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 쌤앤파커스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교수를 인상깊게 본 것이 작년에 [TV 책을 말하다 - 책문화대상, 눈부신 역작]편에서다. 그가 그토록 좋아한다던 영락없는 슈베르트의 모습이다. 내가 중학교 때 음악선생님께 들은 슈베르트의 모습은 키작고 배 나오고 똥똥한 사람이다. 그 날의  빨간 넥타이는 어떻고? 그의 인생 화두인 '재미'와 '즐거움'을 만드는 "리추얼ritual'중 하나인 출근하기 직전 만년필 고르듯이 고르고 골랐을 터인데, 그 빨간 넥타이에는 도날드덕과 구피와 미키마우스가 매달려 있다. 그런데 문제는 외양이 아니다. 한 해 동안 출판되고 프로그램에 소개된 책 중에서 저자의 노력이 고스란히 들어간 역작을 뽑는데 그의 말이 걸작이다. "...저자들의 성격이 이런 경우 대부분 좋은 경우는 없습니다. 역작의 조건으로 저자들의 성격이 고약한 것이 되지 않을까...왜냐하면 이정도의 책을 쓰려고하면 정말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지 않으면 이 정도의 책이 안 나옵니다...." TV 책 소개하는 교양프로그램에서 어찌나 싼티나게 재미있게 이야기 하는지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저자 김정운. 이 책은 그의 외모만큼이나 언변만큼이나 재미있다. 읽는 내내 킥킥거리다가 아내에게 이상한 사람 취급 받았다. 이야기의 초장은 개인사다. 묘하게 슬프고 에로틱한 여인 이야기도 있고, 팔뚝 굵고 지나치게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내 이야기도 있다.  골프장에서 히히덕 거리면서 성적인 농담을 쪼개는 친구들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거기서 이야기가 끝나버리면 수필이다. 아니 수필 중에서도 싸구려다. 개인사의 다양한 경험을 그가 전공한 심리학 이야기로 연결하고, 또 풀어서 쉽게 설명하고 개인과 사회가 고민하는 부분을 진단하고 독자들이 수긍하게 만든다. 이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같은 책도 읽는 사람에 따라 느끼는 재미와 감동이 다르다. 내가 작년에 읽은 책 중에서 제일 재밌었던 책이 [윤광준의 생활명품]이다. 책 좀 읽는다는 내가 이렇게 아웃커밍 해버리면 뜬금 없다고 할 사람 적지 않을거다. 근데 정말 그 책이 제일 재미있었다. 내가 가지고 싶은 물건들을 하나도 아니고 여러 수십개를, 이전에 몰랐던 아이템까지 갖고 싶게 만든 그 책을 나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올해는 이 책이다. 올해 지금까지 70여권의 책을 읽었는데 가장 재미있는 책을 꼽으라면 단연 이 책이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그냥 재미 있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부분을 공감했기 때문이다. 내 블로그 둘러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삶을 추구하는지. 나는 아내와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치고, 미래의 행복 못지않게 현재의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결과못지 않게 과정을 즐기는 법을 배우려고 노력해왔고 아내와 따로 또 같이 삶이 즐거울 수 있는 리추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심 흐뭇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남들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그래 난 제법 잘 하고 있는 거 같아'라고 스스로 만족하며 행복할 수 있어서 책 읽는 내내 즐거웠다.

 

김정운. 그는 단순한 지식노동자가 아니다. '근면'과 '성실'이라는 20세기의 화두가 한 물 가 버린 21세기에 '재미'와 '행복'이라는 가치를 전파하는 사회운동가다. 무엇을 하든 '재미'있어야 하고 무엇을 하든 '행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행복전도사다. 그의 전작前作 [노는 만큼 성공한다]나 [휴테크]등에서도 꾸준히 제기했던 문제다. 죽어라 일만 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잘 놀고 잘 쉬어야 보다 창의적인 생각이 나온다. 일하는 시간이 생산성과 비례하는 시대는 아니지 않는가?

 

끝까지 유쾌하다. 이 책을 출판하는 이유를 캠핑카를 사기 위해서 라고 한다. 일주일에 2-3일은 경치 좋은 곳에서 정말 좋아하는 일만 하고 싶어서다.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남들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오, 신이시여! 정말 내가 이 글을 썼단 말인가요?"라고 자찬하면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물론 저자가 이런 나의 평가를 거부하고 "난 독일 통일의 단초를 제공한 혁명가이자 섬세하고 여린 나름 예술가"라고 항변한다면 할 말 없다.^^

 

이 책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이야기 말미에 나오는 한 줄의 폭소다. 몇 개만 소개하면

* 나는 아내가 혹시 먼저 죽는다 해도 그 때처럼 따라 죽을 생각 같은 건 절대 안 한다. 정말 오래 살 거다. 아침마다 커피를 갈며, 악착같이 오래 살거다.

* 10센티 크기의 굵은 망사스타킹이라면 더욱 더 감사하고...크흐!

* 어쨌든 만질수록 커진다. 어느 부위든.

* 창의적이 되려면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고 잘 놀아야 한다고 강의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놀 시간이 전혀 없는 지경이 됐다. 아, 이 또한 정말 아니다.

* 이렇게 쓰고 나니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든다. 호남 사람이 고대 다니다 해병대 다녀오면 정말 '골 때릴 것' 같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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