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우울 - 우울 권하는 사회, 일상 의미화 전략
에릭 메이젤 지음, 강순이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혈액형이 뭐냐는 질문을 아주 가끔 받는다. 바로 답을 안하고 왜 묻냐고 되묻는다.  내 대답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B형 아니냐고 자신있게 말하는 상대방. 이럴 때는 장단을 맞춰줘야 한다. 아니 어떻게 알았냐고 너무 신기하다고. 그러면 상대방은 딱 보면 보인다고 한다. 개성도 강한 것 같고 고집도 있는 것 같고 평범하지 않은 것이 더도 덜도 말고 'B'형이라는 거다. 내가 너무 신기하다고 흥분을 하면 상대는 더 기세등등하다. 자신이 혈액형과 성격에 대해 공부를 좀 했는데 안 봐도 비디오라는거다. 그 쯤되면 나는 차분하게 이야기한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놀이 중에 하나가 혈액형 성격 운운하는거라고. 그리고 안타깝게도 B형이 아니라 A형이라고 사실을 말한다. 제발 쓸데없는데 시간 낭비하지 마시라고.

 

포러효과(Forer effect) 또는 바넘효과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심리적 특징을 자신만의 특성으로 여기는 심리적 경향이다. 1948년 포러라는 양반이 대학생들에게 성격을 테스트하는 질문지를 줬다. 그리고 성격을 테스트 한 결과는 대체로 비슷했다. 어떤 상황에 대한 경향을 지수로 평가했는데 5점 만점에 4.26. 이런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질문이 막연하거나(vague) 일반적(general)이기 때문이다. 애매모호한 질문에 다들 대체로 그렇다는 평가를 내리기에 같은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자, 이제 책 이야기로 들어가자. '우울'이라는 이야기만 들어도 우울증에 걸린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던 일이 원하는대로 안 되고, 현실은 갑갑하고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한 며칠 지속된다 싶으면 자가 진단을 한다. 우울증에 걸리는 것은 아닌가 하고. 살아가면서 그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원치 않는 슬픔, 본인 기준으로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우리는 '우울증'이라는 진단카드를 내민다.

 

 멜 슈워츠는 심리학 전문 잡지 <사이콜로지 투데이> 블로그에 이런 글을 썼다. "인생의 오르막과 내리막이라는 정상적인 경험들이 지금은 기능 이상의 프리즘을 통해 관찰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모든 시련과 고통에는 진단명이 꼬리표처럼 붙고, 우리는 희생자 집단이 되어간다. 막연한 불안감과 인간다움의 병리화에 희생되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이런 속단을 내리게 되는가? 그것은 정신건강산업과 의료계가 만들어 놓은 패러다임에 우리가 놀아나기 때문이다. 의료계는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내릴 수 있는 다양한 증상을 정했다. 이러한 증상 중에 몇가지만 해당이 되어도 '우울증환자'가 되는 것이다. 원치않는 슬픔이 닥쳤을 때 이 증상 중 3-4가지 이상 해당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미국정신의학회는 정신장애를 "개인에게 발생하며 현재의 고통이나 무능력을 동반하거나, 죽음이나 통증, 무능력, 중대한 자유의 상실을 겪을 위험을 심각하게 증가시키는, 임상적으로 중요한 행동적 또는 심리적 증후군이나 양상"으로 정의한다. 이 정의는 겉만 번지르르하다. 정신건강 산업 비평가들은 이처럼 알맹이 없는 기준에는 사실상 불쾌한 것이면 무엇이나 들어맞을 수 있다는 점을 거듭해서 지적해왔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우울증이라 부르는 만성적인 슬픔의 지속상태를 벗어나기 위한 충고를 제법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실존의 회복, 또는 자존감의 회복이 필요한 부분들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상황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한다. 가리거나 과장할 필요없이 불편한 현실을 인정해야한다. 아침마다 그날의 의미 계획을 세우고 순간 순간을 어디에 투자할지 결정해야한다고 말한다. 항우울제가 치료의 중심이 될 수 없으며 의사의 단기적 처방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마음의 감기'라고도 불리는 '우울증'은 흔한 병이다. 주변에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이들이 있다면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도 필요하다. 치료받으면서 병을 인정하고 위로 받는 것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슬픔이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깨닫고 우리에게 대처할 힘이 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단기적 처방은 또 다른 원치않는 슬픔이 찾아오면 또 고생하기 마련이다. 이 책의 후반부는 어려운 현실에 실존을 회복하면서 당당히 맞서 싸울 힘을 주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제발 권위에 속지 말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에 빠지지 말고 항상 의심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