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읽은 깔끔한 에세이 - 망각의 힘 지난 시절 읽은 책들을 돌이켜보면 깔끔한 에세이가 많았다. 미사여구를 줄이고 언어의 군더더기를 없애고 할 말을 간결하게 담아내는 그런 깔끔한 에세이. 사진의 기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곁들여진 사진은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지나친 수식어는 의미를 전달하는 문장에서 이미 군더더기가 되어버린다. 단어의 취사선택은 할 말만 간결하게 담아도 문장이 아름답다. 의미 전달은 더 분명해진다. 망각의 힘. 도야마 시게히코. 책 소개와 제목에서 우리의 기억과 망각에 대해 심도있게 다른 인문과학 서적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내용은 몇 편 되지 않는다. 노老 수필가의 에세이다. 그래도 처음 받은 느낌과 그것을 다룬 내용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인간의 언어는 누에의 고치와 같다. 누에가 실을 뽑아 고치를 만들듯이 인간은 자신이 뱉은 말에 의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든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세계에 갇혀 버리는 우를 범한다. 언어의 폐단에 제 몸과 마음을 묶어 버린다. 그리움에 대해서. 제 눈앞에 펼쳐진 대상이나 우리가 손에 넣은 것에 대해서는 그리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리운 고향이 있다면 갈 수 없어서 그리운 것이고 꿈에만 볼 수 있어서 그리운 것이다. 아름다운 곳은 글로, 이야기로 들었다면 때로는 상상속에만 담아두라고 이야기한다. 내가 찾아간 곳은 더 이상 글로, 이야기로 들었던 아름다운 곳이 아니다. 행동주의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지식이 능사는 아니다. 최근에 읽은 이어령의 '생각'에도 지식을 습득하려고 발버둥치지 말고 창의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고민하라고 했다. 도야마 시게히코도 같은 생각을 내비친다. 어릴 때 창조적인 생각을 하던 아이가 나이가 들면서 지식의 양이 늘어나고 창의적 고민을 하기보다는 스키마 위에 또 다른 지식을 얻고 스스로 만족한다. 문사들에게 이런 행태는 그의 문학 장르에서 나타난다. 어릴 때 풀어내던 시詩를 나이 들어서는 더 이상 욕심내지 않는다. 자유로운 사고를 하지 못하고 산문으로 돌아서버리는 것이 그 예다. 비워야 채운다. 비우지 않고 채우면 아래 묵힌 것은 썩어 버린다. 발효가 아니라 부패다. 대부분은 일부러 비우지 않아도 망각의 힘으로 절로 사라진다. 망각의 힘은 우리가 안타까워해야 할 것이 아니라 꾸준히 재생하고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다. 신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다. 읽는 내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은 느낌은 '과거에는 이런 에세이들이 많았는데'...였다. 그것이 좋든 싫든. 언어의 깔끔하고 담백한 맛을 느낄 수 있었고 의미 전달이 명확했고 시의성이 있었다. 물론 그 시절의 에세이처럼 약간은 고리타분한 느낌이 불편했지만 그 불편함도 반가웠다. 젊은 여자들의 옷이 몸의 곡선을 너무 드러내는데 보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한데 전통옷(기모노)은 몸을 감싸면 마른 몸이든 비대한 몸이든 가릴 수 있다고. 이렇게 기모노의 우수성을 칭찬하는 부분에서는 노老작가의 글이려니 하고 넘겨야 했다. 그 시절 우리 사회의 노老작가들도 항상 젊음을 그렇게 불편해했고 안타까움을 전통에서 끌어와 메우려고 했다. 분명 진부하고 읽기 불편한 부분이다. 기름기 쫙 뺀 에세이. 가을에 어울리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