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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 박찬일의 이딸리아 맛보기
박찬일 지음 / 창비 / 2009년 9월
평점 :

시칠리아의 뜨거운 태양만큼이나 뜨거운 요리 이야기 -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시칠리아는 이탈리아가 아니다. 로마보다 아프리카 대륙에 훨씬 가깝다는 거리의 문제만은 아니다. 시칠리아야말로 지중해의 땅이다. 유럽의 땅에 아랍의 피와 아시아의 정신이 녹아들고, 누구의 간섭과 지시도 거부하는 고집스런 그들만의 문화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연민과 사랑, 공동체 정신과 저항, 시니컬한 웃음으로 가려버린 진정한 인간미, 시칠리아는 지중해의 독특한 문화적 특성이 만들어낸 귀한 자산이다. - 이희수 교수의 지중해 문화기행 -
문창과를 졸업하고 잡지기자로 활약했던 저자는 30대 초반 요리에 흥미를 느껴 이탈리아로 유학을 간다. 삐에몬테 요리학교에서 '요리와 양조과정'을 이수하고 1년간 실습을 위해 선택한 곳이 시칠리아다. 우리 나라에서 전통 요리학원을 마치고 1년간 전라도 쩌어기 어느매 한식집에서 욕쟁이 할머니 밑에서 수련을 한다고 하면 적절한 비유일까? 그래도 그 욕쟁이 할머니가 전통 한국 음식에 대한 고집이 있어서 좋은 재료를 고집하고 음식의 조리에 관한 원칙이 있다. 손님에게 툭툭 던지는 투박한 말투는 서비스다. 주방장이자 오너인 쥬제뻬 바로네는 욕쟁이 할머니만큼 이탈리아 음식에 대한 자부심과 원칙을 가진 사람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는 나의 재료로, 가장 전통적인 조리법으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먹는 요리를 만들어라'는 요리의 삼박자를 저자에게 일깨워 준 인물이다.
요리, 지중해, 이탈리아, 글쟁이 이런 것들을 감안해서 나름 우아한 글쓰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저자는 시칠리아에 대해 비슷한 착각을 했다. '고백건데, 내가 씨칠리아까지 흘러간 것은 [지중해], [시네마 천국], [일스포티노] 같은 영화들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널널'하고 유쾌한 동네일 것이라는 기대가 충만했고, 게다가 사람들이 재미있기까지 할 거라고 제멋대로 상상한 까닭이었다.' 그의 글은 지중해 태양만큼이나 뜨거웠다. 시칠리아는 이탈리아에서도 향토색이 가장 강한 동네다. 외부 이민족들과의 많은 왕래는 다양한 문화를 품게 했고, 거기 살아온 이들의 성격도 뜨겁게 달구어 놓았다. 그들의 가슴에는 뜨거운 피가 흐른다.
그의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뜨거웠다. 정성스럽게 요리한 음식에 태클이 들어오면 당장이라도 팬에 지글거리는 파스타를 손님 얼굴에 날려버릴 것 같은 주방장 쥬제뻬. 좋은 재료가 있다면 이미 예약된 것이라도 빼앗아 챙겨오는 불같은 성격이지만 그는 슬로운푸드 운동의 시칠리아 지부장이다. 항상 대마초를 물고 다녀 쥬제뻬의 욕을 면치못하는 부주방장 뻬뻬. 어린 나이에 이미 요리대회 우승 경력이 있는 요리 실력 하나 만큼은 최고다. 군대 가기 싫어 병원에서 환자식 짬밥을 만들며 '방위병'으로 군필을 한 인물이다. 한달 월급을 탈탈 털어 평소 입고 싶었던 가죽 재킷과 바지를 사는데 날리는 멋쟁이 이탈리안 청년이다.
우리가 책으로 접하는 요리, 다큐로 만나는 일류 레스토랑 이야기는 환상이다. 레스토랑의 테이블은 환상이지만 주방은 현실이다. 뜨거운 열기가 식지 않는 곳이고 접시에 올려지는 음식은 접시 하나 하나에 극히 소량이지만 큰 밀가루 푸대도 날라야 하고 살아있는 다양한 생명체를 음식으로 바꾸어야 하는 삶의 현장이다. 이탈리아 음식은 재료의 특성을 잘 살려 극히 적은 양념과 소스를 첨가한다. 좋은 재료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재료에 자신이 없어 쏘스로 까므쁠라주하는 것은 이탈리아 요리가 아니다.
이탈리아 요리와 시칠리아를 조금 더 이해하고 보면 좋을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