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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만화책 - 캐릭터로 읽는 20세기 한국만화사, 한국만화 100년 특별기획
황민호 지음 / 가람기획 / 2009년 10월
평점 :

우리 만화 통사 - 내 인생의 만화책
나의 만화에 대한 기억은 다채롭다. 나는 어릴 때 오락대장이었다. 오락은 많이 할 수록 실력이 늘어 플레잉타임 증가로 적은 돈으로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만화 대장이던 친구녀석은 내공이 쌓일수록 한 권, 한 권 보는 속도가 늘어 만화방에 지출할 돈이 증가했다. 돈은 어떻게든 만들어낸다. 없는 준비물을 만들어내든지 우유값을 삥땅치던. 주인과의 돈독한 관계는 적은 돈으로도 금액 이상의 책을 읽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아버지께 여쭸다. 어릴 때 만화방 좋아하셨냐고. 울 아버지 44년생이시다. 아버지는 만화 안 좋아하셨는데 만화책 좋아하는 친구들이 여럿 계셨단다. 학교 마치면 무조건 '땡'이란다. 밤 늦도록 대본소에서 죽치고 사는 요즘말로 폐인들은 그 시절에도 있었단다.
만화가 박재동 이야기. 모친께서 만화방을 하셨단다. 그 때 그시절 만화방은 비난의 대상이다. 우리 초등학교 때 오락실 주인 아저씨가 학부형들 공공의 적이듯이. 그런 분들은 가슴 한 켠에 멍에를 지고 산다. 박재동이 서울대 미대를 합격했다. 만화방 주인 아줌마는 아들이 서울대 붙었다고, 만화방 주인 아들이 서울대 미대에 붙었다고 자랑삼아 두고두고 이야기하셨단다.
올 초에 단행본 만화 한 권을 샀다. [신의 물방울]과 [식객]을 꾸준히 구입해 오던 터라 책 많이 사는 사람이 만화책 단행본 한 권을 더 산것이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러나 특별하다. 의미가 있다. 책의 저자는 이상무. 달려다 독고탁의 이상무다. 한동안 골프만화만 그리다가 간만에 낸 책이다. 읽는 내내 나보다는 한 세대 위지만 공감할 수 있는 정서가 많아 흐뭇했던 기억이 있다. 책은 [감또깨이 입에 물고]
내 인생의 만화책. 황민호 지음. 한국만화 100주년 특별기획. 대한민국 만화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김용환의 코주부, 김성환의 고바우, 김원빈의 주먹대장, 산호의 라이파이, 땡이, 꺼벙이, 일지매, 고인돌, 혁이, 도고탁, 이강토, 강가딘, 독대, 둘리, 오혜성, 구영탄, 변금련 등등 세대는 달라도 그 시대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웃겼던 주인공들이다.
앞에 이야기한 이상무의 [감또깨이 입에 물고]를 구입한 것은 어린 시절 많은 즐거움을 준 작가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자 다시 추억에 잠기고픈 최소한의 투자였다. 이상무가 골프만화를 그리는 대신 독고탁이라는 캐릭터를 계속 살렸다면 요즘 아이들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모난 구석없고 잘난 거 없고 마음 한 구석에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한이 있는 캐릭터를 요즘 아이들은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이 책은 우리 만화 통사다. 만화의 역사가 오래 되지 않아 고작 100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통사라고 부르는 것이 마뜩찮을지 모르지만 그런 작업을 체계적으로 한 것이 별로 없는 마당에 이 책이 지닌 가치는 상당하다. 만화에 죽고 만화에 사는 정도가 되어야 하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취사선택하는 수고, 독자를 위해 깔끔하게 적는 노력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한가지 궁금한 점은 취사선택의 과정에서 지면상, 책의 편집상 포함되지 않은 작가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궁금하다. [누들누드]의 양영순이나 시사만화가 박재동, 그리고 순정만화계의 뛰어난 작가들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 아쉽다.
만화의 생명은 비논리성과 비현실성을 무기로 한 가공할만한 상상력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치열한 삶의 반영이 없다면 만화의 생명력이 오늘 더 빛을 발하고 만화가 누리는 무대가 오늘처럼 넓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화가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은 당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