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승주나무 > [퍼온글] [알라딘] 전문가들에게 배우는 글쓰기 전략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지음, 권진욱 옮김

"뼛속까지 내려가 자기 마음의 본질적인 외침을 적어내라!" 내면의 목소리를 믿는 법.
유혹하는 글쓰기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많이 쓰고 많이 읽으라. '오늘' 책을 읽는 사람은 언젠가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글쓰기의 공중부양
글쓰기의 공중부양
이외수 지음

작가 이외수가 30여년 동안 글을 쓰면서 터득한 ‘실전 글쓰기 노하우’
한국의 이공계는 글쓰기가 두렵다
한국의 이공계는 글쓰기가 두렵다
임재춘 지음

연구 자체보다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 더 많이 고민하는 이공계 출신자를 위하여.
 
네 멋대로 써라
네 멋대로 써라
데릭 젠슨 지음, 김정훈 옮김

내면에 숨어 있는 말들을 일깨우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보여준다.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쓰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쓰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운찬 옮김

에코가 공부하는 법, 글을 쓰는 기술, 정리된 사고를 하는 법을 공개한다.

글쓰기의 전략
글쓰기의 전략
정희모.이재성 지음

글쓰기의 숙련 시간을 단축시켜주는 요령을 제시하고 실전에 적용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글 고치기 전략
글 고치기 전략
장하늘 지음

좋은 문장은 끊임없이 고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글쓰기와 글고치기의 모든 것.
 
대학생 글쓰기 특강
대학생 글쓰기 특강
강준만 지음

글쓰기의 기본 바탕이 되는 인문사회학적 개념을 설명하고 각 의견의 차이를 보여준다.
탁석산의 글짓는 도서관 1
탁석산의 글짓는 도서관 1
탁석산 지음

논증이라는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실용적인 글쓰기의 훈련 방법을 다루는 책이다.
 
이렇게 해야 바로 쓴다
이렇게 해야 바로 쓴다
한효석 지음

글쓰기가 거짓이나 관념, 상투성 등으로 흐르는 것을 경고한다.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황혜숙 옮김

원고지 10장을 어려움없이 쓸 수 있게 되면 어떤 글이라도 잘 쓸 수 있다.

문장강화
문장강화
이태준 지음, 임형택 해제

이태준이 고심하여 쓴 문장론, 50년 세월 속에서도 빛이 바래지 않은 생생한 고전.
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
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
남영신 지음

적절한 예문과 연습 문제들을 제시, 한국어를 학습하고 잘못을 교정할 수 있도록 구성.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한 우리말 풀이사전
박남일 지음

아름답고 재치가 넘치는, 그러나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는 우리 옛말 1700여개.
한국어가 있다 1
한국어가 있다 1
중앙일보 어문연구소 우리말 바루기 팀 지음

잘못 알고 있거나 헷갈리기 쉬운 우리말을 골라 알기 쉽게 설명했다.
 
우리말 나들이
우리말 나들이
MBC 아나운서국 우리말팀 엮음

고루하게 느낄 수 있는 바른 언어생활에 대한 주제를 재미있고 다양한 구성으로 다룬다.
바른말 고운말
바른말 고운말
KBS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회 지음

바른 표기에서부터 한자어의 어원, 일본어의 잔재, 지나친 외국어 남용, 호칭 문제까지.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승우 지음

낯익은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끊임없이 소설을 생각하고, 소설을 읽고, 소설을 쓰라.
현대소설작법
현대소설작법
김용성 지음

체계적인 창작강의와 풍부한 예문을 함께 수록한 소설작법 안내서.
 
기사작성의 기초
기사작성의 기초
이재경 지음

기사란 무엇인가, 기자란 무엇인가. 기사쓰기에 필요한 기초지식과 기사의 기본 유형.
드라마 아카데미
드라마 아카데미
김수현.노희경.이금주.박찬성 지음

한국방송작가협회에서 펴낸 TV 드라마 작법 교재. 드라마의 기초부터 발상, 구성, 대본쓰기까지.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로버트 맥기 지음, 고영범 외 옮김

시나리오의 첫 대사부터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작가의 기본소양을 길러주는 책.
수필문학입문
수필문학입문
윤오영 지음

문학은 표현이다. 표현기술의 연마 없이 개성적 문체는 탄생되지 않는다. 독서와 문장 수련은 절대적 조건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달빛요정 > [퍼온글] [씨네21]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소설

[씨네 21 No.419] 2003년 09월 09일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소설 - 한지혜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부터 나오키상 수상작들까지, 일본 소설 올 가이드


일본 소설이 좋은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읽는 데 부담이 없다는 점이다. 그들의 소설에는 어떠한 강박도 존재하지 않는다. 역사에 대해서, 민족에 대해서, 이념에 대해서 그리고 가족에 대해서. 일본 소설의 주인공들은 그 어떤 것에도 구속되어 있지 않다. 오직 개인의 일상과 개인의 존재감만이 있을 뿐이다. 등장인물은 나와 너와 그리고 그 혹은 그녀가 전부다. 주인공들의 일상은 그들과의 관계가 유지되는 테두리 안에서 이뤄진다. 관계에 얽매이는 법도 없다. 치정 정도가 사람과 사람이 만나 가장 복잡하게 꼬인 관계라고나 할까. 그들의 소설은 만나다, 헤어지다, 살아가다 딱 그 정도의 관계 안에서만 고민하고 그 안에서 방황한다. 담백하다 싶게 개인적인 소설, 그게 바로 일본의 '사소설'이다. 그들은 오직 자기 자신의 무게에 대해서만 고민하는데 강박이 없는 존재의 무게는 가벼운 법이다. 읽는 마음도 가볍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들의 소설이 항상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볍고도 무거운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가벼운 작가이자 동시에 무거운 작가다. 하루키의 소설은 크게 두 가지 스타일로 나뉜다. <상실의 시대>처럼 동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을 특유의 감성으로 디테일하게 쓴 소설이 있는가 하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처럼 세계의 구조와 인간 실존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조망한 소설이 있다. 전자는 가볍고, 후자는 다소 무겁다. 최근 출간한 <해변의 카프카>는 후자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가출한 15살 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 소설은 단순하게 말하면 한 소년의 내면이 성장하는 과정이다. 주인공이 35살이 아니라 15살이다보니(하루키의 소설은 35살 남자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35살 그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나는 가끔 그게 궁금하다) 요리를 하고 연애를 하고 맥주를 마시는 일은 없지만, 음악을 듣고 도서관에서 책을 뒤적여 해답을 찾는 방식은 여전하다. 게다가 의식과 무의식이 시공을 초월한 대립을 통해서 비로소 어떤 답을 찾아가는 다소 난해한 설정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변의 카프카>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하루키 소설과 다소 다르다. 작가후기에서 그는 불후의 걸작을 쓰고 싶다고 했던가. 비틀스와 듀란듀란 대신 나쓰메 소세키와 고대 소설인 <겐지 이야기>와 그리스비극을 차용하고 있는 <해변의 카프카>는 한결 깊이있고 풍부해 보이기는 하지만 때문에 하루키 특유의 감수성은 오히려 빛이 바랜 느낌이다. '걸작'에 대한 부담을 덜어냈다면 훨씬 재미있는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문체는 감성적인 소설에 더 적합하다. 형이상학은 그에게 버거워 보인다.

또 다른 무라카미 류는 퇴폐적이고 감각적이며 관능적이고 폭력적인 소설을 즐겨 쓴다. 그에게 아쿠타가와상을 안긴 <한없이 투명한 블루>에서부터 그가 지속적으로 택하는 소재는 마약과 섹스와 폭력. 그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를 즐기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세계에 냉소적인 시선을 던진다. 이러한 경향은 신작 <너를 비틀어 나를 채운다>에서도 예외없다. 아라키 노부요시의 사진을 그대로 옮겨 그린 듯한 책표지가 말하듯 이 책은 SM에 빠져 있는 일곱명의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들에게 살해된 남자가 여자들의 기억을 찾아내어 그들이 사디즘에 빠진 원인을 말해주는데, 그 원인이란 게 일곱명 모두 유년 시절의 성적 학대라는 결론이 좀 씁쓸하다. 하기야 여성을 바라보는 무라카미의 시선은 획일적인 데가 있다. 그에게 있어 여성은 성적으로 착취하거나 착취당하는 존재 둘 중 하나일 뿐이다. 여성에 대한 무라카미의 입장은 비교적 최근작인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세계 미식가협회 회원이기도 한 무라카미 류가 생각하는 가장 훌륭한 세계의 요리 31개를 엽편소설 형식으로 소개하고 있는 이 책에서 편마다 요리와 함께 여자가 등장한다. 그 여자들에 대한 묘사는 요리에 대한 그의 평가와 일치한다. 그에게 여자란 입맛 다시며 먹어치우는 요리에 불과할 뿐이다.

일탈에 관하여

무라카미 류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일탈에 대해 쓰는 시마다 마사히코는 다자이 오사무와 더불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일본 작가다. 무라카미 류의 일탈이 세계에 대한 나르시시즘이라면 시마다 마사히코는 무정부주의를 꿈꾸는 소설가다. 그에게 있어 관(觀)으로 말할 수 있는 모든 세계는 부정해야 하는 대상이다. 그는 체제와 이념을 거부한다. 틀 안에 갇히는 것을 싫어하고 규정에 반발한다. 심지어 그는 그 자신도 부정한다. 아니 조롱한다. 모든 이념과 집단의식이 그의 소설에서는 하나의 농담이자 유머가 되어버린다. <부드러운 좌익을 위한 회유곡>은 그 농담의 절정이다. <꿈의 메신저>에는 버려진 유조선을 개조하여 움직이는 무국적 도시를 건설하려는 소설가가 등장하는데 그런 도시의 건설은 바로 마사히코의 꿈이기도 하다. 마사히코의 소설은 워낙 독특해서 정상적인 코드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악마를 위하여>를 읽어두면 다른 마사히코의 소설을 이해하는데 한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아쿠마 카즈히도는 악마적인 내성을 가진, 분열된 자아로 세상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마사히코의 소설적 자아인 셈이다. 마사히코의 모든 소설은 아쿠마 카즈히도가 썼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39살에 자살한 다자이 오사무는 이른바 '퇴폐의 미학'을 보여주는 작가다. 그의 삶이나 소설적 행보는 우리나라 소설가 이상을 연상시킨다. 상처입은 예술가 소설의 전형인 <인간 실격>은 예민한 자아로 인하여 세상과 화합하지 못하고 끝내 유리된 삶을 살다가 미쳐버리는 한 사내의 일대기로 그 자신의 정신적 자화상으로 불리기도 한다. 세상과 맞물리지도 등돌리지도 못하는 인간 내면의 풍경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이 소설은 패전 뒤 일본사회에 만연하던 허무주의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투신자살이라는 극적인 상황과 맞물려 지금까지도 일본 문청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소설적인 미의식

지극히 소설적인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이 잘 보여주고 있다. 오직 소설로만 가능한 이야기, 그것이 마루야마 겐지가 지향하는 소설이다. 마루야마는 일본 문단 내에서도 매우 구도자적인 소설 쓰기를 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사실 그의 에세이나 소설에서 드러나는 여성관이나 세계관은 나하고 맞지 않는다. 맞을 까닭이 없다. 수시로 여성을 무뇌아나 단세포 생물로 취급하는데 누군들 맞장구치고 싶을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은 값진 데가 있다. '소설적'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건강한(?) 마초의 전형이다 싶은 그가 어떻게 이렇게 섬세한 문장을 쓸 수 있을까 의심이 날 정도로 그의 문체는 아름답다. 소설을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훔치고 싶은 문체다. 우리나라 몇몇 작가들은 마루야마 겐지의 문장과 이미지를 그들의 소설에 차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기도 한데, 그네들의 심정이 이해가 갈 정도다. 겐지의 소설 가운데 특히 문체가 아름다운 소설 가운데 하나가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다. 해변가에 사는 청년이 죄를 짓고 도망쳐온 것이 분명해 보이는 어릴 적 여자친구와 오토바이를 타고 고향을 떠났다가 되돌아오는 이야기를 그린 이 소설은 오토바이가 질주하며 보는 거리의 풍경이 내용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음에도 지겹거나 단조롭지 않다. 오히려 장편의 시를 읽는 것과 같은 감동이 있다.

아베 고보<모래의 여자>도 문청들에게는 필독서다. "8월의 어느 날, 한 남자가 행방불명되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인간의 실존을 생각하게 한다. 날마다 똑같은 분량의 모래를 퍼내야 살 수 있는 모래구덩이에 갇힌 남자의 삶은 읽는 것만으로도 입안이 버석거린다. 시시포스의 신화를 연상시키는 어쩔 수 없는 반복의 삶도 가슴 메이지만, 몇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비로소 탈출의 묘안을 세운 남자가 그 방법이 탈출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탈출을 미뤄두는 마지막 대목은 특히 인상적이다. 정작 삶을 억압하는 건 희망 혹은 가능성이 아닐까. 잠재된 가능성이라는 건 사실 실현 여부가 불가능한 가능성이기도 하다. 희망도 없이 모래구덩이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희망을 안고도 모래구덩이에서 나오지 못하는 존재, 사실은 그것이 인간의 실존인 것은 아닐까.

여성작가들의 힘

일본 소설을 읽다보면 의외로 여성작가들을 찾기 힘들다. 남성작가들의 소설 위주로 번역이 된 것인지 실제로 여성작가들의 활동이 미비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나마 알려진 여성작가들이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야마다 에이미로 이른바 여자 하루키 3인방이다. 이들의 소설은 말랑하고 가볍고 감상적이다(이런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여자 하루키로 불린다는 것은 하루키의 강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건 아닐까).

소설이라기보다는 한권의 순정만화를 읽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특히 에쿠니 가오리가 쓰지 히토나리와 함께 쓴 <냉정과 열정 사이>는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실연당한 사람들에게는 경전 같은 소설이다. 밀란 쿤데라가 소설 <향수>에서 '너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네가 어찌 되었는가를 알지 못하는 데서 생겨난 고통'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는데, 이 소설은 그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네가(동시에 내가) 어찌하고 있는지'를 거울처럼 보여준다. 사소한 오해로 헤어지게 된 연인의 헤어진 이후를 각각의 입장에서 서술한 내용이다. 읽는 동안은 살을 에이는 감정선을 따라가느라 마음이 아린데 읽고 나면 실연의 고통도 사실은 판타지구나 깨닫게 해주는 것이 이 소설의 미덕이다. 그와 내가 맺고 있던 관계가 깨져서 아픈 것이 아니라 '아프다'는 사실 자체에 집중함으로써 아픔을 가져온 전후사정과 잘잘못 따위를 잊으려고 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관계의 쓸쓸함은 에쿠니 가오리의 최신작인 <호텔선인장>에서도 읽을 수 있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볼 수 있는 이 소설은 '호텔선인장'이라는 이름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오이와 숫자 2와 모자가 서로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줄거리의 전부다. 서로를 받아들이고 느끼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설레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지만 그 감정들이 본질을 변화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야마다 에이미는 단편집 <공주님>에서 실연 대신 연애를 통해 관계의 불안정함을 묘사한다. 5편의 연애소설이 수록된 <공주님>에서 연애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그 사랑에 도취되어 있는 순간이 아니라 그것이 영원한 것이 아님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이다. '죽음을 감추고 있는 여자는 남자에게 버림받지 않는다' (체온재기)라는 문장은 연애나 사랑은 상대에 대한 불안이 팽팽하게 이어져 있어야 가능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신파 같지만 수긍이 간다.









일본 여성작가들의 연애소설을 읽다보면 어쩔 수 없이 유미리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유미리의 소설은 이들과 확연하게 다르다. 주제도 소재도 쓰는 방식도 다르다. 동포 2세인 그녀를 일본 작가의 범주에 넣어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소설이 일본사회와 충돌하고 교류하여 형성된 정서적 기반을 근간으로 씌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일본 소설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일본 소설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가족에 대한 강박, 민족적인 정체성이 끝없이 노출되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그러한 강박도 그녀에게 아쿠카타와상을 안겨준 <가족 시네마>처럼 비교적 초기작에서만 엿볼 수 있다. 이후에 보여지는 그녀의 소설인 일본사회 자체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렇더라도 다른 여성작가들과 주제의식이 많이 다르다는 점은 변함없다.

영화로도 제작되어 성공을 거둔 바 있는 <철도원><러브레터> (영화 <파이란>의 원작 소설)의 작가 아사다 지로도 폭넓게 사랑받는 작가 가운데 하나다.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나 집안이 몰락하는 바람에 야쿠자 생활까지 해봤다는 그의 밑바닥 체험이 녹아 있는 소설은 읽기 쉽다는 것이 장점이다. 그는 가족이 해체되고 파편처럼 남은 개인들이 홀로 살아가는 풍경을 자주 쓰는데 우울하고 쓸쓸하면서도 동시에 따뜻한 느낌을 주는 것을 보면 본성이 착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장편보다는 단편이 훨씬 매력적인 작가다. 최근에 나온 아사다의 소설은 주로 장편이다. 단편으로는 <장미도둑>이 있지만 <낯선 아내에게>를 더 권하고 싶다.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가 없다고는 하지만 대중적인 감수성의 글로 시작했다가 어느 정도 인기를 모으고 나면 좀더 문학적인 수사법을 구사하려는 태도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자연스러운 전환이 아니라 의도적인 전환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법이다. <장미도둑>은 조금 더 문학적일지는 몰라도 '아사다'스럽기는 덜하다.

대중소설의 경쾌발랄함









소설이 농담처럼 가벼워지는 건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비슷한 추세다. 경쾌발랄함은 솔직히 일본 소설이 한수 위다.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에 대한 적서 차별이 없는 탓인지 그들의 대중소설에는 콤플렉스가 없다. 특히 재미있는 건 나오키문학상 수상작들이다. 이것저것 고민하지 않고 낄낄거리며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읽고 싶다면 일단 나오키문학상 수상작부터 고르면 된다. 아쿠카타와상이 순수소설에 주어지는 문학상이고 나오키상은 대중소설에 주어지는 상이라는데 그 선정 기준이 유머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한·일 합작영화로도 제작된 <GO> (흥행에는 실패했지만)는 스스로를 코리언재패니즈라고 부르는 재일동포 가네시로 가즈키가 썼다. 조총련계 초·중학교를 다니며 느낀 일본사회의 차별을 딴청부리듯 경쾌한 문체로 그려냈다. 외형적으로 연애소설을 표방하고 있는 이 소설에서 연애는 단순히 남녀의 교감의 문제가 아니라(그건 문제될 것도 없다. 이 소설에서 남녀로서의 두 존재는 갈등의 여지가 없다. 그야말로 한눈에 반해 딱딱 들어맞은 그들은, 성별 존재로서는 전혀 갈등하고 있지 않다.) 다분히 언제가 그 기원인지 알 수도 없는 국적으로 이질화된 타자들간의 문제로 나타난다. 이 문제 앞에서 작가는 역사와 상황 속에서 개인은 떠돌아다니는 부초라고 말한다. 즉 개인은 민족이나 국가 인종에 매이지 않는 고유의 개체라는 뜻이다. 물론 부초라는 표현에는 뿌리내리지 못한 이의 서글픔도 어쩔 수 없이 묻어난다. 가볍지만 경박하지는 않은 것 또한 이 소설의 미덕이다. 비극이 정점에 달하면 유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정체성 혼란의 상황을 농담으로 풀어내기까지 작가가 거쳐간 심적 고통이 소설의 문체처럼 발랄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의 또 다른 소설인 <레벌루션 No3.>도 재미는 있지만 만한 깊이는 없어서 아쉽다.

역시 나오키문학상 수상작인 야마모토 후미오<플라나리아>도 재미를 전면으로 내세운 소설이다. 농담의 기저가 비극에 있다는 앞서의 명제는 이 소설에서도 유효하다. 재미있는 소설의 주인공들은 인생의 낙오자라는 공통분모를 안고 있다. 그러고보니 학창 시절에 반에서 제일 웃기는, 자처한 개그맨들은 모두 반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들이었다. 슬픔과 웃음은 일종의 샴쌍둥이 같은 것일까.

물론 일본의 젊은 소설이 모두 경쾌발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2002년 아쿠타카와상을 받은 요시다 슈이치<파크 라이프>는 현대인의 일상을 보여준다. 전철을 타고 회사와 집을 오가며 가끔 회사 근처 공원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는 남자의 일상과 그 남자 주위 사람들의 가벼운 에피소드가 소설의 전부다. 특별한 사건이 없는 일상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는 소설인데 한순간 아찔해진다. 끝없이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고,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지만 화자는 누구와도 관계맺지 않는다. 의도한 것도 아니고, 따돌림을 당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타인과 나 사이의 거리가 숙명처럼 몸에 배었을 뿐이다. 주인공을 비롯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삶은 지하철을 타고 가다 맞은편 창 어둠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과 느닷없이 조우했을 때처럼 낯선 동시에 익숙하다. 내 삶이 어떠하다고 말해주지 않으면서 어떠하다고 직시하게 만들어주는, 질투를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요시다 슈이치는 아쿠카타와상과 더불어 가장 대중적인 신인작가에게 준다는 야먀모토 슈고로상도 수상했다. 우리의 문학적 풍경 속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실 경쾌발랄하고 당당한 일본의 '대중소설'을 읽다보면 가끔 헷갈린다. 그들의 대중소설에서는 배다른 오빠가 조폭이어서 청순가련한 여주인공이 불치병에 걸리는 일도 드물지만 순수문학을 하는 작가가 대중적인 상을 받았다고 해서 경원하는 일도 없다. 이른바 대중과 순수가 경계도 모호하지만 서로 배타적이지도 않고 넘나듦도 자유로워 보인다. 우리 문학에서도 그런 게 가능할까. 쉽지는 않아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sayonara > 성공한 사람들의 10가지 비결

[주간조선 2003-11-04 14:16]

인생역전! 한판승

① ‘이거다’ 싶으면 과감히 덤벼라

② 사람들과 ‘인간적’ 관계를 유지하라

③ 최소 1년 이상 철저히 준비하라

④ 직원들에게 먼저 모범을 보여라

⑤ 하고 싶은 일, 잘 하는 일을 택하라

⑥ ‘인생 전체’를 놓고 철저히 계획하라

⑦ ‘창업’만이 유일한 길은 아니다

⑧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라

⑨ 인맥이 없으면 적극적으로 만들라

⑩ 당연한 말 한 가지… 최선을 다하라

어느 날 갑자기 내게 명퇴가 닥친다면? 부득이하게 현재의 직장과 직업을 그만두어야 한다면? 명퇴와 감원이 새삼 직장인들의 최대 화두로 등장했다. 경기침체로 인해 IMF에 버금가는 감원 태풍이 몰아치면서 직장인들의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제2의 인생은 어떻게 개척해야 하나 등에 대한 상념들이 불안감과 함께 많은 직장인들의 뇌리를 사로잡고 있다.

현 직장과의 이별은 샐러리맨의 숙명이다. 그것이 명퇴든 정년퇴직이든 단지 시기의 문제일 뿐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은 30대까지 명퇴 대상이 되고 있으며 정년퇴직을 해도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할 만큼 평균수명이 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인생역전’의 방법은 없을까.

이에 준비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선배들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먼저 매를 맞은 직장인, 먼저 거센 풍파를 헤치고 인생역전에 성공한 사람들로부터 교훈을 얻는 것이다. 이들은 굳이 로또복권이 아니더라도 인생역전이 실현가능한 일임을 웅변하고 있다. 회사원, 대기업 간부, 공무원, 군인, 은행원, 홍보실장, 이사급 연구원, 자영업자, 의사, 기자 등에서 인생역전에 성공, 새 인생을 살고 있는 10인을 만났다. 이들은 “본인의 노력과 대비 여하에 따라 인생역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노하우가 있다”고 말한다.

“매출 목표 200억원” 기업 대표된 샐러리맨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골프용품 유통업체 임팩트매니지먼트㈜를 운영하는 조진현(45) 대표는 6년 전인 1997년 4월까지 SK글로벌의 화학본부 사업팀장이었다. 샐러리맨이었던 그가 불과 6년 만에 골프 연구소까지 갖추고 내년 매출 200억원을 목표로 하는 업체 대표로 변신했다.

1983년 입사, 동기들 중 선두를 달렸던 그가 사표를 내자 회사가 발칵 뒤집어졌다. 사장은 4개월 간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만류했다. “1996년 계열사인 SK인더스트리가 거의 업계 최초로 명퇴를 실시하는 것에 충격받았습니다. 언젠가는 내게도 닥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승진이 빨라 직장생활이 지겹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라 인생행로를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은 자신이 좋아하는 골프 관련사업. 말레이시아 지사 근무 때 골프에 입문, 핸디 5의 애호가인 그는 이왕이면 전문가로 새출발하기로 결심했다. 40세에 집을 팔아 미국 샌디에이고 SDGA골프대학(골프경영학 전공) 유학길에 오른 것이다. 여기에는 유창한 영어 실력도 한 요인이 됐다.

하지만 생활이 빠듯해 부인은 현지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자신도 한 학기를 쉬며 학비를 마련해야 했다. 새벽 3시까지 열성적으로 공부한 결과 1999년 8월 3.87점(4.0 만점)이라는 최고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거의 빈털터리 수준. 국내에 집 구할 돈이 없어 식구들을 미국에 남겨 놓은 채 단신 귀국, 방송국 골프 해설위원으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

2000년 4월 투자자들과 함께 현 업체를 설립한 그는 “처음에는 이 업계에 인맥이 없어 고전했다. 그러나 골프 지식과 성실성ㆍ친화력 등으로 인맥을 형성, 이제 ‘군단’을 이루었다”고 말했다.

“유학을 마치면 수중의 돈은 거의 다 떨어진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골프 지식이 새 출발에 큰 자산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과감히 투자했습니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교수 등 같이 공부한 미국인 동창들이 ‘한 직업만으로 평생을 살면 얼마나 지루하겠느냐’며 모두 ‘커리어 체인지(career change)’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의사 사표… 매출 400억원 벤처사 대표로

직원 110명, 올해 매출액 400억원. 제대혈 관련 생명공학기업 메디포스트 양윤선(39) 대표는 2000년 8월까지 6년 간 삼성서울병원 임상병리과 의사(교수 겸직)였다. 서울대 의대를 수석 졸업한 양 대표가 안정적인 교수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럽고 매우 쉬운 일이었다. 그런 그가 하루 수십 개 업체가 생겼다가 사라지는 벤처기업 대표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쉽게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이 싫었습니다. 더 나아가 내가 해 보고 싶은 일에 전념해서 더 의욕적으로 일하고 싶었습니다. 대학병원 시스템에서는 내 일을 하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양 대표의 창업에는 10년 이상 병원에서 쌓았던 경험들이 기반이 됐다. 그러나 직업 속성상 교수가 벤처사업가로 변신했다는 점은 큰 변화다. 특히 그는 수많은 벤처기업, 바이오업체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와중에 회사를 10배 이상으로 성장시켰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금은 항상 아슬아슬한 전쟁터에 놓여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양 대표는 “평소 비즈니스에 흥미가 많았기 때문에 재미있게 일한다. 힘들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낙천적으로 일한 것이 오늘에 이른 큰 요인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양 대표는 초창기 시설투자비가 많이 들어가 자본금을 소진할 때까지 수익모델을 만들어내지 못해 고전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새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 대해 “기술이 중심이 되는 벤처기업의 경우 구체적 수익모델이 완성됐을 때 창업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난관을 특유의 친화력으로 돌파했다고 한다. “업무상 만나는 사람들과 사업적 이해관계를 떠나 인간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내게 도움을 준 사람들에 대해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회가 되면 나도 돕겠다는 자세로 임해 왔습니다. 이같은 인간관계가 새로운 분야, 새 형태의 사업을 이해시키고 협조를 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기자에서 한의사로 극적 ‘대변신’

서울 강남구 대치동 황앤리한의원 황치혁(40) 원장은 신문기자 생활을 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한의사로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 그러나 신문기자와 한의사 사이에는 약 10년에 걸친 시간적 공백이 있다.

서울대 외교학과 82학번인 황 원장은 1992년 하반기까지 약 4년 간 한국일보 기자로 근무했다. 힘들다는 ‘언론고시’를 통과해 경제부 체육부 등에서 열심히 그리고 재미있게 일하던 그에게 인생역전의 계기가 찾아온 것은 1992년 3월쯤. 갑자기 심장부위 통증과 함께 체력이 급격히 저하되는 일을 겪었다.

대학병원의 종합진찰 결과 “아무 문제가 없다”는 진단이 나왔지만 선친이 심장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그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또 항상 피로에 절어 힘들어 하는 선배들의 모습도 그의 마음을 어둡게 했다. ‘10~20년 뒤 나도 저렇게 힘들어 하면서 살아야 하나….’

그는 수개월 고민하고 가족, 선배, 친지들과 상의한 끝에 한의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신의 건강문제에 대한 우려도 한 요인이 됐다. “처자의 생계를 책임진 상태에서 한의대 입시 준비를 해야 하는 형편이라 우선 물려받은 39평 아파트를 팔아 22평짜리 전세로 옮겼습니다. 이후 학원과 독서실을 오가는 생활을 했습니다.”

생계를 위해 도중에 자영업을 하기도 했던 그는 두 번째 도전에서 경희대 한의대 97학번으로 입학했다. “6년 간 재학 중 줄곧 과외를 했음에도 매달 100만~200만원씩 까먹어 물려받은 아파트를 완전히 날렸습니다. 그러나 돈보다는 졸업 후 어떤 한의사가 될 것인가에 대해 더 고민했습니다.”

올 4월 개원한 황 원장은 두 번에 걸친 입시와 오랜 과외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수험생 전문 클리닉으로 특화,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는 이미 4권의 수험생 관련 서적을 출간하기도 했다. 건강문제 때문이었지만 퇴사할 때 ‘도태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는 그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때에는 최소 1년 이상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패밀리 레스토랑 대표된 회사원

샐러드 전문 패밀리 레스토랑 운영자 세븐스프링 한준(39)씨는 1997년 IMF 여파로 7년 간 일했던 직장을 떠나야 했다. 이랜드 식품사업부에서 근무하던 한씨는 자신이 하던 일과 같은 업종을 선택해 새 출발을 시도했다.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퇴직 후 3년 간 피자 프렌차이즈 사업을 구상하기도 했지만 피자 가게가 워낙 많아 경쟁이 버거워 포기하기도 했다. 세븐스프링 1호점이 강남에 문을 연 것은 2002년 3월 18일. 투자자를 모집하고 신용대출을 받아 힘들게 돈을 모아 사업을 시작했다. 약 1년 5개월이 지난 올 8월 25일 여의도에 2호점을 열었다. 현재 세븐스프링 하루 매출액은 약 1500만원 정도. 그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세븐스프링의 경쟁력은 헬프서비스입니다.” 보통 패스트푸드점은 고객이 직접 가져다 먹는 셀프서비스, 호텔 고급 레스토랑은 종업원이 모든 시중을 드는 풀 서비스 혹은 테이블 서비스를 실시한다. “기본적으로 셀프서비스 시스템으로 매장을 운영하지만 손님이 원한다면 풀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또 샐러드를 맛있게 먹는 법을 아는 분이 적기 때문에 종업원들이 고객 옆에 붙어서 어드바이스를 합니다. ‘이 야채에는 이 소스를 뿌리면 좋다’ 이런 식 입니다.” 헬프서비스란 단어는 세븐스프링에서 직접 만든 단어다. “헬프서비스는 토론 끝에 나온 아이디어입니다. 남과 다른 우리만의 장점 없이 경쟁에서 이길 수는 없습니다.”

“다 때려치우고 음식점이나 하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는 외식산업이 3D업종이라고 말했다. “손님 중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상대하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내가 사장이니까 시키면 된다고 생각하면 망합니다. 종업원들은 사장이 하는대로 합니다. 직접 설거지를 하고 화장실도 치워야 합니다.”

공무원 진급 앞두고 사표… 등반업체 차려

아시아트랙킹닷컴 이상배(49) 대표는 1994년 14년 공무원 생활을 접었다. 당시 그의 직책은 경남 양산 시청 주사보 계장 진급을 앞둔 시점이었다. 그가 공무원을 그만둔 이유는 산, 그것도 8000m 이상의 높은 산에 오르고 싶어서다.

“1990년부터 해외에 나가 높은 산에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공무원이 일주일 이상 휴가를 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해외 고산 등반은 보름 이하로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는 결국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정된 직장을 버렸다.

처음 시작한 일은 건설 하청업. 작은 회사라도 사장은 원하면 산으로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감을 준 업체에서 사장이 장기 해외 여행을 나간다는 것을 좋게 보지 않더군요.” 사장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그리고 아예 산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는 회사를 만들었다. 아시아트랙킹닷컴은 등반 장비 판매, 등반 가이드, 패러글라이딩 장비 판매 및 교육 사업을 한다. 예를 들어 경험이 없는 등산 동호인을 고산 적응 훈련을 시켜 히말라야, 남미 최고봉 아콩카과 등에 올라가도록 도와 준다.

“8000m 이상 산에 오른 것이 6회입니다. 내 인생관은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후회는 절대 하지 않습니다. 수입이요? 공무원 때보다는 2배 정도 많습니다.”

물론 안정적인 생활을 외면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공무원하다 나오니까 사회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공직사회에 있으면 자기 업무만 하면 끝입니다. 아무래도 공직에 있으면 권위주의적 마음이 생깁니다. 남들이 와서 굽신거리니까요. 그러나 반대로 사업은 내가 허리를 숙이지 않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씨는 힘들 때마다 목숨을 건 등반을 할 때를 생각한다. “더 힘든 일은 없습니다. 약한 마음이 사라지지요.”

그는 내년 8월 50세 때 세계에서 6번째로 높은 8201m 초오유 정상에서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내려올 계획이다. “등반의 진수를 맞보려면 3000m 이상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주 5일 근무로 레저의 시대가 열립니다. 앞날은 희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성공비결은 하고 싶은 일, 잘하는 일을 선택해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고교시절부터 산악반 활동을 해 온 이씨는 산사람들 사이에서 상당히 알려진 인물이다. “일 자체를 즐기기 때문에 항상 정열적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은행원서 변호사로 ‘업 그레이드’

인천에서 개업하고 있는 남궁평(39) 변호사는 1983년 서울여상을 졸업했다. 이후 주택은행에 취업, 10년 간 평범한 은행원 생활을 했다. 그러나 1992년 동기들보다 5살 많은 ‘언니’로 성균관대 법대에 입학, 1996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1999년 사법연수원 수료 이후에는 기업법무를 담당하다 2002년 11월 인천 지방법원 인근에 개인변호사 사무실을 차리고 가정문제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남궁 변호사가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한 것은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이었다. 1남 3녀 중 둘째딸. 그러나 남궁씨는 “아쉬운 건 사실이었지만 그 때는 다 그랬다”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단순한 일을 반복해야 하는 은행원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또 화려한 집안 배경이 없는 상황에서 노력으로만 성공할 수 있는 일을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목표가 사법시험.

직장을 그만두고 학력고사를 치르고 25살에 성균관대 법대에 입학해 고시공부를 시작했다. 대학 등록금은 4년 내내 받은 장학금으로 해결했지만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일은 대학 입학처럼 순조롭지 않았다. 남궁씨는 “경제적인 것도 문제였지만 평소 약골 소리를 듣던 몸으로 고시 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1994년 1차 시험 합격 후 이듬해 응시한 2차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가 가장 큰 위기였다. 하지만 남궁씨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고시에 도전해 1996년 38회 사법시험에 동차(한 해에 1·2차 시험을 동시에 합격하는 것)로 합격했다.

남궁씨는 늦게 공부를 시작하면서도 조급하게 결과에 매달리지 않고 자신의 상황에 맞는 공부 스타일을 찾은 것을 성공의 비결로 꼽았다. 남궁씨는 또 고시 합격을 통해 인생역전을 꿈꾸는 직장인들에게 “고시는 원래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기 인생의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서 도전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최연소 이사에서 컨설팅회사 대표로

한스컨설팅 한근태(47) 대표는 졸업 후 연구원 생활을 하다 국비장학생으로 미국 애크론대에 유학을 떠나 박사학위(고분자공학 전공)를 받았다. 이후 1989년 대우자동차에 차장으로 입사해 39살에 최연소 이사가 됐다.

직장 내에서 초고속 승진을 하던 한씨가 대기업 이사 자리를 박차고 나온 이유는 ‘샐러리맨의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한씨가 대우자동차 이사로 재직했던 1997년, 회사 임원들이 미국으로 최고경영자 과정 연수를 떠났다가 연수가 끝날 무렵 골프를 친 것이 사내에서 물의를 빚었다. 임원들이 연수 중 골프를 쳤다는 사실이 김우중 회장 귀에 들어가 전원 인사조치가 내려졌던 것. 한씨는 “그 사건을 보니까 ‘대기업 이사도 어쩔 수 없는 월급쟁이’라는 생각이 들어 내 회사를 창업해야 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말했다.

이후 한씨는 대기업 이사를 지내며 익힌 경영마인드를 바탕으로 경영컨설팅 회사를 창업하기로 결심했다. 한씨의 시작은 불안했다. 일을 배워 보겠노라고 컨설팅 회사에 들어갔지만 경험이 부족했던 한씨의 한 달 월급은 고작 60여만원. 한씨는 월급통장을 보고는 ‘괜히 홧김에 대기업 이사 자리를 관둔 것은 아닌지’ ‘아내와 아이들을 제대로 먹여 살릴 수 있을지’도 고민했다.

그러나 한씨는 2년 간 묵묵히 미래를 위한 투자를 했다. 그리고 1999년 핀란드 헬싱키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하고 2002년까지 한국리더십센터 소장으로 근무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상승시켜 나갔다. 그리고 2002년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한스컨설팅’을 창업했다. 한씨는 “창업 1년 후 매출액은 10억원에서 조금 부족한 정도인데 이 정도면 순조로운 출발”이라고 평가했다. 한스컨설팅은 대기업을 상대로 리더십 강좌와 조직내부 문제 해결 등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한씨는 컨설팅뿐 아니라 한경비즈니스의 고정 칼럼니스트를 비롯해 각종 매체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한씨는 “창업 후 내 능력을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해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며 “이전에 몸 담고 있던 회사에서 인맥과 노하우를 최대한 쌓은 것이 이 바닥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소개했다. 한씨는 또 “반드시 창업을 해야 성공한다는 생각은 금물”이라며 “직장 내에서도 충분히 자신이 생각하는 성공을 달성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호텔 홍보실장 그만두고 교수로

수원대학교 호텔경영학과 우경진(39) 교수는 1991년 대우그룹에 입사, 힐튼호텔 홍보실장으로 근무했다. 근무환경도 급여도 괜찮은 직장이었지만 1996년 9살 터울의 둘째 아이를 갖게 되면서 회사를 그만뒀다. 평소 체력이 좋지 않았던 우씨에게 육아와 직장을 병행한다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이다. 우씨는 아이를 놓고 1년 간은 육아에 매달리다 1998년 다시 교수로 화려한 컴백을 했다.

우씨는 출산과 함께 직장에서 밀려나야만 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보기 좋게 깨뜨린 경우다. 우씨는 호텔에서 근무하면서 경희대로 야간 강의에 출강하면서 교수직에 관심을 갖게 됐다. 우씨는 “내가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을지에 대해 반신반의 했는데, 막상 강의를 나가 보니 가르치는 일이 즐거웠고 학생들의 호응이 의외로 좋은 것을 보고 교수라는 직업을 꿈꾸게 됐다”고 말했다.

출산 이후 우씨는 다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이 둘을 둔 아줌마가 다시 직장을 갖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게다가 이전 회사로 다시 복귀는 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인생에 변화를 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러던 중 몇몇 대학에서 호텔경영학과 교수를 모집한다는 말을 듣고 지원해 1998년 단박에 교수로 임용됐다. 호텔에서 쌓은 실무경험이 좋은 평가를 받았고 몸에 배어 있는 호텔리어의 매너가 면접장에서 통했기 때문이다.

초임 대학 교수의 연봉은 호텔 홍보실장 연봉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우씨는 “돈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익힌 경험과 이론을 접목할 수 있어 진정한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게 교수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우씨가 말하는 성공 비결은 ‘변화에 대한 확신’. 우씨는 “인생의 진로를 변경할 때마다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변경했을 때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도전한다면 성공 가능성은 높아지게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장교에서 수억원 연봉 보험사 지점장으로

매트라이프 생명보험 서울 삼성동 스타지점장 김성환(32)씨는 이 회사의 스타 가운데 하나다. 입사 이후 영업사원 시절 실적 경쟁에서 늘 전국 1~2등을 다투었다. 그는 입사 전 1999년까지 군인이었다. 중대장인 대위로 군생활을 마치고 회사에 들어갔다. 다른 회사를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보험 영업이 적성에 맞다고 생각했다.

현재 200명 직원을 거느린 김 지점장은 “한창 영업 일선에서 뛸 때 연봉이 수억원이었다”고 말했다. 김 지점장은 자신이 얼마나 받았는가를 밝히기를 꺼린다. 그러나 대충 짐작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회사 관계자는 “현재 영업 직원 가운데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사람은 7억원 정도를 번다”고 말했다.

“군을 나서기로 작정을 하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신문 경제면에서 증권, 부동산 관련 기사를 주의 깊게 읽었습니다.” 그는 입사 5개월 후 제주도로 내려갔다.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똑같이 일하면 다른 영업사원들에게 뒤지더군요. 10명에게 상품을 판 돈이 남이 한두 명에게 판 것과 같았습니다.” 제주도를 찾은 이유는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한 번 부딪쳐 보기로 마음먹었다. 부유한 전문직 종사자인 의사들을 겨냥했다. 무조건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들에게 보험 가입을 권했다. 그렇게 북으로 북으로 진격했다. 마지막 도착지는 인천. 기간이 1년이나 걸렸다. 확보한 의사 고객이 200명에 달했다.

“의사 200명을 고객으로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힘이 들었지만 점차 내공이 쌓이더군요. 요령이 생겨 미리 편지를 보내게 되고, 편지 안에 복권을 넣게 되고….” 그는 “의사를 만날 때 진료권을 끊고 들어갔다”고 한다. “시간이 돈인 사람들입니다. 그 정도는 예의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사들 사이에 전국을 도는 보험 영업직원이 있다는 소문이 났다. 만 2년 영업을 하는 동안 434명의 고객을 확보했다.

그는 또 지금 영업 사원에서 관리자로 변신에 성공했다. 삼성동 스타지점이 문을 연 것은 지난 10월 1일. 김 지점장은 20여명 사원을 거느리는 본격적인 관리자로 막 첫발을 디딘 것이다. 그의 성공비결은 적극성이다. “외국 보험사들은 영업사원들이 무작정 사람을 만나 영업을 하는 것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인맥을 이용하라는 것이죠. 그러나 모든 사람이 좋은 인맥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인맥이 없다면 적극적으로 인맥을 만들면 됩니다.”

인터넷 농산물점 주인된 자영업자

옥션에서 보현산골이라는 이름으로 과일즙·고춧가루·참기름 등을 팔고 있는 허문길(39)씨. 그는 대구에서 휴대전화 대리점을 하다가 1997년 IMF 한파에 사업을 접었다. 형이 농사를 짓던 경북 영천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기로 마음을 먹었다. 읍내에서 15㎞ 떨어진 산골짜기다.

“농촌에 돌아와보니 소비자 가격이 산지 가격에 10배에 달하는 물건도 있더군요.” 그는 인터넷으로 소비자에게 직접 물건을 팔 마음을 먹었다. 1999년 인터넷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옥션에 고구마 양파 복숭아 등을 올려 놓고 팔기 시작했다. 그러나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택배비는 비싸고, 포장이 부실해 멍이 들고 벌레가 들어가 항의를 받았습니다.”

살아 숨쉬는 농산물을 파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가 생각해낸 해법은 가공이었다. “과일은 과일즙을 만들고, 깨는 참기름으로 만들어 판매했습니다.”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 시작했다. 시중에 포도 다이어트가 유행하면서 설탕을 넣지 않은 허씨의 ‘순수 과일즙’이 인기를 끌었다. 직접 포도를 재배하고 가공해 시중가격보다 30~40% 저렴하게 물건을 팔았다. “이제는 포장기 6대, 착즙기 20대 분량 돌리고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습니다.” 작년 추석에는 한 달에 4000만원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그냥 농사만 지었을 때보다 5배 정도는 더 벌고 있습니다.”

옥션에서는 수만 명이 물건을 판다. “그 가운데 잘 파는 사람이 어떻게 하는가를 보고 따라했습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소비자가 신뢰할 수 있도록 선전문구를 만들고,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그를 따라해보겠다는 사람이 많았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무조건 저에게 전화를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이트에 방법이 다 적혀 있는데 보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사이트를 샅샅이 뒤져 잘하는 사람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며 “사이트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며 판매방법을 연구하는가가 승부”라고 말했다.

성공과 실패를 가른 것은 적극성이다. “대구에 있는 대학까지 하루 3시간씩 오가며 인터넷과 컴퓨터에 대해 배웠습니다. 술, 담배도 이때 끊었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공부하다가 밤을 새운 적도 많습니다.” 남에게 의지하는 사람과 몸으로 부딪쳐 배우는 사람의 차이가 성공과 실패로 나타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sayonara > 인생을 걸작으로 만들 바로 당신!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너 자신의 미래와 거래하라]
글 조철 기자 (cheol@joongang.co.kr)

 

젠가, 멀고 먼 옛날, 이름 모를 나라에, 한 노인이 언덕 위의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 노인은 일생을 연구와 사색에 바친 사람이었다. 그의 높은 학식과 지혜는 명성이 자자했으며, 정치인들과 기업인들, 여러 유명인사들이 조언을 얻고자 찾아오곤 했다. 그의 조언은 언제나 정곡을 찔렀다. 그에게는 어떤 문제나 고민에 대해서도 단번에 핵심을 짚어낼 수 있는 신통력이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조언에 따르면 안 되는 일이 없었으며,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만 갔다.

언덕 아래 마을에는 어울려 노는 아이들이 있었다. 때때로 그 아이들도 궁금한 것을 물어보러 언덕을 올라왔고, 노인은 그 아이들에게도 언제나 정확한 해답을 말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일종의 게임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노인이 대답할 수 없을 것 같은 질문을 짜내 언덕을 올랐지만, 노인은 언제나 해답을 말했다.

어느 날, 아이들의 대장 격이던 애덤이라는 소년이 다른 아이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다. “저 늙은이를 골탕먹일 방법을 드디어 알아냈다. 여기 내 손 안에 새가 한 마리 있거든. 그 늙은이에게 가서 내 손의 새가 살아 있나, 죽었나를 물어보는 거야. 그가 죽었다고 하면, 손을 펴서 새가 날아가도록 하는 거지. 살아 있다고 하면, 주먹을 꽉 쥐면 돼. 그럼 새는 죽어버리겠지? 어떤 대답을 하든 틀린 대답이 되도록 하는 거야.”

마침내 노인이 틀린 답을 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잔뜩 흥분한 아이들은 언덕을 달려 올라갔다. 노인은 그 아이들이 들떠서 달려오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마침내 애덤이 앞으로 나서더니 노인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내 손에는 새가 한 마리 있어요. 살아 있게요, 죽었게요?”

노인은 장난기와 기대에 달아오른 아이들의 얼굴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애덤아, 그건 네 손에 달려 있구나.”

우리 운명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이 이야기의 요점이자 교훈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거의 모든 일이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우리 운명은 다른 누가 아닌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우리의 미래는 대부분 우리 스스로가 정하며, 우리 자신의 선택과 판단에 따른다. 우리의 현재는 우리가 매년, 매일 한 일과 하지 못한 일의 결과다.

내가 스물 한 살 때였다. 아주, 아주 추운 겨울날이었다. 나는 작은 원룸 아파트에 앉아 장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희망차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건설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고, 생활 태도도 건실하지 못해 주급을 받기가 무섭게 빈털터리가 되곤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는 깨달았다. 그 노인의 이야기처럼, 그 시점부터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나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행복하고, 건강하고, 인기가 있고, 풍요롭고, 매사에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그런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 앞에 펼쳐진 기회와 방법 외에 미래를 만들 수 있는 길은 없다. 다행히도 말이다.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모든 것을 최대한 선용하는 것, 그것이 우리 삶의 최고 목표이다.

세상에는 기본적으로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능동적인 사람과 수동적인 사람. 정말로 능동적인 사람은 10퍼센트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그들은 각자의 영역을 이끌어가는 창조적 소수다. 그들은 스스로의 손으로 스스로의 삶을 움켜쥐고, 만들어간다. 스스로의 현재에, 스스로의 행동에 전적으로 책임을 진다. 위험과 불확실 속으로 과감하게 발을 딛는다. 우리 미래는 우리 손으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라. 그러면 우리도 창조적 소수가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대응한다. 누군가 다른 손길이 자신을 지켜주리라 믿으며 복권을 사고, TV 앞에 죽친다. 그리고는 현재의 자신을 불평한다. 그들은 성공한 사람들을 흘겨보면서, 그들이 했던 것처럼 노력할 생각은 않는다. 그들은 노선이 끊긴 버스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인생을 흘려보낸다.

희망은 전략이 아니다

희망은 성공을 위한 전략이 아니다. 우연에 맡기기에 인생은 너무 귀중하다.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책임지고 자기 손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 그래서 주어진 인생을 값지게 쓰는 것이 우리의 최대 사명이다.

그 때 조그만 원룸에서 깨달음을 얻은 다음, 나는 80개 이상의 나라를 다니며 일했다. 내가 시작하고, 세우고, 운영하고, 흑자로 전환시킨 사업은 22개에 달한다. 나는 500개 이상 기업의 컨설턴트나 트레이너로 일했으며, 사업과 개인 생활에서 이 성공 전략을 배우려는 수강생들과 세미나 참여자들 200만명 이상을 가르쳤다. 그러면서 나는 바람직한 미래를 스스로 만들기 위해 독자들에게 쓸모 있을 아이디어들을 제시했다.

가끔 나는 세미나 도중에 이렇게 질문한다. “여기 수입을 두 배로 늘리고 싶으신 분 계십니까?” 그러자마자 모두의 손이 지체없이 올라간다.

나는 말한다. “좋아요.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수입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다는 거죠. 충분히 오래 살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연 3퍼센트에 달하는 물가 상승률과 여러분이 앞으로 20내지 25년을 더 일한다는 가정을 하면 결국 여러분의 수입은 두 배가 될 겁니다. 따라서 수입을 두 배로 늘리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요. 얼마나 빨리 늘릴 수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가속 페달을 밟아라

여러분이 나와 비슷하다면 결과를 얻고 싶어 안달일 것이다. 문가 새로운, 다른 것을 해보기로 결심했다면(특히 자신의 미래를 만드는 일에서) 가능한 한 빨리 성과를 얻고 싶으리라. 좋은 일이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해야만 한다.

나는 스스로의 인생 행로에 가속 페달을 밟아 꿈꾸던 것 이상으로 빠르게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내가 제시한 여러 가지 실용적인 방법은 그것을 이용한 모든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었다. 그것은 개인 생활과 직무 경력을 향상시키는 최고의 방법이며, 모든 분야에서 최고가 된 사람들이 사용했던 바로 그 방법이다.

이제 여행을 떠나자. 여러분의 넓고 넓은, 아직 개척되지 않은 가능성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바로 지금부터, 우리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sayonara > [퍼온글] 오드리햅번이 아들에게 들려준 글

아름다운 입술을 가지고 싶으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갖고 싶으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봐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싶으면 하루에 한 번
어린이가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를 쓰다듬게 하라.

아름다운 자세를 갖고 싶으면
결코 너 혼자 걷고 있지 않음을 명심하라.

사람들은 상처로부터 복구되야 하며,

낡은 것으로부터 새로워져야 하고,

병으로부터 회복되어져야 하고,

무지함으로부터 교화되어야 하며,

고통으로부터 구원받고 또 구원받아야 한다.

결코 누구도 버려서는 안된다.

기억하라... 만약 도움의 손이 필요하다면
너의 팔 끝에 있는 손을 이용하면 된다.

네가 더 나이가 들면 손이 두 개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

*위 내용은 오드리 햅번이 숨을 거두기 일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 때에 아들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 오드리햅번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