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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남녀, 백년 전 세상을 탐하다 - 우리 근대문화유산을 찾아 떠나는 여행
정구원.최예선 지음 / 모요사 / 2010년 5월
평점 :
100년후엔 이 책이 귀한 자료가 될 것이다 - 청춘남녀 백년전 세상을 탐하다

소중한 책이다. 가치가 있는 책이다. 백년후엔 이 책이 귀한 자료가 될 것이다.
저자 둘은 부부다. 프랑스에 3년 동안 유학을 다녀 온 후 그들이 머물렀던 백년 된 아파트들이 즐비한 프랑스 리옹을 떠올리며 근대 건축을 찾아 여행을 떠나기로 맘 먹었다. 여행을 위한 안내서를 구하는데 찾을 수 없었고, 그래서 직접 발품 팔아 찍어 온 사진, 수집하고 조사한 자료들을 묶어 책을 냈다. 있을 법한 책인데 찾을 수 없었고 그래서 직접 수고했다. 건축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건축당시 시대 배경이나 지리적 조건, 설계자, 건축주, 당시의 용도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 건축의 용도. 그리고 최근의 문화재 지정과 같은 이야기들을 담았다. 그래서 좀 더 세세하게 읽다보면 우리 근대사가 숨어 있다.
대부분 일제시대 지어진 건축들이라 일제시대에 흥했던 동네가 많이 언급된다. 수도 서울(경성)이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고. 부산, 인천(제물포), 군산, 목포, 김제 그리고 진해 같은 동네다. 답사를 처음 한 곳은 군산이지만 책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곳은 인천(제물포)이다. 인천이 개항할 때 외국인들이 합법적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협정을 맺은 조계지租界地다. 단층 한옥이 거의 전부이던 당시 2-3층으로 올라간 신식 양옥은 이국적 문화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당시 백성들에게는 낯섬이고 충격이다.

내가 이 책을 잡자마자 의심의 눈길을 보낸 것이 진해우체국이다. 있을까? 있을거야. 그래 이렇게 있다.
이 동네(경남 창원) 매년 3월말에서 4월이면 이웃마을 벚꽂놀이에 분주하다. 디카동호회의 그 즈음 정모 출사지는 무조건 진해다. 내수면 연구소에서 로망스 쪽으로 사진을 찍다가 조금 더 내려와 중원로타리 한 바퀴 돌고 난장을 가로 질러 빠져 나와 한 숨 돌리는 곳이 진해우체국이다. 이 책에서는 군항제 기간에도 굳게 문이 닫혀 있다고 했는데 우리가 기억하는 벚꽃놀이 때 진해우체국은 개방되어 있다. 시기를 맞추어 매년 우표 전시회를 했다. 소장가들이 애지중지 하는 우표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일제시대 지어진 건물들 특징이 튼튼하다. 1913년에 지어졌으니 거의 100년이 다 되어가는데 진해에 있는 어떤 현대식 건물들보다 튼튼해보인다.
우체국과 관련해서는 인천우체국과 우정총국도 소개되어 있다. 우정총국의 설명은 한국사 교과서 한 페이지다. 급진개화파 지식인들이 갑신정변을 일으킨 장소가 우정총국이다. 갑신정변 실패 후 역적들이 모반을 꾀한 장소라는 이유로 우정총국은 폐쇄된다.

[청춘남녀]들이 1월 1일 새벽에 떠난 첫 목적지가 군산이다. 군산의 해사.
저자들의 첫 답사지(?)가 군산이다. 군산항은 일제시대 미곡반출항이다. 김제에서 수확한 쌀을 군산항으로 옮겨 일본 상선으로 일본으로 날랐다. 뿐만 아니라 제물포에서 선교사들을 실은 정기여객선이 다닐 만큼 번창했다. 군산의 해사 건물은 원형을 잘 보존한 경우는 아니지만 문화재 지정으로 다른 건물에 비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경성 밖 최고의 건물이라던 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은 세인의 무관심으로 시대의 변화가 주는 상처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규모가 큰 건물이라 나이트클럽으로 유명세를 날릴 정도였다.
(조정래 소설 아리랑을 보면 그 당시 쩌어기 저 동네들이 잘 묘사되어 있다.)

'알박기' 아니다.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주택이다. 대전 대흥동의 '뾰족집'. 재개발에 들어가면서 주위 건물은 다 철거 되었지만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보존 된 경우다. 이런 건물들이 살아남았기에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경우다.

진천의 덕산 양조장. 지금은 세왕주조. 그러나 진천 사람들은 여전히 오랜 기억 속의 덕산 양조장으로 부른다. 80년이 넘는 술도가. 그 안의 술을 익히던 술독은 1935년 산産이다. 진천군에서 시행한 도로확장공사로 정문 앞의 측백나무가 모두 베어질 운명에 처하자, 도로를 다른 부지로 옮겨서 훼손을 막았다. 개발의 논리로 무턱대로 밀어버린 경우가 더 많지만 이런 노력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 노력으로 20년만 지나도 재개발해야 한다고 믿는 이 땅에 몇몇 건축물들은 살아 남았다.
p85. 적자생존의 법칙은 적어도 건축의 역사에서만큼은 지켜지지 않는다. 건축은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살아남았기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살아남은 것이 얼마 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 가치와 중요성이 높아진다. 건축은 온몸으로 역사를 보여주고 시대를 증언한다.
400페이지 가까운 이 책에서 가장 가슴에 와 닿은 문장이다. 지극히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그렇지만 그게 현실이다. 이제는 인식이 많이 바뀌어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축물이라면 앞으로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그러나 목숨만 부지하는 것과 잘 보존하는 것은 다른 경우다. 내셔널트러스트National Trust를 아는가? 영국에서 시작된 자연보호와 사적 보존을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시민들의 기부금으로 자연자원과 문화자산을 확보하여 영구히 보전 관리하는 시민운동이다. 소유주나 주변 거주자들의 재산권을 존중하면서 자연자원이나 문화유산을 보전한다. 우리나라 내셔널 트러스트 1호는 최순우 옛집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가치를 잘 표현한 저자의 은사일 듯한 성균관대 건축학과 윤인석 교수의 추천사를 빌린다.
이 책으로 우리도 이제 근대사의 현장에서 스토리텔링이 시작되었다. 남겨야 하나, 부수어야 하나 논쟁하는 사이, 한국 근현대사의 유구들이 무수히 사라져갔다. 가까운 역사를 지우는 작업이 계속된다면, 지난 한 세기의 유구는 다 사라지고 다음 세대는 사이버박물관의 이미지 자료나 뒤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외할머니의 낡은 지폐에서 시작된 지난 백 년에 대한 저자들의 호기심은 그 시대의 건물, 골목, 마을을 전국적으로 넘나들며 정보를 모았고, 담백한 문장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따. 저자들이 직접 찍고 그린 사진과 도판은 현장을 더욱 잘 이해하게 해 준다. 부부가 청춘의 마음으로 현장을 걸으며 쓴 이야기는 일반인을 향한 한국 근대건축 스토리텔링의 출발점이라고 확신한다.
윤인석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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