욱 깊어진 인물이다. 소설에서의 욥기는 최근직 장로이다. 사고로 아내와 세 자녀를 모두 잃은 뒤 자신도 세상을 등지려 했지만 그 순간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새로운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렇게 만나게 된게 지금의 아내와 교회의 목사인 아들 최요한. 하지만 그 마저도 화재로 인해 아들을 잃었다. 욥기는 가족을 잃은 후 그것에 대해 하나님에게 질문했지만 곧이어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 했다. 최근직 역시 처음 가족을 잃은 후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했지만 작가가 (발칙하게도) 증언대로 소환한 하나님의 증언(?)은 다르다. 그 순간 그의 곁에 없었노라고. 그리고 그 말이 사실이 아님을 그의 입으로 마지막에 고백했다. 자신에게 왜 이런 고통이 일어나며 그 고통의 의미도 모르겠다고. 사람들의 증언 속 최근직은 더없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정작 죽은 그의 아들은 그에게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신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삶을 얻었다는 그는 실은 그저 살고 싶은 자신의 욕망에 대한 핑계였던 것 아닐까. 신을 가까이에서 영접한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지만 정작 자신이 가장 사랑해주어야 할 아들에게는 신이 말하는 그 중에 제일이라는 사랑은 주지 못했다. 그 시련에 대한 이유도 알지 못했으며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말도 거짓이 되었다. 한낱 인간임을 인정하지 않고 신의 뒤에 숨어서 그것을 가리려 했던 최근직이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과 오만함을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이 신이 우리에게 시련을 주는 이유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어리석음은 때로 시련으로 인해 깨닫게 될 수도 있으니까.

사실 욥기에 대해서 읽어봐도 이해가 되는건 아니다. 그리고 방화사건의 범인이 내가 생각하는 범인은 맞는 것일까? 라는 의문도 든다. 처음엔 소설이 읽히는 속도 만큼 가볍게 생각했지만 소설을 읽고 난 후 욥기에 대해 알아보면서 생각보다 더 묵직한 무게감과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소설이었다. 인간에 대해서도 신에 대해서도. 누구에게나 흥미로운 미스터리한 사건 속에서 신 아래 인간의 이면과 민낯을 던져 묵직함을 더해주면서 유머러스한 필체가 돋보이는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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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 삶을 위로하는 시를 읽고, 쓰고, 가슴에 새기다 감성필사
윤동주 61인의 시인 지음, 배정애 캘리그라피 / 북로그컴퍼니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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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말하고 공감과 위로를 주는 것들을 표현하는 데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소설, 에세이, 시, 영화, 음악, 강연, 그림, 사진 등등 이 중 가장 간단하면서도 쉽게 그것들을 얻을 수 있는게 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소설이나 영화는 긴 호흡이 필요하고 음악은 음악을 듣기 위한 장비나 요즘은 데이터가 필요하려나. 강연이나 그림, 사진 등은 시간을 내어 찾아가야 한다. 하지만 시는 이 모든 것들이 필요없다. 작은 시집 하나면 어디서든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다. 학교 다닐 때에는 입시 위주의 공부로 교과서에 나오는 옛 시들은 무조건 고리타분한 것이었다. 나이가 들고 문득 읽어 보게 된 그 옛시들이 이토록 아름다운지를 처음 알게되었다. 누구나 이런 생각들을 해 보았을 것이다. 그 예전 분명 시를 배우고 읽었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 시를 잊은 사람들을 위해 다시 마음에 시를 돌려줄 감성 라이팅북을 소개해본다.

시는 간단한 만큼 읽고 난 후면 잘 잊게 되는 것 같다. 마음에 담아 두고 간직하고 싶다면 뭐든 여러번 천천히 음미하며 반복하는게 좋다. 그런 시적 감성을 찾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을 라이팅북 ‘다시 多詩‘는 텍스트를 직접 손으로 쓰는 데에 어색해진 요즘 사람들에게도, 멋스러운 아날로그적 감성이 그리운 사람들 누구에게나 시적 감성과 아날로그적 그리움, 그리고 시를 써보며 음미하면서 얻을 공감과 위로를 얻기에 좋을 책이다.

 

 

 

 

 

 

 

 

 

요즘은 캘리그라피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만큼 라이팅북도 쏟아지고 있지만 막상 글씨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쓰기에 망설여진다. 하지만 이 책은 시마다 다른 감성적인 사진이나 그림들이 시를 쓸 수 있는 공간에 마련되어 있어 특별히 캘리그라피라고 말할 수 없는 평범한 글씨체의 사람들이 써보아도 멋스러워진 기분이 든다. 그리고 단순한 텍스트가 아닌 캘리그라퍼가 직접 쓴 시도 있어 캘리그라피를 하는 사람이나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한번쯤 따라 써보고 싶게 만든다.  

 

 

 

 

윤동주, 김영랑 등 한국사람들이 사랑한 예시 시인의 시부터 요즘 사랑받고 있는 현대 시인의 시와 읽기 어려웠던 외국의 시까지 62명의 시인이 쓴 80편의 시가 사랑, 쓸쓸함, 청춘, 인생, 자연 등 5가지 주제별로 필사 공간과 함께 있어 다양한 시를 접해볼 수 있다. 얆고 작은 크기의 책으로 작은 가방에 넣고 다니기에도 좋을 감성 라이팅북 ‘다시’로 가을이 시작되는 요즘 어디서든 시적 감성에 빠져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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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편지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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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라는 감정은 눈물이라는 신체 반응과 동반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감정들은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면 어느정도는 해소 되는 듯 하다. 그 슬픈 감정들을 넘어서서 폐부 깊숙히 끝없이 파고 들어갈듯한 참혹함을 마주하면 슬픔이라는 말로는 정의되지 않는다. 눈물 조차 나오지 않는다. 머리의 피가 다 빠져 나가는 듯 창백해지고 어지러우며 속이 울렁거려 구역질이 나기도 하고 가슴이 타는 듯한 분노가 솟구친다. 그동안 영화로도 소설로도 여러번 나온 ‘위안부’ 소재의 작품들은 애써 외면해왔다. 생각만으로도 이런 감정들이 솓구쳐 힘들기 때문에. 하지만 의도치 않게 우연히 그때의 사건들에 관한 기사를 읽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그야말로 슬픔이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눈물로는 해소되지 않는 아픔이 없어지지 않고 남아 두고두고 괴롭게 한다. 그래서 겁이 났다. 그래서일까 소설을 읽다보니 나는 소설속 화자인 금자이자 후유코의 마음으로 소설을 읽고 있었다. 지옥속에서 자신은 죽었다고 생각하는 금자이자 후유코처럼, 감정들이 솓구치지 않도록 평소 책을 읽을 때는 하지 않던 음악을 들으며 이건 소설일 뿐이라고 애써 눌러보고 싶었다. 하지만 한번 본 것들은 눈을 뽑는다 한들 잊히지 않는다는 금자의 말처럼 눈에 담기는 글들에서 감정을 배제하기란 무척 힘든일이다. 울컥하다가도 심장이 뛰고 당장이라도 터질듯한 마음이 되곤 한다. 그럼에도 마주해야만 하는 이야기에 집중해본다. 

소설은 앞서 말한 금자이자 후유코인 '나'가 화자이다. 13살 아직 어리디 어린 나이 비단공장에서 돈을 벌게해 준다는 말에 따라 나선 길은 그러나 곧바로 지옥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야기는 해방을 얼마 앞두지 않은 해의 낙원위안소에서의 소녀들의 참혹함을 담고 있다. 저마다 가난에 못이겨 누군가에게 속아 따라나선 곳. 낙원이라는 이름과는 반대의 지옥같은 곳. 그곳에서 15살의 나는 부치지 못할 편지를 흐르는 강물에 쓴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를, 뱃속에 아기를 갖게 되었다고. 제발 죽기를 바란다고. 하루에도 수십의 일본군을 받으며 살아가는 소녀들은 그곳을 벗어나고 싶지만 막상 죽음이 두려워 일본이 전쟁에서 이기기를 바라기도 하고 벗어나도 고향에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자신들의 그런 변해버린 모습들을 반기는 이는 없을거라면서. 그래서일까 소설을 읽으면서 당장이라도 이 소녀들을 데려다 직접 씻겨주며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이제 괜찮다고.

소설에서 ‘나’는 금자라는 이름이 있지만 누구도 금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후유코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일본군들이 지어준 여러 일본 여자의 이름으로 불리운다. 그렇게 몸도 정체성도 빼앗긴 소녀들은 생존만을 생각하며 죽음보다 더한 지옥에서 살아간다. 처음 ‘나’는 아기를 가졌다는걸 알고 부치지 못할 강물 위 편지에 아기가 죽기를 바란다고 쓴다. 전쟁이 이어지고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군인을 받으면서 죽기보다 힘든 지옥에 살면서도 정작 살아 돌아오라고 빌어 달라는 군인에게 살아 오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총알이 빗발치는 상황속에서 죽어가는 군인들과, 같이 지내던 소녀들의 죽음을 보면서 점점 아무도 죽지 않기를 바란다. 수많은 죽음을 목도하고 전쟁이 이어지면서 죽음이 난무하지만 점점 자라나는 아기 때문일까. ‘나’는 점점 누구의 죽음도 싫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전쟁에 이겨도 벗어나기 힘들고 지면 죽음이 앞에 놓인 상황에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아기가 딸일까봐 죽기를 바라면서도 인간에게 삶과 생존,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8월 14일은 위안부 기림의 날이라고 한다. 사실 이런 날이 있다는 건 오늘에야 처음 알았다. 최근 중국에서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 영화를 제작했다고 한다. 인터뷰에서 감독은 위안부라는 말이 맞지 않지만 그 말을 써야 대외적으로 사건의 중대함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사실 실제로 기사로 접한 할머니들의 증언들은 소설에서 그려진 것 보다 훨씬 더 참혹했다.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을 그 글들을 본걸 후회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든 알았으면 했다. 잘못을 했음에도 숨기려고만 하는 가해자들이 다시는 숨지 못하게. 마지막에 ‘나’를 비롯한 소녀들이 살아 고향에 돌아갔는지를 알 수 없어 아쉬웠지만 마주하고 싶지 않다고만 생각했던 이야기들은 이제는 잊어서는 않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소설을 보면서 나 역시 어느덧 변해있었다. ‘나’가 쓴 강물 위 흐르는 편지는 어디까지 흘러 갔을까. 나를 비롯한 소녀들의 이야기가 멀리 흘러 갔으면 바래봤다. 시간이 갈수록 잊히고 있는, 지금도 잊지 못할 옛일 때문에 힘들어 하는 그 예전의 소녀들을 위해서. 나처럼 마주하기 힘들다고 생각되던 이야기에 외면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잊지 않기 위해서도 그녀의 흐르는 편지을 받아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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