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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좀 도와줘 - 노무현 고백 에세이
노무현 지음 / 새터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여보 나 좀 도와줘 - 노무현 고백에세이
7년전에 읽었던 책을 지금 다시 읽고도 많은 분들께 이 책을 어떻게 소개해야 될 지 고민이 많습니다.
2002년 제가 세번째 대학을 다닐 때 PDA라는 것을 처음 샀는데 그 때 그 PDA카페에서 E-BOOK 텍스트 파일을 왕창 다운받았습니다.
그 중에서 몇 개를 지루한 강의 시간에 읽었는데 그 중 하나가 노무현 고백에세이 [여보, 나좀 도와줘]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눈물로 지켜보내면서 우리는 [기억하겠습니다,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
기억한다라는 말의 의미가 단지 이미지를 머리속으로만 그리는 것을 뜻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 분의 업적을 찾아보고 그 분의 책을 읽어보고 그 분이 나오는 다큐를 보고, 그 분과 함께 했던 많은 분들이 이야기를 들어 보면서
그 분이 진정으로 바라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고, 그가 의미를 두는 철학을 이해하는 적극적인 행동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보다 더 적극적인 분이라면 행동으로 보여주겠지만 이 못난 사람은 많은 분들께 노무현 대통령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 노력하는 과정중에 하나가 그 분과 관련된 책을 읽고 여러분께 소개하는 것입니다.
여보, 나좀 도와줘. 노무현 지음. 새터 출판사. 이 책은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우리 국민의 뇌리에 박혀 있는 노무현의 모습은 아닐겁니다. 책을 읽으면서 웃음짓게 만드는 많은 부분들이 이 동네(경상도) 아버지의 모습 그것입니다. 누나에게 물려받은 낡은 필통이 부끄러워 어수룩한 짝을 꼬여 필통을 바꾸게 했을 때 반 아이들로부터 '어떻게 급장이 어수룩한 아이를 꼬여 그런 일을 할 수 있냐'고 비난 받던 일. 중학교 갈 입학금이 없어 학교 교감에게 울며 사정사정 하는 어머니가 안스러워 입학원서를 북북 찢어버리면서 "어머니, 집에 갑시다. 나 이학교 안 다녀도 좋소" 그래도 울며 사정하는 어머니의 팔을 잡고 끌고 오며 "가요! 씨팔. 이 학교 아니면 학교 없나!". 울산 막노동 현장에 갔다가 일도 제대로 못하고 밥값 잔뜩 외상해놓고 울산역으로 도망쳐 나오던 일. 형 노건평과 김해 농업 시험장에서 감 묘목 100포기를 훔쳐 오던 일(나중에 감밭이 집안의 재산이 되었다 함^^). 고3 때 첫 직장에서 받은 월급으로 옷 살까 구두살까 망설이다 결국 기타 한 대 사고, 고시용 헌 책 몇권사고 나머지는 술마시고 영화 보는 데 다 써버렸다고 하네요. 저 때 산 기타덕에 우리는 기타를 연주하면서 "상록수"를 부르는 노무현을 만날 수 있었던 거 아닐까요?^^
고시 준비를 하면서 아내 양숙씨와 티격태격하다가 문짝이 떨어져 나가고 선풍기 목이 부러져 나간 일. 결혼 초기에 부부싸움 중 손이 올라가는 경우도 한 두번 있었답니다. 고시를 준비하면서 73년 1월에 결혼하고 5월에 신걸이(노건호씨 옛이름)를 낳았으니 양숙씨는 요즘 유행하는 혼수 준비를 해 간 셈이네요 ^^. 자녀 교육문제로 고민하면서 양숙씨는 한마디 합니다."당신을 닮았으면 공부를 잘할 텐데 나를 닮아서 돌인가보다"라고, 그러면서 "당신이 아이들에게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하면서 남편에게 다시 화살을. 건호씨가 대학을 다닐때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 마디 합니다 "엄마보다는 예쁜아이하고 사귀어라. 아버지는 엄마가 심지가 굳은데 반해서 결혼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억울하다"라구요.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지요.
노무현은 어찌보면 평범한 경상도의 전형적인 보수적인 남자고 집안일과 자녀교육은 양숙씨께 미루는 모습을 보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1946년생이니 유별난 아빠가 아니고서는 평범한 모습이죠. 그러나 운동권 학생들을 만나 토론하면서 자신의 여성관이나 사회를 보는 눈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그 때까지의 행동과 사고방식에 깊은 반성을 하게 됩니다. 아내에 대한 태도가 완전 달라졌음은 말할 것도 없구요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책도 많이 읽고 생각도 많이 하게 됩니다. 언젠가 기자의 질문에 답했답니다. 정치와 아내중 선택하라고 한다면 아내를 선택하겠다고. 그런 질문은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변호사를 하고 싶었지만 집안의 기대와 아내 생각하는 마음때문에 판사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판사의 수동적인 생활에 대한 회의와 전문변호사가 되고 싶은 꿈이 있어서 변호사 개업을 합니다.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도 법조계의 여러 나쁜 관행들을 어떻게 고칠 수 없을까 고민도 많이 하고 이런저런 노력도 많이 합니다. 82년 연수원을 졸업한 문재인 변호사와 동업을 시작하면서 브로커에게 주는 커미션을 일체 끊어버리고 대신 어쩌다 들어오는 큰 사건에 정성을 다 합니다. 그러던 차에 민권운동에 뛰어들고 노동분야 변론을 맞으면서 1년후 노동 법률 사무소를 차려 본의 아니게 노동법률전문 변호사가 됩니다. 재야 운동에 뛰어들던 86년 이후에는 노동사건, 시국사건, 조세 사건만 전문적으로 맡게 되고 의식에 큰 변화를 겪습니다. 사회와 이웃들의 삶에 너무 무관심하게 살아온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고 삶의 가장 큰 전환점인 '부림 사건'을 맡게 됩니다. 80년대 부산 재야의 좌장격인 김광일 변호사 대타로 부림사건 변호를 맡게 되면서 본격적인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됩니다. 노무현은 부림사건의 개인적 의미에 대해 그 때까지 독재와 고문에 대해서만 분개해 왔는데 부림사건이 진행되면서 학생들이 자신에게 독점자본에 의한 노동 착취와 빈부 격차의 모순 같은 문제를 이해시키려고 했고 그들로부터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때 부산대 총학생회장인 이호철(참여정부 민정수석비서관)을 만나게 됩니다. 후에 노무현의 국회의원 당선을 돕고 아무런 기대를 바라지 않고 홀연히 노동 현장으로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한 편으로는 아쉽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그의 담백한 삶의 태도와 헌신성이 존경스럽다고 말합니다. 82년 5월 미문화원 방화사건으로 70년대 부산의 반독재운동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송기인 신부를 만나게 됩니다. 노무현을 좋아한 나머지 자신의 성당으로 데려가 공부를 시켜 아내에게는 아델라, 노무현에게는 유스토라는 세례명을 지어 줍니다. 영결식 종교행사중 천주교 행사를 담당한 분이 송기인 신부님이시고 그 때 기도문에 [노무현유스토]라는 세례명이 나왔습니다.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명성을 날리다가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였던 YS(김영상)가 재야 영입케이스로 공천을 제의해와 정치에 입문하게 됩니다. 국회 청문회 때 법리가 부족하거나 이해관계 때문에 제대로 된 질의를 진행하지 못할 때 정곡을 찌르는 질문과 피의자들의 무성의에 대한 호통으로 과거 노무현의 첫번째 이미지인 "청문회 스타"로 떠오르게 됩니다. 노무현 스스로 소신을 지켜 가장 자랑스러운 일로 3당 합당때 안 따라 간 것을 꼽습니다. 정치 환경은 변하지만 노무현의 정치 소신은 변함이 없습니다. 야당통합때도 김정길 의원과 둘이 고집스레 통합에 반대를 합니다. 노무현의 정치철학 2가지가 개혁과 지역통합입니다. 김대중이라고 하면 경상도 사람들이 빨갱이라며 치를 떨던 시절에 당선이 보장되면 지역구를 놔 두고 부산에서 연거푸 떨어집니다. 자신의 정치철학을 배반할 수 없었고, 그렇게 해서 이겨야 자신의 꿈을 이루는 것이었으니까요.
노무현과 조선일보와의 투쟁은 그 시절에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통합된 민주당 대변인으로 임명된 다음 날 조선일보에 실린 사실과 다른 인물평과 주간조선의 허위 기사로 거대 언론에 맞서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하게 됩니다. 참여정부 시절 잘못된 언론보도에 대해 청와대는 꾸준히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했고 그 중 90%가 오보로 판정이 되었습니다.
노무현이 가까이 한 정치 지도자는 두 명입니다. 양김으로 통하는 DJ와 YS입니다. 노무현이 생각하는 지도자의 3대 요건이 1. 권력장악능력 2. 살림살이 솜씨 3. 역사의식 이 3가지인데 YS는 역사의식 부재로 위대한 지도자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DJ는 3가지 요건을 두루 갖추었지만 운이 따르지 않는 '안타까운 지도라'라는 것입니다. 이 책이 쓰여진 시점이 94년이고 DJ가 대통령이 되기 전이라 평가를 나중에 했다면 조금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이 책의 표지를 넘기면 왼쪽에 지금의 모습보다 젊지만 조금은 촌스러운 모습의 노무현 대통령 40대쯤의 사진이 있습니다.
굳게 다문 입술이 그의 흔들리지 않는 정치 신념을 대변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그 아래에 본문 내용중 일부가 적혀 있는데 이 책을 내게 된 이유입니다.
요약 정리하면 [변호사 개업하고 얼마 안 되어 어려울 때 한 사건을 60만원에 수임했는데 당사자간 합의만 보면 변론도 필요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변호사로선 합의를 해보라고 권유했어야 하는데 당시 돈이 궁해 사건 당사자를 서둘러 접견합니다. 그 다음날 아주머니는 합의를 봤다며 수임료를 돌려달라고 요구합니다. 일단 사건에 착수하면 수임료의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고 변호사 수임 약정서를 보여주면서 돈을 못 돌려 준다고 버팁니다. 속으로 미안하고 얼굴도 화끈거렸지만 당시 사정이 급해 받은 돈을 이미 써 버린 후였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실랑이를 벌이다 결국 눈물을 흘리며 돌아갔습니다. "변호사는 본래 그렇게 해 먹고 삽니까? 하는 그 말 한 마디를 던져 놓고는. 지금부터 시작하려 하는 이야기를 그 누구보다도 지금쯤은 백발의 할머니가 되었을 그 아주머니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지금까지 걸어온 내 삶의 영욕과 진실을 담보로 하여 따뜻한 용서를 받고 싶다]고 적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책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이미지의 노무현 대통령과는 조금 거리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분이 치열하게 살아오면서 겪은 과정들을 솔직하게 기록한 책이고 그래서 책의 부제도 [노무현 고백에세이]입니다.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정치 환경이 변해도 그의 정치 철학은 변함이 없었고 약자를 대변하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할 줄 알고, 더 치열하고 좀 더 겸손하지 못했음을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인간 노무현에 대한 기록입니다.
책에 관한 이야기 하나 더.
이 책의 출판사가 [새터]입니다. 청와대에서 2번이나 대변인을 지낸 윤태영 대변인을 기억하시나요?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을 글로 가장 완벽하게 표현할 줄 아는 글빨 대단한 측근입니다. 영어와 일어에도 능통해 전문번역사들이 번역해 놓은 연설문을 노무현의 단어로 바꾸어 전문번역사를 깜짝 놀라게 할 정도의 실력을 가진 분입니다. 동지 안희정의 권유로 출판사 경영에 참여하게 되는게 그 곳이 새터입니다.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이 쓰고 윤태영 대변인의 편집을 거친 책입니다. <- 이부분은 다른 책을 참조했는데 아마 정확할 겁니다.