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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이데올로기, 책을 학살하다 (양장)
레베카 크누스 지음, 강창래 옮김 / 알마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책을 태우는 곳에는 결국 인간도 태우게 될 것이다 - 책을 학살하다

올해 내가 잘 한 일 중 하나는 아내와 매주 화요일마다 2시간씩 경남도립미술관에서 미술교양강좌를 듣는거다. 책으로만 웹으로만 이해하던 단편적 지식들이 여러 선생들의 강의 속에서 엮어지는 것이 여간 즐거운게 아니다. 내가 공부를 참 잘 못하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건 배움 이상의 큰 소득이다. 당나라 제일의 문장가 한유韓愈의 사설師說에 "스승이란 도를 전하고 학업을 가르쳐 주며 의혹을 풀어주는 자이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아는 것이 아닌데, 누가 의혹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의혹스러우면서도 스승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의 의혹됨은 끝내 풀리지 않을 것이다."라고.
큰 깨달음을 준 미술 강좌 첫 수업이 <<미술이 마음을 담을 수 있는가>> - (프랑스 야수파와 독일표현주의)다. 독일의 표현주의 작가들은 히틀러와 나치에 의해 퇴폐미술로 낙인 찍혀 활동이 금지되고 그들의 작품은 몰수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망명의 길을 선택하기도 했다. 더 치욕스러운 것은 <퇴폐미술전>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웃음거리가 된 일이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책 이야기 하나만 더 하자. 유종필의 [세계도서관기행]에 '독일'편을 보면 분서焚書축제를 벌였던 현장인 베벨광장이 나온다. 악명높은 선전장관 괴벨스는 '반독일 정신에 대항하기 위하여'라는 깃발을 내걸고 당대 최고 학자들의 저서를 전국에서 수집해와 분서축제를 벌인다. 괴벨스는 그것들을 태우면서 "이 불꽃이 새 시대를 환하게 밝혀줄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책을 학살하다. 레베카 크누스 지음. 강창래 옮김. 진시황이 법가 사상으로 중국을 통일하면서 실용서를 제외한 모든 사상서적을 태우고 유학자를 생매장한 사건을 "분서갱유焚書坑儒'라 부른다. 2천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오래 된 과거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20세기에도 일어났고 양이나 내용으로 따져도 진시황의 그것에 모자람(?)이 없다. 아니 넘쳐난다.
p8. 책을 학살하는 두 가지 이유는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다. 책은 적의 상징물이었고, 피통치자에게는 자기 권리를 깨치게 하는 것이어서 통치자에게는 성가신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책은 통치자에게 더 잘 통치하기 위한 지혜를 주는 생명과 영혼의 샘물 같은 것이었고, 잘만 활용하면 피통치자를 길들이는 데에도 어 없이 좋은 도구다.
책을 학살하는 것은 피통치자의 문화를 학살하는 행위다. 나치는 유대인과 유대인의 문화를 함께 없애려 했고 세르비아도 보스니아에서 이슬람의 문화를, 중국은 문화혁명으로 공산주의에 반하는 과거의 자국 문화를, 그리고 티베트를 탄압하면서 티벳의 불교문화를, 이라크는 쿠웨이트 문화를 태워없애려 했다. 책을 학살하는 행위의 동기는 자문화 우월주의일수도 있고, 열등감일 수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히틀러와 나치의 유대인 탄압은 우월과 열등감이 동시에 나타난 경우다. 다윈의 진화론은 사회학적으로 변이되어 우생학을 만들었고 독일 제국주의는 아리아인이 적자適者라는 우월주의를 낳았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배상금 문제와 겹친 경제적 위기의 어려움을 유대인의 음모와 경제적 독식 탓으로 보았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독일 관리들은 유대인 학살 목표 수치를 1,400만으로 잡았고, 실제로 유대인을 학살한 숫자는 600만에 이른다. 폴란드에서는 90퍼센트의 유대인을 죽였고 70퍼센트의 책을 파괴했다. 보존된 책이 독일 학자들의 연구를 위한 것이라니 이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 책의 여러 이야기 중에 나치 독일의 인종조의와 민족주의가 빚어낸 비극만 옮긴 것이다. 내가 지금껏 읽은 책 중 가장 긴 역자 서문은 저자의 노력의 흔적을 역자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책, 도서관, 문화 말살에 대한 다양한 고찰이 담겨 있고 독일 뿐만 아니라 세르비아, 중국, 이라크의 책의 학살도 각 나라의 역사, 정치, 이념적 이유와 함께 설명하고 있다. 책의 학살은 민족의 학살, 문화의 학살이다. 이 책은 역사의 생채기를 더듬는 작업이다. 읽는 내내 안타까운 역사에 대한 아쉬움이 가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마지막은 다른 책에서 빌어온다. 아래 글의 광장은 괴벨스가 분서 축제(?)를 벌였던 베벨 광장이다.
광장 중앙에는 텅 빈 지하 서가를 만들어 투명 유리를 통해 안을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책이 사라진 공간은 문화와 지성, 이성의 결핍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이 지하 서고에서 조금 떨어진 바닥에는 시인 하이네가 1820년에 쓴 작품에서 가져온 문구가 동판에 새겨져 있다. "그것은 단지 전야제에 불과했다. 책을 태우는 곳에서는 결국 인간도 태우게 될 것이다." 이 구절은 1백여 년 뒤에 벌어질 사건을 예견하고 쓴 것이나 다름없다. 시인의 놀라운 예지력에 소름이 끼친다. 유태계의 이 천재 시인은 지금 몽마르트 언덕의 공동묘지에 누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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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도서관기행. 유종필 지음. 前 국회도서관장.
현재 관악구청장 민주당 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